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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서문 1장. 대영제국의 세 기둥 2장. 점점 다가오는 전선 3장. 석유 장악을 위한 세계의 다툼이 시작되다 4장. 석유는 무기가 되고, 근동은 전쟁터가 되다 5장. 협력과 갈등의 목표 6장. 영-미의 결속이 굳어지다 7장. 석유와 브레턴우즈의 신세계질서 8장. 스털링화 위기와 아데나워-드골 위협 9장. 세계 경제 역행 시키기 10장. 유럽, 일본과 오일 쇼크에 대한 반응 11장. 신세계 질서 강요 12장. 악의 제국에서 악의 축으로 13장. 석유 지정학을 향한 새 천년 부록 주 찾아보기 |
William Engda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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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 ‘석유’에 대한 그저 그런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도 아니고, 석유에 관한 그저 그런 내용을 담은 책도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지난 30년간 석유 지정학 문제를 집요하게 연구해온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비주류 경제학자이다. 우리가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석유’ 문제에 관해 이처럼 집요하고 철저하게, 그러면서도 설득력 있게 분석한 책은 없을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포사이트』 등 전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해왔고, 수많은 국제회의에서 지정학, 경제, 에너지 문제를 다룬 경력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1904년 영국의 지리학자 핼퍼드 매킨더의 논문 「역사의 지리적 축」은 ‘지정학’이라는 학문의 태동을 알렸는데, 거의 1세기 후에 카터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 특별보좌관이자 전략가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매킨더의 연구와 그의 유라시아 지정학이론을 극구 칭찬했다. 그것이 곧 미국의 드러내지 않은 세계전략을 이끌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석유’의 중요성을 최초로 인식한 ‘영국’, 석유 지정학의 태동 20세기 초반, 그것은 분명 ‘영국’의 세기였다. 아니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을 실질적으로 이끌 때까지만 해도 분명 그것은 영국의 세기임에 틀림없다. 당시 영국의 ‘금’은 세계 신용의 공급원으로서 파운드 스털링화의 역할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그 시기 ‘스털링화처럼 좋은’이라는 표현이 곧 영국의 위력을 짐작케한 자명한 관용구였다. 그런 영국에 대적하여 프랑스와 독일은 때때로 손을 잡기도 했고 때로는 적대적이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도 단순한 프랑스와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영국에 대적하여 협력을 모색하는 두 국가 프랑스와 독일의 사이를 벌려놓기 위해 영국정보부는 치밀하게 이 사건을 이용하였다. 아울러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중동지역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석유 공급을 위해 부설하려던 베를린-바그다드 노선에 대한 영국의 저지에 의한 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한 실질적인 이유가 1914년 8월 전야에 영국 재무성과 대영제국의 재원이 사실상 파산상태에 있었다는 점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제4장 참조). 또한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영국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30년 선거에서 겨우 600만 표밖에 얻지 못한 히틀러를 도운 것은 노먼(잉글랜드은행 총재)과 티아크스(잉글랜드은행 이사회 일원)를 비롯한 런던 지지자들의 국제적인 지원이었다. 이를 통해 영국은 독일이 소련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리라 믿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가 독소불가침조약으로 새로운 세계대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무렵 영국과 미국은 10여 년 넘게 석유 장악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서로 간에 격렬하게 부딪혔는데, 결국 1928년 ‘현상’(As Is) 협정 또는 아크나카리 협정으로 진정한 석유 동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세븐 시스터스’(일곱 자매)로 그 구성원은 바로 영미의 7대 메이저 석유회사인 엑슨, 모빌, 걸프, 텍사코, 셰브런, 로열더치셸, 브리티시석유회사이다. 이들은 이때부터 전 세계 석유의 채굴과 정유, 판매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는데 이는 곧 은밀한 세계 카르텔 가격을 정하고, 만약 이러한 지배력을 깨뜨리려는 위협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응징을 가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른바 석유 재벌과 영미의 금융가가 ‘석유’ 패권의 유지와 확대를 위해 영국과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거나 석유 시장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한 것이다. 흔히 알려져 있는 제1, 2차 석유파동은 결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들 세븐 시스터스와 영미의 금융가,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고위 정부관료의 작품임은 곧 드러났다. 미국 석유체제의 등장, 브레턴우즈체제와 단일 ‘석유 패권국’ 브레턴우즈체제, 그것은 곧 ‘미국의 세기’임을 보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브레턴우즈체제는 세 가지 핵심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회원국의 분담금으로 국제수지 균형이 위기에 처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긴급 준비금을 조성하는 국제통화기금(IMF), 둘째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를 위해 회원국 정부에 차관을 공여하는 세계은행(World Bank), 끝으로 ‘자유무역’의 조정된 의제들을 만들어내는 임무를 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그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합리적인 국제기구들이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영국과 미국을 위한 것들이었다. 특히 미국을 위한. 즉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내에서 실질적인 표결 통제권은 영국과 미국에 주어졌으며, 브레턴우즈체제는 근본적으로 ‘금본위제’를 출범시켰는데 이는 회원국의 통화가 달러화와 연동됨으로써 세계의 가장 강력한 통화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미국은 자국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전략적 이익을 통제하는 영국의 노선을 본받아 20세기 중후반 실질적인 패권국이 되었다. 브레턴우즈체제의 출범이 갖는 의미는 ‘미국’이 ‘석유’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주체제를 형성했다는 데 있다.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최근의 이라크 전쟁이 보여주듯이 미국은 이라크에 후세인을 몰아내고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중동의 풍부한 ‘석유’ 때문이었다. 대표적 사례를 들어보자. 1950년대 이탈리아 민족주의자 마테이가 석유와 개발에 독립을 시도하여 적극적인 산유국 정책과 에너지 확보(이란과 소련으로부터의 석유 도입 추진)에 나서자, 세븐 시스터스는 긴장하였다. 결국 1962년 10월 27일 마테이를 태운 비행기가 시칠리아를 이륙하여 밀라노를 향하던 중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로마 주재 미국 중앙정보국 책임자 토머스 카라메신스는 그 이후 아무런 해명없이 로마를 떠났다. 후에 그는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에 대한 칠레의 군사 쿠데타에도 관여했다.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겠지만 마테이가 의문사 했을 당시 존 매콘 미 중앙정보국 국장은 셰브런석유회사의 주식을 100만 달러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 미 정부는 마테이 암살에 대한 카라메신스의 1962년 10월 28일자 상세한 보고서를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공개 거부 이유는 ‘국가안보에 관련한 사안’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이 사건은 결국 자신들의 석유 정책에 반하는 국가나 세력에 대한 대응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임에 틀림없다. 이외에도 미국은 이스라엘 전쟁과 중동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베트남전쟁 역시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게 벌인 전쟁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다만 그 이유를 우리는 그저 자유 세계의 방어와 확대라고만 믿어왔던 것을 저자는 ‘석유’가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석유를 대신할 핵 에너지의 개발에 대한 저지책으로 환경운동단체에 정치자금을 대는 미국 거대금융가와 석유재벌의 모습에서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각종 환경단체들이 석유업계의 후원을 받았다는 점은 정말 충격적이다. 급진적인 엘리트주의 성향의 ‘세계야생동물기금’조차도(본문 204~208쪽 참조). 왜 그랬을까. 왜 석유재벌들과 거대금융조직은 핵 에너지의 개발계획을, 특히 독일에서의 노력을 무력화하려고 노력했을까. 독일 녹색당 창당의 숨은 주역이자 유럽 녹색운동의 선구자인 페트라 켈리조차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