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약어표 서론 이 주석에 관하여 마가복음에 관하여 가. 어떤 종류의 책인가? 나. “3막으로 된 드라마”로서 마가복음 다. 이야기꾼 마가 라. 마가복음의 메시지 마. 마가복음의 기원 바. 마태복음 및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의 관계 주석 표제(1:1) 서막: 배경설정?등장인물(1:2-13) 제1막: 갈릴리(1:14?8:21) ? 서론: 예수의 핵심 메시지(1:14-15) ? “예수 집단”의 형성(1:16-20) ? 설교와 치유: 일반적 인상(가버나움에서의 하루)(1:21-39) ? 예수 사역의 논쟁적 측면(1:40?3:6) ? 치유하는 예수의 권세가 널리 알려지다(3:7-12) ? 예수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 지지자들과 반대자들(3:13-35) ? 하나님 나라의 역설에 관하여 말씀하시다(4:1-34) ? 예수의 유일한 권위에 대한 추가 계시들(4:35?5:43) ? 모든 사람이 예수에게 감명을 받지는 않는다(6:1-6) ? 제자들을 통해 확장된 예수의 사역(6:7-30) ? 호수 주변 기적들: 예수는 누구인가?(6:31-56) ? 예루살렘에서의 반대를 미리 맛봄: 정결의 문제(7:1-23) ? 이웃 사람들에게 확장된 사역(7:24?8:10) ? 지금까지의 요약: 적대자들이나 지지자들 모두는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8:11-21) 제2막: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8:22?10:52) ? 첫 번째 맹인 치유(8:22-26) ? 예수가 누구신지를 배우다(8:27?9:13) ? 축귀의 성공과 실패(9:14-29) ? 십자가의 길에 대한 추가 교훈(9:30-50) ? 하나님 나라의 혁명적 가치(10:1-31) ?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 따르기(10:32-45) ? 두 번째 맹인 치유(10:46-52) 제3막: 예루살렘(11:1?16:8) ? 도전하기(11:1-25) ? 예루살렘 기득권층과의 대립(11:27?13:2) ? 설명 담화: 옛 질서의 종결(13:3-37) ? 수난 장면 배경(14:1-11) ? 제자들과의 마지막 시간들(14:12-42) ? 예수의 체포와 재판(14:43?15:15) ? 예수의 십자가형과 죽음 및 장례(15:16-47) ? 빈 무덤(16:1-8) 추가 해설 참고문헌 현대 저자 색인 성경 및 기타 고대 문헌 색인 |
R. T. France
임요한의 다른 상품
정모세의 다른 상품
|
마가의 샌드위치 기법들 대부분은 이야기 “플래시백”이 아니라 동시적인 사건들을 함께 엮어 짬으로써 만들어지고, 한 사건은 다른 사건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주목할 만한 예로는 예수가 사탄의 세력에 속해 있다고 서기관들이 비난하는 장면이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한 예수의 친족들이 예수를 붙들려고 하는 이야기로 둘러싸인 것(3:21-35), 또한 무화과나무의 고사(枯死)가 “열매 없는” 성전에 대한 시위 사건과 함께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엮여 있는 것(11:11-27), 그리고 14:53부터 15:1까지 예수의 재판과 베
드로의 “시련” 장면들이 병행된 것 등이 있다. - 서론 중에서 말라기서는 주의 날을 포고하는 엘리야의 귀환을 예언하며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예언에 대한 이런 견해에 동의하는 자들에게는, 요한을 예언자로 제시하는 것은 혁신적이고 큰 파장을 일으키는 주장이었다. 이는 그 단락이 말라기의 종말론적 예언을 인용하며 시작함으로써 더욱 두드러지고, 엘리야의 특징들을 나타내기 위해 구약에서 사용된 용어로 요한을 묘사할 때 더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처럼 요한은 “예언자보다 더 나은 자”(마 11:9)이다. 요한의 등장은 종말의 시작을 표시한다. - 1:2-8 도입부 해설 중에서 마가복음을 통틀어 예수께서 병자들을 찾으러 돌아다녔다는 어떤 조짐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병자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간다거나 병자들 자신이 주도적으로 예수께로 다가간다는 식으로 언제나 표현된다. 예수는 “치유 캠페인”에 종사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사역 전체에서 치유와 축귀가 중요하기는 했지만, 이는 예수의 독특한 “권위”로부터 유익을 얻고자 한 사람들의 욕구에 의해 부각된 필요를 예수가 대면할 때에 그것에 자연스럽게 반응한 것이지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다. - 1:33 주석 중에서 그는 사탄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 그보다 못한 귀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축귀 행위 자체도 “사탄을 쫓아내다”는 말로 표현된다. 이는 그보다 못한 귀신의 운명에 귀신의 수장도 연관되어 있음을 가정한다. 이야기에서는 각각의 축귀가 개별 귀신(들)을 대적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는 모두가 예수와 사탄의 직접적인 대립을 나타낸다. 따라서 27절은 예수의 축귀가 지닌 신학적 함의를 이 귀신이나 저 귀신을 결박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를 결박하는 것으로 요약한다. 사탄 아래에 있는 귀신의 세력이라는 포괄적인 관점은, 신약의 귀신론과 그 당시 유대교(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Testament of Solomon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귀신론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다. 에녹 문헌에서는 귀신들의 이름을 상세히 나열하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기술하는데, 이는 신약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신약에서는 어떤 이름으로 언급되든 사탄에게만 초점이 있고, 다른 귀신들은 그를 추종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남는다. - 3:23b-26 주석 중에서 9:36-37에서 아이는 하나님 나라의 지위라는 쟁점을 설명하고자 예수가 도입하셨으며, 제기된 구체적인 쟁점은 이런 아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용납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도권을 가진 이는 예수보다는 다른 사람들(부모들?)이다. 이처럼 제자들은 작은 아이들을 “용납”할 기회를 가졌고 그 기회를 거부하지만, 예수는 아이들을 용납하고 축복하심으로써 자신의 이전 권고에 부응하신다. 하지만 이번에 제자들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아이들을 그렇게 용납해야 한다는 면에서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난해한 용어로 요약된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