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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jandro Zam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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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안은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린 소녀를 얼러 재운다. 취침 시간에 아이에게 들려주려고 그가 직접 지은 이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주인공인 포플러와 바오밥 나무는 인적이 끊긴 밤이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이나 동물이 아닌 나무라서 좋은 점들이라든가, 광합성이나 다람쥐, 혹은 그들이 별명을 붙인 멍청한 시멘트 덩어리들에 대해서. --- p.13
바로 지금, 한적한 공원에 은신해 있던 그 나무들이 떡갈나무의 불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단다. 어떤 두 사람이 우정의 표시로 떡갈나무 껍질에 제 이름들을 새겼다는 거야. “네 허락도 없이 네 몸에 문신을 새길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어.” 포플러 나무가 말했단다. 바오밥 나무는 훨씬 더 단호했어. “떡갈나무야말로 개탄스러운 반달리즘 행위의 희생양이라고. 그런 사람들은 벌을 받아 마땅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때까지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땅이든 하늘이든, 바다든 끝까지 따라갈 거야.” --- p.18 훌리안은 지난주에 삼십에 접어들었다. 초대한 손님들이 하도 우울해하다보니 파티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여자들이 실제 나이에서 몇 년을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훌리안 역시 가끔씩 나이를 몇 년 더 늘리고는 아련한 쓰라림을 간직한 과거를 회상하는 척하곤 했다. 후에 그는 자신이 치과의사나 지리학자, 기상학자가 됐어야 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뚱맞아 보일지 모르지만 현재 그의 진짜 직업은 교수다.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나이를 들어가는 일이 자신의 진정한 직업이 아닐까 싶어진다. 그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자신을 상상한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시죠?”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 pp.29-30 이제 그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고 있다. 애써 내용을 모르는 척하며 이따금씩 이런 환상에 빠지곤 한다. 자기 눈앞에 있는 책이 다른 누군가가 쓴 것이라 생각하면서 쑥스럽지만 순수하게 이야기를 따라가본다. 하지만 잘못 찍힌 쉼표나 눈에 거슬리는 어감 때문에 현실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다시 뭔가를 쓴 작가의 위치로 되돌아가 자신의 실수, 과도한 욕심, 지나친 억제 등을 점검하는 일종의 검열관 노릇도 해본다. --- p.34 이제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하찮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잘못된 단서들을 추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훌리안은 그런 엉뚱한 단서투성이의 부실한 책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었다. 뒤로 나동그라질 정도로 배꼽을 잡고 웃거나 경멸에 찬 쓴웃음을 점잖게 한방 날려보는 것도 제법 괜찮은 방법이다. 책을 덮고, 책이란 책은 모두 덮어버리고 말이다, 대단한 인생이 아니라 허술한 갑옷을 걸친 현재와 돌연 맞서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도 베로니카는 도착하지 않았으니, 이야기는 계속 진행된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1001번씩 계속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집에 도착하면 소설은 끝난다. 그녀가 집에 올 때까지, 혹은 그녀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때까지 훌리안의 책은 계속된다. --- pp.46-47 다니엘라는 서른 살쯤 되면 훌리안의 소설을 읽을 것이다. 이것은 예언이 아니다. 그가 예언을 할 만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희망사항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순식간에 써내려간, 자포자기 심정으로 쓴 일종의 계획, 밤새워 쓴 각본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는 현재 없이 존재할 수 있는 미래를 보고 싶다. 어떤 면에서는 현재로부터 미래를 안전하게 남겨둔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그 사실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베로니카가 집에 오든 안 오든, 죽었든 살았든, 떠나든 계속 있든 상관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다니엘라는 서른 살이 될 테고 에르네스토라는 남자 친구가 생길 것이다. --- p.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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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처럼 언어의 침묵에 도전하는 글쓰기
“나무들 혹은 조난자의 은밀한 생활처럼…….” -안드레스 안완드테르 이 책에서 훌리안은 베로니카가 귀가할 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간다. 그렇지만 소설이 끝날 때까지 베로니카는 귀가하지 않는 무대 밖의 인물로 남는다. 따라서 훌리안의 글쓰기는 계속 진행된다. 소설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전히 이야기는 계속 되고, 베로니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이야기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1001번 반복하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그녀가 집에 도착할 거고 소설은 끝날 것이다. 그녀가 집에 올 거라는 것을, 혹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훌리안이 확신할 때까지 책은 계속 된다.” 천일야화처럼 언어의 침묵에 도전하며 삼브라는 글쓰기를 지속한다. 그냥 읽고 접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여운이 남는 소설 ‘우리가 말하기는 하지만 글로 쓰지 않는 수많은 어휘가 존재한다. 또한 우리가 글로 쓰지만 말하지 않는 수많은 구절이 있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알레한드로 삼브라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은 하룻밤의 이야기로, 젊은 문학 교수이며 작가인 훌리안은 미술 강좌를 수강하는 아내 베로니카가 늦은 밤 집에 귀가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어린 의붓딸 다니엘라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훌리안은 매일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다니엘라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데, 오늘 밤은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이란 제목으로 바오밥 나무와 포플러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이 잠들어 인적이 끊긴 밤 동안 나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이내 다니엘라는 잠에 빠져들어 훌리안의 나무 이야기는 그치지만, 혼자 남은 훌리안은 아내를 기다리며 여러 가지 과거 추억을 회상해간다. 지난 주 서른 살에 접어든 훌리안은 산티아고 대학에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지만 일요일이 되면 작가로 변신한다. 현재 분재를 키우는 한 남자에 관한 소설을 막 끝마쳤는데, 그 소설을 쓰기 위해 처음 3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자료를 수집하였지만, 몇 년에 걸쳐 글을 써나가면서 이 수집 과정과는 정반대로 자료를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을 거쳤다. 이제 최종본은 47쪽의 얄팍한 분량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는 이를 소설이라 부르기를 고집한다. 훌리안은 아내를 기다리며 자신이 완성한 원고를 꺼내 다시 읽어본다. 이제 그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고 있다. 애써 내용을 모르는 척하며 이따금씩 이런 환상에 빠지곤 한다. 자기 눈앞에 있는 책이 다른 누군가가 쓴 것이라 생각하면서 쑥스럽지만 순수하게 이야기를 따라가본다. 하지만 잘못 찍힌 쉼표나 눈에 거슬리는 어감 때문에 현실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다시 뭔가를 쓴 작가의 위치로 되돌아가 자신의 실수, 과도한 욕심, 지나친 억제 등을 점검하는 일종의 검열관 노릇도 해본다. ―본문 34쪽 이렇게 훌리안은 자신의 글을 점검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어휘의 뉘앙스와 오류로 인해 자신의 위치를 저자에서 독자의 위치로 바꿔본다. 또한 그는 원고를 읽어가다 자신의 세계로 빠져 들어와 베로니카와 결합하게 되었던 과정을 세밀히 회고해간다. 그리고 마침내는 상상의 날개를 펴서 다니엘라가 스무 살 또는 서른 살이 되어 훌리안의 소설을 읽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 심리학자가 된 다니엘라가 훌리안의 책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할지, 심지어 그녀의 남자친구는 어떻게 생겼을까 등을 훌리안은 상상한다. 훌리안은 다니엘라의 양아버지이지만 그녀가 훗날 자신의 책에서 두 사람이 공유했던 과거를 재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함께 공유될 때 삶과 역사로 응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의 주인공 훌리안은 저자 삼브라의 분신으로 매일매일의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생활상을 그려가는 작가이다. 그는 간결하면서도 때로는 애정을 갖고 평범한 삶의 세계를 묘사한다. 삼브라도 이 소설에서 어떤 장황한 장면이나 극적인 감정 표현을 절제하며 별다른 플롯도 마련하지 않고 그저 작가인 훌리안에 관한 이야기만을 기술해간다. 그렇지만 글이 진전됨에 따라 산만해 보였던 개별 내용들에 점차 긴밀한 관계망이 형성되고,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삶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된다. 소설을 엮어가는 시간은 꿈속에서처럼 흘러가 현재와 과거가 서로 중첩되고, 기억은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사라진다. 훌리안처럼 새로운 장면을 창조해가는 삼브라의 상상력은 중단되다가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된다. 삼브라는 이 소설에서 글을 써 나가는 과정에 대해 메타픽션적인 새로운 인식을 보여준다. 소설을 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중요성이 있는지를, 그리고 우리의 경험을 ?떤 방식으로 글로 구성해가는지를. 칠레 문학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말하여지는 것과 쓰여진 것 사이의 간극이라고 삼브라는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글을 쓰는 일은 칠레의 상황에서 의혹의 눈으로 보게 된다. ‘우리가 말하기는 하지만 글로 쓰지 않는 수많은 어휘가 존재한다. 또한 우리가 글로 쓰지만 말하지 않는 수많은 구절이 있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실험소설의 전통을 이어받은 삼브라의 작업은 이런 언어의 중간자적 공간에서 진행된다. 그는 언어 사이의 침묵과 씨름하며 문학을 무덤으로 생각하는 인식에 도전한다.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은 한번 자리에 앉으면 끝까지 다 읽어나갈 수 있는 짧은 분량의 소설이다. 그렇지만 그냥 읽고 접어버리기에는 미진한 여운이 너무나 남는 소설이다.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 만드는 힘이 이 소설의 묘미라고나 할까? 알레한드로 삼브라, 칠레 소설의 새로운 물결을 알리는 예고자! 저자인 알레한드로 삼브라Alejandro Zambra(1975~ )는 칠레의 젊은 세대 작가 중에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다. 소설가이면서도 시인이며 문학비평가로 현재 산티아고의 디에고 포탈레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2006년 발표한 첫 소설 『분재Bonsai』는 칠레 문학에서 ‘한 시대를 마감하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극찬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삼브라는 한 해 최고 작품에 수여하는 칠레 문학비평가상을 받았다. 또한 그는 2007년에 ‘보고타 39’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는데, ‘보고타 39’는 보고타에서 벌어진 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미래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할 39세 이하의 젊은 작가 39명을 17개국에서 선정하였다. 첫 소설로 큰 호평을 받은 삼브라는 바로 다음 해 2007년 두 번째 소설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The Private Lives of Trees』을 발표하여 역시 비평가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삼브라는 첫 소설을 발표하기 앞서 이미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세 번째 시집으로 시작한 것이 소설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분재』는 94쪽(영어 번역본은 83쪽)에 지나지 않는 적은 분량으로 사랑에 빠지는 두 남녀의 로망스와 환멸을 그리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문체로 축약해서 글을 써가는 삼브라의 스타일은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 소설의 분량도 100쪽이 채 넘지 않는다. 장편소설을 간추린 듯한 인상을 주는 이 소설은 마치 줄거리만을 담아놓은 듯 압축되어 있지만 정서적 분위기는 복잡하고 쉽게 요약하기가 힘든 많은 뉘앙스를 담고 있다. 더구나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하나의 삶을 충만하게 그려가는 충실도는 독자를 경이롭게 만든다. 서평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을 통해 알레한드로 삼브라는 가장 흥미로운 젊은 작가들 중의 하나임이 입증되었다.” -알바로 엔리케 “삼브라야말로 칠레 소설의 새로운 물결을 알리는 예고자다.” -마르셀라 발데스, 《The Nation》 “삼브라는 재미있으면서도 유쾌한 놀라움까지 선사하는 지적인 읽을거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마이클 오르토퍼, 《Complete Revie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