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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사상적 전통과 생태적 관점
2. 이규보의 도가사상 3. 이규보의 문예론 4. 이규보에게서 배우는 생태적 정신 5. 서경덕의 자연철학 6. 서경덕의 哲理詩 7. 신흠의 학문과 사상 8. 신흠의 자연시학 9. 홍대용의 생태적 세계관 10. 홍대용 사상에 物我의 상대성과 동일성 11. 박지원 사상에 있어서 언어와 冥心 12. 박지원의 산문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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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20세기 말의 이 시점에서 본 인류 문명의 상황은 대단히 우울하다. 이윤 추구를 위해 부단히 확대되는 생산, 그에 따른 무절제한 소비, 그리고 그 결과인 강, 바다, 산, 들, 흙, 공기, 먹거리의 오염,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해 있는 삶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초래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지적이 가능할 터이지만, 자본주의 문명의 기제(機制)와 그것을 근원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일차적 문제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근대를 특징짓는 자본주의는 인류가 창조한 다른 여러 문명이 그 나름대로 소중하게 여겨 온 가치들과 삶의 원리들을 주변부로 밀어내거나 압살함으로써 오늘날 지배적인 문명의 위치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 문명을 반성하고 새로운 문명과 세계관을 모색하는 마당에서는 지금까지 주변부에 머무르거나 망각되거나 홀시되어 온 자본주의 이외의 여러 문명을 재평가하고, 그것들이 간직하고 있는 원리나 관점에서 무언가를 이끌어내고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고대나 중세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명의 위기에 곧바로 답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니며, 그것들 속에는 억압적 요소나 미신적 요소, 부정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런 것은 부정하고 경계하되, 다만 그 의미 있는 부분에서 ‘지혜’를 배우고 이로써 새로운 사고방식과 가치관, 나아가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는 데 하나의 자양(滋養)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문명과 전통사상에서 ‘생태적 지혜’에 관해 많은 것을 얻어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상의 전통 속에 내장되어 있는 생태적 지혜는 우리가 장차 협소한 과학적 합리성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면서 ‘생태적 합리성’을 모색해 나가는 데 원용하거나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 합리성이 근대적 합리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일 수는 없지만 그것이 근대적 합리성의 기저에 놓인 기계론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인간의 이성을 ‘열린 이성’으로 가져가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 책은 한국의 전통사상에 내장(內藏)되어 있는 생태주의적 사유를 탐색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한국의 전통사상이 보여주는 아름답고도 심원한 생태적 지혜는 시적(詩的)이자 미학적(美學的)이며, 협소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자연, 인간과 만물이 근원적으로 동일한 존재로서 이른바 ‘생생지리’(生生之理: 하늘이 人과 物을 끊임없이 낳는 이치)에 따라 생명의 율동을 구가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생각의 움직임은, 도구적이거나 조작적 이성(理性)에 익숙한 우리 현대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오하고, 근원적이다. 동양사상에 내재되어 있는 생태사상에는 사회적 연관이 결여되어 있다고 흔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은 그 누구도 폐쇄적으로 개인의 내면적 깨달음만 추구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우주적 깨달음과 사회적 비판을 결합시키고 있다. 자연철학과 사회철학의 통일을 선구적으로 시현(示現)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규보(李奎報)·서경덕(徐敬德)·신흠(申欽)·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 등 심원하면서도 풍부한 생태적 사유를 보여주는 다섯 인물의 사상을 탐구하였다. 이규보는 고려 중엽인 12세기 말 인물이고 박지원은 조선 후기인 18세기 후반 인물이니, 그 상거(相距)가 600년쯤 된다. 이 다섯 인물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고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면을 보여주지만, 심원하면서도 풍부한 생태적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규보가 우리에게 만물이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만물일류’(萬物一類)의 가르침을 준다면, 서경덕은 삶과 죽음에 대한 자연철학적 성찰을 보여주며, 신흠은 학문이 단순한 지식 추구가 되어서는 안되며 생(生)과 세계에 대한 정신적 깨달음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홍대용은 광대한 우주적 차원에서 인간과 물(物)이 대등하다는 이른바 ‘인물균’(人物均)의 사상을 제기하고 있으며, 박지원은 도를 깨닫는 마음이라 할 ‘명심’(冥心)에 대한 강조와 글쓰기에 대한 혁신을 통해 인간·사회·자연을 통합하고자 하였다. 한국의 전근대(前近代) 사상가 가운데 본서에서 다룬 다섯 인물만큼 깊고 근원적인 생태적 성찰을 보여주는 인물도 흔치 않다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