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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자들
약속의 배, 프라미스호 숭고한 죽음 못 다한 왕의 이야기 십자 보트의 비밀 위험한 훈련 폭풍우 속에서 배는 어디로 향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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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고 있던 누더기를 벗고 수도꼭지를 돌려 보았다. 그러자 살결을 기분 좋게 어루만지듯 따뜻한 물이 흘러나왔다. 참 맑고 청량한 느낌이었다. 쏟아져 나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몸에 남아 있던 피로감과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치유’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감각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난생처음 비누라는 것을 사용해 보았다. 처음에는 미끈거리는 것이 기분 나빴지만, 몸에 낀 때가 깨끗이 벗겨지자 매우 상쾌했다. 기름기 낀 머리카락은 ‘샴푸’라는 것으로 닦아냈다. 나는 마치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로 돌아간 듯 기분이 상쾌했다. --- pp.61-62
그렇다. 분명 이 배는 배의 바깥만 보지 않는다면 슬픔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계였다. 자신의 구원에만 만족한다면, 그리고 바깥을 보지 않는다면……. 그러나 나는 보고 말았다. 아니, 보고 말았다기보다는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젯밤 천망대에서도 나는 어떤 힘에 이끌려 암흑의 세계를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또 어떤 힘에 이끌려 나는 중요한 선택을 하도록 요구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나 자신은 전혀 곤란할 것이 없는 선택이며, 선택하지 않아도 잃어버릴 것이 전혀 없는 그런 선택이다. 실제로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 전 바닷가에서 죽은 남자도, 나를 구하러 온 노인도 일부러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의 뒤를 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그런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그저 이 배에만 타고 있으면 나는 언젠가 대륙에 도착할 것이다. 저 파티장으로 뛰어들면 되지 않는가? 즐거우면, 은혜로우면, 기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나는 울고 있는 것일까? 왜 갈등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답은 이 눈물이 이미 외치고 있지 않은가? --- pp.76-77 오늘 밤 저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왕께서는 저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왕께서는 이렇듯 부족한 저에게도 독생자를 보내실 만큼 사랑하고 계십니다. 저는 마침내 제 삶의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대륙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왕자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오늘부터 ‘승객’의 지위를 포기하겠습니다. 이제는 ‘손님’을 그만두겠습니다. 선장인 왕자님이 이 배의 누구보다도 낮은 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저도 오늘부터 ‘종’이 되겠습니다! 할아버지, 다음에 프라미스호가 섬 옆을 지나갈 때는 제가 십자 보트에 타겠습니다! 그리고 섬사람들에게 왕의 사랑과 이 영원히 침몰하지 않는 배의 존재를 알리겠습니다! --- p.137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나는 그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왕과 왕자님, 그리고 프라미스호의 존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남은 의문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였다. 나는 이 항해에 참가하여 사명감과 목적의식을 배웠다. 그리고 그 마지막 질문마저 완벽하게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저 섬이었다. 나는 저 섬의 이름을 영원히 마음에 새겨 놓을 작정이었다. “할아버지, 그런데 저 섬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섬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 섬의 이름말인가? 그 이름은 바로….” --- pp.219-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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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리를 찾아 바다로 뛰어든
한 사나이의 눈물겨운 모험과 감동의 이야기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전하며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 젊은이가 풍랑 속에서 몸부림친다 일본의 젊은 작가 야마나카 토모요시의 첫 소설이다.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삶의 수수께끼와 진리를 탐색해 가는 과정을 그린 우화 소설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쓰나미’가 여러 번 등장한다. 쓰나미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성립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섬에 정기적으로 밀어닥치는 쓰나미를 통해 삶의 중요한 질문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용감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 여행길을 떠난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위험과 극복, 깨달음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내가 사는 이 섬사람들은 집단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미래도 없다. 현재에만 급급해 살고 있을 뿐이다. 오로지 ‘나’ 혼자만 문득문득 과거의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바닷가에 나가 먼 바다를 바라보며 흐릿한 기억에 초점을 맞추려 안간힘쓴다. 그러던 어느 날 먼 바다에서 한 노인이 배를 타고 나타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노인을 따라 나는 미지의 여행길에 나서게 되는데…. 작가의 말 지금과 같은 때에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이 책은 허구이다.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비유적으로 삶의 수수께끼와 진리를 밝히려는 우화 소설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쓰나미’가 여러 번 등장한다. 쓰나미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쓰나미를 죽음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주인공은 섬에 정기적으로 밀어닥치는 쓰나미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를 계기로 삶의 중요한 질문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용감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 여행길을 떠난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앞바다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9라는, 지진에 익숙한 일본인조차도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의 지진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엄청난 쓰나미가 연안 마을들을 덮쳤다. 쓰나미의 최대 높이가 38미터에 이르렀다고 하니, 이는 10층 건물을 삼켜 버릴 정도의 높이이다. 우리의 시선은 연일 텔레비전 보도에 못 박혔다. 화면에 비치는 대참사의 현장은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했다. 할리우드 영화의 CG가 아닌지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대재해’라고들 했다. 그리고 이 대재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오려 하고 있다. 나는 열여섯 살 겨울부터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내 방으로 들이닥친다. 그리고는 책상에 앉아 있던 나를 갑자기 두들겨 팬다. 우리 집에서는 드문 광경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때때로 이유도 없이 ‘폭발’했다. 학대의 대상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누나나 어머니도 여러 번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사춘기에 들어서 체력적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할 수 있게 된 나는 이 부조리에 대해 격렬한 분노를 품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일어나면’이라고 다짐하며 칼 한 자루를 사서 베개 밑에 숨겨 두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나도 죽을 생각이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베개 밑으로 손을 뻗었다. 문득 정신을 차린 순간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문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았다. 내 손에는 아직 칼이 쥐어져 있었다. 칼에는 희미하게 아버지의 피가 묻어 있었다. 방문 밖에서는 “경찰을 불러! 저런 놈은 감방에 처넣어야 해!”라며 외치는 아버지의 격노한 음성과 “제발, 그만둬요. 앞날이 창창한 애잖아요!” 하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그것을 들으며 바닥에 떨어진 아버지의 혈흔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리고 그것이 검붉게 변했을 때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찾던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결론이었다.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명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나는 ‘부친을 살해한 소년 A’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극심한 허무감에 빠졌다. 슬픈데 슬퍼할 힘도 없었다. 모든 감정이 죽어 버린 것 같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새벽이 밝아 올 무렵 마음이 부들부들 떨리며 갑자기 눈물이 넘쳐났다. 그리고 양손을 들고 이름도 모르는 신을 향해 기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