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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기연(奇緣) 열쇠 꾸러미 요산요수(樂山樂水) 목련은 무엇으로 지나 세상에서 가장 긴 혀 수양버들 화성으로 온 여자 불구경 신발 처서(處暑) 새 웅덩이 압록에서 화석 별을 세다가 입동(立冬) 〈제2부〉 봄밤 큰 새 두 마리와 큰 뱀과 나 동막동 고모 곡(哭) 고사 할머니의 세 가지 소원 홍어 일심(一心) 세상에 이런 일이! 여섯시 오분 전 호박죽 가로등 대흥사 일월사 미륵불 운주사 와불 〈제3부〉 에덴의 저쪽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제4부〉 나비 추강에 낚시 드리우니 봄비 사루비아 맹꽁이 하수구에 빠진 날 공산명월(空山明月) 수확 공터 해남행 완행버스 고집 이월 남해 금산 비가 흑석동 삼월에 내리는 눈 긴 부리를 가진 짐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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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후에 우리가 만나는 것들
이기는 것들은 생명 약동한다. 뻗고 솟고 번지고 무성하고 창대하다. 반면에 지는 것들은 꺾이고 줄고 가라앉고 무너지고 작아지고 사라진다. 이창수의 시는 끝없는 패배와 좌절로 인해 보잘것없어지는 이 삶의 보잘것없음에 대한 탐구다. 그는 욕망과 현실에 대한 사실적 관찰로 토대를 쌓고 그 위에서 “왜 삶은 이토록 보잘것없는가” 하고 묻는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물음들의 연쇄는 시인 자의식의 껍질을 뚫고 나온다. 그리고 이 물음들은 곧 겹겹으로 이루어진 구체적 생활의 실상을 꿰뚫는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장석주는 “어떤 도덕이나 이념의 주장보다는 사실의 관찰이 돋보이는 현실주의의 세계에 속한다. 그의 시들은 물물들의 현존을 쓰다듬는다”고 지적하며 이창수 시의 힘은 화석화된 도덕의 거친 주장이 아니라 사실들의 세계를 조목조목 관조하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환기시킨다. 이창수의 시는 범박한 사실주의적 관찰에서 시작하지만 어느새 홀연한 망아(忘我)의 세계로 넘어간다. 그 세계는 현실의 고단함이나 비루함을 넘어서는 꿈의 영역이자 초연함으로 그윽해지는 세계다. 시인의 화법에 따르자면, “흙탕물에 비치는 하늘”이고, “깊고 고요”한 심연이다(「웅덩이」). “흙탕물”이 실상(實相)이라면 “하늘”은 환(幻)이고 초월의 이미지다. 이때 웅덩이에 고여 있던 “흙탕물”은 돌연 환과 망아의 세계를 비추는 성찰의 거울로 바뀐다. 삶은 아무리 범박해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러 곡절과 사연이 있고, 그것들은 저마다 균열과 아픔을 품고 있는 것이다. 삶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살아 있는 것이기에 멈춤이 아니라 격류다. 그 삶이 시인과 우리의 뒤를 “눈에 핏발이 서도록”(「나비」) 따라다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