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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리고 에필로그
에피소드1 바람을 기다리는 언덕 에피소드2 물길잡이의 바다 에피소드3 어두운 달빛 에피소드4 죽음의 소리 에피소드5 물길잡이가 부르는 소리 에피소드6 머나먼 빛 에피소드7 항아리 속의 희망 에필로그, 그리고 프롤로그 옮긴이의 말 |
Aki Misaki,みさき あき,三崎 亞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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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카네 씨. 딱 한 가지 희망이 있습니다. 그의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도시’가 그를 놔주면 기억은 돌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때를 기다릴 수 있다면…….”
시라세의 말이 중간에 끊어졌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기억. 그것만을 바라며 기다려야만 하는 세월은 너무나도 잔인하다고 생각했으리라. 아카네는 멍하니 일어서서 방을 나갔다. 발길이 향한 곳은 가즈히로의 아틀리에였다. 방 한복판에는 그리던 캔버스가 놓여 있었다. 언젠가 그가 이 캔버스에 나를 그려줄 수 있을까. 그때를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가즈히로를 향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앞으로 몇 십 년은 이어질지도 모르는 ‘오염’. 과연 그것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한때의 감정만으로는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가즈히로는 애인에 대한 기억을 잃은 채로 상실감만 안고 살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도, 아카네마저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카네는 앞으로 같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눈앞에 있고, 만질 수 있고, 껴안을 수 있는데 기억을 공유할 수 없는 가즈히로와 함께 살아가려면. 캔버스 앞에 서서 ‘차렷’ 자세를 취하고 아카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즈히로의 방으로 돌아왔다. 시라세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아카네를 바라보았다. 미소를 지으며 아카네가 말했다. “잠시 단둘이 있게 해주세요.” 머리맡에 있는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가즈히로의 뺨으로 살며시 손을 뻗었다.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가즈히로가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카네는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말을 걸듯이. “내가 살아가며 해야 할 역할을 이곳에서 해낼 테야.” 바람을 기다리는 집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잠시 머무는 ‘바람을 기다리는 항구’다. 여기서 잃어버린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나도 기다리자. 기다리고 싶다. 언젠가 가즈히로의 기억이 돌아와 둘이서 지낸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그날을. 그것이 내게 주어진 역할이고 내 소망이다. ---pp.192~194 “게이코. 이제 일을 그만두면 어떻겠나? 자넨 충분히 역할을 했네. 더 이상 도시의 오염에 노출될 필요가 없어. 자네만 괜찮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국무원에 요청을 하지.” 통감이 상급관청의 이름을 입에 올렸지만 게이코는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같은 존재를 다시는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멸의 연쇄를 단절하기 위해서라도 살아갈 겁니다. 마지막 그날까지.” 그런 생각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따라다니던 자신의 운명에 대한 비장한 체념이나 규칙에 따르려는 사명감 같은 것은 이제 옅어져 있었다. 대신에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걷겠다는 의지가 그 빈 공간을 메웠다. “만약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도시의 소멸을 막을 수가 없다면, 그래도 자넨 도시의 소멸과 계속 싸울 텐가? 오염 때문에 자기 목숨마저 깎아내 가면서도?” 통감이 다시 물었다. 그 말에 머리맡에 있던 소노다가 반응을 보였다. 뭔가를 감정하는 듯한 눈으로 게이코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가령 내일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순간까지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갈 겁니다. 분명 누군가가 제 뒤를 이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이코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우리들에게 소멸자란 ‘도시에 휩쓸려 사라진 사람들’일 테지만 ‘도시’ 입장에서 보면 평화롭고 차분한 세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러니 ‘도시’는 우리가 소멸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도시’와 함께 살아가려고 생각합니다.” ---pp.322~324 테라스에서는 어떤 사람은 의자에 앉고 어떤 사람은 난간에 기대어 제각각 선율을 듣고 있었다. 조용한, 마치 부처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미소를 직고 있던 가즈히로의 긴 손가락이 천천히, 산들바람의 흐름에 실려 보내듯 소리를 자아냈다. 밤하늘로 녹아들어가는 선율이 멀리, 또는 가까이서 사람들을 부드럽게 껴안듯이 감쌌다. 노조미의 마음속에 있는 뭔지 모를 응어리마저도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그 음색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이나 고통이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였다. 그것들을 껴안고 나아가야만 한다는 굳은 의지가 담긴 선율이었다. 고주기의 선율에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고 한다. 시간을 초월해 사람들의 마음을 엮어 빚어내는 고주기의 음색. 노조미는 거기서 소멸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자를 본 기분이 들었다. 노조미는 고개를 돌려 사라진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달빛에 비친 그 도시는 불빛 하나 없이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도시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사라질 운명에 따르면서도 내일로 희망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사람은 사라져도 희망은 이어져 간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노조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고주기의 음색에 이끌린 듯이 도시에서 바람이 언덕 위로 불어왔다. 노조미의 앞머리가 흔들렸다. ---pp.492~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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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는 30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도시의 소멸 현상에 대항하기 위해 오늘 밤 소멸 후보지인 도시에서 히비키와 노조미를 비롯한 관리국 사람들과 고요한 투쟁을 하고 있다. 여기서 도시의 소멸이란 어느 날 갑자기 그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시간은 30년 전, 쓰키가세 시가 소멸한 시점으로 돌아간다. 아카네는 쓰키가세 옆에 있는 도시 쓰가와에 머물면서, 쓰키가세가 가장 잘 보이는 ‘바람을 기다리는 집’이라는 펜션을 운영하는 나카니시와 쓰키가세 주민이었으나 도시가 소멸되는 날 다른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소멸을 피한 가즈히로를 만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카네는 쓰키가세에서 회수 작업을 하던 중 3살 정도 된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그 일로 인해 아카네와 신야는 국선 회수원의 일을 그만두게 되고, 아카네는 나카니시의 펜션에서 일하게 된다. 시라세 게이코는 ‘소멸 관리국’에서 일하고 있다. 게이코는 쓰키가세가 소멸되기 30년 전에 소멸된 구라쓰지에서 살아남아 소멸 내성을 지닌 ‘특별 오염 대상자’다. 특별 오염 대상자는 도시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특별 오염 대상자를 두려워한다. 어느 날, 게이코는 관리국 앞의 공원에서 와키사카라는 사진가를 만나게 된다. 게이코는 와키사카의 사진에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메시지를 느끼고 그에게 끌린다. 히데아키는 아이를 낳으러 쓰키가세의 친정집에 가 있던 아내와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를 소멸로 잃었다. 아내는 ‘분리자’의 별체다. 분리자는 같은 한 몸에서 분리되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행동도 거의 같다. 또한 어느 한쪽이 사망하면 다른 한쪽도 같은 시간에 사망하게 된다. 히데아키의 아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이므로 본체는 살아 있었다. 히데아키는 본체를 만나 같이 살게 되면서 히비키라는 아이를 낳게 되고, 히비키 또한 여자 히비키와 남자 히비키로 분리된다. 유카는 쓰키가세의 소멸로 준을 잃었다. 유카와 준은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관계로 영혼이 통하는 사이였다. 그런 준이 사라지자 유카는 관리국에 취직해 도시의 소멸에 대항할 것이라 결심한다.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유지가 그런 유카 옆을 지키기로 한다. 아카네와 신야가 쓰키가세에서 발견한 여자아이는 신야가 양녀로 맞이해 노조미라는 이름으로 자라났다. 우연히 노조미는 자신이 소멸내성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반항심에 가서는 안 될 쓰키가세에 들어간다. 다행히 게이코가 노조미를 구하고, 노조미는 게이코도 자신과 같은 소멸 내성임을 알게 된다.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으로 도시의 소멸에 관계해 온 아카네와 가즈히로, 게이코, 유카와 유지, 히데아키와 두 히비키, 노조미는 과연 도시에 대항해 소멸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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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소멸과 비극적인 상실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를 극대화한 작품
30년에 한 번씩 아무런 조짐과 인과관계 없이 한 도시의 주민들이 홀연히 사라진다. 《사라진 도시》에서 ‘도시의 소멸’이라는 중심 소재는 독특하면서도 미스터리하다. 도시는 의식을 지닌 유기물로 표현된다. 도시는 사라질 도시를 선택하고, 사람들을 조종하고, 소멸에 관련된 사람들을 오염시킨다. 그렇다면 왜 도시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는가? 이 의문에 대해서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도시의 소멸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불가피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책은 소멸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소멸에 저항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사라진 도시》는 쓰키가세라는 도시가 소멸하면서부터 다음 도시가 소멸하기까지 30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쓰키가세가 소멸하고, 행정기관인 소멸 관리국은 사라진 도시에 대한 정보를 극단적으로 통제한다. 도시는 슬픔을 민감하게 감지해 오염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소멸은 사라진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비극적인 불문율을 가져왔고, 소멸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도 남겨진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사람이란 어떤 삶을 살건 반드시 뭔가 역할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예를 들면 도시의 소멸로 사라진 사람들도 그렇지. 그 생명의 무게를 통해 누군가가 뭔가를 이어받으려고 한다면 그건 필요한 생명이고 필요한 소멸이지. 다음 시대로 희망을 이어가기 위한.” 쓰키가세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을 회수했던 신야는 소멸은 또 다른 시작임을 이야기한다. 소멸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으로 흩어져 있던 등장인물들이 하나하나 연결되어 가면서 그 시작은 더욱 확고해진다. 남겨진 사람들은 쓰키가세 소멸로 인한 상실의 무게를 이겨내고 다음 소멸을 막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가령 내일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순간까지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갈 겁니다. 분명 누군가가 제 뒤를 이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멸 관리국에서 일하는 게이코의 강한 사명은 사라진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농락당하면서도 소멸에 관계된 사람들에게서 불행을 찾아볼 수 없다. 도시와의 싸움은 고달프지만, 그 밑바닥에는 사랑과 희망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진 도시》는 사람은 사라져도 남겨진 사람들은 살아가고, 희망은 이어진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부조리한 소멸과 비극적인 상실 속에서도 불타오르는 인간의 의지는 자못 숭고하기까지 하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치밀한 플롯과 뛰어난 문장력 《사라진 도시》의 치밀한 플롯은 독자가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도시의 소멸이라는 큰 축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매끄럽게 진행되며, 다양한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복잡하면서도 질서 있게 배치해 사건의 개연성을 높였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져오는 흡입력은 미사키 아키의 뛰어난 문장력에 있다. 저자는 도시의 소멸, 고주기, 물길잡이 등 낯설면서도 신비로운 소재를 점철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다. 독자는 그 세계 속에 발을 디디는 순간 얼음처럼 차갑게 파고드는 도시의 촉수를 느끼며 전율하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고주기의 따뜻한 음색에 빠져들 것이다. 그만큼 《사라진 도시》는 매력적인 세계이다. 일본 출판계 이목의 중심에 선 작가, 미사키 아키! 미사키 아키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화제작 반열에 올랐으며, 《사라진 도시》가 제136회 나오키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제17회 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한 《이웃 마을 전쟁》은 출간 당시 18만 부 이상 판매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2007년 2월 영화화되기도 했던 일본 최대의 화제작이다. 미사키 아키의 작가적 매력은 독특한 시선과 작가 특유의 풍자성에 있다. 초기의 하루키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그의 시니컬한 작품들은 마니아층을 형성하여 이미 일본에서는 미사키 붐이 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