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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매듭지어야 할 노래
제1부 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1. 비서(秘書) 2. 심양(瀋陽) 가는 길 3. 청룡도 4. 황보 장군 5. 잃어버린 역사 6. 아쉬운 위화도 회군 7. 인조와 소현세자의 갈등 8. 나선정벌(羅禪征伐)과 애신각라(愛新覺羅) 9. 아담 샬 신부(神父) 10.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11. 소현세자의 통치이념 12. 환국 13. 김자점 14. 소현세자의 죽음 제2부 효종이 부른 노래 15. 봉림대군의 환국 16. 김자점의 옥 17. 허물어야 할 벽 18. 장릉지문 19. 북벌, 그러나 건널 수 없는 사대부의 강 20. 홍길동 전 21. 반계수록 22. 송시열의 북벌론 23. 유림, 상소, 그 무서운 독약 24. 실리(實利), 옳은 악수(惡手) 25. 보길도의 눈물 26. 떨어지는 요동의 큰 별 에필로그 : 못다 부른 님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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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가장 강렬하게 원했던 것은 요동수복이다.
그것은 단지 영토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지난 역사를 찾는 일이다. 선왕들이 자기 안위를 위해 스스로 포기한 역사를 찾는 일이다. 역사를 찾음으로써 잃어버린 우리의 땅을 찾아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을 보호해야 했다. (……) 그것도 두 사람이 이야기하던 대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요동을 지배할 기회가 왔는데, 단지 제 욕심을 차리기 위해 왕권이 강화되면 안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대하는 중신들의 벽에 막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p.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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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으로 형제의 의를 맺었던 후금은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황제국임을 자처하면서 조선에 군신관계를 맺을 것은 청한다. 하지만 조선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청나라는 30만 대군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한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군대는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질주하고, 조선 조정은 화친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화친을 위한 사신으로 청나라에서는 왕제를 원하지만 조선에서는 가짜 왕제를 보낸다. 하지만 그 사실이 발각되면서 사신을 수행했던 박난영 장군이 목숨을 잃고 왕제를 속인 것을 알게 된 청나라에서는 세자가 나오지 않으면 화친을 논할 수 없다고 조건을 한 단계 높인다. 이미 전세가 기울었음에도 조선은 갈팡질팡만 하는 사이 결국 청나라가 화친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온다. 조선은 그제서야 화친을 주선해 달라며 적장 용골대와 마부대, 역관 정명수에게 뇌물을 주고 용골대는 화친을 주선하려한다. 그러나 인조는 나와서 항복하라는 청나라의 요구에 굳이 문서로 항복을 하겠다고 몸을 사린다. 그러자 청나라에서 화친은 없다며 다시 통보해 오고 소현세자가 직접 나선다. 소현세자의 이런 용기 있는 태도에 용골대를 비롯한 청나라 장수들과 구왕 다이곤은 찬사를 보내게 되고 결국 인조가 나서서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며 전쟁은 끝난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삼겠다는 청나라의 요구대로 소현세자는 청나라로 향한다. 하지만 아무도 세자를 수행할 지원자로 나서지 않자, 박제가의 조상인 박 승지가 스스로 세자를 수행하겠다고 나선다. 박 승지는 청나라에 가서 세자를 잘 수행하는 것은 물론 세자가 명나라와의 전투에 참여하러 전장에 가고 나면 봉림대군을 극진히 보필하여 두 사람의 신임을 한몸에 받게 된다. 소현세자는 자신은 볼모가 아니라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배우러 간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도 당당하게 함으로써 청나라 장수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청나라와 명나라의 전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많은 전공을 세운다. 세자는 스스로 전투에 참여해서 보고 들은 결과, 민심이 이미 청나라 편으로 기울었으며 중원을 제패할 청나라 편을 드는 것이 조선의 앞날에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세자의 이런 행동들이 조선으로 전해지면 인조와 중신들은 오랑캐와 한 편이 되었다고 세자를 못마땅해 한다. 소현세자는 청나라 장군이 되어 있는 고려인 황보장군을 만나서 우리 역사의 유구함과 우리 영토의 광활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또 아담 샬 신부를 만나 이제껏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고 자신의 통치 이념을 세우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세자에게 매료된 구왕 다이곤과 용골대의 도움을 받아 나선정벌을 통해서 조선이 요동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을 열고 그 약속을 받는다. 소현세자는 청나라가 중원의 주인이 되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모든 것을 기록한 내용을 봉림대군에게 남겨 놓고 환국한다. 청나라에서 환국을 한 세자에게 오랑캐와 손을 잡았다는 이유를 들어 세자를 역모로 몰아갔다. 반상이 타파되면 자신들의 자리를 잃어버릴 것을 염려한 김자점을 비롯한 공서파 서인들이 인조와 세자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었다. 김자점은 소현세자가 오랜 청나라 생활 때문에 조선 내에는 이렇다 할 기반이 없는 것을 잘 아는 터이라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왕으로 만들기 위해 접근하지만 소현세자가 거절한다. 결국 소현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한 김자점의 간교에 의해 소현세자는 독살당하고 만다. 소현세자가 독살 당하자 청나라는 서둘러서 봉림대군을 환국시킨다. 봉림대군이 환국하자 조선 조정은 석철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를 들어서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하지만 세자가 된 봉림대군은 자신의 형과 형수, 그리고 조카들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면서 복수를 벼른다. 결국 인조가 죽고 효종이 즉위를 하자 효종은 제일 먼저 김자점 일당을 제거한다. 그리고 송시열과 불만을 품고 낙향했던 송준길 등을 중용하는 것은 물론 이완을 중용해서 북벌의 기치를 올리기 시작한다. 효종의 북벌은 소현세자와 구왕 다이곤, 용골대가 약조해 놓은 나선정벌을 이용한 요동의 실질적인 지배를 통한 영토수복이 그 골자로, 요동수복을 위해서 군사력을 증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왕권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양반 사대부들에 막혀 일을 그르치게 된다. 결국 효종은 옛 스승인 고산 윤선도의 입궐을 원하지만 윤선도는 자신의 입궐이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조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염려해 거절한다. 윤선도가 입궐하지 않은 조선 조정은 송시열 독주가 되고 결국 원칙에만 의존하는 송시열의 북벌론으로 인해 북벌의 일은 요원해지며 효종은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고 유형원을 통해 토지제도는 물론 조세제도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법 등을 담은 ??반계수록??을 저술하도록 하고, 한편으로는 이완을 통해 군사력을 증강한다. 하지만 북벌의 좋은 기회가 다가와도 중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일을 추진할 수 없었다. 결국 두 번의 나선정벌군을 통해 요동을 수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만 안타깝게 놓치게 된다. 그렇게 기회를 놓친 효종은 알 수 없는 병으로 여위어만 가다 결국 즉위 십 년 만에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효종 역시 형 소현세자가 했던 것처럼 그 모든 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남겼고 그것을 박 승지에게 전하면서 훗날 성군이 나와서 북벌을 이룰 수 있을 때 형 소현세자의 비서와 함께 전해줄 것을 당부한다. 두 권의 비서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비서는 박 승지의 가문에서 보관을 해 오다가 박제가의 손에 전해졌고 박제가는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 이산이, 아버지 사도세자가 북벌의 한을 가슴에 품고 죽을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비서를 박지원을 통해 세손에게 전한다. 결국 그 비서는 물론 비서에 수록된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을 섭렵한 정조는 서얼들을 중용하는 등 반상타파의 시작을 알린다. 또 실학자들을 대거 중용해서 실사구시의 정치를 할 것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잃어버린 역사 찾기에 나서서 유득공으로 하여금 발해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그 서문에 요동이 우리 땅임을 명기하도록 한다. 하지만 노론의 벽을 넘지 못한 정조 역시 선대왕 효종이 그랬던 것처럼 알 수 없는 병으로 야위어 죽어가고 만다. 하지만 요동수복의 꿈이 정조의 죽음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명확하게 정리한 우리 영토인 요동과 그 요동을 찾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은 소현세자와 효종의 기록들이 비서로 전해지면서 요동수복의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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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와 효종이 남긴 북벌 계략의 비서가 ‘요동묵시록’ 상, 하권(작가와 비평 펴냄)으로 소설가 신용우씨의 손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추태후’, ‘요동별곡’, ‘명성황후는 시해당하지 않았다’ 등의 작품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우리 역사의 정통성을 세워 잃어버린 역사와 잃어버린 영토를 찾자는 주제로 글을 써왔던 작가의 역사의식이 다시 한 번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책의 제목 그대로다. 묵시록이라는 것이 그 대상의 근원을 밝히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임을 착안 할 때 제목에서 읽히는 그대로 요동 땅이 우리 땅임을 밝히고 수복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밝히면서 그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그 형식은 소현세자와 효종이 북벌계략에 대해 써 놓은 비서를 공개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 신용우씨는 “단순히 상상력만 동원해서 북벌 비서를 그려내고 새로운 시각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역사를 바탕으로, 특히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해서 썼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고조선 시대부터 고구려는 물론 대진국 발해가 우리 역사의 정통임을 밝히면서 대진국의 멸망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 의한 것임을 밝히는 등 우리 역사의 큰 맥을 한꺼번에 훑어나가는 책이다. 뿐만 아니라 세조 때 위서라는 명목으로 거둬들인 고조선 비사는 물론 안함로 원동중의 삼성기 등을 인용해서 그동안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으로 알려진 한글이 이미 고조선의 3세 단군 가륵 때 가림토 문자로 창제됐으며, 세종대에는 정리를 해서 반포한 것을 밝히는 등 우리 역사가 일 만년 역사임을 고증하여 요동 땅이 우리 땅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단순히 우리 땅이라는 확신을 넘어서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소현세자와 효종이 기울인 노력과 계략을 그대로 펼쳐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갖고 있던 역사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셔버리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에게 나약한 이미지로 비쳐진 소현세자가 결코 나약한 인물이 아니라 강인하고 용맹한 사람으로 강한 북벌의 의지를 갖고 그것을 추진하려 했던 것을 밝힌다. 또 병자호란은 물론 청나라에 볼모로 가서 보여준 그의 용맹성과 반상을 타파하고 실사구시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밝혀진다. 하지만 볼모생활이 끝나고 환국해서 그 꿈을 펴보기도 전에 독살당하는 장대하고 애절한 이야기도 펼쳐진다. 또한 우리에게 북벌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효종의 북벌 비서가 단순히 효종 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소현세자에서 시작되어 그 맥을 잇고 있던 것임도 밝힌다. 또한 요동이 수복되는 날을 대비해서 효종이 유형원에게 ‘반계수록’을 저술하게 하는 등 효종의 강한 개혁의지 역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을 다스리던 양반 사대부들의 벽에 부딪혀 청나라에서 볼모생활을 할 때부터 두 사람이 꿈꾸던 북벌을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북벌의 꿈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소현세자와 효종은 자신들의 북벌 비계를 기록으로 남기고 그 기록은 훗날 실학파의 거두가 되는 박제가의 선조인 박 승지에게 맡겨진다. 박 승지는 “훗날 성군이 나면 이 기록을 전해 달라.”는 유지를 남긴 두 사람의 뜻을 받들어 그 비서를 후손에게 전하게 되고 결국 그 비서는 박제가에게 까지 전달된다. 비서를 전달받은 박제가는 정조가 세손 시절에 그 비서를 전하고 결국 정조는 그 비서를 자신의 통치이념으로 삼게 된다. 정조가 반상타파의 전초전으로 서얼출신들을 중용하고 실사구시의 실학 이념으로 통치하려 했던 것들이 모두 그 비서에서 얻은 지혜들이다. 물론 정조 역시 자신이 구상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소현세자와 효종처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만 결코 그들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얼핏 들으면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은 주제를 작가 고유의 필체로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풀어나갔다. 신용우씨의 책을 읽고 나면 항시 그렇듯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해주는 뿌듯함이 남으면서 역사의 큰 틀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는 데 ‘요동묵시록’ 역시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