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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서문 이 책의 목적 1. 남녀관계 ⅰ 낭만주의적 사랑에 대한 기대 ⅱ 집에서 벌어지는 사소하고 하찮은 문제들 ⅲ 불안한 성생활 ⅳ 장점의 단점 법칙 2. 남들과의 관계 ⅰ 의도치 않게 주는 상처 ⅱ 가르침의 미덕 ⅲ 예의의 미덕 ⅳ 관료주의가 주는 좌절 3. 직장 생활 ⅰ 자본주의와 스트레스 ⅱ 잠재력과 야망 ⅲ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ⅳ. 동료와 협업의 문제 4.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들 ⅰ. 시각 ⅱ. 소리 ⅲ. 공간 ⅳ. 시간 ⅴ. 스킨십 결론: 조용한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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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요할 정도로 정확히 상대방의 결점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런 행동이 반드시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의 그런 결점이 보편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성숙하는 것은 심각한 사건 없이 무난히 펼쳐지기 힘든 문제투성이 과정이다. 따라서 비뚤어진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있는 ‘리스크’가 아니라 거의 ‘확정되어 있는 일’이다. 우리는 장래의 짝이 상처 입은 사람은 아닐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상처 입은 사람일지 생각해야 한다. --- p.41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모든 일에 음침한 계략이 있다고 생각하는 성향을 갖게 됐는지 그 이유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 자신에게 연민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문제의 근원은 ‘우리가 스스로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멸시’가 근본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을 거라고 의심한다. 아니, 대체 왜 사람들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것보다 조금도 잘해주지 않는 걸까? 내가 다른 사람들의 목표물임을 인정하고 나면, 내가 일하려고 자리에 앉자마자 밖에서 드릴 소리가 울려대는 것도, 급하게 미팅에 참석해야 하는데 도로가 꽉 막히는 것도 모두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 문제의 출발은 어린 시절이다. 어린 시절양육자나 가족들은 내가 쓸모없고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 p.73 좋은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말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남들은 그다음 차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똑같이 설득력 있고 확신에 차 있으면서도 도움이 되고 건설적인 다양한 목소리들을 만나야만 한다. 친구나 심리치료사, 책의 저자, 친절한 선생님 같은 이들의 목소리를 말이다. 까다로운 문제에 관해 그런 목소리들을 충분히 자주 들어서 그런 목소리들이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나 자신의 생각이 되어야 남들에게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처럼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기초는 ‘이해’다. 세상과 역사를 더 넓은 시각으로 이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고 왜 그런지에 대한 이식의 틀이 바뀐다. ‘회사가 신경을 안 써서’, ‘기술자들이 어리석어서’ 같은 화를 돋우는 설명 말고, 우리를 덜 격앙시키면서도 실제로 더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규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경우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점과 더불어, 새로운 기술이 발달하다 보면 모든 게 항상 최선일 수는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p.99 초조함이란 어떤 일이 절대적 의미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느끼는 좌절감이 아니다. 초조함은 어떤 일이 우리 예상보다 오래 걸릴 때 감지되는 느낌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가끔은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주로 문제의 관건이 되는 것은 ‘실제로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 얼마나 걸려야 한다’는 우리의 가정이다. 이렇게 시간 프레임을 빡빡하게 잡는 것은 대개 우리의 무지 때문이다. 일의 성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 p.117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하고 그 사람의 훌륭한 점만 본다는 뜻이 아니다. 상대방이 덜 매력적인 순간에도 그를 돌봐주고 보호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사랑이다. 안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포옹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내가 잘 해나가고 있지 못하다는 인정과 함께 보호와 응원을 간절히 바란다는 더 큰 뜻이 포함되어 있다. 포옹은 고도로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우리 문화가 놓친 어떤 것, 즉 우리의 ‘의존성과 연약함’에 대한 적극적 인정을 상징한다. --- p.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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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관계, 직장생활, 타인과의 관계 등
갈등의 진원지에서 평온을 유지하는 법 남녀관계는 그 어떤 관계나 경험보다도 강력하게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수시로 평정심을 깨뜨린다. 남녀관계처럼 우리가 상대방에게 엄청난 ‘기대’를 품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가령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응당 알아서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등등 다른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바라지 않을 큰 기대를 품는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런 기대에 못 미치면 우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고약한 성미를 드러내며 상대방에게 못되게 군다. 그러다가 관계가 깨지면 우리는 자신의 기대를 채워줄 새로운 누군가를 찾아 헤매며 똑같은 실수를 거듭한다. 이렇듯 반복적인 경험으로도 수정하지 못하는 턱없이 높은 기대는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정신분석학자들은 배우자나 연인에 대한 기대의 근원은, 우리가 엄마 배속에 있을 때 혹은 유아기에 말로 할 수 없는 것까지 꼼꼼히 보살펴준 양육자에 대한 기억에 있다고 한다. 심지어 아기들은 양육자를 꽤 오랫동안 자기 몸의 일부처럼 인식한다. 우리는 이런 기억을 끊임없이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투영한다. 여기에 더해 ‘낭만주의적 사랑관’이 가세한다. 18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 귀족들은 결혼을 자녀와 재산과 사회적 결연을 위한 것으로 보았고, 결혼이 배우자와 함께 누리는 행복으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 기대는 불륜을 통한 연애에서나 가능했다. 그러다가 19세기 예술계와 사상계에 낭만주의적 관점이 널리 유입되면서 일상의 남녀관계에 대한 시각이나 사랑관도 바뀌었다.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배우자나 연인은 서로 모든 것을 털어놓고, 서로 완전하게 합의하는 관계를 추구한다. 따라서 상대방이나 그와 함께할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치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또한 낭만주의 소설을 살펴보면 낭만주의적 사랑관이 어떤 점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낭만주의 소설은 두 연인이 전쟁이나 종교, 집안의 반대 등 사랑의 큰 장애물을 헤쳐 나가는 극적인 전개 구조를 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상적이거나 사소한 부분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배우자나 연인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고 평정심을 잃게 되는 부분은 ‘빨래, 집안 청소, 육아 문제’ 등 ‘낭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다. 그럼에도 남녀관계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여전히 ‘낭만주의적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온 고전주의적 사랑관에서 지혜를 얻고, 사랑에 대한 기대치나 사고가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전주의적 관점은 비록 덜 낭만적일지언정 상대방에게 비교적 낮은 기대치를 설정한다. 따라서 관계에서 나타날 ‘어려움’을 미리에 염두에 둘 수 있고, 예상치 못한 패닉에 빠질 일도 적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완전한 공유나 합의보다는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상대의 바꿀 수 없는 면모나 소소한 의견 차이는 적당히 체념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낭만주의는 남녀관계를 매끄럽게 형성하는 데 필요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터부시하는 반면, 고전주의는 더 나은 연인이나 배우자가 되는 법을 배움으로써 관계의 부족한 면모를 메꿀 수 있다고 본다. ‘가르침과 이해’가 필요한 것은 대인관계나 일의 모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우리가 사람들을 대하거나 함께 일할 때 자신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잘 가르쳐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과정이 없을 경우, 상대는 의도치 않게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건드릴 수 있고, 우리는 이에 발끈해 ‘가르침의 단계’를 건너뛴 채 곧장 ‘되갚기나 벌주기’ 단계에 돌입하기 쉽다. 갈등과 오해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상대방이나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관료주의나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로 인해 빚어지는 오류나 갈등이 대부분 누군가의 일방적인 책임이나 사악한 의도가 아니라, 구조 그 자체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상황을 오해하고 쉽게 패닉과 분노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한 ‘가르침과 이해’의 기술은 이렇듯 자기 자신의 내밀한 감정, 상대에 대한 이해, 주변 환경과 타이밍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기술이다. 이 책은 그런 복잡한 기술들을 삶의 여러 영역에서 습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천적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일상에서 평온을 가져다주는 원천을 찾아서 -시각, 소리, 시간, 공간, 스킨십 이 책은 스스로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어 평온을 찾는 철학적 방법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평온을 가져다주는 원천’을 찾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시각적 경험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가져온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누군가의 미소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수백 년간 불상에 은은한 미소를 담아왔다. 실제로 정신분석학자들은 엄마가 미소 짓는 방식이 아이에게 만족감을 준다고 지적하며, 표정과 기분의 전염성에 대해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불상의 고요하고 자족적인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평온과 고요함을 늘려갈 수 있다. 이 책은 예술작품이나 건축물 등을 통해서도 그와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편안하게 자신의 눈과 마음을 내려놓을 만한 대상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것을 독려한다. 때때로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도 평온을 되찾는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자신보다 훨씬 크거나 압도적인 무언가를 만났을 때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외감을 느끼는 경험을 한다. 예술가나 철학자들은 이런 느낌에 ‘숭고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별빛 가득한 밤하늘의 풍경이나 광활한 사막 등을 볼 때 이런 숭고함을 느끼는데, 이때 우리의 시각과 사고의 프레임이 일시적으로나마 확장된다. 그런 광범위한 틀에서 보면 당장의 걱정거리나 일상의 이런저런 사건들은 우리에게 중요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듯 숭고함은 지엽적이고 사소한 일들로부터 우리를 떼어내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교회나 성당에 모임으로써 숭고함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제 종교의 힘이 약해지고, 일상에서 숭고함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 책은 독자들이 그럴 만한 기회를 우연에 맡겨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도록 권장한다. 광활한 대양이나 사막, 산으로 가기 힘들다면, 저녁 산책을 하며 칸트의 조언을 따를 수도 있다. 칸트는 “별이 빛나는 저 위의 하늘”의 풍경을 자연에서 가장 숭고한 광경으로 보고, 이런 초월적 광경을 응시하는 것이 일상의 노고에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시간과 역사에 대한 이해도 우리에게 묘한 안정감을 준다. 로마시대 고위 행정관이자 하드리아누스 황제 비서실장이었던 수에토니우스는 이전 로마 황제들이 벌인 끔찍한 기행들을 묘사한 기록을 남겼다. 율리우스의 어마어마한 뇌물수수, 하찮은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처형하거나 갖은 방법을 동원해 고문해댄 칼리굴라와 네로, 하루에 몇 시간을 펜촉으로 파리를 찔러대는 데 쓰던 도미티아누스 등을 비롯해, 제국을 휩쓸었던 지진과 역병, 전쟁, 폭동, 음모, 쿠데타, 대량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 자체로만 보면 수에토니우스의 책은 완전히 부패하고 무능해서 붕괴가 임박한 사회에 대한 기록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로마가 가장 부흥한 것은 수에토니우스가 그 책을 쓰기 전이 아니라, 쓰고 나서 50년 후 스토아 철학자이자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시대가 열리면서였다. 수에토니우스의 글은 실망스러운 지도자와 탐욕스러운 권력은 언제 어디서나 있었고, 문명에 대한 실존적 위협도 언제나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 시대만 유독 괴롭고 혼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왜곡된 나르시시즘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당장의 고통에만 집착하는 행동을 내려놓고 좀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감각적 경험 중에서도 스킨십, 특히 포옹은 그 강력한 효과에 비해 중요성이 덜 알려져 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팔에 폭 안길 때 자신의 부족함이나 두려움을 잊고 전적으로 이해받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 경쟁적 환경에서 독립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초점을 맞추느라 자신의 부족함이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퇴행적 모습을 부정한다. 그러나 그런 부족함이나 퇴행성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따금 그런 퇴행적 감정이나 행동을 표출하고, 일상에서 포옹을 통해 이런 것들이 아무런 편견 없이 이해받고 수용받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