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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점거 3일째 p.17 / 토요일 점거 4일째 p.51 / 일요일 점거 5일째 p.87 / 일요일 (늦은 오후) p.129 / 월요일 점거 6일째 p.179 / 화요일 점거 7일째 p.245 / 에필로그 p.283
감사의 말 p.289 / 역자 해제 p.290 |
Lola Larra
Vicente Reinamon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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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가 그 새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막 교문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섰을 때였다.
“니콜라스.” 파울라가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불렀다. “가는 거야?” 나는 어쩔 줄 몰라서 걸음을 멈췄다. 대답도 없이 그저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자 파울라가 축구 골대 앞에서 보이는 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이 깡마른 여자애가 축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골키퍼의 역할을 폄하한다고 생각했다. 골키퍼를 한다는 것은 확신이나 무실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골키퍼를 한다는 것은 관중석의 관중이 인생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 p.30 “(……) 가끔 엄마는 아빠한테 그때를 말씀하시곤 해요.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 그들과 같이 세웠던 계획들,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들을 화나게 했던 것들. 그리고 로드리고가 언제 가장 급진적이었는지, 수업이 끝나고 버스를 타러 뛰어가던 일, 자원봉사 하러 마을을 방문했던 일도 말씀하셨어요. 결국엔 학교에 거의 안 나왔대요. ……로드리고는 우리가 세상에 너무 무관심하다며 왜 침묵해선 안 되는지 강조했었다고 해요. 또 어른들이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열다섯, 열여섯 살 고등학생들이 그것을 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런 로드리고는 영원히 열여섯 살입니다.” --- p.192 “니콜라스, 네가 이 점거에 왜 참여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너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잖아. 학생회에도, 학생운동에도 관심 없었고. 네가 남겠다고 했을 때부터 정말 이상했어. 너도 알다시피 점거 중에는 종종 잠입자가 나와. 그래서 경찰에 매수당한 스파이를 조심해야 해. 시위에 적극 가담하는 학생들을 찾아내고, 스파이 짓을 하고, 증거 사진을 찍고, 그런 다음에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시위에 나와 다른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스파이? 여기에? 너 미쳤구나. 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 p.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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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칠레의 책, 그래픽노블과 소설이 교차하는 독특한 형식
『알라메다의 남쪽』은 칠레의 젊은 작가들이 쓰고 그린 책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었던 칠레 문학은 파블로 네루다를 비롯한 피노체트 시대 전후의 작가들이 대부분이었고, 이후 세대로는 알베르토 푸겟이 거의 유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개되는 『알라메다의 남쪽』은 국내에 출간된 가장 최근의 칠레 책이면서, 상당수 독자들에게는 최초의 칠레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쓴 롤라 라라는 1968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나,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가족과 함께 베네수엘라로 이주해 성장했으며, 이후 에스파냐를 거쳐 2006년에 칠레로 돌아온 소설가다. 유년기부터 해외를 떠돌았던 그녀가 민주화 이후 10여 년이 흐른 조국에서 마주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시위의 주인공은 검정색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 즉 ‘성난 펭귄’들이었다. 한창 점거 중인 학교를 방문해 깊은 인상을 받은 롤라 라라는 노트에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2014년 비센테 레이나몬테스의 그림이 더해져 그래픽 소설로 출간되었다. “칠레 교육 제도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수단이 되어 왔습니다. 가난한 자치구에 태어나면 가난한 공립학교에 진학해 질 낮은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 칠레의 교육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교육법을 시급히 개혁해야 합니다. 지방정부 주도의 교육은 이제 끝나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저항이 이를 증명할 것입니다.” _본문 33~34쪽 비센테 레이나몬테스는 사회참여에 관심이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로 2006년 당시 시위 현장을 누빈 수많은 펭귄 중 한 명이었다. 검정, 파랑, 빨강 세 가지 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그의 그림은 점거 현장에 고립된 아이들의 시점과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제3의 인물의 시점을 대담하게 교차시키면서 전체 서사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롤라 라라의 글과 비센테 레이나몬테스의 그림은 흔치 않은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책을 펼치면 전형적인 그래픽노블인 듯 그림에 말풍선이 올라간 페이지가 이어지다가, 이윽고 텍스트로 이루어진 소설로 넘어간다. 책 전반에 걸쳐서 그래픽노블과 소설이 번갈아 등장하며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 낸다. 출간 후 평단과 대중의 극찬을 받은 이 책은 2014년 화이트 레이븐 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칠레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암스테르-코레 디자인&일러스트레이션 상과 마르타 브루넷 아동청소년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익숙한 이야기 칠레와 한국은 지리적으로 정반대쪽에 자리하고 있지만, 몇 년의 시차를 두고 유사한 역사를 헤쳐 왔다. 피노체트 독재가 철권을 휘두르던 1970~80년대에 우리도 군사 독재와 싸웠으며, 2006년 5월에 시작된 펭귄혁명은 2008년 몇몇 청소년들로부터 시작된 우리네 촛불 시위와 겹친다. 펭귄혁명이 일어난 배경도 낯익다. 임수진 교수가 해제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칠레에서 교육은 시장에 맡겨져 있고, 정부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 “학교는 영리 목적으로 기능하고, 학부모와 학생은 소비자로 존재”하며, “공교육은 무너졌고, 대학은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했다. 위 서술에서 ‘칠레’를 ‘한국’으로 바꾸어도 사실관계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점거 초반 동료들에게 진정성을 추궁받던 니콜라스는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어쩜 파울라는 내가 다른 학교 학생들이 질 낮은 교육을 받든 말든, 버스비를 못 내든 말든, 형편없는 점심을 사 먹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 산티아고도 그렇지만 지방에도 운동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운동장의 흙먼지가 온몸을 뒤덮고 시야를 가린다. 골대가 부서져 있기도 하다.”(본문 90쪽) 신자유주의 교육 시스템이 학교 서열화를 낳은 현실도 이처럼 우리와 일치한다. 처음에 펭귄혁명은 교통비 상승과 대학 입학 전형료 인상에 분노한 수백 명의 청소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많게는 60만 명이 거리로 나서서 교육법 개혁을 외쳤고, 학생운동을 이끈 리더 중 네 명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의회에서 교육 관련법 입법화를 위해 뛰고 있다. 바로 한 달 전인 2017년 11월 16일에는 마침내 칠레 정부가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교육 정상화’를 발표했다. 1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렇듯 펭귄 혁명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알라메다의 남쪽』은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저자 롤라 라라는 피노체트 독재 시대에 실종된 등장인물 로드리고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이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열다섯, 열여섯 살 고등학생들이 그것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난해하지만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책이다.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교육 부문에도 도입되었습니다. 경쟁을 통한 교육의 질 개선, 공립학교 효율화, 선택의 자유를 목적으로 경쟁과 이익을 추구하는 친시장적 교육체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공립학교 수를 줄이는 대신 사립학교 비율을 61퍼센트까지 늘렸고, 중앙정부가 해 오던 주무관청 및 지출처 역할을 지방정부에 이관했습니다. 교육 예산은 스쿨바우처 제도에 의해 편성하게 되는데, 이는 학교 간 순위에 따라 예산을 차등 지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 잘사는 지역의 성적 좋고 대학 진학률 높은 사립학교에는 더 많은 예산이 배정되고, 경쟁에서 뒤처진 가난한 지역의 공립학교에는 적은 예산이 배정되는 것입니다. _본문 291쪽(역자해제) 칠레의 어제와 오늘, 어른과 아이들의 이야기 펭귄혁명은 피노체트가 물러나고 16년 뒤인 바첼렛 정부 때 시작되었다. 중도 좌파가 정권을 잡았지만 피노체트 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경쟁’과 ‘효율’ 중심의 교육정책에는 한 치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공교육은 손쓸 수 없을 지경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분노한 청소년들이 거리와 학교를 점령한다. 주인공 니콜라스와 동료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사립학교에 다니지만, 공립학교 학생들은 먼지가 펄펄 날리는 흙바닥에서 운동하고, 형편없는 점심을 사 먹고, 통학 버스비를 내지 못해 쩔쩔매야 하는 형편이다. 주로 공립학교 학생들이 점거에 들어간 가운데, 니콜라스네 학교도 학생회 주도로 뒤늦게 점거에 뛰어든다. 그들은 점거에 동참한 몇 안 되는 사립학교 중 하나로 주목받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선택받은 소수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 그런데 니콜라스는 한 술 더 떠서, 투철한 정치의식으로 무장한 동료들과 달리, 얼떨결에 점거 현장에 눌러앉았다는 자괴감과도 싸워야 하는 처지다. 게다가 학생회 간부들을 비롯한 동료들은 니콜라스에게 왜 점거에 참여했는지 끊임없이 묻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학교와 바깥을 이어 주던 통신망이 두절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니콜라스는 더욱 궁지에 몰린다. 이처럼 이 이야기는 그저 파울라를 좇아서 점거에 뛰어든 니콜라스가 내적 갈등과 외부의 압박과 싸우면서 운동의 주체로 서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 나간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은 니콜라스와 파울라의 연애담이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다가 몇 해 전에 칠레로 돌아온 파울라는 말투며 생각이며 행동이 남다르다. 니콜라스는 독립적이고 단호한 파울라에게 저도 모르게 끌리고, 파울라의 질책과 격려를 받으며 점거 동지이자 연인으로 발전한다. 위기감이 맴도는 점거 현장에서 밀고 당기는 심리전을 벌이며 사랑을 키워 나가는 둘의 모습이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마지막 한 축은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걱정하고 지원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다. 피노체트 독재와 싸웠고, 극심한 상처를 입기도 했던 이 인물들은 점거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지만 배후에서 격려와 지지를 보낸다. 반 피노체트 학생운동이 절정이던 1985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칠레 의대 점거에 뛰어들었던 삼총사, 즉 니콜라스의 어머니 마리아 호세와 그날 이후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영원히 열여섯 살로 남은 로드리고 발디비아, 로드리고의 실종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은둔 생활을 하는 카를로스 로페스 삼촌, 그리고 삼총사 사건 이후 학교를 강제로 떠나야 했던 루이사 가레톤 선생님 등의 사연은 깊은 울림을 안긴다. 칠레의 민주화가 어느 날 축복처럼 쏟아진 것이 아니라 윗세대의 희생으로 탄생한 것이며, 지금 칠레를 짓누르고 있는 병폐들이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잔재임을 일깨우는 설정이다. 이처럼 이 책은 엄혹한 독재 시대를 헤쳐 온 어른들의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열어 가야 할 아이들의 이야기다. ‘역자 해제’ 중에서 이 점거 일지는 알라메다 거리 남쪽의 작은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고등학생의 시각으로 따라갑니다. 우연히 학교 점거에 참여하게 되어 학생의회 토의가 따분하기만 하던 니콜라스가 교육개혁의 주체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부모 세대가 이루지 못한 과업인 탓에 자신 없기도 했지만, 니콜라스와 동료들은 교장 선생님의 해산 권고나 누군가의 방해 공작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니콜라스의 어머니와 루이사 선생님은 학생들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고, 학생들은 어른들이 무척이나 대견해할 만큼 질서 있고 강한 힘을 보여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