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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임진왜란 유적
정만진
국토 2017.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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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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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이순신의 수군 첫 근무지
전남 고흥 발포성, ‘이 충무공 머무시던 곳’ 비 · 9

전쟁이 터졌다…… 이순신의 분노와 고민
전남 여수 진남관 · 26

이순신의 파격 승진, 조선의 행운 됐다
전남 여수 선소 유적, 거북선 체험관 · 52

조선군의 첫 승리, 전세 역전의 시작
경남 거제 옥포 대첩 공원 · 74

전쟁 초기 유적이 즐비한 부산
부산 송공단 등 · 98

거북선이 처음으로 투입된 사천 해전
경남 사천 선진리성, 조명 군총 · 104

이토록 아름다운 성이 전쟁 유적이라고?
경남 통영 당포성 · 119

두 차례에 걸쳐 왜군을 격파한 승리의 현장
경남 고성 당항포 · 129
평화로운 섬, 그러나 임진왜란 3대 대첩지
경남 통영 한산도 · 141

이순신이 믿고 의지했던 인물, 정운
부산 오륙도, 정운 순의비 · 161

조선 수군 최초의 패전, 최대의 패전
경남 거제 칠천량 · 177 경남∼전남 이순신 순례길 · 185

고대 이래 진도의 항구, 외적 항전의 역사
전남 진도 벽파진, 충무공 전첩비 · 192

세계적 승전의 현장, 물이 울부짖는 바다
전남 해남-진도 울돌목 · 203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충무공 비에 총을 쐈다
전남 목포 고하도 · 218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경남 남해도 관음포 이락사, 노량 충렬사 · 231

승려들의 수군 활동을 증언해주는 이 사찰
전남 여수 흥국사 · 254

임진왜란 수군들의 고된 역사를 기리는 공원
전남 여수 자산 공원 · 266

생각하면 늘 눈물이 나는 사람
전남 여수 고소대 · 279

충무공의 기발한 계책, 영산강을 지킨 포구
전남 목포 노적봉, 목포진 터 · 289

임진왜란 연표 · 약사 · 298

저자 소개 1

2019년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 《전국 임진왜란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고 이이화 역사학자 추천)》,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 여행》 등을 저술했다. 우리나라 의열 독립운동사 40년을 형상화한 3부작 장편소설 《소설 광복회》, 《소설 의열단》, 《소설 한인애국단》, 현진건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일장기를 지워라》 등도 펴내었다. 걸출한 민족문학가이자 1936년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 현진건을 현창하기 위해 활동하는 ‘현진건 현창회’ 회장으로서, 월간 《빼앗긴 고향》을 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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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1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314쪽 | 583g | 152*225*18mm
ISBN13
9791196214920

책 속으로

남해안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순서

남해안 일원의 유적을 답사하는 순서를 소개합니다. 아래의 예는 목포에서 부산까지 남해안을 따라가며 임진왜란 유적을 답사하는 여정입니다. 부산에서 목포 쪽으로 나아가면서 답사를 하는 경우에는 아래 예시의 반대 순서로 진행하면 됩니다. 이 순서대로 다니면 최대한 시간 소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권두에 답사 순서부터 실은 이후 본문을 시작하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이 친절한 안내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 유적 이름 뒤의 괄호 안에 그 유적과 관련되는 인물을 밝혀 두었습니다.

목포
01. 노적봉[이순신] 측후동 5-17
02. 목포진 터 문화재자료 13호, 만호동 1-55
03.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기념물 10호, 달동 230

진도
04. 벽파정, 충무공 전첩비 고군면 벽파리 663-2
05. 정유재란 순절 묘역 문화재자료 216호, 고군면 도평리 산111-4
06. 진도 타워 전망대 울돌목 조망, 군내면 녹진리 산2-80
07. 녹진항 이순신 동상 아래 울돌목 물살 감상, 진도군 녹진항

해남
08.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 전시관[이순신 등] 문내면 학동리 1021
09. 명량 대첩비 보물 503호, 문내면 동외리 955-6

완도
10. 고금도 충무사, 월송대 사적 114호, 고금면 덕동리 산58

장흥
11. 회령진성[이순신, 배설] 회진면 회진리 965-1

고흥
12. 서동사[송희립, 송대립] 문화재자료 155호, 대서면 화산리 16
13. 쌍충사[정운] 기념물 128호, 도양읍 봉암리 2202
14. ‘이 충무공 머무시던 곳’ 비 도화면 발포리 558
15. 발포 만호성[이순신] 발포리 968, 충무사 발포성 뒤
16. 발포 역사전시체험관 발포리 547-45, 송씨 열녀 동상 체험관 뒤

순천
17. 순천 왜성[소서행장] 기념물 171호, 해룡면 신성리 산1
18. 충무사[이순신, 정운, 송희립] 문화재자료 48호, 해룡면 신성리 산28-1
19. 검단 산성 사적 418호, 해룡면 성산리 산48

여수
20. 선소 유적[이순신, 나대용] 사적 392호, 시전동 708
21. 자당 공원[이순신 어머니] 웅천동 1799-4 옆, 이순신 어머니 사시던 곳
22. 거북선 체험관 돌산읍 우두리 813-10
23. 무술목 해변 돌산읍 평사리 1271-3
24. 방답진 선소 돌산읍 군내리 987-6
25. 향일암 돌산읍 율림리 산7
26. 돌산공원 전망대 돌산읍 우두리 산1
27. 이순신 광장 중앙동 385-6, 거북선, 이순신 동상, 야외 전시물
28. 진남관 국보 304호, 군자동 472
29. 고소대[이순신, 류형] 보물 비석 2기, 고소동 620
30. 임진란 호국 수군 위령탑, 이순신 동상 자산 공원
31. 충민사[이순신, 이억기, 안홍국] 사적 381호, 덕충동 1808
석천사 의승당[이순신, 옥형 스님, 자운 스님], 충민사 옆
32. 흥국사[이순신, 의능 스님] 중흥동 17, 의승 수군 유물 기념관

남해
33. 노량 충렬사[이순신] 사적 233호, 설천면 노량리 350
34. 이락사[이순신] 사적 232호, 고현면 차면리 107, 관음포 내항
35. 창선도 왕후박나무[이순신] 천연기념물 299호, 창선면 대벽리 669-1

사천
36. 사천 읍성 기념물 144호, 사천읍 선인리 580-2
37. 조명 군총 기념물 80호, 용현면 선진리 402
38. 선진리성 사적 50호, 용현면 선진리 746

고성
39. 당항포[이순신 등] 고성군 회화면 당항리 ‘당항포 관광지’

통영
40. 통영 충렬사[이순신] 사적 236호, 명정동 179
41. 조선 군선 체험장 중앙동 236
42. 착량묘[이순신] 기념물 13호, 당동 8
43. 당포성[이순신 등] 산양읍 삼덕리 175
44. 한산도[이순신 등] 사적 113호, 도남동 634 ‘유람선 터미널’

거제
45. 옥포 대첩지[이순신, 원균 등] 옥포동 산1-1
46. 칠천량[원균, 배설] 하청면 연구리 418-2, 칠천량 해전 공원 전시관
47. 장문포 왜성 문화재자료 273호, 장목면 장목리 130-43

부산
48. 정운 순의비 기념물 20호, 사하구 다대1동 산144
49. 영도 영도구 동삼동 산29-1 ‘태종대 전망대’
50. 오륙도 해운대구 중동 957-8 ‘해운대 유람선’

--- p. 7~8

출판사 리뷰

임진왜란 7년 전쟁 재조명한 혼신의 역저

소설가 정만진 씨가 지난 5년간 두문불출하면서 전국에 산재한 490여 곳의 임진왜란 유적지를 찾아 발굴한 자료로 엮은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를 출간했다. 저자는 60평생을 교육으로 이 땅의 민주화를 추동했던 양심적인 교육자였다. 이제 그 사유와 행동의 지평을 역사와 문화로까지 확대하여 역사문화콘텐츠의 재발굴을 통한 민족정신 재정립이란 프로젝트에 뛰어 들었다. 이 총서는 그 첫 결실이 담긴 노작이다.
저자는 자료와 문헌에 의존하지 않고 일일이 현장을 찾아 성심성의를 다해 글로 적고 사진을 찍었다. 화려한 지식이나 고담준론으로 오만하게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기존의 답사여행 서적들과 다르다. 보통사람들의 상식과 눈으로 독자와 함께 숨쉬며 420여 년 전 왜적이 이 땅을 유린한 전쟁을 재현해 역사의 교훈을 찾는다. 1,215장이나 되는 사진을 실어 역사의 현장을 가지 않고도 임진왜란의 실감을 생생하게 맛보게 해준다. 원고지 3만 장이 넘는 친절하고 자세한 해설로 독자 여러분을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으로 초대한다.

역사문화콘텐츠 저작가 정만진씨 5년여 노작 전 10권 결실

명량대첩 420주년을 맞아 상재한 이 총서는 조일전쟁을 진지하게 그려낸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풍신수길의 조선 침략을 명령 받은 일본군은 제1군 사령관 소서행장을 앞세워 2,000여 척의 배를 타고 부산 앞바다에 나타났다. 부산진에서 정발(鄭撥) 장군이, 동래성에선 송상현(宋象賢) 부사가, 다대포에선 윤흥신(尹興信) 첨사가 왜적과 맞섰으나 압도적인 전력에 밀려 패전했다. 경상좌병사 이각(李珏)은 싸울 엄두조차 내지 않은 채 줄행랑 도망쳤다.
일본은 ‘중국을 치러 왔다. 조선은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송상현은 ‘싸워서 죽기는 쉽지만, 길을 빌려주긴 어렵다’는 말을 남기며 끝내 순절했다. 바로 임진왜란의 시작이다.
이 총서의 특징은 역사문화유적 현장을 인물 중심이 아닌 지역을 중심으로 엮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인 문하유산답사기는 인물을 중심으로 탐방기사가 전개된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떤 문화유산이 있는가를 먼저 상기시킨다. 가령 임진왜란의 상징적인 인물인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역사문화유산 답사여행은 권2 남해안 편을 필두로 권6 경남 서부 편, 권8 충남 편, 권9 전라도 내륙 편에 산재해있다. 이 총서는 내 고장에 이순신과 관련한 역사문화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현장으로 이끌어낸다.
이 시점에서 왜 임진왜란인가? 해외에서 바라보는 오늘날의 한반도는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짙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시험발사로 조성된 한반도의 전쟁기미는 미국과 북한에 의해 누가 먼저 화약에 불을 당기는가 라는 극단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누구도 전쟁의 위기를 느끼지 않는다. 천하태평이다. 마치 임진왜란 발발직전의 조선과 같은 현상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총서의 집필의도를 명확히 한다. 먼저 단재 신채호가 일컬었던 ‘강토를 잃으면 언젠가는 되찾을 수 있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역사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조선은 선조 25년(1592)부터 선조 31년(1598)까지 약 7년 동안 이 땅에서 임지왜란을 겪고도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해 결국은 일제에 의해 패망했다.
따라서 저자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역사유적이나 문화유산에 대한 탐방은 단순한 여가여행이나 볼거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본디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역사문화여행은 누구나 처음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지만 조금만 사전 배경지식을 갖춘다면 여행은 감동과 교훈을 자아내는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으로 재현되어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이다.

발로 쓴 생생한 전쟁 현장 르포 그날의 참상과 교훈 전달

제 1권은 『부산 김해 임진왜란 유적』이다. 임진왜란은 선조 25년(1592) 4월 부산에서 시작되어 선조 31년(1598) 11월 부산에서 끝났다.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탐지하게 위해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 역사관을 모두에 탐방했다. 총서의 서론 격에 해당하는 글이다. 제 1권에서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선조 26년(1593) 9월에 반포한 어필 한글교서를 보관한 김해의 어서각이다. 선조는 이 한글교서에서 왜적에게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되돌아오라고 회유한다. 이는 역으로 백성들이 당시 조정과 국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웅변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부산 동북부에 위치한 삼절사를 출발하여 가덕도를 거쳐 김해의 구천서원으로 답사여행을 이끈다.

제 2권은 부산 앞바다에서 전남 목포에까지 이르는 『남해안 임진왜란 유적』이다. 왜란 발발 후 20여 일 남짓 지난 5월 7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최초 승전지인 옥포해전을 비롯 세계해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23전 23승의 불패 신화와 전설을 들려준다. 조선 수군의 유일한 단 한 번의 처참한 패전이었던 원균의 칠천량 전투에선 예나 지금이나 지휘관의 리더십이 왜 중요한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답사 코스는 이순신의 자취를 따라 목포에서 시작해 진도』해남』완도』장흥』고흥』순천』여수』남해』사천』고성』통영』 거제』부산을 추천한다.
제 3권은 부산에서 울산, 경주, 영천 등지의 유적 답사기를 모은 『동해안 임진왜란 유적』이다. 국토가 유린된 가운데 나라를 구하겠다며 맨손으로 나선 의병들이 죽을힘을 다해 영천읍성과 경주부성을 탈환했다. 임진왜란사의 전투 흐름을 일순간에 되돌린 쾌거였다. 저자의 답사기는 비록 무명의 의병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병들의 높은 도덕성에 애틋한 존경과 위로를 더한다. 유적 답사는 울산』경주』포항』청송』영천』청도』밀양 코스이다.

제 4권은 대구와 경북 군위, 의성 지역의 임진왜란 주요 유적지를 답사한 『대구 임진왜란 유적』이다. 대구의병은 홍의장군 곽재우가 임진왜란을 대표하는 의병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단 곽재우뿐만 아니다. 서사원·손처눌·정사철·이주·채응홍·이상문·서행원·윤복홍 등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대구의병의 창의정신이 깃든 공산의진을 복원해 들려준다. 대구선비 1,000여 명은 팔공산에 숨어들어 곳곳에서 게릴라 전투를 벌이며 왜군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유적지 답사는 팔공산 일대와 달성군, 북구와 수성구 지역에 산재한 서원을 둘러보라고 추천한다.
제 5권 『경북 서부 북부 임진왜란 유적』은 경북 지역을 통과하는 영남대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뭍의 이순신’이라는 정기룡 장군의 충정이 깃든 상주 충의사에선 서늘한 선비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왜군에게 팔다리를 잘려 순국했음에도 실록에선 ‘도망자’로 기록된 문경 새재의 신길원 비 앞에선 절로 숙연해진다. 역사의 거대한 오류 앞에 서면 인간의 왜소한 무기력에 한숨을 짓게 한다. 저자는 용맹한 필치를 휘둘러 현감 신길원의 명예를 신원하고 오늘에 되살렸다. 경북 서부·북부편의 답사코스는 영덕』영양』울진』봉화』안동』예천』문경』상주』구미』성주』고령에 이른다.
제 6권 『경남 서부 임진왜란 유적』은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그해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진주성에서 벌어진 진주성 전투 등을 소개한다. 진주목사 김시민을 비롯한 3,000여 명의 아군이 30,000여 명의 왜적을 격파한 진주대첩은 임진왜란사를 상징한다. 조선군의 가파른 자존심이 서린 싸움이었다. 곡창 호남을 점령해 군량미를 조달하려던 왜군의 계획은 진주성에서 가로막혀 무산되었다. 선조 26년(1593) 6월 19일 풍신수길은 100,000여 명의 왜군을 보내 ‘진주성 안에 살아있는 생명은 모조리 도륙하라’는 살육보복전을 지시했다. 진주성 읍민과 아군 병사 6,000여 명은 6월 19일부터 29일까지 11일 동안이나 결사항전했으나 결국은 모조리 순절했다. 이 초개와 같은 죽음은 조선인의 혼과 넋으로 올곧게 새겨졌다. 조선은 진주성의 순국을 딛고 왜적을 물리치는 원동력을 얻었다. 경남 서부지역 답사는 함양에서 거창』합천』창녕』의령』진주로 이어진다.
제 7권은 『충청북도 임진왜란 유적』이다. 충주 탄금대는 당시 조선을 대표했던 명장 신립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적과 맞선 역사의 현장이다. 그러나 전술 전략의 실패로 처참한 패전을 맞는다. 국가명승지로 지정된 탄금대의 빼어난 경치는 패전에 따른 아픈 울분을 더하는 듯하다. 충청도를 대표하는 의병장 조헌은 국가로부터 큰 혜택도 받지 못했지만 왜적의 침입을 미리 예견하고 도끼상소를 한 선비정신을 표출했다. 저자가 안내하는 충북 지역의 유적답사는 영동』청주』진천』충주』괴산에 이르는 코스이다.

제 8권은 『충청남도 임진왜란 유적』이다. 금산의 이치 대첩은 임진왜란의 4대 대첩지이며, 일본군이 이치 패전을 가장 뼈아프게 여겼다는 사연을 전한다. 웬만한 임진왜란사에 익숙하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내용을 독자를 금산군 진산면의 이치 현장으로 이끌어 조곤조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준다. 이밖에 임진왜란의 성웅 이순신의 무덤이 있는 아산 현충사를 비롯한 홍성』보령』세종』공주』천안의 유적지를 둘러봐야 한다며 길잡이를 한다.

제 9권은 남해안 일대를 제외한 『전라도 내륙 임진왜란 유적』이다. 특히 독자의 눈길을 끄는 유적지는 전남 나주에 복원된 나대용의 생가와 표충사이다. 나대용은 거북선을 설계하고 건조한 선박기술자이다. 거북선은 『태종실록』에 처음 등장하지만, 그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에 건조한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당시 최첨단 하이테크 기술이 총 집약된 돌격선이다. 오늘날로 치면 웬만한 한나라의 국방력과 맞먹는다는 미국의 핵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급의 함선이라 할 수 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을 재현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웅장한 활약상이 화려한 영상으로 재현되지만, 실제 효율성에선 약간의 과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살짝 드러내기도 한다. 전라도 내륙지역의 답사 순서는 군산』익산』완주』전주』김제』부안』정읍』장성』담양』광주』화순』나주』강진』장흥』보성』고흥』순천』광양』구례』곡성』순창』남원』임실』장수』무주 순이다.

총서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제 10권 『수도권 강원 임진왜란 유적』은 서울, 인천, 경기 지역 및 강원도 일대의 임진왜란 주요 유적지를 돌아본다. 저자는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6번지에 선조의 능이 있는 구리 동구릉을 소개한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선조는 과연 어떤 임금이었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20세기에 부활한 현대판 선조라 할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떠올린다.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다. 오늘날 소위 말하는 ‘보수주의자’들 조차도 무능한 임금이라 욕을 해댄다. 그렇다 선조는 확실히 무능한 임금이었다. 필자도 기꺼이 동의한다. 그런데 이 보수주의자들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해선 “국부” 운운하며 무능을 얘기하지 않는다. 이는 지극히 불공평한 역사의 잣대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가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이 극우수구반동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증좌이다.
선조와 이승만은 절묘하게 역사에서 데자뷰 된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만 하루 만에 부산을 점령했다.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수도 한양을 행해 진격했다. 조일전쟁 발발 불과 2주 남짓 만인 4월 30일 선조는 왕궁을 버리고 몽진길에 나섰다. 임진강 나루에 이르러서는 왜군이 추격해온다며 나룻배와 나루를 태우라 명령한다. 6월 5일 평양에 머물던 선조는 조선군의 잇단 패전에 성민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의주로 도망간다. 나아가 요동으로 넘어가서 망명정부를 세울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민족해방성전을 표방하며 38선을 일제히 침공해왔다. 이승만은 방송을 통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의주에서 먹는다’며 ‘국민들은 안심하고 현재의 위치에서 생업에 종사하라’고 다그쳤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대전으로 도망친 후 피난민의 서울 탈출을 저지하고자 한강 인도교 폭파를 지시했다. 7월 14일 대전에서 대구로 쫓겨 왔다. 민관군은 물론 15살짜리 소년 학도병이 낙동강 방어전선을 맨 몸으로 막고 있는데도 이승만은 기어코 대구를 버리고 8월 18일 부산으로 정부를 천도한 다음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울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실이 국가기밀이 해제된 제1공화국 각료회의 문서에 나온다.

선조와 이승만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비변사에서 왜란 공신들의 녹훈을 책정하는 논의를 소청하자 선조는 임진왜란을 총평하는 교시를 통해 ‘이번 왜란의 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중국 군대의 힘이었고 우리나라 장사(將士)는 중국 군대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요행히 잔적(殘賊)의 머리를 얻었을 뿐으로 일찍이 제 힘으로는 한 명의 적병을 베거나 하나의 적진을 함락하지 못하였다. 그 중에서도 이순신과 원균 두 장수는 바다에서 적군을 섬멸하였고, 권율(權栗)은 행주(幸州)에서 승첩을 거두어 약간 나은 편’이고 규정했다(선조실록, 권135, 선조 34년(1601) 3월 14일 임자조). 국난극복을 위해 온몸으로 나섰던 조선군·관·민의 피와 땀은 폄하하는 대신,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再造之恩·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는 은공)을 역설하며 친명사대주의를 공고히 하고 나섰다.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를 기해 모든 전선에서 전투가 즉각 중지되었다. 다음날 이승만은 휴전 조인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대한민국 국군과 학도의용군 등 자국민의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고귀한 희생과 부상을 먼저 챙겼다. 이는 무엇인가? 한국인 고유의 아름다운 풍습인 겸양의 미덕인가. 아니다. 사적으론, 즉 개인·자연인 이승만으로선 얼마든지 겸손이라 할 수 있다. 공인인 대통령 이승만의 경우에 이르면 이는 패배주의적이며 자학적인 숭미사대주의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수도권과 강원 지역의 답사는 왜적이 파헤친 성종의 묘인 서울 선릉을 출발해 고양』파주』양주』의정부』구리』남양주』춘천』고성』강릉』평창』정선』영월』원주』안성』평택』오산』용인』성남』안산』인천』고양의 행주산성에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넉넉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우리 역사문화유산 품어

이 총서의 권말에 이르면 임진왜란 연표와 간략하게 정리한 인진왜란사가 각권마다 첨부되어 있다. 이를 보면서 필자는 역사에서 ‘만약에…’를 떠올렸다. 본디 역사에서 ‘만약에…’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일본군은 4월 13일 부산 앞바다에 출몰한 이래 5월2일~3일 조선의 수도 한양을 점령했다. 6월 15일엔 평양성까지 함락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다. 만약에 일본군이 선조를 쫓기 위해 의주까지 내달았다면 조선의 운명은, 선조는 어떻게 되었을까?

필자의 이 총서 지면여행은 권1의 김해 선조 어서각에서 출발하여 권10의 경기도 선조릉에서 끝났다. 선조와 풍신수길, 이순신과 소서행장은 임진왜란을 관통하는 역사의 키워드이다. 선조는 한양에서 송도(개성)로, 서경(평양)으로, 의주로 ‘피난걸음’을 했던 임진왜란의 피해자였다. 풍신수길은 가해자로서 쿠데타가 두려워 차마 조선으론 건너오지 못했지만, 일본의 오사카성에서 전쟁을 지휘한 가해자의 수괴였다. 소서행장은 풍신수길의 전쟁 명령을 수행한 일본군 제1군 사령관으로서 침략군 장수의 우두머리였다. 이순신은 하늘이 조선을 위해서 낸 조선의 장수로서 왜적을 바다에 수장시킨 불세출의 군인이었다.

일본군은 전쟁 발발 후 20여 일 만에 한양을 점령했다. 파죽지세로 내달아오던 일본군의 선조 추격은 이후부터 눈에 띄게 ‘거북이걸음(?)’을 했다. 평양성을 함락시킨 것은 그로부터 ‘1달 보름이나(?)’ 걸렸다. 이후부터는 아예 평양성에 눌러 앉았다. 일본군 제2군 사령관이자 풍신수길의 직계 수하였던 가등청정은 풍신수길의 선조 체포 명령과 조선의 항복 명령을 전달하며 소서행장의 독전을 촉구했으나, 소서행장은 ‘전력의 재정비’ 등을 이유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소서행장은 의주까지 선조를 추격하지 않았을까? ‘만약에…’라는 필자의 물음은 여기서 비롯된다. 소서행장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명군 3만여 명이 조선 지원에 나선 것은 이듬해인 선조 26년(1593) 1월 6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은 16세기 동아시아의 질서재편을 초래한 조-일-명나라 사이의 국제 전쟁이었다. 선조 31년(1598) 8월 18일 풍신수길이 사망하고, 순천왜성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던 소서행장이 명나라 유정 제독에게 뇌물을 준 후 도주함으로써 전쟁은 종식되었다. 왜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조선이었다. 국토의 2/3 이상이 피폐화되었으며, 많은 백성들이 전쟁의 한 가운데서 도륙되었고, 많은 문화재가 약탈되어 국력이 쇠진했다. 그러나 나라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으나 실제론 승전국의 혜택을 누렸다. 풍신수길이 사망 이후 비주류의 덕천가강이 권력을 접수해 막부를 성립시켰다. 주전파였던 풍신수길계의 장수들은 패전 책임을 물어 숙청되었다. 일본은 조선에서 약탈한 문화재와 인쇄술, 금속공예품, 도자기 등 당시의 첨단기술을 발판으로 국운융성의 날개를 달았다. 특히 서적의 약탈과 유학자 등의 납치로 에도유학(江戶儒學) 발전 토대를 구축했다.
국력이 소진해 국운이 황혼기에 들었던 명나라는 임진왜란 참여에 따른 혹독한 대가의 직격탄을 맞았다. 왜란을 전후해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일었다. 설상가상으로 북방 오랑캐라며 탄압의 대상이었던 만주 여진족이 발흥해 대거 침입해왔다. 명나라는 연이은 내우외환을 막지 못하고 결국은 나라가 망했다. 명은 비록 국가의 정체성을 상실했지만, 조선으로부터는 ‘재조지은’이라는 친명사대주의 이데올로기의 강화에 따른 우러름을 20세기 조선이 패망하는 날까지 존숭 받았다.

필자는 전10권 3,122여 쪽에 달하는 이 총서를 단숨에 읽었다. 마치 소설책 읽듯이 부담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뭔가 짠하게 맺히는 게 있다. 그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배려와 포근한 마음씨이다. 심지어 저자는 선조조차 넉넉한 마음으로 품어 안고, 국난을 극복하려 애를 쓰는 지도자의 고단한 노고를 나눠진다.
사회과학도를 자임하는 필자에겐 어림도 없는 관용이다. 하지만 저자는 필자의 날카로운 단칼조차 뜨거운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그리고 마침내 용해시켜 필자로 하여금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저자를 따를 수밖에 없게 한다.

깊어가는 가을의 낙엽소리를 들으며 이 총서 어느 한 권에서라도 안내하는 답사길을 나서야겠다. 이 총서를 통해 사전 배경지식은 충분히 습득했다. 그래도 못 미더워 답사지 총서를 챙긴다. 밝은 하늘아래 맑은 햇빛을 받으며 어느 임진왜란 유적지 앞에 서면 나는 어떨까. 새삼 내 자신을 문득 궁금케 한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 총서를 통해 필자와 같은 행운을 만끽하시길 기대한다.
이 총서는 독자들로 하여금 독자의 눈으로 독자의 눈높이에서 역사문화유적 답사를 안내한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부담감이 전혀 없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유산답사 가이드북이다. 글쓴이 : 김영재(언론인)


저자 인터뷰

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정의 한다면?
저자 : 이 책은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임진왜란 주요 유적지를 글과 사진으로 해설한 답사 여행 안내서입니다.

책에 소개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저자 : 책에는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명언으로 우리 모두의 심금에 남아 있는 동래 부사 송상현 등 동래성 전투 순절 의사들을 기리는 송공단, 정발 장군 등 임진왜란 최초 접전지 부산진성 전사 영령들을 기리는 정공단, 윤흥신 · 윤흥제 형제를 비롯하여 다대포 전투 희생자들을 기리는 윤공단, 동래성 · 수영성 · 다대포진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운 선열들을 기리는 동래 의총 · 수영 25의용단 · 사상 9인 의사 연구 제단, ‘지금까지 싸운 중 가장 큰 승리’라고 이 충무공이 스스로 의의를 부여했던 부산 해전의 선봉장 정운을 기리는 정운공 순의비,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으로 평가받아 마땅한 김해 선비들을 제향하는 김해 송담서원 · 사충단 · 서상동 고인돌, 풍신수길 독살설의 삼절사, 이순신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영도 · 가덕도 · 오륙도, 수로왕릉 보전의 역사를 증언하는 구천 서원, 선조의 ‘대국민 담화’를 생각하게 하는 어서각, 대장의 이해할 수 없는 도주를 되돌아보게 되는 수영성, 도심 한복판의 일본 왜성 자성대, 임진왜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조선 통신사 역사관과 부산 충렬사 등 모두 48곳(현장 사진 101매 첨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부산광역시와 김해시에 소재하지 않으면서 본문 안에 등장하는 타 시·도의 임진왜란 유적에 대해서도 사진과 간략한 설명을 붙여 두었습니다. 타 시·도에 있는 임진왜란 유적을 답사할 때 참고가 될 것입니다.

저자가 직접 편집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편집 체제의 특징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저자 : 책에 실린 유적과 유적지들은 사건이 벌어진 시간 순서대로 배치하였습니다. 따라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으면 임진왜란의 역사를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임진왜란이 부산과 김해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므로 책 끝에 붙여둔 임진왜란 연표와 임진왜란 약사를 먼저 본 뒤 본문을 읽으면 1592년~1598년 7년 전쟁의 흐름을 더욱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 시대의 이야기이므로 한자 문제를 잘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저자 : 일반적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한자어들에는 청소년 독자들이 알기 쉽도록 작은 글자로 설명을 덧붙여 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행재소行在所(임금이 임시로 머무는 곳)’, ‘파비破碑(부서진 비석)’ 식입니다. 그리고「墮淚碑타루비」처럼 원문이 한자인 경우에는 앞에 한자, 뒤에 한글 발음을 써서 당시 분위기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21세기에 왜 임진왜란에 대해 알아야 할까요?
저자 : 우리나라 반만 년 역사에서 가장 크고, 길고, 피해가 막심했던 전쟁이 임진왜란입니다. 그 전쟁을 겪고도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급기야 분단마저 되었습니다. 1950년에는 전쟁까지 치렀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부터 확실히 기억해야 합니다. 독립 전쟁과 6·25전쟁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우리 후대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저자가 붓과 사진기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5년 동안 누빈 것은 그 때문이며, 이 책에는 부산과 김해의 임진왜란 유적만 다루었지만 전국의 임진왜란 관련 주요 유적 모두를 충남 편, 충북 편, 수도권 · 강원 편, 전라도 내륙 편, 남해안 편, 동해안 편, 대구 편, 경남 서부 편, 경북 서부 북부 편으로 나누어 10권의 총서로 안내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린다면?
저자 : 이 총서에 소개되지 않은 임진왜란 유적과 인물에 대해 clean053@naver.com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증보·개정판을 더 충실하게 만드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추천평

의병 유적 답사의 길잡이

필자는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책을 쓰면서 관련 유적지를 분주하게 찾아다녔다. 현장 감각을 살리려는 의도였다. 이들 유적들은 오랜 세월의 때가 묻어 있으면서 그 안에 역사의 진실을 안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과 함께 일정한 주제를 잡아 역사기행을 자주 다녔다. 이번에 출간된 이 총서는 바로 ‘임진왜란 유적’이란 주제를 가지고 전국에 걸쳐 유적을 샅샅이 찾아 현장감을 살리고 관련 사진을 곁들여 독자들에게 이해와 감동을 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잠깐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를 알아보자. 이 전란을 필자는 조선과 일본이 벌인 전쟁이라는 의미를 담아 ‘조일 전쟁’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개입해 3국전쟁의 양상을 띠었다.

조선 시대에 벌어진 전쟁 중에서 가장 참혹하여 국토의 황폐, 국가 재정의 파탄, 주민의 대량학살, 무수한 문화재가 잿더미로 쓸려가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더욱이 이로 인해 한민족이 일본(왜놈)에 대한 원한과 적대감이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높았다. 그 뒤에 일어난 병자호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뒤 조선의 대외 정책은 명나라에 대한 지나친 은혜 의식이 팽배하는 속에서 그 반대로 일본에 대한 민족의식은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다. 또 백의종사白衣從事했던 유성룡은 무비유환無備有患이란 명언을 남겨 안보 의식을 고취시켰다.

근대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규명하는 많은 저술을 내면서 의병 활동에도 주목해 왔다. 그런데 의병장을 기리면서도 수많은 의병의 희생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다룬 느낌이 없지 않았다. 또 조선 시대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충렬사를 지어 기리기도 하였고 유적을 보존하기도 하였다. 이 총서에서는 이를 빠짐없이 고스란히 담았다. 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다루기도 하였다. 보기를 들면 낙동강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벌인 정인홍은 그 동안 역적이라 하여 소홀하게 다룬 적이 있으나 이 책에서는 새롭게 그 의미를 담았다.
그 기술 방법에 있어서도 역사 대중화에 부합되었다. 무엇보다도 문장이 유려하면서 쉽고 용어도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를 알아먹기 쉽게 풀기도 하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으며 한 대목의 이해를 도우려 사건 전개에 따른 시일 순서로 배열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청소년들과 역사기행 회원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

이 책의 이런 짜임새는 아마도 저자 정만진 선생의 다양한 이력에서 찾을 수 있겠다. 저자는 교육자로서 교육현장의 감각을 살리고 소설가 또는 문필가로서 대중의 수준에 맞는 문장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진을 사료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이 곁들여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을 두어 가지 지적할 수 있겠다. 북한 지역 곧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일대에서도 의병장 정문부 등이 주도한 의병 활동이 세차게 전개되었다. 오늘날 이 곳은 분단이 되어 이 총서에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통일의 그날에야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앞으로 한말 곧 19세기 끝 무렵부터 일제 침략에 저항한 항일 의병을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시기는 남북 분단의 단초와 원인이 되었음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면 민족의식 또는 통일의지를 고양시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를 이루게 되면 완결편이 될 것이다.
아무튼 필자는 역사 대중화를 추구해오면서 민족운동의 의미를 알리려 힘써 왔는데 이 총서를 읽으면서 내가 못다 한 작업을 해냈다는 찬사를 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역사의 경험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7년 촛불혁명의 해가 저물 무렵에 쓴다.

-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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