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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로마라는 ‘아이디어’ _ 4
Part 1 트로이의 후예들 호메로스에 필적하는 로마 시인은? _ 12 피 튀기는 로마의 건국 신화 _ 18 브루투스, 로마 공화정의 아버지 _22 신시내티의 유래와 조지 워싱턴 _ 26 Part 2 지중해의 패권 카르타고를 멸해야 한다! _ 38 로마와 카르타고의 악연 _ 42 지중해 최강의 장군 한니발 _48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_ 55 그리스의 영웅이 된 로마인 플라미니누스 _ 59 Part 3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제국의 아버지 _ 74 왕이 되고 싶었던 카이사르 _ 79 카이사르, 서민의 영웅 _ 83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숨겨진 아들? _ 87 운명의 그날 _ 91 장례식의 대반전 _ 95 안토니우스, 로마의 엄친아 _ 101 악티움의 어이없는 대회전과 연인들의 최후 _ 106 Part 4 팍스 아우구스타 공화국의 탈을 쓴 제국 _ 118 어쨌거나 평화로웠던 로마 _ 122 아우구스투스의 ‘시스템’ _ 127 ‘빵과 서커스’의 정치 _ 132 예수의 죽음으로 보는 로마의 속주 상황 _ 134 자식 복이 없었던 아우구스투스 _ 140 네로, 로마를 불사른 황제 _ 149 Part 5 로마의 일상 그리스 문화에 대한 열망 _ 158 사회생활의 중심은 포룸 _ 167 고대 세계의 성 관념 _ 169 폼페이의 유적으로 보는 로마인의 생활 _ 172 로마 상류층들의 어이없는 결혼관 _ 174 Part 6 5현제와 제국의 가을 화장실에 세금을 매긴 황제 _ 188 인류가 가장 큰 행복과 번영을 누린 시기 _ 191 자식 복이 없었던 또 한 사람, 아우렐리우스 _ 196 ‘위기의 3세기’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체제 _ 199 사두체제의 붕괴와 콘스탄티누스 _ 203 밀라노 칙령과 최후의 결전 _ 208 콘스탄티노플의 탄생 _ 213 Part 7 제국은 왜 몰락했을까? 야만족의 침입 때문일까? _ 222 호리병에서 풀려난 악마 _ 226 로마는 자신의 무게 때문에 저절로 무너졌다? _ 229 공화국 정신의 쇠퇴와 기독교의 발흥 _ 233 이슬람 세력의 등장과 지중해 문명의 몰락 _ 236 테베레강을 떠나버린 니케 여신 _ 239 에필로그 로마인과 그리스인의 차이 _ 248 참고문헌 _ 251 찾아보기 _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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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는 ‘집권’하자마자 권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른바 ‘서민 정책’을 잇달아 내놓습니다. 제대병들에겐 토지를 배분하고, 요즘으로 치면 ‘추곡 수매’ 비슷한 정책도 시행하고, 달력을 정비하고(‘July’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따온 건 아시죠?), 치안을 강화하고, 공공건물을 짓고, 교육·의료·사법·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하여 서민들 삶을 개선해 주었지요. 심지어 교통 정책도 손봐서 로마 거리가 마차들의 체증에서 벗어납니다.
카이사르는 ‘PR(Public Relation)’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는 정계에 입문한 초기부터 자기 돈으로 검투사 경기 등을 개최해서 민중에게 이름을 알렸지요. 권력을 잡은 곳마다 자신의 조각상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동전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는 등 홍보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 p.83~84 그런데 바로 이 결정적인 전투에서 안토니우스가 한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육전에 강한 안토니우스 부대가 굳이 해전을 선택한 것부터가 좀 이상했는데요. 아마도 해전을 선호한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 부대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전을 개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클레오파트라가 이끄는 60척의 이집트 배들이 전장을 떠나 펠로폰네소스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플루타르코스를 인용하겠습니다. 당시 상황을 그보다 더 잘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까요. 여기서 안토니우스는 세상이 다 보는 앞에서 사령관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남자로서도 저질러서는 안 되는 너무나 형편없는 일을 하고야 말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대상에게 넘겨버린다는 말이 있는데, 그는 마치 제정신을 잃은 것처럼 바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의 배가 떠나는 것을 보고, 마치 자신이 그녀의 한 부분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도 돛을 올리고 그녀를 쫓아갔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는 수많은 장병들을 뒤로 하고, 다섯 줄의 노를 지닌 배에 시리아의 알렉산드로스와 크켈리아스만 태운 채 클레오파트라의 뒤를 따라 파멸의 길로 나아갔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중에서) 이것으로 악티움 해전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머리 없이 몸만 싸워서는 이길 수가 없으니까요. --- p.107~108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는 물론이고, 칼리굴라와 네로 같은 미친 황제들이 설치고 다니던 시절에도 로마와 그 속주들은 너무나 평화로웠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우리나라 국회에서 싸움이 벌어져도 일반 시민들은 텔레비전과 인터넷만 안 보면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국회에선 아무리 난리가 나도 회사와 학교에서는 큰 영향을 못 느끼는 거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한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팍스 로마나라는 말에 걸맞게 전 지중해 연안에 걸친 로마의 영토에서 전쟁을 몰아냈습니다. 가끔 전투는 있었지만 그건 오직 변경을 침범하는 야만족과 싸우는 직업군인들 몫이었죠. 그러니 로마 영토에 사는 시민들은 적어도 전쟁에 휘말릴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던 겁니다. 이거 상당히 중요한데요. 그전까지 고대 지중해 지역은 시민들이 언제 군대에 끌려갈지, 언제 사는 곳을 적군이 점령할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였거든요. --- p.127~128 칼리굴라와 네로 이래 로마 황제들이 국고를 지나치게 탕진했기 때문에, 베스파시아누스가 집권했을 때 황실 금고는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원래 성품이 그랬는지는 몰라도 구두쇠로 소문날 만큼 돈을 밝히는 정책을 폈습니다.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물리다가 나중에는 공중화장실에도 세금을 부과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래서 지금도 이탈리아어로 화장실을 베스파시아노vespasiano라고 합니다. 정말이에요. --- p.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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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을 넘어 영원한 제국으로 남다 -로마라는 ‘이상 ideal’
로마의 공화정은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이 정치체제를 구성할 때 그 모델이 되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스스로를 로마 공화정의 영웅 신시나투스에 비유했으며, 혁명 동지들을 모아 신시내티회를 만들기도 하였다. 군사용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도로는, 이후 로마의 지중해 연안 지배를 공고하게 했고, 물자와 인력의 수송을 빠르고 편리하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로마 우편 제도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로마 시대에 건축된 신전들은 여전히 사람들이 찾는 기념비적인 건물이 되었고, 콜로세움과 수도교를 건설하는 데에 활용된 아치는 역사에 남는 건축방식이 되었다. 수많은 문화와 건축,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정립시킨 로마는 모든 면에서 본받고 배워야할 ‘이상 ideal’이었다. 멸망 후에도 천 년을 넘는 기간 동안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남았던 로마는, 지중해 주변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생활의 기본 규범이자 공적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전 유럽은 로마가 사라진 이후에도 ‘팍스 로마나’를 잊지 못했고 샤를마뉴에서 오토에 이르기까지 유럽 최강의 군주들이 로마의 후예를 자처했다. 근대가 오기 전까지 로마는 평화이자 질서이고, 영원히 추구해야할 정치적 고향이었다. 고전으로 이루어진 발상 -로마라는 ‘아이디어 idea’ 플리니우스와 리비우스, 플루타르코스와 투키디데스, 그리고 수에토니우스가 기록한 역사서와 베르길리우스와 루카누스가 남긴 시, 키케로와 세네카가 남긴 라틴어 문장 등, 로마는 수많은 역사가들의 고전 속에 기록되어 있다. 로마 제국의 몰락에 관해 가장 권위 있는 저서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기번은, 로마사의 가장 큰 흐름을 ‘로마 공화정의 몰락’이라고 말한다. 또한 로마제국의 쇠퇴는 “무절제한 팽창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이며, “로마라는 거대한 구조물은 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붕괴되었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기번의 이러한 의견은, 로마사를 연구하는 후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의견 중 하나이다. 카이사르가 죽은 후 로마 시민들 앞에서 벌어진 안토니우스와 브루투스의 논전을 직접 기록한 역사가는 없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줄리어스 시저』에서 마치 그 장면을 눈앞에서 보듯이 재현했고,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카이사르 죽음 직후의 모습은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장면밖에 없다.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지중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이룬 고대 로마. 거대한 물리적 실체이자 이상이기도 한 로마는, 한편으로는 당대와 후대의 수많은 고전으로 이루어진 ‘발상 idea’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로마에 관한 모든 것은, 로마가 생산한 고전과 그 후 유럽의 지성인들이 로마에 대해 쓴 고전을 벗어날 수 없다. 역사의 다양성을 만나다 -고전 속의 로마 로마의 멸망에 대한 가장 흔한 설명은,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게르만족이 남하하면서 로마의 멸망이 촉발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게르만족의 남하는 로마 쇠망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일 뿐이며, 또한 그 전부터 계속된 쇠망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당시 로마에 대한 여러 역사학자들의 고전을 적절하게 인용한다. 피렌은 “라벤나의 옥좌에 게르만족 출신이 ‘왕’이라는 이름으로 앉아 있으면 로마가 멸망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게르만족의 지배 이후 지중해 주변 로마인들의 생활상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성직자들은 인내와 순종의 교리를 가르치는 데 성공했다. 능동적인 사회활동은 활력을 잃었고, 상무정신의 마지막 흔적은 수도원에 묻혀버렸다.”고 말한다. 게르만족이 로마를 패망시킨 물리적인 힘이었다면 로마인들의 기백을 약화시킨 정신적인 힘은 기독교였으며, 기독교 또한 로마 제국의 몰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번은 그나마 기독교가 있었기 때문에 로마가 비교적 평화롭게 멸망했다고 덧붙인다. 이렇듯 지은이는 여러 고전의 언급을 통해, 독자들에게 로마문화사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가능성을 열어둔다. 뿐만 아니라 각 장의 끝에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이야기』, 몽테스키외의 『로마인의 흥망성쇠 원인론』, 프로코피우스의 『비잔틴제국 비사』 등 여러 고전을 소개하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더 넓은 로마의 문화사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인문학 일러스토리란? “결코 어렵지 않은 인문학, 제대로 알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다.”라는 콘셉트를 가진 지오북의 인문학 시리즈. 명쾌하게 풀어낸 글에 이를 보충하는 일러스트가 더해짐으로써 독자들에게 더욱 쉽고 재미있게 다가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