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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을 위한 머리말
감사의 말 참고 문헌에 대한 일러두기 연대 1장. 아리스토파네스와 크세노폰의 묘사 - 플라톤을 뺀 소크라테스 2장. 꼼꼼한 사람 -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3장. 대화 속에서 - 플라톤의 생애와 저술 4장. 너 자신을 알라 - 사랑받지 못했던 두 대화편 5장. 탁월함이 적수를 만나다 - 플라톤의 『고르기아스』 6장. 교육 따위는 필요 없어 - 플라톤의 『메논』 7장. 나는 안다, 새장 속의 새가 울기 때문이다 -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8장. 그 유명한 마지막 말 - 플라톤의 『파이돈』 9장. 혼과 국가 - 플라톤 『국가』에서의 정의 10장. 햇빛이 없어 - 플라톤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 11장. 다시 생각하기 -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와 형상 12장.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 플라톤의 『소피스트』 13장. 이름이 뭐가 중요하지? - 플라톤의 『크라튈로스』 14장. 그럼직한 이야기 -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15장. 욕망의 날개 - 플라톤의 에로틱한 대화편들 16장. 최후의 심판 - 플라톤, 시, 신화 부록 - 트럼프 시대의 민주주의와 철학의 역사 더 읽을거리 후원자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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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른바 ‘소크라테스적 대화편’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저술에서 등장하는, 플라톤이 그린 소크라테스의 전형입니다. 이들 대화편은 플라톤의 학문 여정 중 초기에 쓰인 듯하며, 많은 사람이 그것들을 실제의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대한 믿을 만한 기록으로 생각해왔습니다. 대화편에 담긴 내용도 소크라테스가 행했던 실제 논의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 믿었고요. 하지만 지난 장에서 시인했듯이 저는 이 점에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저는 플라톤이 처음부터 소크라테스를 자기 자신의 철학적인 목적에 활용하였다고 생각하며, 어느 정도는 신뢰해도 될 법한 소크라테스적 대화편에서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초상을 분리해내는 일은 소용 없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본유성 이론은 현대 철학에서도 여전히 논의중입니다. 일례로 노암 촘스키의 이론에 따르면 아기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언어 구조가 우리의 뇌에 하드웨어로 장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플라톤을 이해하면 플라톤이 우리 당대의 철학적 관심사와도 연관한다는 사실을 보일 수 있습니다. 자, 저도 플라톤에게 현대적 의의가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메논』이라는 이 대화편에서 오늘날의 철학에서도 여전히 근본적인 구별인 앎과 참된 믿음 사이의 구별을 플라톤이 도입하는 모습을 곧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상기설을 본유성 이론에 대한 은유로 파악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크라튈로스의 자연주의와 헤르모게네스의 규약주의의 중간점을 취함으로써 소크라테스는 언어의 두 가지 기능을 보존하려고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단순히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데 언어를 활용합니다. 이러한 목적에는 규약으로 충분해 보입니다. 눈에서 논리가 번뜩이는 이 아이를 ‘고틀로프 프레게’라고 부르겠다고 정하고, 멀쩡한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그게 그 아이의 이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크라테스는 단어가 더욱 야심 찬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도 열려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의 본성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사물에 대한 본래적인 단어를 고안했던 선조들의 유전론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이 그 자체로 보상이기는 하지만 이에 덧붙여 탁월한 사람에게 돌아갈 법한 무언가도 기대해야 한다고, 현세에 주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세에서라도 받을 게 있다고 명백히 말합니다. 그리하여 신화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논변을 확신하는 이에게도 무언가를 더해줍니다. 신화는 탁월함이 그 자체로 보상인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합니다. 혼이 다시 태어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든 신들은 그에 대한 비난을 받지 않는다는 에르 신화 속 이야기도 되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이 이전 생에서 저질렀던 죄에 대한 정당한 응보로 사후에 처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세 신화 모두는 우리에게 겁을 주어 탁월함을 추구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주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은 불의하지 않다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