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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왜 돈놀이에 빠졌는가?
고용에서 4%만 책임지고 경제에서 7%의 역할만 하면서 전체 기업 수익의 25%를 가져가는 금융화의 폐해! 금융 업계가 경제에 행사하는 과도한 권력과, 이것이 사회 전반에 초래하는 참혹한 결과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며, 고장난 금융의 진실과 해법을 밝힌 문제작.
2018.02.02.
경제 경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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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성장의 원동력을 되살리는 길 14
서론 애플의 혁신은 왜 멈추었는가 21 이상해져 버린 기업들 25 왜 이렇게 되었는가 29 금융의 생명줄 33 종잣돈까지 거덜 내는 금융 35 멈춰 버린 성장, 커져 가는 불평등 39 문제의 근본 원인 44 책임 전가하기 47 금융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50 잇따르는피해 52 시스템 바로잡기 53 이 책의 구성 56 1장 금융의 부상 시티그룹을 위시한 대형 은행의 탄생에서 금융 위기까지 59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미국 64 복잡성의 대가 68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다 70 현대적 은행가의 탄생 74 금융, 길들여지다 78 백만장자 은행가의 등장 81 인플레이션 속의 불만 87 레이거노믹스와 금융의 성장 92 부채와 신용: 대중의 아편 96 대마불사 98 추락하는 영광 101 21세기 자본 104 2장 기업의 몰락 GM에서 벌어진 숫자놀음꾼과 자동차맨의 싸움 107 숫자놀음꾼의 등장 111 측정하라, 그러면 관리할 수 있다 119 과학적 (부실) 관리의 탄생 121 맥나마라와 똘똘이들 126 똘똘이들, 정부에서 기업으로 들어가다 129 품질을 외면한 기업의 운명 138 3장 MBA가 가르쳐 주지 않는 것 경영학 교육은 어떻게 기업을 망가뜨리고 있는가 145 문제 해결법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 151 왜 경영 교육은 금융에 끌려다니게 되었을까 158 누구를 위한 가치 극대화인가 163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경영교육 170 상품으로 변하는 학문 173 계량 분석 전문가의 부상 176 돈보다 인적 자본이 우선이다 179 경영 교육의 미래 182 4장 문 앞의 야만인들 애플과 칼 아이칸, 그리고 주주 행동주의 187 창의적 회계 기법의 등장 197 줄이고 배분하라 201 기업공개의 변질 204 이제는 모두가 행동주의 투자자 210 야만인들이 경기 부양책을 강탈하다 216 주주 행동주의와 기업의 미래 219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222 5장 이제 우리는 모두 은행가다 GE 같은 기업은 왜 은행을 흉내 내게 되었는가 229 만들지 않는 기업들 235 돈 놓고 돈 먹기 243 리스크에 시달리는 기업들248 고용 문화의 붕괴 252 어떻게 경쟁력을 회복할 것인가 254 6장 금융발 대량살상무기 원자재와 파생상품, 그리고 식량 위기 265 식량 가격을 주무르는 자들 272 상품시장 들쑤시기 274 시장을 휘젓는 투기 282 이기는 쪽은 언제나 도박장 285 단순화가 답이다 296 7장 월가가 메인가를 장악하다 사모펀드는 어떻게 주택시장 회복의 열매를 빼앗아 갔는가 307 마을의 새로운 주인, 사모펀드 315 그들이 돈을 버는 법 319 왜 부동산을 노리는가 325 기업형 집주인의 득세 332 지역사회를 붕괴시키는 주택 정책 335 주택시장을 다시 생각하자 340 8장 은퇴의 종말 월가가 시민들의 노후를 삼키다 345 퇴직연금 제도의 3요소가 무너지다 352 돌변한 자산 운용업 354 줄어들고 사라지는 퇴직연금 361 연금 생활자와 월가의 대결 364 퇴직연금 보호하기 371 9장 조세 회피의 달인들 거저먹는 자들을 거드는 세법 381 납세자를 배반한 기업들 387 비뚤어진 인센티브 389 세법의 구멍을 메워라 404 10장 돌고 도는 회전문 정치와 금융의 은밀한 관계 409 금융권 로비의 위력 415 최상위 1퍼센트만이 노니는 회전목마 418 연준의 금융화 423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금융화 427 금융과 법 428 감옥에 넣기에는 너무 크다고? 434 구제하느냐 마느냐 437 | 내부자들만의 세상 441 만드는 자와 거저먹는 자의 대결 444 11장 금융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법 복잡성을 없애고 레버리지를 줄이자 451 부채는 줄이고 자기자본은 늘리자 456 기업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자 457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마련하자 459 내러티브를 바꾸어, 만드는 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자 462 감사의 말 466 주 470 참고문헌 509 찾아보기 521 |
Rana Forooh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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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어느 날, 나는 2008년 금융 위기 수습의 주역이었던 전직 오바마 행정부 관료와의 비공개 브리핑 자리에 참석했다. 모임 와중에 한 기자가 날 선 질문을 던졌다. 당시까지도 고작 절반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은 도드-프랭크 은행 개혁 규제책이 월가의 로비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은 것이다. 전직 관료는 그런 일은 없다고 강변했다. 그 대답을 듣고 기가 찼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드-프랭크 규제책의 한 가지 핵심 쟁점인 볼커 룰(Volcker Rule)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자문의 93퍼센트가 금융업계의 것이었다. 즉 볼커 룰을 만들 때 가장 큰 목소리를 낸 곳은 메인가가 아니라 월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손을 들어 관련 통계를 소개한 뒤, 왜 더 폭넓은 이해관계자들이 아니라 금융 위기에 책임이 있는 은행가 본인들과 가진 미팅이 그토록 많았는지 물었다. 전직 관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누구와 미팅을 했어야 하죠?” 바로 그 순간, 금융이 미국 경제와 사회에 발휘하는 힘을 제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실히 깨달았다.
_ 머리말, 15~16쪽 GDP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오늘날만큼 높았던 시기는 대공황 직전밖에 없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하기 전 10년간처럼, ‘광란의 20년대’에도 금융발 호황과 경이적인 기술 발전뿐 아니라 엄청난 소득 불평등이 두드러졌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정체되어 있는 동안 상위 계층의 소득은 증가했다. 대체로 주가 호황에 따른 결과였다. 공공 및 민간 부문 양쪽 모두에 걸쳐 부채가 증가했다는 점도 흡사하다. 부채가 하위층과 중산층의 구매력 하락과 그에 따른 GDP 성장의 정체를 잠시 모면하는 데 동원되었다는 것도 비슷하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할 여력이 없을 때 빚을 졌다. 1920년대의 미국인들은 주요 가정용품의 4분의 3 이상을 빚으로 구매했다. 더욱이 당시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광고전을 하고, 전비 마련에 안달이 난 정부가 전쟁 채권의 판매 확산을 밀어붙이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친숙하지 않은가? _ 1장 금융의 부상, 77~78쪽 한때 위대한 기술 기업이었던 휴렛-팩커드의 몰락은 혁신의 문화가 숫자놀음꾼들에게 파괴된 좋은 사례이다. 스탠퍼드대의 공학도 두 사람이 집 차고에서 창업한 HP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원조였다. 오늘날의 구글처럼, 본래 HP는 엔지니어링과 혁신에 집중했으며 기업가 정신이 충만했다. 조직 구조도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이었다. 직원들에게 높은 자율성을 부여했으며 좋은 대우를 해 주었다. 해고는 불경기일지라도 최후의 수단이었다. HP는 『포춘』이 선정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 목록에 단골로 올라갔으며, 여러 영역에서 최고의 실적을 냈다. 그러다 1999년 들어 상황이 변했다. 오랫동안 회사를 이끌던 루이스 플랫이 퇴임하고 칼리 피오리나가 그 자리에 영입되었다. 피오리나는 HP에 입성하자마자 자신은 최상의 기술에는 별 관심이 없고 브랜드 전략과 마케팅, 비용 절감에 매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피오리나는 새로운 마케팅 활동에는 2억 달러를 기꺼이 쏟아부었지만, 직원들 임금은 삭감했다. 반면에 자신에게는 (HP 기준에서) 과도해 보이는 300만 달러의 사이닝 보너스와 6500만 달러에 달하는 급여성 스톡옵션을 지급했다. 심지어 이사회에 자신의 52피트짜리 요트를 미국 동해안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끌고 오는 비용을 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피오리나이니 이내 컴팩과의 합병을 단행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합병으로 1만 5000개의 일자리가 없어졌으며, 엔지니어링과 혁신보다 판매와 서비스에 집중하는 새 문화가 뿌리내렸다. 그렇지만 2004년에 이르자, 양사의 합병이 비용은 절감했지만 수익은 증가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결국 피오리나는 이사회에 의해 쫓겨났지만, HP는 결코 왕년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다. _ 2장 기업의 몰락, 117~118쪽 미국의 경영대학원은 학생들이 진출하고 싶어 하는 산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장과 혁신에 대해 좀 더 폭넓게 사고하도록 교육하지도 않는다. 대신 미래의 기업 중역들에게 손익계산서 관리를 훈련시키는 데 열을 올린다. MBA 과정의 여러 과목 가운데 유독 기초 금융은 언제나 필수 과목인 것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지만 금융을 철저히 가르치거나, 현실 세계를 제대로 반영하는 식으로 교육하는 것도 아니다.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기본 개념 가운데 하나인 금융 리스크 모델링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부정확한 과학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법 주문을 읽어 내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많다. 따지고 보면 금융 리스크 모델링이란 온갖 나쁜 경우에 관련된 수천 가지 변수를 검은 상자에 집어넣고, 날마다 은행들이 취하는 수백만 건의 거래 포지션과 함께 섞은 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해당 은행이 입을 법한 손실을 이해하기 쉽게 간단한 숫자로 바꾸어 놓는 장치이다. 그러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나 “미국과 유럽의 국채는 결코 신용 등급이 하락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과거의 가정에 의존하고, 시장을 뒤흔드는 사건은 그 자체를 동력으로 확대된다는 사실조차 감안하지 않는다면 오류는 필연적이다. _ 3장 MBA가 가르쳐 주지 않는 것, 153~154쪽 요즘 미국 세법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우선 기업에서는 부채에 따라붙는 이자 비용은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는 반면에, 배당금과 유보 이익금에 대해서는 받을 수 없다.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 제이슨 퍼먼의 추산에 따르면, 이런 식의 세제 혜택으로 인해 기업의 부채 비용은 자기자본 비용에 비해 42퍼센트가량 더 저렴해진다. 애플이 역외에 쌓아 놓은 현금을 국내로 들여와 세금을 납부하느니 차라리 돈을 빌려 투자자들에게 건네주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애플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은 어떻게 자금을 역외에 묻어 두는 것일까?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합법적으로 해내는 것일까? 바로 세법의 허점을 이용한다. 예를 들면, ‘더블 아이리시’ 기법은 미국 기업이 아일랜드 법인을 설립한 뒤 이 법인을 다시 바하마같이 세금이 낮거나 없는 국가로 이전, 등록하는 것이다. 우선 미국 세법의 허점 덕분에 첫 번째 이전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아일랜드 세법의 허점으로 인해 아일랜드 법인은 아일랜드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어지는데, 이 법인을 아일랜드 비거주자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미국 기업이 특허권의 미국 외 판매를 관리할 목적으로 아일랜드에 또 다른 해외 자회사를 설립하면, 아일랜드 세법을 또 한 번 이용할 수 있다. _ 9장 조세 회피의 달인들, 390~391쪽 물론 어떤 이들은 금융업계도 엄청난 벌금을 내면서 고통을 떠안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2012년에서 2014년 사이에 이들은 돈세탁, 공모, 압류 관련 고지 미비, 이자율 조작, 내부자 거래 등 갖가지 혐의로 총 1390억 달러를 토해 냈다. 그런데 정작 금융업계는 돈이 넘쳐 나므로, 어마어마한 벌금조차 징역형의 효과에 비하면 하찮을 뿐이다. 더욱이 이런 벌금은 기관 차원에서 지불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 개인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해당 문제와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광범위하게 전가되는 셈이다. 그러니 몇 해 전 상원의원 워런이 도드-프랭크 법에 따른 벌금 문제로 제이미 다이먼을 마주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은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벌금 때리시죠. 우리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수십억 달러에 이르기도 하는 대형 은행의 분기 수익에다가 납세자와 정부가 금융권에 제공하는 각종 직간접적인 보조금까지 감안하면, 엄청나 보이는 벌금도 사실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금융 위기 당시에도 은행들의 주가는 약 1000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 덕에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사태의 손실에 따른 고통을 상당히 덜어 냈다. _ 10장 돌고 도는 회전문, 435~436쪽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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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왜 170억 달러를 빌려야 했을까
2013년 봄 애플의 CEO 팀 쿡은 170억 달러를 차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는 무척 이상한 결정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기업 가치를 자랑하던 애플은 이미 은행에 무려 1450억 달러가 넘는 현금을 쌓아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돈을 빌리면서까지 자금을 마련하기로 한 까닭은, 이 방법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꺼내 오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애플 같은 블루칩 기업은 대출에 따르는 이자나 수수료 등의 비용이 다른 기업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게다가 애플의 은행 계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데, 이 돈을 미국으로 들여오려면 미국 세법에 따라 상당한 세금을 납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170억 달러의 자금을 마련하기에는 인출보다 차입이 애플 입장에서 훨씬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금융공학에 몰두하는 기업은 비단 애플뿐만이 아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은 한때 금융 부문 자회사인 GE 캐피털을 통해 소비자 신용과 대출, 인수합병,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래 등 각종 금융 수완을 발휘하며 수익을 키워 나가다가 2008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석유회사 BP는 1995년 CEO에 취임한 존 브라운의 지휘 아래 선물 거래업에 뛰어든 이후, 단기 실적을 강조하면서 설비 유지나 안전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고자 했다. 이런 태도는 당연히 리스크를 키울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저런 사고가 잇따른 끝에 2010년에는 멕시코만에서 시추선 딥워터 허라이즌이 폭발했다. 역사상 최악의 해양 기름 유출 사고로 기록된 이 재앙으로 BP는 500억 달러가 넘는 소송비와 벌금 등을 지출해야 했다. 그럼에도 BP는 계속 선물 거래에 몰두하며 이 분야 최대 규모의 비금융 기업이 되기에 이르렀다. 금융적 사고방식에 포획된 기업들 이렇듯 오늘날 기업계에는 금융업의 ‘사고방식’이 깊숙이 자리를 잡아 미국에서 가장 크고 잘나가는 기업조차도 은행처럼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은행처럼 규제를 받지는 않는다. 화이자, 마이크로소프트 등 수많은 대기업들은 금융 거래, 헤지, 조세 회피, 금융 서비스 판매 등 그저 돈을 이리저리 굴리는 방법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 어떤 항공사에서는 비행기 티켓을 판매하는 것보다 유가 등락 위험을 헤지하여 버는 돈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물론 자칫하면 정반대로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기도 한다. 미국의 기업은 이제 더 이상 기업이 아니라 금융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금융시장 내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활동이 실물 경제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탐욕스러운 괴물이 되어 리스크를 증가시키고 연구개발과 같은 장기적 투자를 저해하고 있다. 이런 행태가 만연한 것은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질병의 이름은 바로 ‘금융화(financialization)’다. 금융화란 금융과 금융적 사고방식이 기업과 경제의 모든 측면을 구석구석 지배하게 되어 버린 현상을 뜻한다. 물론 금융은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대해진 금융은 경제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금융화라는 단어는 전도된 경제, 즉 ‘만드는 자(maker)’들이 ‘거저먹는 자(taker)’들에게 예속되어 버린 경제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여기서 ‘만드는 자’란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일군의 사람, 기업, 아이디어다. ‘거저먹는 자’는 고장 난 시장 시스템을 이용하여 사회 전체보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을 말한다. 거저먹는 자들의 범주에는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금융화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심지어 민주주의도 좀먹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CEO, 정치인, 규제 담당자까지 들어간다. 금융화는 어떻게 벌어졌는가? 이 책은 우선 금융화를 주도하는 각종 금융업체들이 어떤 수법을 동원해 실물 경제의 자산과 잠재적 가치를 갉아먹는지를 파헤친다. ‘거저먹는 자’의 대표 격이라 할 만한 시티그룹 등의 대형 은행들은 규제 완화에 힘입어 탐욕스럽게 몸집을 키워 온 끝에 이제는 경제적 안정을 해치고 성장을 저해하는 말썽꾼으로 변모해 버렸다(1장 금융의 부상). 칼 아이칸을 위시한 이른바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애플이나 듀폰 같은 대기업을 공략하여 단기적 주가 상승만 추구하도록 압박하면서 차익을 실현하고 있다. 그 탓에 정작 기업의 혁신과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연구개발 투자는 점점 줄어들면서 장기적 성장 동력이 고갈되고 있다(4장 문 앞의 야만인들). 한편 골드만 삭스를 비롯한 대형 투자은행은 자신들의 막대한 정보력과 자금을 이용해 석유나 금속, 식량 등의 상품시장을 조작함으로써 폭리를 취하고 있다(6장 금융발 대량살상무기). 그 밖에도 이 책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주택시장을 좌지우지하며 지역사회를 파괴한 사모펀드(7장 월가가 메인가를 장악하다), 민영화된 퇴직연금 제도를 이용하여 연금 가입자들에게서 야금야금 수수료를 뜯어먹는 뮤추얼 펀드(8장 은퇴의 종말)의 실태를 고발한다. 또한 금융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본래의 사업보다 돈놀이에 열중하는 기업들의 민낯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용 절감만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며 품질을 외면하다가 큰 위기를 겪은 제너럴 모터스(2장 기업의 몰락), 마치 은행처럼 인수합병이나 소비자 대출 등 각종 금융 활동을 방만하게 벌이던 중 2008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제너럴 일렉트릭(5장 이제 우리는 모두 은행가다) 등이 그에 해당된다. 이런 식의 금융 중심적 세계관은 미래의 경영자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에도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 책의 3장에서는 MBA로 상징되는 미국의 경영 교육이 어떻게 해서 실제적 경영 기법보다는 그저 대차대조표 숫자를 주무르는 데 집중하게 되었는지 알아본다. 그런데 저 무시무시한 금융 패권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팽창한 것은 아니다. 정치권 또한 이들을 뒷받침하는 제도와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현행 세법은 거저먹는 자들에게 유리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근로 소득보다 부유층 투자자의 자본 소득에 더 낮은 세율이 적용되며, 각종 대출에 뒤따르는 세금 공제 혜택은 기업과 시민들이 저축을 하기보다 부채를 키우도록 부추기는 형편이다(9장 조세 회피의 달인들). 워싱턴과 월가 사이의 유착 관계는 이런 기형적 법과 제도를 강화해 왔으며,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10장 돌고 도는 회전문). 마지막으로 11장에서는 지금까지 언급한 금융화의 숱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제안들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금융과 실물 경제의 균형을 되찾고 건강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산업을 잡아먹는 금융화 금융 시스템은 이제 실물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본연의 역할을 접고 그 자체의 수익만을 우선시하고 있다. 현재 시장 시스템에 존재하는 자금 가운데 15퍼센트만이 실물 경제에 투입되며, 나머지는 폐쇄적인 금융업계 내부를 오가면서 투자가 아닌 투기에 이용되고 있다. 금융 부문은 미국의 전체 기업 수익 가운데 무려 25퍼센트를 가져가면서도 일자리는 전체의 단 4퍼센트만 창출한다. 이제는 수많은 기업들이 실질적 경제 활동보다 대차대조표 꾸미기를, 일자리 창출보다 단기 수익 추구를 더 선호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금융업체가 노골적으로 기업의 자산을 벗겨 먹을 작정으로 덤벼드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형 유통업체 타깃의 자회사였던 머빈스(Mervyn’s)는 매장 257곳을 보유한 중견 소매업체로 수익성이 꽤 좋았다. 그러다 2004년, 서버러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의 금융업체 몇 곳으로 구성된 사모펀드 컨소시엄이 머빈스를 인수했다. 이들은 머빈스에서 부동산 자산을 분리한 뒤 이를 담보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8억 달러를 차입했다. 이 대출금이 바로 타깃 측에 지불할 인수 대금이었다. 그러니 머빈스는 원래 소유하고 있던 매장을 임차해서 쓰는 신세가 되었다. 그에 따라 불필요한 비용이 추가되었고, 사모펀드 측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애꿎은 종업원들을 해고했다. 그러자 점점 서비스 품질과 매출이 떨어진 머빈스는 불어나는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2008년 7월 파산하고 말았다.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머빈스가 파산하는 시점에도 사모펀드는 여전히 부동산을 통해 계속 수익을 거둬들였다는 것이다. 금융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8년, 미국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시장 붕괴를 경험했다. 그 후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여전히 금융 위기의 교훈은 외면당하고 있으며 금융 시스템은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하다. 2009년 이래 진행 중인 현재의 경제 ‘회복’은 사실 엉터리다. 최근 몇 년간 경제 회복과 임금 상승이 지지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무려 세 배 이상 뛰었다. 어떤 이들은 주가가 상승한 이유가 기업들이 높은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수익이 증가한 것은 경기가 호전되어 물건을 더 많이 팔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고 임금을 동결하며 공장 신설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실적을 좋아 보이게 하면서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 기여하지만, 장기적인 성장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투자 기회는 앗아 간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약속되었던 금융 개혁안 중 상당수가 아직도 법제화되지 못한 이유는 정치권과 금융권의 뿌리 깊은 유착 관계 때문이다. 지난 100여 년간 진행되어 온 미국 경제의 금융화는 1980년대에 이르러 자유방임 정책을 시행한 레이건 대통령의 갖가지 시장 탈규제에 힘입어 가속화되었다. 세제 개혁으로 자본이득세율이 대폭 낮아졌으며, 이전에는 증시 조작으로 간주되었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 합법화되었다. 그런가 하면 기업 인수합병에 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초거대 기업들이 금융 기법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길이 펼쳐졌다. 민주당 정권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았다. 1990년대에 빌 클린턴 행정부는 리스크 높은 금융 거래와 상업은행 대출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주로 대기업에만 유리한 각종 무역 협정을 체결했는가 하면, 파생상품의 규제를 철폐했다. 워싱턴과 월가의 긴밀한 관계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곤경에 처한 초대형 보험사 AIG에 대한 구제금융 집행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구제금융은 당시 뉴욕 연준 총재였던 티머시 가이트너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다. 물론 당시 AIG를 구제해야 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지만, 문제는 누가 비용을 치를 것인가였다. 연준과 재무부는 망해 가는 기업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과 리스크를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금융기관들이 아니라 납세자들에게 떠넘겼다. 가이트너는 훗날 재무장관을 역임한 후 사모펀드 회사 워버그 핑커스의 사장직에 오르며, 정치와 금융 사이를 오가는 회전문 인사의 공식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렇듯 괴물 같은 금융 패권이 초래한 갖가지 폐해를 바로잡고자 하는 저자는 우리가 당장 시행해야 할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안전한 금융 시스템을 위한 규제 방안이라든가,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마땅한 몫의 세금을 내도록 만드는 세제 개혁, 일자리 증가를 이루어 낼 공공과 민간 부문의 협력 증진, 크고 작은 미국 기업들 내에 필요한 문화적 변화 등이 거론된다. 이는 금융화의 거센 조류를 막아 내고, 더욱 건강한 경제, 더욱 풍요로운 사회,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