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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름다운 이가 기다리네
1장 마을과 저택 2장 아누바, 도착하다 3장 꼭대기 다락방 4장 잠자는 소녀의 꿈 5장 바람 속의 마녀 6장 티모시는 언제? 7장 저택과 거미와 아이 8장 먼길을 온 생쥐 9장 귀향 파티 10장 시월의 서쪽 11장 돌아오는 이들 12장 오리엔트 북행 특급 13장 노스트룸 파라켈시우스 크룩 14장 시월의 종족 15장 에이나르 아저씨 16장 속삭이는 이들 17장 테베의 목소리 18장 삶을 서두르라 19장 굴뚝 청소 20장 여행하는 이 21장 먼지로 돌아가다 22장 기억하는 이의 이야기 23장 선물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해외 리뷰 |
Ray Bradb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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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거친 바람이 덜렁거리는 널판을 흔들고 지나가며 속삭이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이는 오직 세시뿐이었다. 고양이 다음으로 도착해서 가족 중에서 가장 예쁘고 특별한 딸이 된 세시는, 다른 사람들의 귓가를 어루만진 다음 그 마음속으로,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꿈속까지 들어가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 그녀는 그렇게 누운 채 멀리서 들려오는 비바람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며 언덕 너머에서, 한쪽 바다와 그 반대쪽으로 멀리 있는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폈다. 북쪽에서 만년빙의 한기를 품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나, 영원한 여름이 계속되는 멕시코만이나 아마존의 정글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숨결까지도.
---「잠자는 소녀의 꿈」중에서 세시는 들판과 초원을 보며 생각했다. 그럴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 오늘 밤 이후로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럴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 문득 부모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다시 들려왔다. “조심해라. 땅에 묶인 하잘것없는 존재와 결혼해서 스러지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그래요, 그래요. 세시는 생각했다. 만약 그가 나를 원한다면 나는 여기서 즉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요. 그러면 봄날 밤마다 떠돌아다닐 필요도, 새와 개와 고양이와 여우 속에 깃들일 필요도 없을 거예요. 그와 함께할 수 있으면 충분할 거예요. 오직 그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바람 속의 마녀」중에서 “부디, 제발, 저도 지금 도착할 가족들처럼 자라나게 해주세요. 늙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되게 해주세요. 다른 가족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해도 죽을 수가 없거나, 먼 옛날에 이미 죽은 이들이라고 말했어요. 세시도 그렇게 말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할머니도 그렇게 속삭이시는데, 그리고 이제 다른 가족들도 모두 오는데 저는 아무것도 될 수가 없어요. 벽을 뚫고 들어오거나 나무 위에 살거나 땅속에 살다가 17년 만에 비가 내리면 물을 타고 흘러나오는 이들도, 무리를 지어 뛰어나오는 이들도 될 수가 없어요! 저도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 모두 영원히 사는데, 왜 저는 그럴 수 없나요?” ---「귀향 파티」중에서 한때 기쁨이 가득했던 유럽과 미국의 하늘에는 이제 억압과 편견과 불신의 구름에 떠밀려온 우울한 기운만이 들어차 있었다. 귀향 파티에 참석했던 손님들은 다시 저택 근처로 돌아와 창문으로, 다락방으로, 지하실로 스며들어 재빨리 모습을 감추었다. 가족들은 무슨 일인지, 벌써 두 번째 귀향 파티를 하게 된 것인지,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게 여겼다. 그리고 세상의 끝이 다가왔다는 추측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세상은 끝나고 있었으니까. ---「돌아오는 이들」중에서 “삶은 방문일 뿐이며, 잠으로 완결되나니. 나는 죽음이라는 잠에서 찾아왔으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거야. 생명이라는 잠 속에서 쉬기 위해 바삐 달려가는 거지. 내년 봄이 오면 나는 누군지 모를 아가씨나 부인의 벌집 속에 깃들인 씨앗이 되어, 생명을 받아 영글기를 기다리게 될 거야.” “누난 이상해.” 티모시가 말했다. “진짜 이상하지.” “세상이 시작한 후로 누나 같은 사람이 많았을까?” “알려진 사람은 거의 없어. 하지만 무덤에서 눈을 떠서 아직 어린 신부의 석류 같은 미궁 속에서 잠들 수 있다니, 운이 좋은 쪽 아닐까?” ---「삶을 서두르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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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가족 가운데 유일한 인간 아이, 티모시
영원한 존재들의 유한한 순간을 기록하다 4천 년이 넘는 시간의 기억을 간직한 이집트 미라 할머니, 밤에만 활동하는 아버지와 결코 잠들지 않는 어머니, 세상의 온갖 것들의 머릿속을 드나들 수 있는 누나 세시, 큰 날개로 밤하늘을 누비는 에이나르 삼촌 그리고 유령 사촌들…… 엘리엇 가족, 시월의 일족은 우리가 흔히 몬스터라고 부르는 ‘외국 도깨비’들이다. 영원한 삶을 사는 이들은 일반 사람들에게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긴 세월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친밀한 존재이다. 시월의 저택 앞에 버려진 인간 아이 티모시는 이들에게 거두어져 자라면서 자신이 가족과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닫고 혼란스러워한다. 특별한 능력이 없는 티모시는 다른 가족들을 부러워하고, 유한한 삶을 사는 자신의 신세를 슬퍼하지만 새로운 가족들과의 만남, 따뜻한 돌봄 속에서 삶과 죽음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영원의 존재들과 인간의 아이 티모시는 특별한 순간을 기록해나가며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을 만끽한다. 인간이지만 기괴한 가족의 일원인 티모시는 레이 브래드버리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주인공이자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잇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스스로를 현실과 환상, ‘두 세계의 주민’이라 여겼던 레이 브래드버리답게 티모시와 가족을 향한 작가의 애틋한 감정은 각별하다. 엘리엇 가족은 자유롭고 영원한 삶을 누리지만, 한편으로 (전설과 미신 속 존재답게) 사람들에게 잊히거나 강하게 부정당하면 쉽사리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는’ 약한 존재이다. 브래드버리는 전쟁과 대공황, 이념의 대립으로 황폐화된 미국 사회에 가족적인 것, 환상과 낭만의 이야기가 설 곳이 없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소년 티모시가 이름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것처럼, 그도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세계의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인 ‘From the Dust Retuned’는 그래서 흙과 먼지가 되어 사라진 옛 가족을 부르는 주문이자 다시 모일 날을 꿈꾸게 하는 약속이기도 하다. 다듬고, 고치고, 하나로 이어 탄생한 새로운 이야기 레이 브래드버리의 픽스업 소설은 특별하다 ‘픽스업(Fix-up)’은 비슷한 성향과 유사한 흐름을 공유하는 독립된 단편들을 모아 하나의 새로운 소설로 선보이는 것을 뜻한다. 잡지 연재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들이 주로 사용한 방식이지만 평생 300여 편에 달하는 단편을 발표하며 ‘단편의 제왕’으로 불렸던 레이 브래드버리이기에 『화성 연대기』, 『다크 카니발』 등 그의 픽스업 소설은 다른 작가들의 것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다. 책의 주제와 성격에 맞추어 기존의 작품을 손보는 것은 물론 중간중간 이야기 사이를 새롭게 채우고, 절묘하게 배치하여 하나의 전시회처럼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월의 저택』의 경우에는, 5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발표한 작품들을 연결시키는 작업이기에 더욱 세심하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다듬고 하나로 잇는 작업은 단편들끼리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이 책의 뒤에는 계속 반려되는 원고 투고에 지친 레이 브래드버리에게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담당 에이전트 돈 콩던이 있었고, 지금은 사라진 수많은 잡지, 편집자 들의 역사가 함께한다. 또한 ‘엘리엇 가족’이야기에 영감을 제공했지만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만화가 찰스 애덤스, 브래드버리를 믿고 기다린 독자들이 있었다. 자칫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을 뻔한 이야기는 오랜 시간을 거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담아 브래드버리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작가 및 옮긴이의 말 내가 창조한 등장인물은 모두 내가 어릴 적 시월 밤에 할머니네 집을 돌아다니던 친척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두고 싶다. 숙부 중에 진짜로 에이나르 아저씨가 있었으며,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로 사촌이나 숙부나 숙모와 연결되어 있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내 상상 속의 굴뚝 연통에, 층계에, 다락방에 그대로 살아서 떠다니고 있다. 한때 놀라울 정도로 어렸으며 핼러윈의 즐거움에 깊이 감동한 꼬마의 깊은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레이 브래드버리 ‘두 세계의 주민’이라 자신을 칭한 브래드버리답게, 그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이 모인 『시월의 저택』에서도 두 가지 세계가 뒤섞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일리노이주 워키건이다. 멜빌, 포, 휘트니와 같은 작가들을 처음 만난 도서관과 미국 중서부의 광활하고 풍요로운 풍경은 그의 모든 작품 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다른 하나의 세계는 할리우드다. 대공황 시대의 막바지에 브래드버리 일가는 일자리를 찾아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해 왔고, 이곳에서 그는 멕시코 및 아시아계 이민자, 유럽에서 도망쳐 온 문화계 종사자들이 뒤섞인 환경에서 새롭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슬쩍 들여다본 격동기의 할리우드가, 기묘하고 괴상한 시월의 가족을 처음 품은 요람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뒤섞인 결과, 『시월의 저택』은 서정적이고 아련하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미국적인 핼러윈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옮긴이 조호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