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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일
불씨와 화덕 검은 어릿광대 옛 일족 곰 삼각주의 가을 내려가라 모세여 |
William Faulk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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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벅 삼촌을 시어필러스 씨라고 부르는 것처럼 버디 삼촌도 꼬박꼬박 애머디어스 씨라고 칭하면서, 벅 삼촌이 일벌처럼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며 온갖 달콤한 것들을 빨아서 모아들이다가 결국에는 버디 삼촌의 불모의 공기 속에서 낭비할 것인지, 아니면 여왕벌이 등장할 때를 대비해 모아놓을 것인지, 그 운 좋은 여왕벌은 언제 등장할 것이며 누구일지 따위를 읊조렸다.
도망자를 몰아낸 덤불로 돌아오기 전부터도 그 정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딸아이가 쪼그려앉아 있던 진흙 위에 찍힌 맨발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소유한 말이나 개의 발자국을 알듯이, 딸의 발자국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한동안 그렇게 서서 시선을 아래로 향했으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끝장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덕분에 일이 단순해지기까지 했다. 면도칼은 그의 셔츠 안쪽 양 어깨뼈 사이에, 목에 두른 무명끈에 달려 있었다. 그는 그대로 어깨 너머의 면도칼을 앞으로 가져오며 동시에 끈을 끊고 칼날을 열어서, 칼등이 그의 손등에 닿을 때까지 그대로 젖힌 다음에 손잡이를 엄지로 단단히 눌러 쥐었고, 반쯤 빼낸 권총이 폭음을 울린 순간 그는 백인 남자의 목젖을 칼날뿐 아니라 자기 주먹으로도 후려치고 있었고, 그 모두가 하나의 동작으로 마무리되어 솟구치는 피보라도 그의 손이나 팔을 건드리지 못했다. 이곳에서, 이 대지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떠올려 봐. 모든 뜨겁고 강인한 피가 삶과 기쁨을 갈망하다가 대지로 돌아갔지. 물론 비탄과 고통도 따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삶으로부터는 많은 것을, 아주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데다, 그렇게 고통이라 믿는 것을 반드시 짊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야. 언제나 그만두겠다고, 영원히 멈추겠다고 선택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그런 고통과 비탄조차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 삶보다 더 끔찍한 유일한 것은 그 유감스러운 비존재뿐이니까. 하지만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고, 생명이란 언제나 삶의 가능성을 전부 소진하기 전에 닳아 없어지게 마련이지. 그렇게 남은 것들이 어디로 가겠어. 발명되거나 창조되지 않아서 그저 버려진 것들 말이야. 게다가 대지는 얕아. 그리 깊이 파들어가지 않아도 암반이 나오지. 그리고 대지는 온갖 것들을 그저 모아서 끌어안고 있는 존재가 아니야. 다시 사용하고 싶어 하지. 씨앗이나 도토리를, 심지어 땅에 묻으려는 시체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봐. 모두가 얌전히 묻혀 있기를 거부하고, 들끓고 움찔거리며 빛과 공기에 닿으려 애쓰면서, 여전히 태양을 탐하지. 일행은 야영지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은 다음, 총과 사냥개를 대동하고 그 자리로 돌아갔다. 훗날 소년은 일행 또한 샘 파더스처럼 누가 수망아지를 죽였는지를 알았어야 마땅하다고 깨달았다. 그러나 인간이 잘못된 생각을 합리화하거나 심지어 그에 기반해 행동하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었다. “나는 양도할 수조차 없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처음부터 우리 아버지와 버디 삼촌의 것이 아니었으니 내가 물려받아 양도할 수도 없는 거고, 할아버지의 것이 아니었으니 그들이 물려받고 내가 물려받아 양도할 수도 없는 거고, 이케모투베 추장의 것도 아니었으니 할아버지에게 팔아서 내가 물려받아 양도할 수도 없는 거야. 처음부터 이케모투베의 조상의 조상 것도 아니었으니 이케모투베가 물려받아 할아버지나 다른 누구에게 팔 수도 없는 거고. 이케모투베가 돈을 받고 그 땅을 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바로 그 순간에 그 땅은 영원히,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따라서 그 땅을 산 사람은 아무것도 사지 않은 셈인 거야.” 마찬가지로 아무런 비호도 없었던 유대인들을 생각해 보라. 2천 년이 흘러 보호를 바라지도 필요치도 않게 된 유대인들은, 심지어 메뚜기떼처럼 한데 뭉칠 생각도 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쪽을 택했으니, 그들이 단순한 약탈을 넘어 먼 후손까지 생각하게 되었으며 바로 그를 위하여 영원히 이질적이고 배척받는 존재가 되더라도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고난을 견뎌내겠다는 일종의 용기를 품었기 때문이었다. 서반구를 정복한 어느 남자의 무기였던 동화책 속에서 그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20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복수를 당하는, 땅 위에서 가장 천한 불가촉천민으로서 살아갈지라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나라가 필요로만 한다면 수호자가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다. 너도 아직 어른이 되기도 전인 21년 전에 그 일부를 수행했지. 이 나라는 한 사람이나 한 무리의 사람보다 조금 더 강한 존재야.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말이지. 때가 되면 너희들도 누구는 우리가 전쟁에 뛰어들지 않으면 망한다고 소리치고, 다른 누구는 우리가 전쟁에 뛰어들면 망한다고 소리치는 것을 멈추고, 뭐라 자칭한다 해도 결국 오스트리아 출신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 그놈에 맞서 싸우게 될 거다. 내 아버지가, 그리고 네가 이름을 댄 자들보다 훨씬 훌륭한 남자들이 힘을 합쳐 이 나라를 둘로 쪼개려 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조차 실패했지 않느냐.” 그러나 여인이란 너무 많은 것을 원하기 마련이다. 여인이란 그네들의 열정적인 갈망의 시선에 잡히는 것들이 반드시 열정적인 희망의 범주로 들어가리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오래 살아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란 서로에게 소리 내 말할 필요가 없는 법이다. 오래 살아서 서로가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먼 옛날부터 인간으로서의 길고 추레한 삶을 살아오며 적어도 한 번은, 지속되지도 않을 것이며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 상대방과 접촉하고 신과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결코 그런 존재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미리 용서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 여전히 온기에 감싸이고 확신에 둘러싸여 있는 시절에 찾아오는,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했던 장애물이 그저 퇴각해서 새로운 방벽을 세웠을 뿐이며, 여전히 난공불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부모도 똑같은 일들을, 수치심과 성취감을 모두 겪었으며, 그 안에 자신의 자리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비통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매캐슬린은 실제로 본 적이 있고, 소년은 거의 여든이 되어서도 실제로 본 것인지 전해 들은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지만, 그런 것들이 있었다. 빛조차 없는 척박하고 공허한 땅에서 여인들은 아이들을 끌어안고 잠긴 문 뒤편에 웅크려 있고, 남자들은 흰 천과 복면으로 무장하고 적막한 길을 따라 말을 달리며, 혐오보다는 좌절과 절망의 희생양이라 해야 할 백인과 흑인의 시체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있었다. 한 손에는 아직 잉크에 젖은 펜을, 다른 손에는 점조차 찍지 않은 투표용지를 든 채로, 기표소 안에서 그대로 총에 맞아 쓰러지던 남자들이 있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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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인 웅장함으로 한 가문의 비극을 통해 인류의 죄와 구원을 통찰한 포크너 문학의 가장 깊은 숲
불멸의 걸작 〈곰〉에서 목격한 한 소년의 성장은 이 거대한 신화가 시작되는 서막에 불과하다. 당신이 〈곰〉을 통해 대면했던 야생의 전율은 이제 인류의 죄와 구원을 관통하는 거대한 연대기로 확장된다 포크너의 연작 장편 『내려가라, 모세여』는 그의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반복해 거론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 진면목이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책이다. 특히 이 작품의 중심부를 이루는 「곰」은 독립적인 단편으로 널리 읽혀왔지만, 정작 그것이 이 거대한 연작 장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따라서 『내려가라, 모세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된다. 「곰」은 하나의 완결된 단편이면서 동시에 훨씬 더 거대한 비극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단순한 사냥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 남부라는 대지와 그 위에 쌓인 죄와 혈통, 인간의 탐욕과 사랑, 기억과 상실을 응축한 중심 장章이었다는 사실을. 『내려가라, 모세여』는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남부, 노예제의 기억, 백인 가문의 혈통 속에 스며든 폭력과 죄의식, 인간이 자연과 대지를 소유하려 했던 오만과 그 파멸의 역사. 포크너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심장뿐만 아니라, 한 시대와 대지가 품은 죄와 구원의 역사를 통째로 길어 올렸다. 『내려가라, 모세여』는 일반적인 단편집이 아니다. 서로 독립적으로 읽히는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인물과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공유하며 매캐슬린이라는 한 가문의 연대기를 들려준다. 가문의 혈통과 그 안에 원죄처럼 자리하고 있는 근친상간, 흑인과 백인 사이의 복잡하면서 미묘한 관계, 사냥과 노동, 토지와 상속, 그리고 인간 존재의 죄의식이 서로 얽혀 요크나파토파 안에 있는 하나의 소우주를 형성한다. 연작들은 시간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 어떤 인물은 소년으로 등장했다가 다음 이야기에서는 젊은 남편, 노인이 되어 있으며, 쇠라가해가는 자들은 다음 세대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인다. 과거는 현재와 병렬적으로 존재하고, 인간의 죄는 혈통처럼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 사르트르가 말했듯 포크너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축적되고 병렬적으로 뒤섞이는 실존적 구조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한 가문의 연대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죄의식의 숲속을 헤매게 된다. 그 중심에 놓인 작품이 너무도 유명한 「곰」이다.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중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오랫동안 독립된 작품처럼 읽혀왔지만, 『내려가라, 모세여』의 전체 맥락 안에서 읽을 때 그 진정한 울림이 드러난다. 어린 아이크 매캐슬린이 거대한 곰 ‘올드 벤’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성장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문명과 야생의 충돌, 그리고 한 가문이 물려받은 죄와 재산의 문제를 응축한 거대한 신화다. 아이크가 자신에게 상속될 땅을 거부하는 장면은 미국 문학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윤리적 선언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 땅은 애초부터 누구의 것도 아니었으며, 노예제와 폭력과 착취의 역사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포크너는 이 장면을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가 세워진 도덕적 기반 자체를 질문한다. 이번 한국어판 『내려가라, 모세여』는 작품의 복잡한 구조를 독자들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공들인 편집 작업을 함께 담아냈다. 포크너의 작품 세계에 처음 들어서는 독자들이 가장 자주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인물들의 복잡한 혈통과 관계, 시간 구조다. 같은 인물이 작품마다 서로 다른 연령대로 등장하고, 이미 죽은 인물이 다른 이야기에서는 생생한 현재로 되살아나며, 백인과 흑인 혈통의 관계 또한 여러 세대를 거치며 중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려가라, 모세여』는 자칫하면 독자가 인물과 시대를 놓친 채 미로 속을 헤매듯 읽기 쉬운 작품이다. 이번 한국어판에는 이러한 독서의 난점을 보완하기 위해 번역자가 직접 정리한 매캐슬린 가문의 계보도와 아이작 매캐슬린의 연보를 함께 수록했다. 단순한 참고 자료를 넘어, 포크너가 구축한 『내려가라, 모세여』 연대기의 구조와 시간의 흐름을 독자 스스로 체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작업이다. 포크너의 주요 작품들 가운데서도 이처럼 계보와 시간 구조가 복잡하고 치밀하게 얽힌 작품은 드물다. 그만큼 『내려가라, 모세여』는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라, 혈통과 기억, 죄의식과 역사의 흐름 자체를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이번 한국어판에 수록된 계보도와 연보는 그러한 포크너의 거대한 세계 안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하나의 지도이기도 하다. 책 출간 당시 언론들은 『내려가라, 모세여』를 ‘포크너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지적이고 감정적인 보상을 크게 주는 책’‘포크너가 창조한 요크나파토파 연대기 중 가장 장엄한 장章’으로 평가했다. 『내려가라, 모세여』는 포크너 문학의 가장 깊은 숲이다. 성서적인 웅장함 속에서 인간 존재의 죄와 구원을 끝없이 되묻는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장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음에도 오랫동안 가장 열렬한 포크너 독자들에게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실제로 이 책은 비평가들과 작가들로부터 포크너 문학의 정수를 담아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포크너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문학은 인간 정신의 비탄과 노력을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과 명예와 연민과 희생 같은 인간 내면의 진실이야말로 문학의 핵심이라고. 『내려가라, 모세여』는 바로 그 신념이 가장 거대한 형태로 구현된 작품이다. 여기서 포크너는 단지 미국 남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자신이 물려받은 죄와 어떻게 공존하는지, 기억은 어떻게 인간을 붙잡는지, 문명은 무엇을 희생하며 유지되는지를 묻는다. 그의 문장은 때로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때로 늪처럼 고요하다. 그리고 독자는 그 문장 속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어둠과 가장 희미한 구원의 빛을 동시에 보게 된다. 『내려가라, 모세여』는 혈통과 역사, 세대를 관통하는 죄, 토지와 상속, 인간과 자연, 문명과 야생, 기억의 퇴적을 다룬 포크너 문학의 지층을 이루는 작품이다. 그의 모든 강박과 미학, 윤리와 문체, 시간과 기억의 감각이 이 책 속에서 가장 웅장하고도 처절하게 결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단순히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와 한 시대의 죄의식을 통과해 나온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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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심장뿐만 아니라, 한 시대와 대지가 품은 죄와 구원의 역사를 통째로 길어 올렸다. 그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미국의 비극 작가다. -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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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지적이고 감정적인 보상을 크게 주는 책. -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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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환경, 그리고 상속된 죄악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이토록 유려하고도 강력하게 엮어낸 작품은 드물다. 포크너 문학의 모든 정수가 여기 담겨 있다. -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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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환경, 그리고 상속된 죄악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이토록 유려하고도 강력하게 엮어낸 작품은 드물다. 포크너 문학의 모든 정수가 여기 담겨 있다. - 헤럴드 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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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의 숲과 늪지대에서 펼쳐지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치열한 탐구. 포크너의 문장은 마치 거대한 강물처럼 독자를 압도한다.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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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인종, 가족이라는 복잡한 타래를 포크너만큼 고통스럽고도 정교하게 풀어낼 수 있는 작가는 전무후무하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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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는 현존하는 그 어떤 작가보다도 미국의 대지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 이 책은 한 가문의 연대기를 넘어, 미국이라는 국가가 짊어진 도덕적 무게를 측정하는 척도다. - 세터데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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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의 문장은 때로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때로는 늪처럼 고요하다. 『내려가라, 모세여』는 독자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문학적 사건이다. - 리터러리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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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 인종과 대지, 그리고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에 대해 이토록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한 작가는 없다. - 토니 모리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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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는 남부의 역사를 보편적인 인간의 신화로 격상시켰다. 『내려가라, 모세여』는 그 신화가 도달한 가장 높은 봉우리다. - 로버트 펜 워렌 (소설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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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미국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덕적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 맬컴 카울리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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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멜빌의 「모비 딕」에 필적할 만한, 자연과 인간의 대결을 다룬 가장 숭고한 텍스트로 미국 문학사상 가장 완벽한 중편소설이다. 『내려가라, 모세여』 전체는 성서적 웅장함과 현대적 세련미가 공존하는 기적이다. - 헤럴드 블룸 (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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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소설가를 넘어 한 시대를 증언하는 예언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의 울림은 텍스트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멈추지 않는다. - - 에드먼드 윌슨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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