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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京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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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부에는 총 7편의 연구사 정리 논문을 수록하였다.
정경일은 「최근 북한학계에서 이룩한 고구려 고고학 성과」에서 북한의 고구려 성곽 유적과 벽화무덤 발굴조사 성과를 소개하였다. 북한학계에서는 21세기 이후 고구려 성곽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고구려 벽화무덤 10여 기를 새롭게 발굴하였는데, 그 성과가 이 논문에 잘 정리되어 있다. 우리가 직접 답사하면서 북한 지역의 고고자료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에, 새롭게 추가되는 성곽과 벽화무덤의 사례들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준성은 「한국학계의 고구려 성립 및 국가 운영 연구 동향」에서 ‘부체제론’과 ‘집권체제론’으로 대별하는 기존의 고구려 체제 정리 방식 대신, 고구려 사회의 성립과 고구려 국가의 운영이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눠 흐름을 살폈다. 고구려 초기사 연구에 선행 국가나 주변 세력의 영향력을 지금보다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점과, 고고학 자료를 활용하여 사회의 계층화 과정 및 주변 지역과의 관계망을 설명하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과제로 제시하였다. 강진원은 「고구려 국가제사(國家祭祀) 연구의 경향 및 쟁점」을 통해 고구려의 국가제사를 제천대회 동맹(東盟), 시조묘(始祖廟) 제사, 종묘·사직 제사, 묘제 및 기타제사[부여신묘 제사, 주몽사(朱蒙祠) 제사, 태후묘(太后廟) 제사]로 나눠 동향을 파악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고구려의 국가제사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룬 성과가 드물었던 바, 이 글과 같이 종합적인 정리는 향후 연구를 통해 보충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필자는 각각의 국가제사의 실체에 대한 더 구체적인 해명과 더불어 시간적인 흐름에 따른 변화상의 파악을 과제로 삼고 있다. 한국의 안정준과 중국의 범은실은 각각 한국학계와 중국학계의 고구려 영역지배방식(지방통치방식) 연구에 대해 정리하였다. 먼저 안정준은 「고구려 영역지배에 대한 연구현황과 과제」에서 집권체제 성립 이전과 이후의 영역지배를 대별하여 정리하고 있다. 고구려가 집권체제가 정비된 4세기 이후 지방관의 군·민 양정 겸직을 유지하게 했던 배경이나 ‘종족지배’에 대한 논증의 필요성, 그리고 다양한 지역과 종족들을 포괄하는 고구려의 국가적 성격 등을 향후 과제로 제시하였다. 반면 범은실은 「중국학계 고구려 지방통치제도 연구 평가」를 통해 중국학계의 지방통치체제 연구가 21세기 초부터 활발해졌다면서, 나부체제, 족명 5부, 초기 방위 5부, 초기 중원 군현제에 대한 모방, 초기의 성읍제, 후기 5부제, 후기 성읍제, 그리고 후기 군현제 실시 여부 등 8가지 사안을 쟁점으로 잡아 중국 고구려사학계의 연구성과를 정리하였다. 중국학계의 고구려 연구가 국제적인 수준을 따라잡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인류학의 연구성과 참고, 주변 여러 정치체가 미친 영향력 탐색, 구조적인 부분 이외 관리의 선발, 임면 등 인적 요인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는 것 등을 제시하였다. 김지영은 「한국학계의 고구려와 모용선비 관련 연구동향」에서 기존 연구를 전연, 후연, 북연의 시기별로 나누어 살폈다. 대체적인 연구경향은 전·후연의 경우 요하 일대 세력권 확대와 관련한 양국의 충돌에 대한 연구, 북연의 경우 짧은 존속 기간 때문인지 건국과 멸망시기 고구려 관계에만 연구가 집중되어 있다고 분석하였다. 향후 연구의 진전을 위해서는 요동지역의 중요성을 규명할 필요가 있으며, 대규모 인구이동에 따른 문화·경제적 교류 양상을 파악하는 단계로 진전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김홍배는 「중국학계의 고구려와 모용선비 관계 연구」에서 모용선비의 전쟁 및 화해, 역사지리 문제, 인구 유동, 삼연(三燕)문화와 고구려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 등 네 개의 연구 분야로 정리하였다. 다만 중국학계의 모용선비 연구가 주로 기원, 중국화, 문화 측면에 치중되어 있다면서, 제한적인 연구시야를 확대하여 동북아 및 동아시아 사회와 연관시켜 거시적인 측면에서 양자의 관계를 조명할 필요성, 문화상의 상호 침투와 영향에 대해 유기적으로 다룰 필요성 등을 과제로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2부에서는 다섯 편의 개별 연구논문들을 실었다. 이승호는 「동부여 역사에 대한 재검토」에서 5세기 전반 고구려인들의 동부여 인식을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삼아, ‘광개토왕비문’에 보이는 동부여의 실체를 살폈다. 이를 통해 동부여는 북부여, 부여와 구별되는 별개의 정치체로서 5세기 전반 고구려인에게 추모왕 시대부터 이미 고구려에 복속되어 조공을 해왔던 속민으로 기억되고 있었다고 보았으며, 그 이유를 부여와 북옥저 양자의 종족적 친연성과 일부 북옥저인들이 지녔던 그들 나름의 부여 계승 의식에서 찾았다. 이정빈은 「607년 고구려 동돌궐 교섭의 배경과 목적」을 통해 7세기 전반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일면을 보여주는 607년 고구려의 동돌궐 교섭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기존 견해와 달리 7세기 초, 동돌궐은 수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점을 논증하고, 이 무렵 수 양제는 배구로 하여금 ??고려풍속??을 저술해 군사정보도 수집하였고, 북방 변경지대를 순행하면서 동돌궐은 물론이고 고구려 서방의 제종족도 포섭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에 고구려는 수나라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백제·왜·동돌궐과 교섭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동돌궐을 통해 서방 변경지대의 안정을 확보하고자 하였다고 파악한 것이다. 김금자는 「안장왕 시기 고구려와 남북조의 관계 및 동아시아 국제 지위의 변화에 대한 시론」에서 안장왕이 백제를 압박하기 위해 중국 남북조에 대한 외교정책 변화를 꾀하였지만, 중국 남북조의 경우 내정과 대치 형세의 변화에 따라 과거와는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 결과 안장왕 시기는 고구려의 국세가 점차 쇠퇴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로서 국력이 강성에서 쇠퇴로 나가는 전환점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정춘영은 「고구려 벽화 복식의 구성, 족속 및 변천」에서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복식이 꾸밈새, 관모, 의복, 신발 등 4가지 이미지를 제공하고, 이 네 가지의 각기 다른 조합 방식을 통해 고구려 벽화 복식을 10가지 형태로 구분하였다. 고구려 벽화 복식의 문화요소로, 고구려족 복식 요소, 한복(漢服) 요소, 모용선비를 대표로 하는 호복 요소 및 이 세 가지 요소를 혼합하여 조합한 복식 요소를 제시하였다. 또한 현재 중국 지역에 있는 고구려벽화 복식과 현재 북한 지역에 있는 고구려벽화 복식이 서로 다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강성산은 「발해 5경 명칭 출현 시기에 관한 사료적 검토」에서 발해의 5경은 810년대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파악한다. 5경이 나타난 시기는 장건장이 발해에 파견되기 전이었을 것이며, 각 부족의 고지에 5경 15부의 편제를 실행한 것은 제부족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특히 발해의 5경 제도가 훗날의 요, 금 시기에도 계속 연용 되면서 동북아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였다. 이 책의 필자들이 활동하는 고구려 주니어포럼은 학문적으로 다툴 것은 다투고, 공유할 것은 공유하면서 지금까지 참가한 한국과 중국의 소장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본과 북한 등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고구려사 연구자들이 포럼에 참가하여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고구려사 연구의 틀을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포럼이 진행될수록, 한편으론 같고, 다른 한편으론 다른, 고구려사에 관한 수많은 진지한 연구 성과들이 세상에 제시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