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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 2. 제2차세계대전이 시작되다 3. 서부 전선: 1940년 4. 바르바로사 작전: 독일의 소련 침공 5. 일본, 중국과의 전쟁을 확대하다 6. 전세 역전: 1942년 가을∼1944년 봄 7. 각국의 국내 상황과 기술·의료 분야의 발달 8. 연합국의 승리: 1944∼45년 결론 독서안내/ 역자 후기/ 지도 목록 |
Gerhard L. Wei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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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매우 중요한 측면은 독일 서부 국경을 둘러싼 논쟁과 강화회의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독일은 1870년, 1914년 두 차례 프랑스를 침공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독일의 재도발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것은 마치 1815년 유럽의 다수 국가가 프랑스의 도발을 우려했던 것과 같았다. 라인란트를 독일에서 떼어내 별도의 주로 만드는 방안이 진지하게 검토되었다. ---p.20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여러 측면에서 주목해야 한다. 독일 공군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기갑부대가 동원된 작전은 적진을 신속하게 돌파해 진격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폴란드 특유의 지형과 열악한 도로 및 비행장 탓에 군용 장비의 피해도 상당했는데, 이것은 독일군 수뇌부가 소련 침공을 준비할 때 고려하지 못한 점이었다. (…) 공격 전 독일군에는 폴란드의 성직자와 권력 집단 대부분을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최종적으로는 전체 폴란드 인구를 독일인 이주자로 대체할 예정이어서, 저항 세력을 조직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가능하면 빨리 제거해야 했다. ---p.39 히틀러는 은밀하게 육해공군 고위 장성들에게 많은 뇌물과 비과세 수당을 주었고,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한 뒤에는 장군과 제독들을 진급시켜서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게 했다. 제2차세계대전의 나머지 기간에 독일인의 단합은 이런 나치 정권에 대한 엄청난 지지 없이는 이해할 수 없고, 승리에 따른 열광을 아돌프 히틀러 개인과 동일시함으로써 나치 정권에 대한 지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p.71~72 독일군은 소련 국민을 대량으로 살육했다. 전쟁 포로를 조직적으로 굶겨 죽였고, 병원과 정신 진료 기관에서도 학살이 이루어졌다. 포로에게 음식과 물을 주는 주민도 총살했다. 이런 사실은 소련 국민들로 하여금 살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점을 즉각 상기시켰다. ---p.96~97 일본의 말레이반도 및 필리핀 정복은 애초에 의도했던 네덜란드령 동인도 정복의 전초전이었다. 일본군은 12월 15일 이미 보르네오섬에 상륙했다. 보르네오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나누어 장악한 지역이었다. 뒤이은 몇 주 동안 일본군은 이 지역 섬들에 잇따라 상륙했다. ---p.118 전세의 확실한 전환은 그때까지 중립을 유지하던 일부 국가의 행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터키는 독일로의 크롬 반출을 줄이고 1945년 2월에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포르투갈은 대서양 전투에서 연합국이 아조레스제도를 이용하는 상황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고, 스페인은 동부 전선에서 독일 편에 서서 싸우는 병력을 줄였다. 스웨덴도 독일에 대한 지원을 서서히 줄였고, 스위스만 전쟁 마지막 주까지 독일을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p.151~152 모든 주요 교전국에서는 전쟁 기간에 군사 및 의료 면에서 기술적 발달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전후에 상당한 중요성을 지녔다. 전시에 신형 전차와 항공기, 전함, 대포가 개발되어 운용되었다. 레이더, 제트기, 탄도 미사일, 핵무기는 전시에 이루어진 가장 극적인 혁신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더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가장 극단적인 공격 시도는 일본이 벌인 기구를 동원한 소이탄 공격이었다. ---p.1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