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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모미크
브루노
바세르만
카지크의 삶에 관한 완전한 백과사전(초판)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2

다비드 그로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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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Grossman

이스라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될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다비드 그로스만은 이스라엘 정부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쉼 없이 낸 평화 운동가이기도 하다. 1954년 예루살렘 출생으로 히브리 대학교에서 철학과 연극을 공부했으며,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국에서 기자로 일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안 소설 두 권과 단편집 한 권을 출간했다. 소설과 희곡, 논픽션, 아동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집필한 그로스만은 “국가적 갈등 상황이라는 외줄 위에서 끝없이 비틀대며 중심을 잡으려는 줄타기 곡예사_[가디언]”라는 평을 받으며, 힘과 정의의 균형이
이스라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될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다비드 그로스만은 이스라엘 정부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쉼 없이 낸 평화 운동가이기도 하다. 1954년 예루살렘 출생으로 히브리 대학교에서 철학과 연극을 공부했으며,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국에서 기자로 일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안 소설 두 권과 단편집 한 권을 출간했다. 소설과 희곡, 논픽션, 아동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집필한 그로스만은 “국가적 갈등 상황이라는 외줄 위에서 끝없이 비틀대며 중심을 잡으려는 줄타기 곡예사_[가디언]”라는 평을 받으며, 힘과 정의의 균형이 위태로운 이스라엘의 현실을 과감히 작품으로 옮겨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에메트상,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독일 북스테후더 불레상, 프랑크푸르트 평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에서 아들이 사망하는 비극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 『땅끝까지To the End of the Land』로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A Horse Walks into a Bar』로 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며 다시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들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핀란드, 러시아 등에서 36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사자의 꿀(Lion’s Honey)』, 『시간 밖으로(Falling Out of Time)』가 소개되었다.

다비드 그로스만의 다른 상품

서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 언론정보학을 복수전공 한 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영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 『보라색 히비스커스』(2019 올해의 청소년 교양 도서), 『아메리카나』, 『제로 K』,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2018 세종도서 교양 부문), 『엄마는 페미니스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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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748쪽 | 850g | 145*210*40mm
ISBN13
9788901222936

책 속으로

모미크는 수수께끼를 풀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부모님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은 이 싸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나. 모미크는 빨치산처럼 싸우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그래야 그들이 평생 단 한 번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안심하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방법을 찾았다. 사실 위험한 방법이지만 모미크는 두렵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두렵긴 한데 다른 방법이 없다.
(…) 어떻게 보면 ‘짐승’을 찾아내서 길들이고, 착하게 만들고, 마음을 고쳐먹게 하고, 사람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게 만들고, ‘저 멀리’에서 있었던 일과 녀석이 사람들한테 한 짓을 털어놓도록 설득하기로 결심한 것이 바로 그때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모미크가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지도 한 달, 안셸 할아버지가 온 날로부터 꼬박 한 달이 됐다. 모미크는 아무도 모르게, 집 밑에 딸린 작고 컴컴한 지하실에서 나치 짐승을 키우고 있다. ---「모미크」중에서

그리고 그때 모미크는 냄새나고 시커멓고 우스꽝스러운 무닌이 강한 바람을 타고 하늘을 향해 대각선으로, 어떻게 보면 불 수레를 탄 예언자 엘리야처럼, 날아오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 순간, 그가 ‘절대로 영원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그 순간에, 모미크는 마침내 깨달았다. 무닌이 실은 라메드바브(삼십육 인의 의인) 같은 일종의 숨겨진 마술사였다는 사실을. 한나 제이트린이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 마녀고, 안셸 할아버지가 지나간 일을 이야기해 주는 역(逆)예언자인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막스와 모리츠나 마르쿠스 씨도 비밀 임무를 맡고 있고, 우연히 여기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모미크를 돕기 위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위해 싸우기 전, 나치 짐승을 키우기 전에는 그들이 모미크의 눈에 띈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모미크」중에서

그때 갑자기 그가 팔딱이고 버둥대면서 자신의 가는 몸을 쭉 늘려서 실체화되더니 엄청난 힘에 의해 뒤로 끌어당겨져서 휙 소리와 함께 빨려 들어갔습니다. “브루노!” 나는 외쳤습니다. “잠깐 기다려!” 그가 얼어붙었습니다. 세상도 숨을 멈췄습니다. 바다는 강철빛 푸른색으로 변했죠. “브루노.” 나는 겸허하게 불렀습니다. “이런 순간에 널 붙든 나를 용서해. 하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야. 혹시 안셸 바세르만이 나이겔이라는 독일인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아니?”
브루노는 한쪽 아가미를 회전시키면서 두 눈을 감고 집중했습니다. “그건 정말 멋진 이야기죠. 암, 그렇고말고요.” 그의 이상한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다만 거기엔…… 하! 빌어먹을! 잊어버렸네요!” 그러고는 갑자기 다시 생각난 것처럼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맞아! 그건 그의 이야기의 정수였어요, 슐로마. 매번 잊어버리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 내야 해요!”
“평생 그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도 기억할 수가 있어?”
“물론이죠. 사람이 자기 이름을, 운명을, 마음을 기억하는 것처럼요. 나의 슐로마,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브루노」중에서

다음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단둘이 아니었다. 공기가 부들부들 떨렸고 내 손이 별개의 생명체처럼 떨기 시작했다. 내 손가락들이 당겼다 밀었다를 반복했다. 나는 놀라서 내 손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뭔가를 잡아당기고 있었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손은 멈추지 않고 더듬었다. 그것이 허공을 찌르자 공기가 일정한 패턴으로 손가락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손이 공기를 약삭빠르고 고집스럽게 돌리고 휘젓자 되직한 물질이 만들어졌다. 갑자기 내 손끝에 물기가 생겼다. 내가 무(無)에서 이야기를, 감각과 말과 납작한 이미지와 배아 같은 생명체를 끄집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축축한 그 생명체들은 영양을 공급하는 기억의 태반 찌꺼기가 묻은 채 빛 속에서 깜빡이며 휘청이는 다리로 일어서려고 생후 1일 된 사슴처럼 비틀거리다가 마침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내 앞에 설 정도로 강해졌다. 안셸 할아버지의 정신에서 태어난 이 생명체들은 내가 그토록 열심히 읽고, 찾아 헤매고, 열렬하게 느꼈던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이었다. ---「바세르만」중에서

“어떤 결정도 영원히 유효하지는 않습니다, 헤어 나이겔. 그리고 당신이 명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그렇다고 암시하려는 듯한데) 매일매일, 매번 수용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죽일 때마다 당신의 결정을 재확인해야 합니다. 소장님, 당신은 새로운 말로 당신의 결정을 새로이 빚어야 합니다. 당신의 첫 소원,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정수가 그 말 속에서 울려 퍼지는지 안 퍼지는지 듣기 위해서 말이죠.” 이에 대해 나이겔이 대답했다.
바세르만. 나는 그 말이 조금도 두렵지 않으니까. 사실 마음에 들어. 그래서 네 하찮은 아이디어를 채택할 생각이야.” 바세르만: “매일매일입니다, 헤어 나이겔. 당신이 총을 쏴서 새로운 인간을 파멸시킬 때마다 매번요. 포로 스물다섯 명을 죽일 때는 스물다섯 번 해야 한단 말이에요. 결정 다음에 또 결정. 견디실 수 있겠어요? 스스로 약속하실 수 있겠느냐고요, 헤어 나이겔.” ---「카지크의 삶에 관한 완전한 백과사전」중에서

ZMAN [즈만] 시간
지적 존재의 기본적인 자료. 그것의 최우위성과 막연함 때문에 모호하지 않은 정의는 허용하지 않는다. 현상의 박자와 지속을 의미한다.
1. 카지크의 시간
프리에트는 카지크가 도착한 날 저녁에 하얀 나비가 아기의 얼굴 위를 파닥이며 지나갔던 21시 00분부터 카지크의 시간을 계산했다. 남성의 평균 수명인 칠십이 년을 참고준거로 사용하여 카지크의 삶에서 한순간이 지날 때마다 보통 인간의 삶에서 십팔 일이 지나간 것으로 셈했다. 그 결과 카지크의 삶에서 일 초는 프리에트의 여덟 시간, 일 분 사십 초는 한 달과 같았다. 십 분이 경과하면 카지크에게는 육 개월이 흐른 것이며, 한 시간은 만 삼 년에 해당했다. 프리에트는 경악했다. 여기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일은 그날 밤 그가 카지크의 시간의 질주를 멈추기 위해서 했던 두 번의 미친 시도일 것이다. 우선 그는 모든 불을 끄고(마르쿠스: “그가 멍청했기 때문이 아니라 절박했기 때문에”) 시간의 폭압이 어둠 속에서는 약해지길 바랐다. 두 번째로는 새벽 직전, 즉 카지크가 약 스물한 살이었을 때, 물이 노화 과정을 늦출까 하는 헛된 희망으로 그를 다시 차가운 욕조 안에 담갔다.

---「카지크의 삶에 관한 완전한 백과사전」중에서

출판사 리뷰

“『양철북』 『백년 동안의 고독』의 계보를 잇는 작품”
“현대 문학의 수많은 걸작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다”


2016년 대한민국 소설가 한강에 이어 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의 영예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에게 돌아갔다. 그로스만은 아모스 오즈와 함께 현대 히브리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수년 전부터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 거장이다. 이제껏 국내에 활발히 소개되지 않았지만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금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국내에도 그의 작품이 더 활발하게 소개될 전망이다. 그 시작으로, 웅진지식하우스에서 그로스만의 초기 대표작 두 권을 동시에 출간되었다. 홀로코스트 문학의 새로운 고전으로 평가받는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1986년 작)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들을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봇물처럼 쏟아낸 『나의 칼이 되어줘』(1998년 작)이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다비드 그로스만이 1986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로, 불과 서른둘 나이에 쓴 초기작이지만 여전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홀로코스트가 남긴 트라우마를 다룬 이 책은 이스라엘 문단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등장했고, 1989년에 영어로 번역 출간되었을 때에도 영미권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뜨거운 관심과 찬사가 쏟아졌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귄터 그라스의 반열에 올렸으며, 미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조지 스타이너는 이 소설을 가르켜 거두절미하고 “현대 문학의 수많은 걸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상찬했다. [가디언] 역시 “위대한 성취”라고 적었다.

대단히 야심차고, 여전히 새롭고, 기이한 에너지를 내뿜는 이 책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거장의 초기작을 놓칠 수 없는 이유 그 자체다. 기존 소설의 형식과 문법, 시간과 공간, 희망과 절망 모두를 파괴하고 재건하며 내달리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역사와 인간을 관통하는 근본적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로스만의 뛰어난 문장력과 방대한 상상력이 도저히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로스만의 원류를 만날 수 있는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독자들이 입문하기에 가장 좋은 선택이며, 그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도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될 작품이다.

홀로코스트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든 기념비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는 환상과 은유의 모험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와 1950년대 건국 초창기의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실제 사건과 가상의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뒤섞이며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이 소설은, 홀로코스트가 남긴 트라우마를 문학으로 치유해보려는 야심찬 시도이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라는 민감한 주제를 파격적으로 다룸으로써 출간 즉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이 중심이 되는 기존의 홀로코스트 문학과 달리 홀로코스트 2세대의 경험과 관점을 통해,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까지 아울러 전대미문의 비극을 재조명했다. 평론가들은 다음 세대가 지닌 적절한 거리감 덕에 비로소 홀로코스트 이야기에 풍부한 상상과 은유가 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출간 후 쏟아진 찬탄과 논란 속에서 이 책을 명실상부 그의 대표작이자 현대 문학의 위대한 성취로 평가했다.

그로스만은 1954년생으로, 건국 초기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자랐다. 건국 초기인 1950년대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스라엘은 암묵적 침묵이 지배했다. 살아남아 이스라엘로 건너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생활인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억눌러야 했고, 이미 팔레스타인에 정착해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강인한 유대인 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과거의 그늘을 외면할 필요가 있었다. 소설의 첫 부분은 당시 이스라엘의 미묘한 분위기와 그 속에서 자라난 아이의 심리를 세심하게 복원해내며 단숨에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흡인한다.

책의 1장 「모미크」는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아홉 살 소년 모미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의 짙은 침묵 속에서 ‘모든 뉘앙스를 읽어내려’ 애쓰는 아이로 자라난다. 모미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망치는 괴물 ‘나치 짐승’의 정체를 캐는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다가, 급기야 길에서 납치한 작은 동물들을 나치 짐승으로 길러내는 실험에 정신을 팔기 시작한다. 비밀 탐정 노릇에 빠진 아이의 엉뚱함이 동화처럼 다가오지만, 사실상 아이는 부모 세대의 비극을 침묵을 통해 변이된 상태로 물려받는 중이다. 이 책은 아이가 성인이 된 후까지 그 트라우마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로스만은 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이고, 언젠가는 홀로코스트에 관해 쓰게 되리라고 예감했다. 이스라엘인으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저 멀리’에서의 삶을, 피해자로서만이 아니라 살인자의 입장에서도, 작품을 통해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인간으로부터 개별성이 말소되고 그저 빨리 소거시켜야 하는 고깃덩어리로 전락했을 때 마지막까지 간직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싶었다. 반대로, 살인자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타인 혹은 한 민족의 몰살을 갈망하거나 순순히 받아들일 때 자기 안의 무엇을 마비시키고 억누르고 심지어 죽여야 했는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물음의 답을 얻기 위해 그는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작품을 썼고, 이것은 출간 후 30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이 꾸준히 읽히고 여전한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상처에 새 이름을 붙이는 이, 모든 뉘앙스의 탐구자
다비드 그로스만의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만나다


다비드 그로스만의 작품 세계는 특히 언어에 대한 엄격하고도 실험적인 태도로 설명될 수 있다. “나는 모든 뉘앙스를 탐구하고 싶다.”라고 말했듯, 그가 발표한 많은 책들은 언제나 낯설고 치밀하게 언어를 조탁한다. 의식의 흐름이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의 기법이 자주 등장해 일견 난해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그가 언어를 대하는 태도를 안다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를 얻을 수 있다.

“저는 제가 본 것을 제 자신의 말로 서술함으로써 저만의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말한 언어로는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이용한 말, 따라서 남용된 말에 대해 폐소공포증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항상 생각해요. (…)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언어를 순화하고 언어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것,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한 현대의 삶에서 잊힌 우리 문화의 저류를 복원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작가라는 사람2』에 실린 저자 인터뷰에서)

이 책 역시 ‘기존의 말로써 홀로코스트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4개 장 각각에서 선보이는 형식적 내용적 실험은 궁극적으로 이 질문의 답을 모색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좀 더 직접적인 집필 계기로, 그의 우상인 브루노 슐스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고 싶었다고도 밝혔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작가 브루노 슐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총에 살해당했다. 그는 한 나치 장교의 집에서 일하는 ‘입주 유대인’이었는데 그 장교의 라이벌이 슐스를 쐈다. 살인자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내 유대인을 죽였지? 좋아, 그럼 나는 네 유대인을 죽이지.” 이 일화를 처음 접했을 때 삶의 의지가 순식간에 파괴됨을 느꼈다. 그런 언어로 누군가의 죽음이 설명되는 세상을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무너진 삶에 대한 사랑을 복원하기 위해 이 책을 써야만 했다. 그래서 이 책의 2장은 「브루노」이다. 작가가 된 모미크가 브루노 슐스의 야만적 죽음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 그를 구해내고 심해로 이끌고 마침내 ‘연어’로 변신한 브루노와 대면하는 이야기가 환상처럼 펼쳐진다.

“집필을 마치고서야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한 인간―그가 누구건―을 파괴한다는 것은 유일성과 무한성을 지닌 하나의 창조물을 파괴하는 것이며, 그는 결코 다시 재건될 수 없음을… 그와 조금이라도 같은 사람이 다시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다.” ([가디언]에 실린 저자의 글에서)

“작가의 일은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
독자가 아직 방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언어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나머지 두 장은 ‘이야기의 거장’으로도 불리는 그로스만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3장은 「바세르만」은 안셸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정확히는 모미크가 쓰는 이야기를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로 돌아간 안셸 할아버지가 수용소장 나이겔과 펼치는 일종의 ‘천일야화’이다. 나이겔은 가스실에서 자꾸만 살아 돌아오는 왕년의 인기 작가 바세르만이 그가 어린 시절 숭배했던 모험담 ‘마음의 아이들’의 작가임을 알게 되고, 바세르만에게 후속편을 지어내 들려달라고 제안한다. 바세르만은 그렇게 한다. 마치 셰에라자드처럼. 다만 그의 조건은 정반대다. 매일 밤 이야기가 끝난 후 그를 처형해줄 것. 나이겔은 바세르만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업에 점점 빠져들고, 바세르만은 이야기를 통해 나이겔을 어딘가로 몰아가는 모종의 게임을 벌인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카지크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카지크는 이제 성인이 된 ‘마음의 아이들’에게 어느 날 뚝 떨어진 아기로, 평범한 사람의 일생을 24시간 동안 압축해서 살 수밖에 없는 일종의 질병을 가지고 있다. 바세르만이 아이의 병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 나이겔은 거의 울다시피 애원한다. 아이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바세르만은 카지크의 삶와 그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뜻대로 펼쳐나간다. 모미크가 어린 시절 만난 동네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이후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들은 이 이야기에서 제각각의 영웅적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부활한다.

이 이야기를 백과사전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 4장 「카지크의 삶에 관한 완전한 백과사전(초판)」이다.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배열된 총 75개 표제어 항목들은 카지크의 삶을 중점적으로 설명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아이들을 비롯해 다른 장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소환해내 ‘참조하라’는 지시어로서 끝없이 연결된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라는 독특한 제목은 이 형식 실험에서 나온 것이다. 정작 ‘사랑’이나 ‘연민’과 같은 중요한 항목에는 아무 명시적 설명이 없지만, 소설 전체와 각 표제어 항목들을 통해 화자이자 주인공인 모미크는 그 의미와 가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가 어린 시절 이후 언제 또 홀로코스트와 같은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는 이유로 평생에 걸쳐 자신에게서 분리해내고자 했던 인간적 감정들을 대면하게 된 것이다.

이 길고 복잡한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에는 모미크와 함께 독자들 역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품고 ‘인간다움’에 대해 가만히 곱씹게 될 것이다.

그는 기도했다. 마르쿠스: “아이가 모든 것에 열린 마음을 지닌 채, 모든 것을 믿으면서 반듯이 누워 있는 동안 삶에 대한 열정과 놀라운 자신감이 그 얼굴에 그대로 머물게 해달라고.” 프리에트: “그리고 아이가 내 안의 증오에 물들지 않게 해달라고.” 마르쿠스: “나의 모든 지식에 물들지 않게 해달라고.” (…) 그러자 바세르만이 나이겔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모두가 빌었던 소원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카지크가 전쟁을 모르는 채로 생을 마치게 해달라는 거였죠. 아시겠어요, 헤어 나이겔? 우리가 바란 건 그렇게 사소한 거였답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는 동안 전쟁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요.” (본문 741쪽에서)

추천평

“피할 수 없는 책. 강렬하고 아름답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저자)
“현대 문학의 수많은 걸작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 - 조지 스타이너 (문학평론가)
“예술성과 창조성의 불꽃이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실험적 방식으로 역사를 재창조함으로써 현대 문학의 지형을 뒤바꾼 작품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의 계보를 잇는다.” - [뉴욕타임스]
“순식간에 이 책의 주술에 빠져들었다. 곤란할 정도로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 에드먼드 화이트 (영문학자·작가)
“이토록 파격적이면서 이렇게 잘 읽힐 수 있을까. 그야말로 순도 높은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이 책은 세상에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를, 한편으로는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 소설은 위대한 성취이다.” - [가디언]

리뷰/한줄평18

리뷰

9.4 리뷰 총점

한줄평

8.0 한줄평 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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