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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분에게 7
아버지와 아들 13 연보 133 |
Ivan Sergeevich Turgenev,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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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표현의 서정성을 담은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투르게네프는 작품을 통해 농노해방 이후 수년에 걸친 러시아의 중요한 문제들을 다룬다. 철학?윤리적 문제, 인생의 의의, 인간의 의무와 권리, 사랑과 죽음 그리고 러시아의 본질적인 역사성이 그의 작품세계를 이룬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어조와 우아한 필치, 미에 대한 섬세한 감각은 그가 시인으로서의 날카로운 감각을 아울러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방관자처럼 보이지만 내적인 정열과 주관적인 감정의 불길을 간직한 인물을 묘사함으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작품의 전반적인 객관성을 확보한다. “마차는 농장을 지나쳤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지평선은 가도 가도 벌판으로 덮여 있었다. 아르카디는 생각에 잠겼다. 찌그러진 집, 가난한 농부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농부들은 하나같이 헌 누더기를 걸치고 바짝 여윈 말을 타고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교육이었다.” 발표된 후 이처럼 논란거리가 된 작품도 드물다. 보수와 진보진영에서 찬반양론을 낳았고 보수진영의 평가도 둘로 나뉘었다. 급진적인 청년을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러시아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호평하는 한편, 그에 대한 부당한 예찬이라며 작가를 비난하기도 했다. 바자로프는 실제 투르게네프에게 강한 인상을 줬던 젊은 의사가 그 모델이며 이와 대립하는 파벨 페트로비치는 귀족적 문화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이 책을 읽는 분에게) ““그 친구는 니힐리스트예요.” “니힐리스트라니?” 니콜라이가 되물었다. 파벨은 나이프 끝에 버터를 찍으면서 말했다. “니힐리스트라면, 내가 알기로는 허무라는 뜻의 라틴어 니힐(Nihil)에서 온 말이다. 아무것도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 인간을 뜻하는 것일 테지? 아니,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파벨 페트로비치는 참견하고 빵에 버터를 마저 바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르카디가 말했다.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닌가.” “아니요, 아무래도 좋은 것은 아니지요. 니힐리스트란 어떤 원리 앞에도 굽히지 않는 인간입니다. 그 원리가 어떠한 존경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조금도 동하지 않는 인간이지요.”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 그게 좋단 말이냐?” 하고 파벨 페트로비치가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좋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나쁘겠지요.” “그래? 그렇다면 우리들과는 아주 다르구나. 구세대인 우리는 원리(파벨 페트로비치는 이 말을 프랑스식으로 부드럽게 발음했고 아르카디는 반대로 첫 음절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없이는, 이른바 네가 말하는 그 믿을 수 없는 원리 없이는 한 발짝도 걸을 수 없고 숨 쉴 수도 없다는 말이다. 참 뭐라고 했지…….” “니힐리스트요” 하고 아르카디는 똑똑하게 말했다. “그래, 전에는 헤겔학파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니힐리스트로군. 너희들이 그 공허, 진공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나갈지 두고 보겠다.”” ““배고플 때 빵 한 조각 입에 넣기 위해 무슨 논리가 필요합니까, 추상적인 논리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파벨은 두 손을 내저었다.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정말 자네를 이해할 수 없네. 자네는 러시아 국민을 모독하고 있어. 원리와 규칙을 어째서 인정할 수 없다는 건가, 난 도무지 알 수가 없군. 도대체 자넨 무엇에 의해 행동하고 있나?” “큰아버지, 제가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아요.” 아르카디가 참견했다. “우리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인정되는 것에 의해서만 행동합니다. 지금은 부정하는 것이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말인가?” “예, 모든 걸 말입니다.” “어떻게 예술이나 시뿐만 아니라 그리고 또…… 입밖에 내기도 무섭군.” “모든 것을요.”” “아르카디와 바자로프는 바스락 소리가 나는 건조되긴 했어도 아직 푸른 빛깔이 남아 있는 풀을 두 아름쯤 밑에 깔고 마른 풀더미 그림자에 누워 있었다.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야, 이곳에서 아버지가 보내는 무미건조한 생활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먹고 마시면서 가장 옳고 분별 있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고 계시니 말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 권태에 짓눌려 있는 거지. 그래서 인간은 교류하고 싶어하는 거라네. 비록 서로 헐뜯을지라도 관계 맺고 싶어하는 거야.” “그 순간순간이 의미를 갖도록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지.”” (본문 중에서) 분량이 많거나 어려운 책을 읽으면 소화가 되지 않아 체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느 시인의 문장처럼 “펼쳤다가 내려놓는 형편없는 독서”를 하게 된다. 범우다이제스트는 독자들이 문학의 향취를 물큰 느끼면서 또한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기획했다. 다이제스트(Digest)는 ‘요약’ ‘소화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요약은 자신이 소화한 내용으로 자기만의 이해의 속도를 정리하는 일이다. 다이제스트를 통해 속도와 깊이를 갖는 독서의 방식을 고민했다. 독자들과 나눌 수 있는 고민이기를 고대하며 다이제스트를 통해 작지만 단단한 독서가 가능하길. 새로운 독서와 독자의 자리를 고민했다. 조금 다르고 특별한 읽기를 통해 부정적 긍정성으로서 읽기의 효용을 생각했다. 범우다이제스트를 통한 세계문학의 복기. (편집자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