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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개는 인생의 짝꿍
오직 한 명의 말벗 검둥이와의 이별 개를 기르지 못하는 불행 개에게 배우다 개는 인간을 사랑한다 개는 주인의 병을 걱정해준다 속옷 도둑과 똥개 ‘흰둥이’와 ‘먹보’와의 나날들 글자 쓰는 개의 슬픔 먹보야, 어디에 갔니? 이상한 개의 두 집 살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고양이는 흥미로워 아시나요? 고양이 집회 기특한 고양이 아내 가엾은 암고양이의 최후 Ⅲ 원숭이는 연인 새빨간 얼굴의 원숭이는…… 원숭이의 로맨티시즘 원숭이가 나에게로 왔다 왠지 원숭이는 내게 반해버린다 원숭이와의 슬픈 추억 Ⅳ 내 전생은 너구리 당신은 여우형인가, 너구리형인가 너구리 일가 자화상: 너구리가 붙어 있는 Ⅴ 내 대신 죽은 구관조 구관조와 고독한 작가 수술 이후…… 구관조는? Ⅵ 외로운 새들 소아적 호기심 작은 새의 눈 집오리는 날씨상담새 Ⅶ 삶을 채색하는 생물 왜 판다만 인기가 있을까 말이 깔볼 때 한 마리의 송사리 바이러스는 인류의 자기조절자 벌레의 웃음소리 Ⅷ 식물도 마음이 있다 시들었을 줄기에서 나무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 생명의 온기 식물의 신비한 힘 끝내며 내세에는 사슴이 되렵니다 후기 슈사쿠 문학의 원점, 동물 _ 가토 무네야 해설 동물은 남편의 형제였다 _ 엔도 준코 연보 출처 |
Shusaku Endo,えんどう しゅうさく,遠藤 周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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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인간의 슬픔을 달래준다
양친의 사이가 차츰 나빠져 이제껏 즐거웠던 가정이 저물녘 갑작스레 해가 기운 것처럼 어두웠다. 소년이던 그때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그저 당혹스러워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버지가 상냥하게 대해주면 어머니를 배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면 아버지를 거스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마음의 고통을 상담할 수는 없었다. 말한들 또래 아이들이 이해할 리 만무했다. 학교를 가고 오는 길, 항상 내 곁을 어슬렁어슬렁 따라다니던 검둥이. 어두컴컴한 집에 들어가기 싫어 내가 언제까지나 담에 낙서를 하거나 거미집을 엿보고 있으면 그도 멈춰 서서 하품을 하거나 다리로 귀를 긁으며 기다렸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아!” 검둥이한테만은 나의 슬픔을 털어놨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그는 눈물 어린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어요.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요.” --- p.15~16 동물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한다 종종 길에서 지나가는 여자를 겁탈한 강간마를 가리켜 ‘야수 같다’거나 ‘짐승 행위’라고 하는데, 만약 하타 씨의 말이 맞는다면 동물에게 몹시 무례한 표현이지 않은가. 왜냐하면 동물 쪽이 본능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확실히 자신의 취향에 따라 사랑하는 상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정말인가요?”라고 나는 무심코 소리치고 말았다. “요사이 인간 쪽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육체관계를 맺는 것 같습니다. 동물들 사이에는 그런 일이 없나요?” “없습니다.” 여러분, 들으셨나요? 견공이건 묘공이건 간에, 너구리건 쥐건 간에 제대로 연애 감정이 생겨야 암컷에게 접근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인간 쪽이 더 엉망진창인 게 아닐까요? 정말이지 한심한 이야기네요. 하타 씨의 말에 따르면 연애 감정뿐만 아니라 암수 한 쌍으로 서식하는 너구리 같은 동물은 아내가 죽으면 슬픈 나머지 남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 쇠약해진 끝에 죽기도 한단다. --- p.27~28 세상에! 이 속옷들이 다 뭐야? 먹보 녀석은 전부터 목줄을 풀고 도주했다가 남의 집에서 헌 운동화 한 짝이나 장난감 따위를 곧잘 물고 돌아와서는 개집 옆에 숨겨두는 습성이 있었다. 때로는 그걸 코끝에 흙을 잔뜩 묻혀가며 땅에 묻어두는 이상한 버릇도. ‘그렇다면 이 녀석은 두 장의 팬티 외에 몇 장 더 물고 돌아와 땅에 묻었는지도 모른다.’ 돌연 끔찍한 불안이 급행열차처럼 전속력으로 마음속을 통과했다. 요즘 근처에서 여자 속옷을 훔치는 치한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쩌면 먹보 녀석의 짓이지 않을까. 기다려, 이 개가 탈주한 건 어제 하루뿐으로 그전까지는 목줄에 묶여 있었기에 그럴 일 없다는 모순된 생각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엇갈렸다. --- p.53~54 그러니까, 화류병입니다 나는 ‘선생’을 데리고 구마다 견묘병원을 도망치듯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이 노철학자의 풍모를 지닌 노견이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저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를 향한 나의 경애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생은 구마다 수의사의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다리를 절름거렸다. 나는 이듬해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요즘 생각한다. 조금 괴로웠던 내 마음을 그리고 납 같은 맛이 나던 매일의 생활을 개들이 위로해줬음을. 지금 집에서는 한 마리의 개, 한 마리의 고양이, 열두 마리의 작은 새, 스물네 마리의 금붕어를 기르고 있다. --- p.92~93 원숭이에게 사랑받는 남자 그날부터였다. 자주 그 원숭이를 찾아간 것이. 별다른 목적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오는 도중에 산 햄 끼운 빵을 반으로 나눠 하나는 내가 먹고 나머지 하나는 원숭이에게 줄 뿐이었다. 나는 쓸쓸했다. 쓸쓸한 내 눈에 친구도 없는 한 마리의 원숭이가 나처럼 고독하게 비쳤다. “너도 춥지?” 그가 빵을 베어 먹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몇 번이나 보러 가는 사이 그 원숭이는 점점 내가 다가가면 입술을 세차게 떨었다. 위협하는 건 아니고 무언가 호소하듯이 입술을 떨어댔다. 하지만 그가 무얼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p.130 어이, 진짜로 신은 있는 걸까? 한밤중 조용한 병실 안에 깨어 있는 것은 나와 그뿐. 구관조가 새장 속에서 떠듬떠듬하는 말과 소리가 들린다. “아아, 아아…….” 돌연 예의 그 소리가 나기도 한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생각했다. 다이쇼 시대의 고독한 작가라면 자신에게 일어난 자못 인생의 한 토막 같은 이 한 장면을 이삼십 매짜리 단편으로 쓸 텐데. 최후 결말은 노인이 죽은 뒤 구관조가 “아아, 아아”라고 인간의 말을 중얼거리는 한 줄로 마무리하겠지. 진짜 그럴 것만 같아 킬킬거렸다. 그 작품이 고독하고 번뇌하는 인생을 그린다면 정말이지 기가 막히리라. 자, 그렇다면 앞으로 어찌 될까. 나는 구관조에게 말했다. “예의 ‘아아, 아아’로 끝나지는 않겠지? 그 뒤로 ‘시작’이 기다릴 거야!” --- p.152 바이러스는 인류의 자기조절자 이 지구에서 천연두가 사라진 그해, 바이러스 환자가 나왔다. 요컨대 인류에게 타격을 주는 하나의 바이러스 질병이 지구에서 소멸하기가 무섭게 이제껏 발견되지 않은 인류에게 해로운 질병이 새로 출현한 셈이다. “이유는 전혀 모릅니다. 하느님이 하신 일일까요?” 그 학자는 웃으며 말했다. “하느님은 하느님이라도 그리스도교 신자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아니고, 정의와 사마 양쪽을 겸비하신 인도의 시바 신 같은 존재겠죠.” 나도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어쩌면 지구의 자기방어 작용일지도 몰라요.” --- p.185~186 식물과의 신비한 대화 매일 아침, 작은 옥상 정원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것이 일과 가운데 하나다. “그대여,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게나.” 이 말을 건네며 물을 주면 어쩐지 잘 자란다. 꽃 좋아하는 한 노부인에게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쏘냐 하는 기분이 마음 어딘가에서 작동했다. 하지만 시험해보니 진짜인 듯하다. 식물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걸까. 한 신문에 이 일을 썼더니 몇 명의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저도 화분에 물을 줄 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아무런 말 없이 줄 때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나와 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 p.198~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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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첫 마음, 첫 이별 “검둥이만은 내 외로움을 알아줬어”
엔도 슈사쿠의 동물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 마리 개와 만나면서 시작된다. 어렸을 때 중국 다롄에서 기른 만주견 ‘검둥이’. 아이에게도 부모한테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공부도 못하고 느릿느릿한 아이에게는 말론 표현할 수 없는 고민이나 슬픔이 있다. 소년 엔도 슈사쿠는 자주 검둥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집에 돌아가기 싫어”, “학교는 재미없어” 같은. 그러면 검둥이는 소년을 잠자코 바라봤다. 눈물이 맺힌 듯한 눈을 하고서. “어쩔 수 없잖아요? 이 세상은 참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엔도 슈사쿠는 말한다. 소년 소녀 시절, 부모나 형제 말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상대는 그와 그녀의 개라고. 그에게 첫 이별을 알려준 이도 검둥이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작별 인사도 변변히 못 한 채 검둥이와 헤어진 것에 대한 속죄의 마음은 엔도 슈사쿠 문학의 중요한 원점 가운데 하나다. 마구 똥을 싸고 속옷을 물어 와도 개를 향한 사랑은 멈추지 않으리 첫 개 검둥이 이후 엔도 슈사쿠는 우유 가게에서 끊어질 듯 꼬리를 흔들어대던 눈곱투성이의 잡종 강아지 ‘흰둥이’, 작가 친구한테 받은 혈통서 붙은 시바견 수컷 꼬맹이 ‘먹보’, 어느 날 집에 들어온 마치 단안경을 쓴 듯한 기묘한 얼굴의 들개 ‘선생’ 등 여러 종류의 개를 길렀다. 그만큼 이 책에는 개와 얽힌 추억담이 가득하다. 한 커피 브랜드 광고에 그와 함께 출연해 인격이 아닌 견격의 훌륭함으로 일본인을 홀딱 사로잡은 흰둥이와의 나날은 가슴 따뜻한 감동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또 무뚝뚝한 얼굴로 집에서 탈주해 밤놀이를 즐기거나 어딘가에서 여자 속옷을 주워 물고 돌아오거나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보는 등 늘 말썽을 피우던 먹보와의 나날은 요절복통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개가 폐를 끼친다고 해도 선천적으로 동물을 좋아하던 그는 개를 기르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심지어 죽는 순간, 그들의 눈동자가 생각나리라고 고백한다. 동물은 그냥 동물이 아니야, 인간을 멀리서 지켜주는 존재의 투영이야 소년의 ‘말벗’으로서의 개. 이 구도는 다른 동물의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그에게 반해버린 프랑스 리옹에서 만난 원숭이 이야기도, 대수술을 받은 자신을 대신해 죽은 구관조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언제나 엔도 슈사쿠의 말벗이자 이해자이자 인생의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친구였다. 말을 하지 못하는 만큼 한층 더 사랑스러웠고 세심하지도 못한 주제에 남의 일에 곧잘 참견하는 꺼림칙한 생물보단 훨씬 마음 편한 동반자였다. 기르던 십자매 한 마리가 병에 걸려 자신의 손 안에서 숨을 거둘 때, 엔도 슈사쿠는 십자매의 눈을 보며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의 눈을 떠올린다. 동료가 모두 죽고 한 마리만 살아남은 송사리를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느낀다. 그에게 있어 개나 작은 새, 너구리는 그저 동물이 아니었다. 인간을 감싸고 또 인간을 멀리서 지켜주는 존재의 작은 투영이었다. “그대여, 건강하게 자라주게나” 동물과 식물에게 사랑받는 법 엔도 슈사쿠는 동물은 물론 식물을 접할 때도 저마다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애썼다. 글쟁이 특유의 관찰 버릇과 소아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모든 자연을 궁금해했다. 삼각이나 사각이 아닌 둥근 둥지를 만드는 지혜를 어치는 어디에서 얻는 걸까, 꽃은 왜 아름다운 색과 향을 만들어내는 걸까, 왜 뱀이나 두꺼비는 디즈니에게 외면당할까, 동물이 그렇듯 식물도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걸까 등등. 그는 동물과 인간, 식물과 인간 사이에는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공통 리듬이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생물을 에워싼 생명의 세계에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공통 리듬이 있어 식물도 동물도 본능적으로 반응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매일 식물에게 말을 걸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렴.” 상냥한 말을 물뿌리개에 담긴 물과 함께 받은 꽃이 한층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기대하면서. 전생은 비둘기, 다음 생에는 사슴. 다시 태어나서 뵙겠습니다 종교와 인간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다룬 소설과 달리 엔도 슈사쿠의 에세이는 그답지 않다고 느낄 만큼 가볍고 느긋하며 엉뚱하고 유머러스하다. “그와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얼토당토아니한 농담으로 가득했다. 그가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내일 전화해달라고 하길래 다음 날 전화했더니 가스 영업소였다.” 「마루코는 아홉 살」의 원작자 사쿠라 모모코가 자신의 글에다 썼듯 엔도 슈사쿠는 원래 유쾌하고 재치 있는 입담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이 책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기르던 개가 새끼 고양이를 잘 보살피자 “저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길지도 몰라. 그러면 ‘야멍’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한바탕 돈을 벌어야지. 놀면서도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거야”라고 이야기하거나 판다의 교미를 적나라하게 보도하는 방송을 보고 “판다의 사생활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자”고 술자리에서 한바탕 연설을 늘어놓는다. 그 절정은 인도에 갔다가 세계 제일이라고 자칭하는 점술가로부터 “내세에 사슴으로 태어난다”는 말을 들은 뒤 만약 훗날 나라공원에서 사슴이 된 자신을 만난다면 사슴 전병을 많이 던져달라고 독자에게 부탁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