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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독도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8
독도시론|미국지명위원회가 일으킨 파문·10 2008년 7월의 독도사태·17 / 국제사회는 왜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는가·18 / 우리나라 독도외교의 현주소·20 / 일본의 전략: 물밑에서 그러나 집요하게·22 / 샌프란시스코조약과 리앙쿠르 암·23 / 붕괴되는 일본의 주장·27 / 적확한 논리와 활발한 홍보 필요·33 / 일본은 왜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우기는가 ·34 / 갈등을 풀 열쇠는 무엇인가 ·37 / 그들이 미워도 그들을 알아야 이긴다·39 / 진정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모색하며·42 제1장 어느 나라가 독도를 영토로 삼았나 ·46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시켰을 때의 삼국과 일본·47 / 나무로 만든 사자로 우산국을 복속시킨 이사부·51 /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왕래했을까 ·54 / 한일관계사로 본 삼국시대 이후의 울릉도와 우산도·56 ▶ 고대 왜의 군사력·68 제2장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울릉도와 독도·74 고려시대의 울릉도와 우산도·75 / 고려말 울릉도에 들른 왜구·83 / 조선과 수교한 일본·88 / 울릉도 공도정책을 추진한 태종·94 / 쇄환정책을 실천에 옮긴 김인우의 활약·98 / 대마도를 공격한 세종대왕·106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난 우산과 무릉·108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우산과 무릉·110 ▶ 왜구의 정체성·114 제3장 요도, 삼봉도 수색과 『신증동국여지승람』·118 실패로 돌아간 요도 수색작업·119 / 성종 때 벌어진 삼봉도 수색작업·122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우산도와 울릉도·126 /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말까지의 조선과 일본·135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140 제4장 에도막부와 울릉도 도해면허·142 울릉도(다케시마) 도해면허·145 / 조선의 무인도에 도해를 허가한 도해면허·152 / 에도막부와 돗토리번의 유착관계·158 / 독도(마쓰시마) 도해면허와 두 섬으로의 도해·162 /『은주시청합기』·164 ▶ 다케시마와 마쓰시마·174 제5장 울릉도 쟁계·178 사건의 발단·179 / 집권세력이 바뀐 조선 조정·184 / 조선 조정과 귤진중이 벌인 논쟁·190 / 180년 만에 울릉도 등지에 파견된 장한상·194 / 에도막부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조사하다·198 / 에도막부, 울릉도 도해를 금지시키다·204 ▶ 조선과 일본의 대 대마도 관계·211 제6장 안용복의 제2차 도일과 울릉도 쟁계 종언·214 안용복, 울릉도에서 다시 일본어민들을 만나다·215 / 안용복의 제1차 도일과 당시의 일본·217 / 요나고와 돗토리성의 안용복·219 / 안용복이 제2차 도일을 감행한 동기·221 / 일본어민들을 쫓아간 안용복·223 / 1696년 오키 섬에 표착한 안용복·226 / 제2차 도일을 통해 돗토리번으로 간 안용복·236 / 돗토리성에 체류한 안용복·238 / 대마도주의 아버지 소 요시자네와 안용복·242 / 안용복에 대한 조선 조정의 평가·245 / 1693년 에도막부는 조선인의 울릉도 출어금지를 요청했다·248 / 울릉도 도해금지령과 안용복·250 / 안용복 사건의 쟁점·252 / 울릉도 쟁계의 종언·253 ▶ 울릉도 쟁계의 종언을 고한 소 요시자네의 답서와 구상지각·257 제7장 울릉도 쟁계 이후의 울릉도와 독도·264 조선 조정의 울릉도 등지 수토·264 / 우산도가 현재의 독도임을 보여 주는 조선의 지도들·268 /『동국문헌비고』에 나타난 독도·270 / 일본의 왜곡된 논리·273 /『만기요람』의 우산도·278 / 하치에몽, 울릉도로 도해했다가 사형당하다·279 ▶ 에도막부 말에 울릉도를 노린 초슈번·284 제8장 울릉도 쟁계 이후의 일본지도·288 울릉도 쟁계 이후의 관찬 일본지도·288 / 에도시대의 중요한 민간지도들·298 ▶ 고대로부터 근세까지의 지도제작 방법과 역사성·306 [부록|독도정책에 관한 제안] 독도 문제에 관한 국민의 이해도 제고 및 일체감 조성·310 참고문헌·317 찾아보기·318 |
Yuji Hosaka,ほさか ゆうじ,保坂 祐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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