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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함께 산다
시설 밖으로 나온 장애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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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기획의 말 시설의 존재 이유를 질문하지 않는 사회 | 7
기록의 말 그다음을 사는 일 | 11

1부 시설 밖에서 삶을 펼치다 | 21

이 부부가 사는 법 _ 이상분, 유정우 | 23
후일담 1 이 여자가 사는 법 | 48
후일담 2 이 남자가 사는 법 | 59

오늘이라는 날짜는 다신 안 와 _ 김범순 | 69
후일담 김범순이라는 아포리즘 | 93

나의 투쟁기 _ 신경수 | 97
후일담 사람에게 무슨 등급이에요? | 126

나는 최 영 은,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인간일 뿐입니다 _ 최영은 | 129
후일담 왜 고깃덩어리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 149

세상에는 세잎클로버가 더 많아요 _ 김진석 | 155
후일담 근데 아직 미완성이에요 | 182

2부 다시, 세상과 마주하는 방법 | 185

자부와 거부 사이, 그 어디쯤 _ 홍윤주 | 187
후일담 마땅히 물어야 할 것들 | 208

아무도 내한테 알려주지 않았어요 _ 정하상 | 213
후일담 외로운 이의 옷깃에 묻은 머리카락 한 올을 어찌할 것인가 | 228

너라면 안 그러겠어? _ 김은정 | 231
후일담 더 아픈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한다 | 257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_ 남수진 | 259
후일담 연습하면 돼~ | 285

내가 떠나지 않는 이유 _ 이종강 | 287
후일담 맑고 깊은 물 | 316

‘탈시설 자립 생활 운동’ 함께 알기 | 320

추천사 초대를 받았다 _ 고병권 | 323
이야기를 들을 준비 _ 장혜영 | 328

저자 소개 3

구술기록 노동자.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숫자가 된 사람들》을 공동 작업했다. 이 일을 기점으로 종교와 자선, 복지의 아주 위험한 결합체인 시설 사업의 역사를 추적하던 중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을 통해 ‘탈시설’과 ‘자립 생활’, 그리고 ‘상분, 정우, 범순, 경수, 진석, 영은, 윤주, 하상, 은정, 수진, 종강’ 님을 만났다.

사진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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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다. ‘사람’이라는 끝없는 주제를 고민한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담은 사진집 《외박》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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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관심작가 알림신청
 
2005년 설립된 한국사회 최초의 장애인 탈시설운동 NGO로,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왜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사회복지법인의 인권침해와 각종 비리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고, 그와 더불어 탈시설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왔다.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이 탈시설해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나아가 더 이상 시설로 보내지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www.footac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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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414g | 135*210*30mm
ISBN13
9791187373384

책 속으로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 울타리를 넘어 시설의 존재 이유를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 균열을 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눈감았던 시설 수용의 역사를, 삶에 필요한 자극을 모두 차단한 ‘안전’이 결코 ‘안전’하지 않았음을 고발합니다.” --- p.8~9쪽, 기획의 말

“그러고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은 어쩌면 ‘그다음을 사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업적을 이루었든, 어떤 과오를 저질렀든,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그다음을 어찌 살아내느냐가 실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정체성일지 몰라요. 우리의 탈시설은 아직 지난한 과정 중에 있고, 그래서 우리는 진행형의 사람들입니다.” --- p.18쪽, 기록의 말

“정우가 노래해줬어. 춤도 추고. 그럼 난 전화했어. 난 3층에 살고 정우는 4층에 살았어. 밤이 되면 볼 수 없으니까 전화를 했어. 3층에 세탁기 있는 데에 난로가 있는데, 거기 기름 넣으러 정우가 와서 노래 불러줬어. 정우가 날 살렸어.” 32~34쪽, 이상분

“술은 마시고 싶어요. 술을 아예 못 마시게 했으니까요. 지금은, 그냥, 네 맞아요. 그거예요.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자유를 누리고 싶어요. 많이 안 마실게요. 뭐라고만 하지 마세요. 네?” --- p. 39~40쪽, 유정우

“시설에선 까라지는 게 있어. 의욕이 없어지지. 말하자면 지금 사는 데랑 한동네인 거잖아? 그런데도 거기선 이런 활동들을 알지도 못했어. 시설이 지역사회 안에 있으면 뭐해? 지역사회랑 사람들이랑 왕래를 안 하면 여전히 고립된 거지. 그러니 사람들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 p.79쪽~80쪽, 김범순

“지금 시설 문제가 뭔지 아세요? 폭력. 죽이고 때리고…… 앞으로 폭력이 허용 안 되게 나라가 바뀌어야 해요. 어떻게? 시설 지원이 아니라 자립 생활 지원을 강화하는 걸로요. 시설 폭력을 막는 방법은 무조건 시설 수용 반대하는 것뿐이에요. 돈 없다고 하지 말고 시설 예산을 가지고 자립 지원을 하면 돼요. 국가가 나설 의지가 있어야 해요.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 p.122쪽, 신경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과를 수행해야 하는 시스템은 관리나 심하게 말하면 사육에 가까운 거죠. 자립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내 공간이 생기고, 또 내가 내 의지대로 계획해서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친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져요.” --- p.139쪽, 최영은

“네잎클로버는 꼭 완벽을 추구하는 것 같잖아요. 흔하지도 않고. 네잎클로버가 각광을 받으니까 세잎클로버는 꼭 한 가지가 빠진 것 같지만, 세상에는 그런 세잎클로버가 더 많아요. 사람들이 쉽게 소홀히 여기는 것들의 가치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완벽한 게 아니라 한 가지가 빠졌다 싶은 것도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도우며 사는 거죠.” --- p.179~180쪽, 김진석

“시설에서 나와서 제일 좋은 거는, 음…… 친구들, 고등학교 동창들 맘대로 만날 수 있는 거요.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거요. 어려웠던 거는, 별로 없는데? 아, 이런 건 있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장애인 놓고 비교하는 거. 그거 진짜 싫어요. ‘너는 말도 잘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면서 왜 다녀?’ 이렇게 묻는 거요.” --- p.202쪽, 홍윤주

“내는 제일 불만인 게, 화장실 면적, 그라니께네 장애인 이용 가능 공간이 더 커져야 한다고. 화장실도 마음 편히 못 가면 그건 차별이지. 우리는 똑같은 국민이야.”--- p.226쪽, 정하상

“나 한다고 그랬어. 나간다고. 언제까지 시설에서 살 순 없잖아? 응? 너라면 안 그러겠어? 그건 싫었어. 전부터 그건 싫었어. 너라면 안 그러겠어?” --- p.243쪽, 김은정

“나는, 나는, 이 이사가 다가올수록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 내가 나온다고 했는데, 내가 나오겠다고 한 건데, 그래도 난 (사회가) 처음이잖아. 그래서 심장이 막 떨리고, 밤에 잠도 안 오고, 응~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 --- p.266쪽, 남수진

“시설은 말입니다. 마땅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서 누리는 사람은 누려도, 그걸 미처 모르는 사람한테까지 굳이 찾아다주지는 않습니다. 내가 여기서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비록 저 모퉁이의 돌멩이 하나로 굳어진 나이지만, 모든 걸 지켜보았잖아요? 또 (발바닥 통해서) 알게 되었잖아요? 그런 것을 아직 모르는 여기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함께 있으면서 알게 해주고 싶어요.”

--- p.300~301

출판사 리뷰

시설의 존재 이유를 질문하지 않는 사회

시설을 나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택한 이들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은 단연 시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탈시설을 경험하기 전에 시설을 경험했다. 이들이 시설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시설은 과거 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으로 주어졌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장애인들이 여전히 시설을 강요받고 있다. 사회는 그들을 버거운 짐짝 혹은 무력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래서 마치 언제나 타인의 돌봄과 동정, 시혜만을 필요로 한다는 듯 대한다. 시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애인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에게 끊임없이 받기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함께 살기보다는 격리된 채 돌봐져야만 한다고. 시설만이 해답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유효한 세상이다. 하지만 정작 시설에서 살아온 당사자들이 시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곳에서의 삶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 삶의 한평생 혹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시설에서 보낸 이들은 시설이라는 공간을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또한 그곳에서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시설에서의 삶은 이들의 탈시설과 자립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인터뷰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시설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심지어는 사람이 죽어도 알 수 없는 곳(이상분)이다. 또 다른 이들은 내 마음대로 씻을 자유조차 없는 곳(신경수),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해서 무연고자들이 훨씬 더 심한 차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곳(김진석), 주말에 봉사 오는 사람들과 억지로 웃으며 사진을 찍어야 하는 곳(홍윤주)으로 시설을 기억한다. 이들의 발화를 통해 우리는 시설이 어떤 공간인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사회에는 꽤나 다양한 형태의 시설이 존재한다.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시설, 사회복지 재단, 요양 시설 등 저마다 성격과 운영 방식이 다른 시설들이 ‘산 좋고 물 좋은’ 전국 각지에 포진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열한 명의 인터뷰이들 역시 각기 다른 시설에서 살아왔고, 상이한 시설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시설 경험에는 상이하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부터 자기 삶에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까지 모든 일을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할 수 없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시설에서 이들은 생각과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아서 다른 누군가가 멋대로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대상쯤으로 여겨졌다. 한마디로, 이들은 시설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당했다.

“자유와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세상으로

그것은 결코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장애를 가진 어떤 사람이 스스로 시설을 선택했다고 이야기하는 순간조차 그 선택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비장애인을 위해서 설계된 사회, 그래서 장애인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과연 선택이라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일까? 사회는 턱없이 부족한 지원으로 장애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가족들에게 떠넘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단 하나, 시설이다. 시설은 장애인의 다른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고려해 사회를 디자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버리고, 그 일을 한 일가족의 영역에 한정해버린 결과다. 가족도 지치고 쓰러지게 되면 그때 이들은 시설로 보내진다. 가족과 나를 위해 시설을 선택했다지만 이것은 결코 선택이 아니다. 선택지가 단 하나밖에 없고 모두가 그걸 가리키는 상황을 체념한 것뿐.

이 책의 인터뷰이들 중 그 누구도 시설을 선택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설로 ‘보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시설에서 살지 않기로 한다. 누구는 시설에서 먼저 나간 친구나 연인을 통해, 누구는 장애인 야학이나 탈시설을 돕는 단체에서 만난 활동가를 통해, 누구는 체험홈(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 장애인 가운데 지역사회로의 이주를 희망하고 생활 능력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한해 일상생활과 사회 활동 등에 대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의 경험을 통해, 또 누구는 거주하는 시설의 운영 비리와 폭행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기회를 잡아 탈시설을 감행했다.

이 일련의 과정은 탈시설의 문제가 결국 고립을 깨고 지역사회의 사람들과 꾸준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역량과 직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설에서 사는 것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고, 당신에겐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인연의 끈이야말로 시설의 근거를 질문하고 탈시설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실어주었다.

나에겐 함께할 자유가 있다

그렇다면 탈시설 이후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발바닥행동’과 작가 서중원이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세심하게 다루고자 한 부분이 바로 이들의 ‘일상생활’이다. 1년에 걸친 밀착 인터뷰를 통해 《나, 함께 산다》는 이들의 달라진 삶을 기록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시설을 나온 이후 삶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 일상에서 어떤 변화들과 마주하고 있는지, 인터뷰이들은 자기 나름의 언어로 들려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이들 역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의 무게중심을 잡고 있었다. 시설에서부터 사랑을 키워오다가 탈시설 이후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신혼생활을 만끽하고 이들도 있고, 지역사회로 나와 이웃들을 살뜰히 챙기고 정을 나누는 이, 시설에서 자행되는 폭력 및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지원하기는커녕 시설 예산만을 확충하고 있는 국가와 맞서 투쟁하고 있는 이, 자신의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활동가들과 함께 오랜 기간 탈시설을 준비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제약들로 끝내 시설을 나가지 못한 이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시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눈 뜨게 된 탈시설이라는 세상에 대해 시설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폐쇄된 환경에서 정보가 부족해 알지 못하는 인간의 권리를 시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 그는 ‘아직’ 시설에 살고 있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바로 그곳에서 시설 너머의 세상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이 역시 탈시설의 한 방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설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떠나 이들이 얻은 것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이다. 집단 생활 속에서 늘 타인과 함께였지만, 정작 사람 대 사람으로서 관계 맺고 살아갈 기회는 한 번도 가질 수 없었던 이들에게 탈시설은 자신이 원할 때 스스로의 의지로 가족, 친구, 연인 혹은 낯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탈시설 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물리적으로는 시설을 벗어났다고 해도, 세상으로 나온 장애인들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세상으로 나왔다는 사실과 그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사이에는 아직 큰 간극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이 원만한 자립 생활을 꾸려가기에 세상은 여전히 ‘시설’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버스를 타자!’라는 외침으로 시작된 이동권 투쟁이 지속된 지 어언 20년, ‘탈시설 자립 생활 운동’이 촉발된 지 10년 정도가 지났지만, 사회는 여전히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무탈하게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일상생활의 다양한 편의를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의 개선은 진중하게 고려된 적이 없다.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벌일 때 나타나는 가장 지배적인 반응은 지금도 “저 사람들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탈시설의 현주소이자 이들이 살아내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 누구보다 탈시설을 희망했지만, 온갖 합병증에 시달리는 중증장애의 몸 때문에 끝내 시설을 나오지 않기로 선택한 인터뷰이 이종강 씨의 이야기는 특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행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와 같은 중증장애인들은 시설을 나오더라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24시간의 활동보조 서비스, 최저생계를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수급 지원, 의료지원 체계와 같은 영역이 확충되지 않은 상태에서 탈시설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따라서 탈시설은 결국 시설을 나오는 것 그 이상을 요구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시설이 아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공간을 요청하는 운동으로서 탈시설은 자립 생활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이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그 몸으로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냐는 의심이 아니라,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라는 질문을 말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질문하는 순간,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낙인은 효력을 상실한다. 그 빈 자리를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함께 살아갈 사회구성원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이상분, 유정우, 김범순, 신경수, 최영은, 김진석, 홍윤주, 정하상, 김은정, 남수진, 이종강이라는 열한 명의 인터뷰이들은 지금 막 우리에게 초대장을 보내왔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 초대받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추천평

“이 책에서 발견하고 너무나 기뻤던 단어 하나를 적어두고자 한다. 시설이 끝나는 곳에서만 가능한 말, ‘초대’이다. 내 삶이 없는 곳에서는 초대가 불가능하다. 초대란 당신을 나의 공간, 나의 시간, 나의 식탁에 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초대란 내게 마련된 당신의 자리이다. 당신에 대한 유혹이자 당신을 맞는 준비이며,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근사한 열망이다. 그런데 이 책에 초대가 있다. 아니, 이 책 전체가 초대이다. 이제야 시설이 끝나가나보다. 이 책, 시설의 끝을 예고하는 초대장이 날아왔으므로!” -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오직 시설에서 몸으로서 살아가는 삶만이 허용되었던 사람들이 사회로 나올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듣는 귀이다. 더듬더듬 이어지는 이야기를 차분히 듣는 귀 말이다. 효율의 안경을 벗어던지면 단어 하나하나가 새롭고 귀중하게 들려온다. 경청의 힘은 놀랍다. 말하는 사람을 자꾸자꾸 말하게 하니 말이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두근거리는 일인가. 기록자의 ‘듣고 싶다’는 마음과 구술자의 ‘말하고 싶다’는 마음이 만나 만들어진 문장들에는 새로움이 가득하다. 새로움을 빚어내는 것은 망설임이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남의 삶을 청해 듣는 사람의 망설임, 얼굴 모르는 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망설임. 진심 어린 망설임의 순간들이 가만가만 이야기를 침묵 너머에서 데려온다.“ - 장혜영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감독 & 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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