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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을 대신하여_5 1부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_11 석유를 사러_13 축구 선수_18 방_20 지하 인간_23 쉬인_24 삼중당 문고_28 게릴라_33 물에 빠진 자가 쩌벅거리며 걸을 때_34 나는_38 12월_40 자수_42 역도 선수_44 열등생_46 2부 도망_49 그녀_50 냉장고_53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_54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구인_55 첫사랑_56 옛날이야기_58 헤드폰을 쓴 남자_60 냉장고_62 사랑 靑_63 보리밭에서_64 호두 한 알_67 젊은 운전자에게_68 3부 햄버거 먹는 남자_73 요리사와 단식가_75 ‘중앙’과 나_78 계산대에서_80 미끄럼_82 바지 입은 여자_84 탬버린 치는 남자_85 체포_86 파리_88 목욕_89 유리의 집_90 Job 뉴스_91 파랑새_92 4부 원고청탁서를 받고_95 구두_96 모자_97 자서전_98 주목을 받다_99 생선 씻는 여자_100 허공_101 꿀맛_102 길목집_103 아이들은 또다시 놀이를 한다_104 소똥의 길_106 문밖에 서성이는 자_108 길_110 사철나무 그늘 아래의 잠_112 장정일 자선시집 출전_113 |
蔣正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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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부분 ‘80년대 우리 문학교실의 뿌연 유리창 하나가 박살나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 문학장을 충격했던 시적 낯섦 “최루탄 정국 때문에 안팎으로 닫힌 80년대 우리 문학교실의 뿌연 유리창 하나가 박살나는 소[리]”이자 ‘한국 문학에 대한 생각을 새로 점검하게 만든 거대한 망치’(이영준)로 도착한 문제적 시인 장정일. 그의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발랄한 상상력과 현실에 대한 개성적인 접근, 일반적인 시적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대담함’이 담겼다는 평을 받으며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제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해 한국 시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문학에 뛰어든 독특한 이력의 장정일은 당대에 형성돼 있던 주류 문법과는 전혀 다른 시적 문법과 과격성으로 한국 문학장에 충격할 만한 시적 낯섦을 제공했다(신철하). 장정일은 정치적 탄압에 저항하는 일련의 시쓰기와 대별되는 자기반성적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문학적 주제로 부상한 도시인들의 삶과 감수성을 유희적이고 새로운 시 형식에 담아냈으며(이승철), 그의 자기모멸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시쓰기, 자기부정의 글쓰기는 독자들에게 ‘비닐봉지에 포장된 [시적 감동]’(이영준)을 주는 대신 요설의 언어로 기존의 시와 독자의 시적 기대를 배반하면서 언어를 타락시킨 세계에 대해 복수의 형식을 취했다(박기수). 전통적인 시 개념을 해체하면서 시쓰기의 자유로움을 구사하는(이연승) 그의 낯선 시는 80년대의 한복판을 힘들여 통과해온 사람들에게는 지난 시대의 진정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난폭함(서영채)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심한 듯 서술한 일상의 모습과 서술기법 속에는 당대에 대한 누구보다도 예리한 인식과 새로움이 있었다(김미미). 그만의 “희귀한 개성”으로 ‘위반과 금지’라는 현대인의 암흑지대에 과감하고 깊숙이 접근해감으로써 다른 이가 대신할 수 없는 성과를 올릴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기대되었던(남진우) 장정일. 그의 등장은 그 자체로 80년대 ‘중앙’을 해체하며 90년대의 인식론적·미학적 지평이 초기화됨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으며 새롭게 이식된 ‘도시-소비 공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하는 ‘약속 없는 세대’에게 호소력 있는 하나의 예지이자 암시가 되어주었다. 시인은 개방과 자유로 가장된 합법적 권력의 작동방식인 사회적 계약이나 제도가 실은 법을 빙자한 폭력 집행의 수단임을 폭로한다(엄경희). 장정일에게 시쓰기란 과연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다시 그를 읽는 이유 장정일의 시들은 시를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던 젊은 날의 몇 해 동안 집중적으로 씌어졌다. ‘글쓰기가 직업이 아니라면 나는 구역질이 난다’고 쓴 바 있는 장정일. 그에게 시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희곡과 소설로 분야를 옮긴 뒤 시작詩作을 중단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훌륭한 시라도 실용적인 가치와는 무관하고 시인은 실질적인 세계를 변혁시킬 수 없는 듯 보이는 이 세계에서 장정일은 작가이자 또 한 사람의 독자로서 시쓰기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이연승). 김준오가 지적한 바 있듯 장정일은 세상의 모든 시집이 유고시집이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집’은 유통가치가 전연 없는, 그래서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받아야 하는 천덕꾸러기라고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쓰기가 시인을 ‘천사와 같은 위대한 반열에 끼워넣어주지 않는다는 것도, 그 자체로 위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시인의 말 「강정 간다」를 쓸 무렵, 『천국에 못 가는 이유』). 시쓰기란 “바닥이 없”는 “온통 벽뿐”인 방(「허공」)에 울리는 “단지,// 지루하리만큼 긴 비명”(「주목을 받다」)이거나 대화 불능의 말줄임표(「햄버거 먹는 남자」)를 기입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쓰지 않는 성실함이라는 역설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장정일의 시쓰기에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이번에 자선시집을 새롭게 묶어내며 편집부가 했던 고민은 오늘날 달라진 의미지형 위에서 장정일의 시적 목소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였다. 그의 새로웠던 목소리 중 어떤 시들이 앞으로도 하나의 표지標識로 빛을 비춰줄 것인가, 시에 쓸모를 바라는 일만큼 어리석은 마음이 있으랴만은 그 가능한 테두리를 나름으로 상상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꼴을 그려보는 일이기도 했다. 한 사회의 가치관은 물과 같이 흐르며 그 변화할 한치 앞을 알기 어렵지만 더 나은 곳이 되도록 희망할 공통의 방향은 있을 것이다. 이 한 권의 시집은 어쩌면 그 다가올 변화의 목격자로서 생각보다 오래 책장에 꽂혀 있게 될지도 모른다. 책을 마무리하고 세상에 내보내는 지금은 장정일이라는 시인이 갖는 의미, 이 60년산 세대의 목소리가 오늘날 다시 어떻게 기록되고 불릴 것인지 조심스러운 기대를 갖게 된다. 어떤 목소리는 세상에 너무 일찍 도착한다. 우리의 시대는 앞으로 가는 듯 한 걸음 물러나며 무언가를 재고 평가하지만 그 검열의 시선에 머리를 쥐어박히는 ‘열등생’이 하나쯤은 세상에 있었을 것이다. 시집을 읽어도 좋은 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적어놓기로 한다. 시를 쓰고 있는 현역 시인들은 시집을 읽어야 한다. 당연히 그들의 연구자들도 시집을 읽어야 한다. 앞으로 시를 쓰려는 사람들도 시집을 읽어야 한다. 그 외의 사람들은 시집 같은 걸 읽을 필요가 없다. 시인이란 뭔가? 시인이란 시를 쓰기 위해 젊어서부터 무작정 시집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 가운데 생겨났으며, 시인이 된 뒤에도 시인이 되기 전과 똑같은 열정으로 시집을 읽어대는 사람이다. 스님이 그냥 스님이듯 시인은 그냥 시인이다. 제 좋아서 하는 일이니 굳이 존경할 필요도 없고 귀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시나 모국어의 순교자가 아니라, 단지 인생을 잘못 산 인간들일 뿐이다. ─「시인의 말을 대신하여」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