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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0계명 십계명, 은혜의 상징
제 1계명 코람데오의 진기(盡己) 제 2계명 네 구미에 맞게 하나님을 만들지 말라 제 3계명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 제 4계명 ‘주일은 놉니다’, 주님과 함께 제 5계명 부모 십일조 제 6계명 기죽이는 것도 살인이다 제 7계명 내 몸과 내 가정만 지켜도! 제 8계명 내 것이라고 모두 내 것일까? 제 9계명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혀 제 10계명 스스로 욕심을 거두는 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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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구약을 ‘율법’으로, 신약을 ‘복음’으로 구분합니다. 즉, 구약은 ‘율법 종교’, 신약은 ‘복음 종교’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구약은 ‘율법 신앙’을, 신약은 ‘복음 신앙’을 말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고, 신약에서는 복음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에 구원받은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종교도 ‘은혜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구원을 얻기 위한 방편, 즉 ‘구원법’(救援法)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한 방편, 즉 ‘성민법’(聖民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을 주신 이유는, 그들이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할 태도와 행실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 제 0계명, ‘십계명, 은혜의 상징’ 농경 생활을 막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은 그동안 섬겨 왔던 여호와 하나님과 농사를 주관한다는 바알 신을 함께 섬기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신앙을 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신을 받아들여 양쪽을 모두 섬기는 이러한 신앙을 가리켜 우리는 ‘종교혼합주의’(Syncretism)이라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러한 종교혼합주의는 매우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전통적인 신 여호와께 도리를 다하는 동시에, 새로운 신 바알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혼합주의는 삶의 풍요와 안정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대부분 여호와와 바알을 모두 섬기고 있었습니다. --- 제 1계명, 코람데오의 진기 주일은 인간이 스스로 자존(自存)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영원한 피조물로 창조주 앞에 겸손하게 서는 날입니다. 우리의 삶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제각각 열심히 노력하고 살지만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 서야 하는 영원한 피조물입니다. 창조주 앞에 자신을 겸손하게 세우는 것! 이것이 바로 안식하는 날입니다. 따라서 주일은 하던 일을 중지하고 노는 날입니다. 주일은 놉니다, 주님과 함께. --- 제 4계명, ‘주일은 놉니다’, 주님과 함께 제 5계명에 해당되는 사람은 부모님의 권위와 통제 아래 놓여 있는 어린 자녀가 아닙니다. 이 계명의 대상은 더 이상 부모의 통제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모든 면에서 부모들을 능가하는 성년이 된 자식들입니다.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 하찮은 존재나 짐스러운 존재로 간주될 수도 있는 노부모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노인이 된 부모님들은 성장한 자녀들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자식들보다 더 약하고 가난한 가족 구성원으로 전락한 연로한 노인들입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부모는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았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정 밖에서는 이들을 위한 그 어떤 노후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제 5계명, 부모 십일조 사실 인간의 소유물(재산)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간의 생존과 자유를 보장받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존과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사항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의 힘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재물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처럼 간주되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재물을 얻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재물을 철저히 상대화시킵니다. 그리고 모든 재물들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 제 8계명, 내 것이라고 모두 내 것일까? 제 10계명은 다른 계명들을 범하게 만드는 생각이나 감정을 금지하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계명입니다. 제 10계명은 지금까지 다룬 다른 계명들을 완결하면서 이 모든 계명들을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는 중요한 진리를 명시합니다. 제 10계명을 지키면, 즉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탐욕과 탐심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면, 나머지 아홉 가지 모든 계명을 모두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의 마지막 단계는 모든 탐욕과 탐심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탐욕과 탐심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자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제 10계명, 스스로 욕심을 거두는 태도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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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상관없는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법조문? 복음이 있으니 더 이상 필요 없는 율법 조항?
십계명만큼 교회에서 홀대받는 것이 또 있을까. 기껏 주일학교 암송대회에 구색 맞추기로 등장하거나 일 년에 한 번 어버이주일 설교에서나 부분 인용될 뿐.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기독교인을 붙들고 물어보자. 십계명의 의미나 정신은 고사하고 각 계명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닐까? 한마디로 십계명은 교회 안에서 존재감 제로다. 그런데 십계명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정말 별 볼 일 없는 존재일까? 이 십계명의 명예 회복을 위해 이 시대 최고의 구약학자 차준희 교수가 나섰다. 학자라니 또 어려운 설을 풀겠구나, 하는 걱정은 내려놓으시라. 복잡한 전문 용어나 꼬부랑 원어 하나 없이, 출애굽기 20장과 찬송가 뒷면에나 박혀 있던 십계명을 우리 삶 속으로 불러올 테니. 저자 차준희 교수는 “십계명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강조하며, 복음을 받았으므로 율법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해라고 역설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조건’으로 십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 받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십계명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은혜의 상징’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아래 살아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적용된다. 저자가 들려주는 십계명의 의미와 정신은,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우리 삶과 맞닿아 있다. 오늘날에도 풍요의 신 바알에게 마음을 뺏긴 자신의 백성에게 유일한 사랑의 파트너가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을 상기시키는 1계명부터, 스스로 욕심을 거두는 신앙의 최고 경지인 10계명. 그 사이에는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이웃을 나 자신처럼 생각하는’ 정신이 여러 가지 계명으로 나타나 있다. 즉, 일주일 중 하루를 구별하여 생업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나, 사회적 약자가 된 부모를 비롯하여 어려운 이웃을 마음과 물질로 섬기고, 이웃에게 생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것 등은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뿐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다. 본문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하지 말라’는 부정명령을 십계명의 의미와 정신에 입각해 ‘~하라’는 긍정명령으로 바꾸어 설명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부정명령의 모호한 느낌을 벗어나 보다 구체적인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 책에서 열 가지 계명들을 대하고 ‘거룩한 부담감’을 느꼈을 독자들을 위해 에필로그에서 또 하나의 계명을 첨가한다. 즉 11계명, ‘들키지 말라.’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허물을 세세히 드러내지 않으시고 인내하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계명들에 당당하지 못한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