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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_사랑의 빚으로 사네!
1. 세상과 다른 사랑 구띠 원숭이의 눈빛 | 사랑이와 카트만두 깽깽이 | 호구로 살기 | 샨띠홈의 아이들 | 그 제자의 마음 | 뿌렘담 스토리 | 그들은 티끌로 태산을 만들었다 | 바라뜨와 공부방 아이들 | 약속 지키기 | 가우탐은 어디에 있는가 | 삼고삼난(三孤三難)의 마당쇠 2. 인생, 오늘이 된 어제와 내일을 추억하며 100번의 이사와 세 번의 해체 그리고 남은 한 번 | 고구마 하나로 행복했던 시절 | 고향 대부둑을 그리워하며 | 열세 번째 손님 덕분에 | 오빠 생각 | 중년 아줌마의 무식한 영어 공부 | 그네와 소녀 | 삐뚜리골로 가는 길 | 사랑하는 배낭, 함께 떠나자! 3. 평화를 비는 예수 개독교라는 지탄 앞에서 | 바로의 재물에 걸린 아브라함 | 아담이 우리의 평화를 깼는가? | 예수의 중국어 이름, 야소(耶?) |우직한 모세와 좋은 사람 아론 | 청교도들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샬롬” 평화와 “에이레네” 평화 | 교회의 광장에 누가 있는가 4. 만주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다시 생각한다 독립군 추모기념탑이 광화문에 세워지면 | 문화 영토의 사람들 | “까오리 빵쯔” 이야기 | 어머니 해란강과 선구자 |또 하나의 명동학교와 서일 장군 | 왜 이상설의 서전서숙인가! | 역사의 강 앞에서 | 최진동 장군과 봉오동전투 스케치 | 임오군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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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6_ 기차를 기다리다 지쳐서 먹을 것을 꺼내 먹으며 봉지를 벤치 위에 두었다. 번쩍하는 순간 원숭이가 와서 봉지를 잡아챘다. 원숭이도 빨랐지만 나도 빨랐다. 어느 원숭이가 사람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봉지를 당겼고 당황한 원숭이는 이내 봉지를 쥔 손을 놓았다. 내가 쾌재를 부르는 순간 원숭이는 공황 상태에 빠진 듯 도망치지도 못하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보는 눈빛에 공포감이 서렸다. 주변의 나무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원숭이들이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깩깩거리자 원숭이는 슬픈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서 갔다. 갑자기 마음이 싸하게 아파왔다. 원숭이의 슬픈 눈빛을 본 순간, 가난한 아버지가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아침부터 날품팔이하러 나와서 하루 종일 일을 찾다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초라한 모습이 보였다. 눈물이 났다. 나는 봉지를 벤치에 다시 올려놓으며 돌아가는 원숭이에게 소리쳤다. “와서 가져가. 와서 가져가라고! 미안하다. 내 생각이 짧았다.” 그러나 원숭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p. 148~149_ 초여름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엄마가 숯불을 피워서 다리미에 담고 계셨다. 숯불 다림질은 두 사람이 옷 끝을 서로 팽팽하게 잡아당기면서 해야 잘 다려지기 때문에 엄마를 도와서 옷 끝을 팽팽하게 잡아주는 일을 하였다. 옷 끝을 힘을 다해 잡아주며 옷을 다리는 중에 갑자기 그네 생각이 나서 다리미를 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림질이 끝나면 바로 가서 그네를 타려는 몽상에 빠져 다리미가 내 손 가까이 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다림불이 너무 뜨거워서 옷 끝을 놓아버렸다. 순간 불똥이 튀고 숯덩이가 다리미 밖으로 떨어져 나왔고 엄마의 야단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마지막 옷이었는데 그네 생각에 빠져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숯덩이가 떨어졌고 옷에 빵꾸는 나지 않았지만 얼룩이 져 있었다. 그러나 그네를 탈 생각으로 즐거워진 나는 엄마의 야단을 귓전으로 들으면서 놀이터로 달려갔다. 놀이터 밧줄은 ‘홍생원’이라 불리는 어른이 관리를 하였는데 평일에는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그네 줄을 매주었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바람이 심한 날에는 매주지 않았다. 나는 그네 줄이 그대로 매여 있고 아무도 타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놀이터로 줄달음쳤다. 어린 내 생각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훨씬 지났고 좀 전까지 날씨가 좋았으므로 그네 줄이 매어져 있을 것이 틀림없고 그네를 타던 아이들은 비를 피해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었다. 과연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네 줄은 그대로 매여 있었다. 그네에 올라선 나는 감격에 빠졌다. 아무리 발을 굴러도 그네가 앞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내 눈끝에서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는 물이 흘러 볼을 타고 내렸다. 나는 적당히 부는 바람에 치맛자락과 머리칼을 날리며 신나게 그네를 탔다. p. 171~172_ 촛불 시위가 진행되는 4개월 동안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비기독교인들에게 지탄의 소리를 들을 때 참 힘들었다. 태극기를 들고 탄핵반대집회를 이끌어 가는 목회자와 거기에 참여하는 교인들에 대한 빈정거림이 귀에 따가웠다. “저런 것들이 다니는 교회가 빨리 망해서 없어지는 것이 나라에 보탬이 되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도 못하는 것들이 지도자 노릇하는 교회 교인들이 불쌍하지?” “교회가 망해야 나라가 조용해지지.” 나는 그들의 조롱과 지탄에 가슴이 아팠지만 일체 침묵하였다. 삶으로 보여주지 않는 개교회의 교만과 위선, 부패와 물량주의에 식상한 한국 사회 어느 누구도 설교나 권고의 말을 듣고 십자가의 도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금번 성탄절에 개독교로 조소당하는 한국 교회, 특별히 대형 교회가 맘몬이즘의 중독과 환상에서 깨어나길 기대한다.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교회와 교우, 목회자들에게 천군 천사의 찬양이 울려 퍼지길 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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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다른 사랑
“지구별 나그네로서 함께 길을 가며 때로는 내가 그들에게 밥이 되고 때로는 그들이 나에게 밥이 되어주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서로가 서로의 식탁에서 밥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세상,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꿈꾼다.” 1장은 따스했던 현장과 동행한 사람들의 러브 스토리이자 저자가 부재한 현장에서 성령님에 의해 계속되고 있는 아름다운 사역 이야기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인도 선교 보고인데, 성공과 실패, 환희와 좌절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이옥희의 《오늘에 핀 꽃 어제와 내일을 추억하다》에 나오는 간증을 읽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함께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결국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 당신은 살아 계시고 고아들의 아버지십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인생, 오늘이 된 어제와 내일을 추억하며 “대부둑에는 철따라 꽃이 만발하였다. 토끼풀, 냉이, 보리뱅이, 씀바귀, 자운영, 기생초, 개망초, 엉겅퀴, 지칭개, 망초, 꿀꽃, 삐비가 철따라 피었고, 우리는 꽃을 따서 시계와 머리에 쓰는 화관을 만들면서 그야말로 행복한 아이들이었다.” 2장은 저자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믿음과 자연에 대한 감사 그리고 고향과 가족, 동심의 세계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오늘의 삶이 가능하게 만든 뿌리를 보여주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예측하게 한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이사를 한 것을 대충 헤아려 보니 40여 번이 넘는다는 저자는 영원한 나그네다. 어떤 사람이 100번 이사를 다녀야 할 팔자라고 한 말을 떠올리며 100번을 채울지도 모르겠다고 푸념하지만, 또다시 새로운 사역지로 떠날 것임을 의심치 않게 하는 저자의 삶은, 옛 추억이 담긴 고향을 그리워하듯 하늘 본향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떠나는 순례의 길이라 생각된다. 평화를 비는 예수 “예수님의 아름다운 중국어 이름 ‘이에수,’ 야소(耶?)는 하나님 아들이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소리를 듣는 자임과 인간의 일용할 양식, 밥임을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는 너무 분명하다.” 3장은 떠돌이로 살면서 새롭게 만난 성서 인물에 대한 묵상과 한국 사회에 비쳐진 한국 교회에 대한 비난에 대한 긍정과 부정, 절망과 희망의 고백이다.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아, 비텐베르크의 만성 교회 문 앞에 ‘95개 논제’를 내건 마르틴 루터처럼 한국 교회를 향한 날카로운 예언자적 음성을 토로하고 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뜻대로 산 자라야만 된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이 모든 교회 광장에 기상나팔 소리처럼 울려 퍼지길 비는 저자의 외침이 신앙인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깨워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만주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다시 생각한다 “지나간 역사는 돌이킬 수 없다. 아무리 외면하고 지우려고 해도 사실은 사실이다. 우리가 식민지 역사를 가르치며 건물을 없애지 않는 것은 그들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뼈아픈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우리 역사에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다.” 4장은 세월호 사건 이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우리 역사와 사회의 문제를 근대사와 독립운동사를 통해서 극복과 화해의 길을 찾아보려는 한국 크리스천으로서의 뼈아픈 성찰이다. 에세이와 논문 사이를 오가는 글로서 저자가 현재 가장 관심하는 문제들을 묵직한 주제 의식으로 다루고 있다. 친일 청산, 독립운동사 복원, 조선족 문제 등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거나 반대로 냉정한 사실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진정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인지 차근차근 되짚어 공과 과를 아우르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렇듯 이옥희의 《오늘에 핀 꽃 어제와 내일을 추억하다》는 선교 현장과 추억, 교회와 역사를 가로지르는 네 개의 강줄기로 신앙과 역사를 넘나드는 글들로 채워져 있는데, 오늘의 예언서라 부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