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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 서문 : 헤르메스의 날개 | 『오이디푸스 왕』미리보기
텍스트와 해석적 주석 서막 | 대화와 노래 1 | 대화와 노래 2 | 대화와 노래 3 | 대화와 노래 4 | 종막 역저자 후기 : 부르튼 발로 디오니소스 극장을 나서며 부록 : 전경과 배경 고대 그리스 연극 : “인간은 만물의 척도” 작품 해설 : 신화, 비극, 역사 참고문헌 |
Sopho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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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실 서가에서 해묵은 텍스트 하나를 끄집어낸다. 거죽의 먼지를 툭툭 털고 무심히 책장을 열면 누런 종이 위에 박힌 옛 활자체 글자들이 시퍼런 섬광을 내며 일어선다.” 고전이 더러는 박물관 소장품으로 전시되거나 망각되고 또 더러는 소비자 취향에 따라 수익 상품으로 가공되어 문화시장에 유통되는 시대에 나는 이천 오백년이나 묵은 이 텍스트를 집어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고전과 현대의 이중 언어 구사자로서 이 텍스트를 전달하고 뜻을 풀이하는 헤르메스(Hermes)의 역할을 자임해보지만, 화자와 청자 사이의 골 깊은 인식적 거리에 당혹해하는, 그리고 두 방언의 교차점에서 진정 자신의 모국어가 무엇인지를 회의하는 동시 통역사처럼 나는 내가 누구의 대변자인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해석자(inter-preter : 사이에서 말하는 자)의 또 다른 당혹감은 이 텍스트의 존재론적 이중성으로부터 온다. 활자매체로 책상 위에 놓인 이 옛 문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유고들과 함께 논리적 독서를 요청하거나 호머나 사포의 작품처럼 서사적·시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문학텍스트인가? 아니면 옛 지중해 반도의 연극축제를 언어의 약호 아래 숨긴 그래서 암호의 해독을 통해 ‘몸’의 부활을 상상해야 하는 공연텍스트인가? 서재와 무대, 어느 한편에 자신의 머리를 두려 하지 않는 이 고의적 실향의 텍스트에게 문학과 연극, 어느 언어로 말을 걸어야할지 나는 망연자실해진다. 무엇보다 애초에, 해석자는 왜 이 텍스트를 선택하는가? 아니면 텍스트가 해석자를 선택한 것인가? 정녕 이 텍스트의 무엇이 그를 사로잡아 시간의 간극과 상이한 예술형태의 틈새 사이에 버둥대도록 묶어 두는가? 공포와 연민을 분출하는 이야기의 틀거리가 고대의 해석자 아리스토텔레스를 포박했고, 아폴로와 디오니소스가 벌이는 유혈 낭자한 투쟁이 현대의 해석자 니체를 매혹했다면, 포스트모던을 살아가는 오늘날 독자/관객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해석자는 이 낡은 텍스트의 날선 섬광 속에 무엇을 발견하는가? 이러한 의문과 질문,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당혹과 기대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해석자에게 예정된 목적지는 없다. 해석자에게 주어진 이정표도 텍스트 안에 새겨지거나 감춰진 것 외에는 없다. 지금으로서는 빛바랜 그 이정표들 가운데 하나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이디푸스의 질문이 적혀 있음을 간신히 식별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어느 박물관에서 만난 기원전 5세기의 항아리에 새겨진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대화를 떠올리고는 그 불가해한 퍼즐이 다시 한 번 궁금해질 뿐이다. 그리하여 해석자는 인간의 질문과 괴물의 퍼즐을 부여잡고, 이 텍스트를 - 희망컨대, 생산적으로 - 분열시키는 고전과 현실 그리고 문학과 연극 사이의 협곡이라는 험난한 지형을 섭렵하기 위해 유연한 상상을 허용하는 헤르메스의 넉넉한 날개에 편승할 뿐이다. 그 비행이 해석자를 잠시 내려놓는 곳, 그곳이 독자 여러분과 이 텍스트가 모국어로 만나는 고향이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