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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총 130편 편명 일람
역자 서문 본기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권8 고조본기高祖本紀 권9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 권10 효문본기孝文本紀 권11 효경본기孝文本紀 권12 효무본기孝武本紀 |
司馬遷,자장(子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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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짐위시황제朕爲始皇帝, 후세이계수이세삼세後世以計數二世三世, 지우만세전지무궁至于萬世傳之無窮. 짐을 ‘시황제’라 하고, 후세는 수로 헤아려 2세, 3세라 하여 만세에 이르기까지 길이 전하도록 하라. 갱유곡. 유생들을 산 채로 파묻은 장소로 전한다(75쪽). “시황이 즉위하여 6국을 합병하였고,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는 표시로 무기를 녹여 종을 만들었으며, 스스로를 높여 황제라 불렀지만 무력에만 의존하여 폭력을 마구 휘둘렀다. 2세가 자리를 이어받았으나 자영은 항복하여 망국의 포로가 되었다.”---p.21 진의 선조 백예는 일찍이 요·순 때 공을 세워 땅과 성을 하사 받았는데 하·은 때 이르러 이리저리 흩어졌다. 주가 쇠퇴할 무렵, 진은 흥기하여 서쪽 변경에 도읍을 정하였다. 목공 이래 점점 제후들을 잠식하더니, 마침내 시황이 되었다. 시황은 스스로 공적은 오제를 뛰어넘고 땅은 삼왕보다 넓다고 여겨 이들과 함께 비교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p.97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부귀불귀고향富貴不歸故鄕, 여의수야행如衣繡夜行. 부귀해진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다니는 것과 같다. “진이 도를 상실하자 영웅호걸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항량이 맨 먼저 창업하였고 항우가 그 뒤를 이어 일어나 송의를 죽이고 조를 구하니 제후들이 그를 추대하였다. 항우가 자영을 죽이고 회왕을 저버리자 천하가 그를 비난하였다.”---p.179 자신의 전공을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만 앞세워 옛것을 배우지 못하였다. 패왕의 대업이라며 힘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경영하려 하니 5년 만에 나라를 망치고 몸은 동성에서 죽으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책망할 줄 몰랐으니,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라고 하며 핑계를 대었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p.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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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이고, 내가 그들을 쓸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이다.
입체적 완역서로 새롭게 태어난 《사기》 천하 제왕들의 진면목을 넓고 깊게 아우르다! 이제껏 이런 《사기》 번역서는 없었다 사마천의 《사기》는 꼭 읽어야 할 고전 목록에 빠지지 않는 타이틀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한국 출판계에 출간된 번역본도 많았다. 굳이 한 권을 더 보태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질문을 바꿔보자. 탈脫고전화를 통해 고전을 잘 살렸는가? 오늘날 우리의 문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는가? 김영수는 20년 넘게 《사기》를 연구해왔으며, 《사기》의 완역본을 위해 이 같은 맥락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그 결과 본문을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나아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장치를 마련했다. ▶오직 한글만으로 기술한 《사기》 본문의 쉽고 명쾌한 번역문 ▶EBS와 SERI가 선택한 《사기》 연구자 김영수의 통찰 가득한 해제 ▶중국의 3,000년 전 역사 현장을 가늠해볼 수 있는 풍부한 지도 ▶2만 5,00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하며 역자가 직접 찍은 생생한 사진 ▶제왕들의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상세히 기술한 연보 ▶《사기》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지역, 서책에 관한 해설 《사기》의 문장은 당시로서는 파격이라 할 정도로 통속적이었다. 속담과 격언 그리고 생생한 고사성어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원문을 한자 병기 없이 100퍼센트 한글로 옮긴 이유다. 설명이 필요한 인명, 지명, 서책명 등은 찾아보기 쉽게 각 편마다 표로 정리했으며, 용어 풀이와 주요 사건도 덧붙였다. 아울러 이 책에 실린 사진과 지도는 역사 속 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옮긴이 김영수는 15년 넘게, 100여 차례 《사기》의 역사 현장을 직접 답사했다. 이 과정을 통해 확보한 생생한 현장 사진과 상세한 상황별 지도는 역사 공간에 대한 이해를 한층 돕는다. 〈진시황 때의 도로망>(왼쪽, 71쪽)과 〈진의 멸망도〉(214쪽). 《완역 사기 본기》 2권에는 모두 22컷의 지도가 실렸다. 역사적 상황을 지도를 통해 한눈에 제시함으로써 원문의 복잡한 사건 전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진시황, 항우, 유방… 천하 제왕들의 진짜 이야기 사마천의 《사기》는 총 130편으로 본기(12편), 표(10편), 서(8편), 세가(30편), 열전(7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5,000년 중국사의 5분의 3을 다룬 3,000년 통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는 물론 중국 문화와 중국인을 알려면《사기》를 건너뛸 수 없다 사마천이 쓴 산문의 일부가 전하는 《예문유취》의 명나라 때 판본(633쪽). 완역본 시리즈는 본기 2권, 표 1권, 서 1권, 세가 3권, 열전 8권으로 구성될 예정이며, 이번 본기 제2권의 발간으로 본기가 완역되었다. 이번 책에는 《사기》본기 총 12편 가운데 모두 7편을 실었고, 아울러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사마천의 산문 두 편도 함께 수록했다.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권8 고조본기高祖本紀 ▶권9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 ▶권10 효문본기孝文本紀 ▶권11 효경본기孝景本紀 ▶권12 효무본기孝武本紀 ▶〈비사불우부悲士不遇賦〉〈여지준서與摯峻書〉 본기 제2권에서는 특히 소설 《초한지》의 주인공인 유방, 항우, 진시황의 역사 속 실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중국사 최초로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의 이야기에서부터 초한쟁패의 숨 막히는 현장과 유방의 천하 재통일 과정을 사마천의 신필로 만나볼 수 있다. 역자 김영수의 표현대로 천하를 제패하기 위한 이들의 각축전은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긴장감과 박진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준다”(182쪽).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았던 진나라 제국의 허망한 멸망, 절대 강자였던 항우의 비극적인 최후, 그리고 나이 쉰에 가깝도록 평범한 사내에 불과했던 유방의 극적인 천하 제패…. 이러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는 사이에 독자들은 조직과 정치, 인간관계에 대한 풍부한 영감과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에 의해 통일된 제국은 이후 철혈 여제 여태후와 성군聖君 문제·경제를 거쳐 무제 시대의 전성기로 이어진다. 하나같이 만만히 볼 수 없는 이들 제왕의 업적과 공과를 사마천은 균형 잡힌 역사의식 아래 차분히 서술한다. 이로써 제왕들에 대한 기록을 모아놓은 본기가 모두 마무리된다. 여기에 김영수는 사마천의 인생관과 신조를 엿볼 수 있는 〈비사불우부〉와 〈여지준서〉를 국내 초역해 본기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사기 본기》를 오늘날에 되살리는 입체적 완역 역자 김영수는 사마천의 절묘한 필치를 오롯이 한국어로 담아내기 위해 황선부黃善夫 간본의 표점교감본을 기준으로 삼았다. 황선부 간본은 현존하는 판본들 가운데 활자가 가장 우아하고 훌륭한 판본으로 꼽힌다. 여기에 중국의 《사기》 대가인 한자오치韓兆琦 교수가 편저한 《사기전증史記箋證》(전9책, 江西人民出版社, 2004)을 대조해가며 우리말로 옮겼다. 무엇보다 오랜 《사기》 대중 강연으로 다져진 감각이 책을 더욱 쉽고 알차게 만들었다. 이러한 면모는 해제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김영수는 어느 대목에서 일반인들이 풍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해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함으로써 《사기》를 오늘날의 텍스트로 일신한다. 이처럼 사려가 부족한 면모는 항우가 장한이라는 인물을 다룬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항우는 눈물을 흘리며 항복한 장한을 받아들이고도 그를 옹왕에 봉해 초나라 군중에 방치하다시피 했다. 반면 장한의 부하였던 사마흔을 자신과 개인적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선봉으로 삼아 함양을 공격하게 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장한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만약 항우가 적절한 조치를 통해 장한의 마음까지 얻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186쪽, 권7 〈항우본기〉 이 단락에서는 어떤 조건이 주어지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재창출해내는 유방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유방은 비록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낙담하지 않고 이를 자신의 실력을 기르는 계기로 삼았다. 또 관중 공략으로 재기에 성공하자 과거 진나라의 사냥터로 쓰이던 땅을 모두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어 민심을 얻는 등 뛰어난 군사적·정치적 수완을 보여주었다. -284쪽, 권8 〈고조본기〉 김영수는 독자들이 자칫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대목들을 깊이 있게 짚어주기도 한다. 사실 매 권마다 수록되어 있는 ‘명언·명구, 용어풀이’의 모든 항목이 그러한 기능을 하고 있다. 아방阿房 아방궁으로 잘 알려진 아방이란 지명은 산이나 구릉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방촌이라는 마을이 남아 있다. 아방궁 유지는 지금의 서안시 미앙궁구 삼교진 남쪽에 있는 진 왕조 때의 상림원 안이다. 현재 흙으로 단단히 다진 장방형 평면의 토대가 동서 1,320미터, 남북 420미터(면적 55만 제곱미터) 규모로 남아 있다. 《사기》의 기록과 고고학적 조사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125쪽, 권6 〈진시황본기〉 닭 뼈로 점을 치게 하였다. 계복鷄卜으로 불리며 점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산 닭과 개를 한 마리씩 준비한 다음 축문을 읽는다. 닭과 개를 죽여 익힌 다음 다시 제사를 지낸다. 닭의 눈알을 뼈째 뽑아내어, 그 갈라진 틈이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지 여부를 가지고 길흉을 판단한다. -597쪽, 권12 〈효무본기〉 항우가 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해하 유지. 오늘날은 그저 쓸쓸하고 소박한 시골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188~189쪽). 한편 본기 제1권에서 보여준 현장성도 여전하다. 김영수는 지난 15년간의 《사기》 현장 대장정을 지속해 답사 이동 거리가 이제 2만 5,00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총 51일 1,224시간을 들여 답사를 했으니, 하루 평균 500킬로미터에 가까운 여정이었다. 그 결과물은 생생한 현장 사진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김영수는 때로 자취도 희미한 역사의 현장을 치열하게 추적해가며 사진을 한 컷 한 컷 찍었다. 이는 현장을 중시한 사마천의 역사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에 실린 소박한 사진들이 전문 사진가가 찍은 화려한 화보집보다 훨씬 빛나는 이유다. 김영수의 답사 여정은 15권 완간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단 독자에게 보여줄 현장 사진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사마천의 역사 정신이 옮긴이의 내면에 더욱 깊이 새겨질 것이다. 사마천의 혼을 부르고자 하는 역사가 김영수의 다음 책 《사기 세가》에서 그 진경을 목격하기를 기대해본다. ◆ 사마천이 남긴 다른 글들 사마천의 《소왕묘론》 일부가 실려 있는 명나라 때의 《논형》(왼쪽)과 《태평어람》(630쪽). 선비는 늘 마음이 우울하고 불안하다. 역경을 맞이하여 굽히고 살면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길이 없구나! 설사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여 피차가 동등해질 수 있어도 사사로운 마음과 감정으로 일을 대하는 무리들 때문에 헛되이 스스로 상처받고 슬퍼하게 된다. 하늘의 도는 쇠퇴하여 보잘 것 없으니 한탄스럽고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631쪽, 〈비사불우부〉에서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인생의 바른길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최고의 가치 기준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立德이요, 그다음은 책을 써서 자기주장을 세우는 입언立言이며, 그다음은 공업을 세우는 입공立功입니다. 그대의 재능은 누구보다 뛰어나며 넓고 큰 뜻을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잘 수양하여 고상한 인품과 덕을 갖추고 계십니다. 생활의 사소한 일로 자신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그 자체로 충분히 귀중하다고 할 것입니다. -636쪽, 〈여지준서〉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