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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독자에게 드리는 글 참선일기 2017년 8월 6일 . . . 2018년 8월 18일 꼬리말 글을 마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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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이 낯설어졌다. 마치 생각하는 내가 있고, 그 나를 목격하는 또 다른 나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생각은 장황하게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흘러가는 생각들을 목격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 스스로가 무엇인지 참으로 기이하고 알 수 없었다. 어느 새부턴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보고 있는 자로 머물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생경하고 낯선 변화였다.
--- p.8 주관의 영역 안에서 객관의 작용이 주관의 탈을 쓰고 일어난다. 오직 구경꾼에 머물러야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내버려두고 그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구경해보자. 나의 행동,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감정. 모든 것이 나의 영역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영역의 꼭대기에서 모든 작용들을 구경해보자. 우리는 구경꾼이 되어야한다. (그렇다면 구경꾼은 무엇인가?) --- p.55 우리의 인식은 언어에 함몰되어있고, 언어가 창조한 ‘사건’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언어를 걷어낸다면 삶은 놀랍도록 명료하고 가뿐해진다. 인간사의 모든 기쁨, 슬픔, 좌절, 분노, 희열은 언어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언어사유를 우리 스스로가 목격할 수 있을 때. 이를테면 우리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마침내 언어가 만들어낸 사건의 세계로부터 물러날 수 있다. --- p.59 깨달음은 얻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내는 것이며, 원래 있던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불교적 수도는 애초의 자아를 없애고 무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자아라고 할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때문에 돈오가 가능하다. --- p.169 꿈 속에서 제 아무리 화두가 성성하고 꿈 속에서 제 아무리 성성하게 반조되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이 꿈없는 깊은 잠에 들었을 때 이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무상한 것들이다. 오매일여는 이렇게 ‘꿈없는 깊은 잠’이라는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다. 수도자들은 이 관문에 이르러 그 깊은 잠에서조차 화두를 들려하고 견문각지 하는 그 놈을 성성히 하려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 p.2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