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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당신의 처음 식탁
1. 당신의 마음 식탁 첫 번째 식탁 _ 심야 식당 두 번째 식탁 _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 세 번째 식탁 _ 월요일의 저녁 식탁 네 번째 식탁 _ 혼자만의 식사 다섯 번째 식탁 _ 뜨거움의 순간 여섯 번째 식탁 _ 일 포스티노: 마리오의 식탁 일곱 번째 식탁 _ 먹을 수 없는 외로움 여덟 번째 식탁 _ 아이슬란드, 리투아니아 그리고 아포가토 아홉 번째 식탁 _ 도넛이 있는 시간 열 번째 식탁 _ 이민자의 저녁과 당신들의 테이블 2. 누군가의 슬픔 식탁 열한 번째 식탁 _ 킨포크 라이프 열두 번째 식탁 _ 기내식과 함께하는 당신의 여행 열세 번째 식탁 _ 사육되던 날들과 한 점 뜨거움의 순간 열네 번째 식탁 _ 한없이 가벼운 한 끼 식사 열다섯 번째 식탁 _ 피시 앤 칩스 열여섯 번째 식탁 _ 서른 번째 생일 케이크 열일곱 번째 식탁 _ 당신의 바질 토마토 스파게티 열여덟 번째 식탁 _ 오전 열 시의 편의점과 당신의 한 끼 식사 열아홉 번째 식탁 _ 올리브가 있는 풍경 스무 번째 식탁 _ 국수 먹는 아이 스물한 번째 식탁 _ 당신의 식사와 삶의 경계 스물두 번째 식탁 _ 너의 장례식 3. 내 안의 생각 식탁 스물세 번째 식탁 _ 단호한 직선: 칼 스물네 번째 식탁 _ 온몸으로 삶을 견디는 순간: 나무 도마 스물다섯 번째 식탁 _ 상류를 향하여: 연어 스물여섯 번째 식탁 _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소금 스물일곱 번째 식탁 _ 바다의 깊은 내력이 흐느낄 때: 광어 스물여덟 번째 식탁 _ 빙점을 잃어버린 폐허: 냉장고 스물아홉 번째 식탁 _ 네 삶의 결을 더듬는 순간: 정형사 서른 번째 식탁 _ 뜨거움 이후: 제빵기 서른한 번째 식탁 _ 한 잔의 주스: 믹서 서른두 번째 식탁 _ 먼 바다: 생선 서른세 번째 식탁 _ 어느 날 슬픔처럼: 숟가락 4. 우리들의 함께 식탁 서른네 번째 식탁 _ 몽골식 양고기가 익어가는 저녁 서른다섯 번째 식탁 _ 위베 덴 텔러란 서른여섯 번째 식탁 _ 키비악 서른일곱 번째 식탁 _ 웍헤이 서른여덟 번째 식탁 _ 설탕과 슬픔 서른아홉 번째 식탁 _ 비건이라는 삶 마흔 번째 식탁 _ 마리아주 에필로그 _ 당신의 다음 식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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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 끼 식사를 앞에 두고 앉은 손님들을 볼 때마다 음식과 하나가 된 완전체를 떠올리곤 한다. 당신은 음식이 손님 앞에 놓였을 때에야 비로소 음식의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심야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심야 식당 그 자체다. 당신은 손님들이 당신이 만든 음식을 먹을 때의 표정을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훔쳐보곤 한다. 손님이 젓가락을 들어 당신이 만든 음식을 집어 올리면, 젓가락 끝에 닿은 음식의 질감이 당신에게 와 닿는 것만 같아 아득한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심야 식당」중에서 그러나 당신은 여행지에서 접하는 음식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낯선 음식을 매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도 때로는 낯선 음식을 앞에 두고 그것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기도 한다. 이국의 음식을 잘 먹는 것과 그 음식을 즐길 의향이 있는 것은 다르다. 그럼에도 당신이 이국의 음식을 먹으려 하는 것은, 그것이 당신이 찾아간 여행지의 진짜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중에서 작은 섬 칼라 디소토에 살다 숨을 거둔 수많은 마리오를 떠올린다. 그리고 마리오의 삶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끊임없이 무엇이 되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 평범하게 늙어가고 묵묵히 살다 고요히 죽음에 이르는 삶.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마리오의 삶은 그가 먹던 거친 빵과 소박한 수프처럼 평범했지만, 평범한 삶이 주는 소박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 포스티노: 마리오의 식탁」중에서 그러나 시드니 한인 식당에서 듣는 삼겹살 익어가는 소리는 그때의 느낌과 같지 않을 것이다. 연신 불판 위에 있는 고기를 뒤집는 당신들 중 누군가의 손이 호수처럼 적막하다. 한 사람은 고기를 뒤집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당신들은 끊임없이 술잔을 채운다. 당신들의 테이블과 나의 테이블은 지척이지만 당신들은 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 채 취해간다. 당신들은 고국을 떠나던 날의 회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고국을 떠나던 날이 제각각인 것처럼, 당신들이 기억하는 고국의 모습 역시 제각각이다. 고국에 대한 기억은 당신들이 떠나온 그날에 멈추어 있다. ---「이민자의 저녁과 당신들의 테이블」중에서 당신의 삶은 요즘 유행하는 ‘킨포크’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끈덕진 삶이 이어지는 당신의 하루하루를 그저 킨포크라는 그럴 듯한 말로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킨포크 라이프라는 말은 전원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낸 허위일지도 모른다. 킨포크 라이프라는 관념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우리들만의 킨포크 라이프를 공고히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 진짜 킨포크 라이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삶이든 나의 삶이든 절박하고 끈덕진 삶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모든 삶은 소중하다. ---「킨포크 라이프」중에서 막막한 삶의 민낯과 맞닥뜨린 이후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이민은 불행의 단초처럼 느껴졌다. 벼랑을 앞에 두고 오랫동안 망설이다 맨몸으로 벼랑 아래로 뛰어드는 심정이었다. 이민 답사를 위해 비행기에 오르는 것은 벼랑 끝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과 같았다. 삶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호주라니. 사촌 형제가 일가를 이루어 살고 있긴 했지만, 호주는 마치 머나먼 극지처럼 낯선 곳이었다. 극점을 향해 몰아치는 폭풍설과 살을 파고드는 맹렬한 추위가 떠올랐다. ---「기내식과 함께하는 당신의 여행」중에서 당신은 토마토소스를 만들며 문을 열고 들어올 애인을 상상한다. 군복을 입은 당신의 애인은 낯선 듯 낯익은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들어서겠지. 그러면 당신은 삶아낸 면 위에 토마토소스를 끼얹고 잘게 찢은 바질을 뿌려 토마토 바질 파스타를 완성할 것이다. 토마토소스에 바질의 향이 더해지며 근사한 한 끼 식사는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토마토소스만으로도 아쉬움 없는 맛일 테지만 바질의 향이 더해지며 애인을 위한 파스타는 이윽고 완전한 매혹이 될 것이다. 당신은 문득 스스로는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질의 매혹을 떠올린다. 그리고 당신과 애인의 관계가 바질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바질 토마토 스파게티」중에서 칼은 도마에 박혀 단호한 직선이 되어버린 생선의 내력을 바라본다. 그것은 두려움인가, 아니면 따뜻한 한 끼 식사인가. 그것은 상처인가, 아닌가. 혹은 죽음인가, 삶인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칼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열린 창문으로 여전히 바람은 불어오고, 햇살은 저물녘의 소멸을 향해 천천히 자신의 영역을 이동시킨다. 칼이 빛난다. 마치 죽음처럼 고요하게 그러나 삶의 내력을 어루만지는 상처처럼 절박하게 빛을 발한다. 먼 바다의 음역을 어루만지는 남극의 혹등고래처럼. ---「단호한 직선: 칼」중에서 하나와 하나를 더한다고 언제나 둘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세계가 만났을 때 그것은 기존의 세계와 전혀 다른 오후의 숲이 되기도 하고 저물녘의 강물이 되기도 한다. 둘 이상의 것이 합쳐져 무엇이 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무엇으로만 남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두 세계가 조우할 때 우리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하고 지금까지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당신은 주스 한 잔을 마시고 출근을 한다. 오늘 당신 앞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스 한 잔처럼 새로운 하루가 당신 앞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 잔의 주스: 믹서」중에서 우리는 정해진 세계 속에 갇힌 채 그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울 것 없는 성장 과정을 거쳐 평균적인 학창 시절을 보내고 취직을 하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식으로 비슷비슷하게 살아간다. 물론 이러한 삶이 잘못되었다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거나 실행할 꿈조차 꾸지 못하는 삶은 서글프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삶. 그리고 그런 삶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느끼는 좌절. 우리의 삶은 이러한 슬픔 속에 놓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마리아주같이 정해진 것들만이 최선이자 최고라고 착각한다. 진짜 마리아주는 정해진 어울림이 아니라 유연하고 자유로운 발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최선의 어울림이다. 당신에게 마리아주는 과연 어떤 것인가? 당신에게 마리아주는 어울림인가, 격식인가? 아니면 고정관념인가, 유연함인가? ---「마리아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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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곧 나의 무수한 삶이다
『보통의 식탁』에는 수많은 ‘당신’들이 등장한다. 비록 수많은 ‘당신’으로 호명되지만, 그들은 타자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숱한 ‘나’를 발견한다. 당신들은 곧 나의 무수한 삶이다. 심야 식당을 운영하는 ‘당신’은 한 끼 식사를 앞에 두고 앉은 손님들을 볼 때마다 음식과 하나 된 완전체를 떠올리곤 한다. 음식이 손님 앞에 놓였을 때에야 비로소 음식의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당신’은 낯선 음식을 앞에 두고 걱정하기도 하지만 기꺼이 용기를 내려 한다. 이국의 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지의 진짜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당신’이 혼자 밥 먹을 때의 서글픔을 개의치 않게 된 것은 취업 준비를 하면서부터다. 만나는 사람도 없이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잠자리에 들던 지루한 날들… 이제 ‘당신’은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더 불편해졌다. 이민 답사 여행을 떠난 ‘당신’은 그곳에서 고국 음식을 먹으며 고국을 그리워하는 이민자의 무리를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다. 도넛 매장을 운영하는 ‘당신’은 자정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고 남은 도넛의 이름을, 그리운 누군가를 호명하듯 하나하나 불러본다. 애인이 좋아하는 바질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던 ‘당신’은, 앞으로도 오지 않을 애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 밖에도 심지어 음식과 요리의 대상이 되는 칼, 나무 도마, 연어, 소금, 광어, 냉장고, 제빵기, 믹서 등이 호명되기도 한다. 이 모든 ‘당신’들과 ‘객체’들은 저마다 고유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식탁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의 삶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들의 서사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여러분은 『보통의 식탁』에 펼쳐진 마흔 개의 이야기를 지나 여기에 당도했다. 마흔 개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인 듯 가슴 저미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지나간 것들에 대한 후회와 사무침의 감정도 들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가 우리의 삶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는 순간은 자신을 돌아보거나 세계와 소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식탁 이야기는 곧 삶에 대한 이야기다.” _ 에필로그에서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비극만을 풀어놓는 법이 없다 『보통의 식탁』에서 언뜻 내비치는 식탁의 풍경은 아름다운 저물녘의 풍경 아래 풍요로운 속삭임이 두런거리는 듯하다. 그러나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심야 식당에서, 이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낯선 이국의 땅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날 엄마와의 생일상에서, 영화 [일 포스티노] 속 마리오의 식탁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우리가 당연한 듯 기대해왔던 ‘킨포크 라이프’의 기대를 절반만 충족시킨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며 우리의 식탐을 한껏 자극해왔던 풍요로운 식탁 이미지는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어쩌면 킨포크 라이프라는 말은 전원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낸 허위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 진짜 킨포크 라이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_본문에서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 삶의 리얼리티를, 그리고 진실을 드러낸다. 삶의 진실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의 고독한 식탁을 마주하고 있거나 사랑하는 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일상의 푸념들을 꺼내놓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시인은 삶의 진실의 단서들을 포착해낸다. 그렇게 오래도록 숨겨놓았던, 남몰래 앓던 오랜 슬픔이 드러난다. 우리는 고독하거나 아프거나 고달플 수 있지만, 시인의 명민한 언어는 단지 그 슬픔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슬픔을 끌어안는 자만이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으므로, 당신이 삶이라는 거대한 진실을 향해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당신이 당신의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책에 담긴 시인의 희망이다. “무수히 많은 슬픔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며 저녁마다 피어오를 것이다.” “식탁 앞에서 당신들은 사랑이나 슬픔 혹은 고단한 저녁에 깃든 쓸쓸함과 마주하며 지나온 날들을 추억하기도 한다.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언제나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것이 설령 슬프고 서러운 기억일지라도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비극만을 풀어놓는 법이 없다. 슬픔조차 추억이 되게 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식탁이 주는 힘과 감동이다.” _ 본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