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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Sanchez Pin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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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이 어떤 이야기를, 그러니까 아프리카 이야기를 하나 써 줬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이야기를 해줄 사람은 마커스 가비라는 청년으로 지금 감방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감옥까지?” “판결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두 형제를 살해한 죄로 기소됐지요. 리처드와 윌리엄 크레이버라고.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나는 관심이 갔다. “교수형인가요?” 변호사 노튼은 환멸적인 탄식을 내뱉고는 서류를 하나 열었다. “증거가 있습니다. 좋지 않은 건 피해자들이 일반 신분이 아니라 는 겁니다. 크레이버 공작의 자제들이거든요.” --- p.50~51 “콩고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이해의 범위를 뛰어넘습니다. 톰슨 씨, 그 이야기는 우리 인간에게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중 하나입니다. --- p.54 얼굴을 보기 전에 먼저 소리가 들렸다. 저만치 복도에서 쇠와 나 무가 움직이는 리드미컬한 소리가 들리면서 마커스 가비가 나타났다. 실제로 그는 가증스러운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쇠사슬에 팔목과 발목이 묶인 채 나막신을 신고 있었다. 그것들이 부딪치면서 독특한 소리의 조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죄수를 고행의 영혼으로 변화시키는 회색 이었다. 하지만 색이 너무나 우울하다 보니 본래의 취지를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마커스 가비는 한마디로 이국적인 사내였다. 뿌연 촛불에 살갗이 빛나면서 몸매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의 외 모에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몇몇 여자들이 무척이나 좋아할 모로코풍의 숱 많은 곱슬머리였다. (.……) 처음 보았을 때 마커스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딘가 석연찮았다. 무엇일까. 그를 데리고 온 간수들은 거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그만 체구도 아니었지만 가비 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다. 그랬다. 문제는 정상적인 사람보다 대퇴부가 훨씬 더 짧은 다리에 있었다. --- p.56-57 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가 그랬다고 믿는 것이다. --- p.59 인간의 참혹한 행위와 공포에 대해 무엇보다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 p.107 문제는 바로 콩고였다. 콩고가 그를 유인하여 악행에 가담하도록 조종한 것이었다. --- p.108 “다음 날 아침이었을 거요. 광산 앞에 낯선 인간이 서 있더군요.” 나는 노트를 바라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네?” “남자였어요. 광산 입구 앞에 서 있는데, 그 모습이 흡사 꼭두각시 같았어요.” 마커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손을 몸에 바짝 갖다 붙이며 꼿꼿이 일어선 자세를 취했다. 그러더니 막연하게 허공으로 시선을 향했다. (.……) “광산에서요?” 내가 물었다. “그런데 낯선 인간이라니 도저히 이 해가 안 되는군요.” “처음엔 우리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마커스가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황금을 훔쳤나요?” “아니요. 벌써 말했지만 광산 밖에 있었어요. 밖에서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고요.” “광산을 엿보고 있었나요?” “아니요. 광산 구멍을 뒤로한 채 천막 앞에 서 있었어요.” “흑인이었나요?” “아뇨, 백인이었습니다.” “백인이라고요?” “예, 백인이었어요. 하지만 우리와는 전혀 다르더군요.” “백인은 백인인데, 우리 같은 백인종은 아니라는 겁니까?” “천만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피부가 막 짜낸 우유보다 더 하얀 인종이었다는 겁니다.” --- p.128~129 콩고는 참으로 이상한 곳이었다. 고통과 행복이 포개지는 곳이자 식물성 퇴비처럼 차곡차곡 층으로 쌓이는 곳이었다. --- p.196 텍톤족이 우리 지구를 침략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판국에 우리에게는 위스키 한 방울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산다는 게 이런 거 아닌가. --- p.208 "콩고가 이렇게 추울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추운 게 아니라 두려운 겁니다." --- p.224 겨우 이것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다니! 역겨웠다. 고작 이것들 때문에 지상의 세계를 공격하다니! 기껏해야 동물 이빨과 식물 하나와 돌멩이 하나 때문에? --- p.364 콩고의 풍경은 예전의 그가 아닌, 지금 그의 마음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다. --- p.380 생각해보면 우리의 기억과 숨겨진 욕망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로 떠오르지 않는가. --- p.407 “모든 것은 노예 작가의 작품이고 노예 작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까? 많은 것들이 그렇듯 그 뒤에는 치졸한 대본이 있습니다.” --- p.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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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지하로 파고드는 여정,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콩고의 이야기
1914년 영국 런던, 가난한 대필 작가이자 작가 지망생 토머스 톰슨은 어느 날 변호사 노튼에게 이상한 일을 의뢰받는다. 바로 아프리카 콩고에서 귀족 두 명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마커스 가비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것. 불우하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 마커스는 장성하여 대영제국의 귀족 크레이버 가문의 하인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크레이버 공작의 아들이자 악한의 전형(典型) 격인 윌리엄과 리처드를 만난다. 그리고 이내 상아, 고무, 다이아몬드 사업이 한창이던 콩고로 부를 찾아 떠나는 형제의 원정대에 합류하게 되는데, 콩고는 온갖 비인간적인 만행이 자행되고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출몰하는 공간이다. 그렇게 땅속 괴물의 존재와 온갖 욕망이 맞물려 끓어오르는 마커스 가비의 콩고 이야기를 소설로 써내려가며 토머스는 이야기가 내뿜는 기묘한 마력과 거부할 수 없는 욕망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하부구조를 파헤치는 지하 세계 모험담 피뇰은 『콩고의 판도라』 전반에 걸쳐 작품의 주제 의식을 짐작케 하는 몇 가지 설정들을 심어두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대가를 받고 창작력을 착취당하는 노예 작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흑인들의 인권, 전쟁의 참상, 이종(異種) 간에 벌어지는 상호 착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들은 전체 서사를 단순 수식하는 데 그치는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서사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의미를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피뇰은 착취당하는 토머스 톰슨의 일상과 콩고의 지하로 파고드는 마커스 가비의 여정 가운데 자행되는 모든 비인간적인 만행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실체, 그 하부구조를 낱낱이 파헤쳐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 신음하는 인간의 갈망까지도. 다양한 장르가 쏟아져 나오는 문학의 판도라 『콩고의 판도라』의 서술 방식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다. 피뇰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콩고의 판도라』를 통해 자기 작품 세계의 지평을 확장했다. 『콩고의 판도라』는 먼저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소설’이다. 또 마커스 가비의 콩고 모험담을 다룬다는 점에서 판타지 장르의 성격을 띠는 ‘모험 소설’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이 책은 후반부에 이르면 다시 드라마틱한 ‘법정 소설’로 바뀐다. 또한 액자식 구성을 갖추고, 그 이야기들이 상호 유기적이라는 점에서 『콩고의 판도라』는 ‘메타 소설’이라고도 총평할 수도 있다. 피뇰은 이토록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 결코 난잡하지 않도록 흡인력 있고 매끄러운 서사를 보여주었으며, 풍자와 유머, 해학적 요소를 추가하여 독자들의 읽는 즐거움을 더하여 주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콩고의 판도라』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콩고의 판도라』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한 가지를 향하여 그리스·로마 신화의 판도라는 호기심에 신에게 선물 받은 상자를 열었다가 세상에 온갖 악과 질병, 고통 들을 쏟아내고 깜짝 놀라 황급히 상자를 닫는다. 그렇게 그녀의 상자 밑바닥에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희망 하나만 남는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도 의문이 생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완벽한 솜씨로 엮어낸 『콩고의 판도라』라는 서사를 쏟아낸 밑바닥에 피뇰은 무엇을 남겨두고자 했을까? 또한 모든 욕망이 쏟아져 나오는 마커스 가비의 콩고 이야기를 들으며 헤어 나올 수 없는 욕망과 타는 듯한 갈망을 느꼈던 주인공 토머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그를 갈구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나아가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콩고의 판도라』는 이 모든 이야기를 쏟아낸 밑바닥에 작가는 어떤 ‘희망’ 같은 장치를 남겨놓았을지 독자로 기대하며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