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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Sanchez Pin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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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이 내게 망원경을 건네주었다. 지금은? 섬이 보이나? 네, 보이네요. 잿빛 바다와 하늘 사이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는, 하얀 거품이 목걸이처럼 에워싼 육지. 그게 전부다. 하지만 그러고도 우리는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섬에 다가가자 비로소 한눈에 윤곽이 들어왔다.
그곳에 장차 내가 살 집이 있었다. 전체 길이가 1.5킬로미터가 될까 말까한 L자형 지대. 북쪽 끝에는 화강암 언덕이 있었고, 그 위에 등대가 서 있었다. 등대의 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규모로 봐서는 딱히 위압감을 주지 않았지만 섬이 작은 만큼 거석의 단단함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남쪽으로 L자의 발꿈치에 해당하는 약간 돌출한 곳에 기상관의 사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살 집이었다. --- p.6 “빌어먹을!” 선장이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을 질렀다. “이보시오, 난 중요한 항해를 떠나야 한단 말이오. 도중에 여기 잠깐 들른 거라고! 국제해양연맹 부탁으로 일부러 항로까지 바꿔서 여기 이 사람을 내려놓고 이 사람의 전임자를 데리고 가야 한단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소? 그런데 그 기상관이 없어, 없다고.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등대지기는 선장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게 다였다. 선장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나는 선장이오. 화물과 사람의 안전 통행에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당신을 고소할 권리가 있소. 마지막으로 다시 묻겠는데, 기상관은 지금 어디 있소?” “죄송하지만 당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 p.13 석유램프를 켰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식탁에 앉아 일정표를 짰다. 구석에는 벽난로가 있었다. 나와 식탁은 벽난로의 맞은편에 있었다. 내가 앉은 오른쪽에는 현관문과 침대가 놓였다. 배의 선실에 있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침대. 맞은편 벽에는 상자와 궤짝들이 있었다. 모든 것이 매우 단순했다. 잠시 후 바깥에서 흥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산양 무리가 총총걸음을 걷는 듯한 소리였다. 처음에는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거리며 떨어지는 소리인 줄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운 창문으로 가 밖을 내다보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보름달이 바다 표면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등대 불빛이 해변에 박힌 나무토막들을 비췄다. 정물화에 나오는 절단된 인간의 사지가 떠올랐다. 섬뜩한 상상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다시 의자에 앉는 순간 바로 그것을 보았다. 그것. 내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 p.4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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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놀라게 한 변방의 소설 -
『차가운 피부』의 세계적 성공은 문학적 사건! 인간의 고독이란 무엇인가? 폭력성이란 무엇인가? 작가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세상 끝으로 눈을 돌린다. 그가 내세우는 인물은 고작 남자 둘. 그 외는 사람이 아닌 미지의 생명체다. 이들이 서로를 적으로 삼고 벌이는 생존을 위한 투쟁은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고찰로 전이되며 기묘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피뇰이 카탈루냐어로 『차가운 피부』를 발표한 것을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카탈루냐의 소설이 전 세계 37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은 완고한 세계문학 판을 뒤흔든 대사건이다. 『차가운 피부』가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사랑을 받은 것은 카탈루냐 문학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태도로 볼 때 매우 드문 일이다. 이 작품은 소수언어인 모어母語에 대한 사랑과 뿌리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작품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지만, 피뇰의 소설은 사실 그리 ‘민족적’이지 않다. 고국을 등진 화자는 ‘나’로 묘사될 뿐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특별히 카탈루냐적 정서에 호소하지도 않는다(화자는 아일랜드 사람이고, 또 다른 등장인물도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오히려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어들인 것은 초超시간성과 보편성이다. 독자들은 극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살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통해 폭력의 원형을 보고,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선 소통 불가능의 절망을 경험한다. 일단 손에 잡으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이 책은 흥미로운 대중소설도 받아들일 수도 있고, 심오한 주제를 다룬 철학적 우화로도, 고전의 향기가 느껴지는 정통문학으로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식인 괴물들이 떼로 나오는 B급 영화의 원작소설처럼 읽을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보든 이 소설이 탁월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히트맨] 감독 자비에르 젠스 감독 영화화, [콜드 스킨Cold Skin] 2017년 개봉!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작품 『차가운 피부』는 [히트맨]의 감독 자비에르 젠스(Xavier Gens)가 Cold Skin으로 영화화했다. 2017년 10월, 프랑스의 작은 영화제 “레트랑주 페스티벌(L'Etrange Festival)에서 소개되어 자비에르 젠스의 새로운 대표작이 될 수도 있다는 호평을 얻었다. 영화의 트레일러는 여기에서 감상할 수 있다. https://youtu.be/Jryyr-PBCu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