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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작품 줄거리 및 해설 역자 후기 |
Adeline Virginia Wo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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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눈동자 속에, 이리저리 터벅터벅 걷는 걸음 속에, 떠들썩하게 질러 대는 고함 속에,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이 있었다. 마차들, 자동차들, 버스들, 화물차들, 발을 질질 끌며 휘적휘적 지나가는 샌드위치맨들, 취주 악단들, 손잡이를 돌리는 휴대용 풍금들, 승리의 기쁨, 짤랑짤랑 울리는 소리와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이상한 굉음,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삶, 런던, 6월의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이 아주 젊게 느껴졌다.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늙게 느껴졌다. 그녀는 칼처럼 모든 것을 잘라 냈다. 동시에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밖에 서 있었다. 택시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밖에 있을 때, 저 멀리 바다에 혼자 있는 것 같을 때, 영원히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언제나 단 하루를 사는 것조차 위험하고, 위험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내내 샐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가장 숭배하던 특별한 종류의 아름다움이었다. 까무잡잡하고, 커다란 눈. 자신에겐 없는 그래서 그녀가 항상 부러워하던 그런 매력이었다. 마치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종의 자유분방함이었다 어느 여름날 파도가 몰려와, 휘몰아쳤다가, 흩어졌다. 모이고 흩어지고, 온 세상은 “그게 전부야”라고 점점 더 지루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마침내 해변가 태양 아래 누워 있는 육체의 심장조차 그게 전부야, 라고 말한다. 더 이상 두려워 마, 그 심장이 말한다. 더 이상 두려워 마, 자신의 짐을 바다에게 맡기며 그 심장이 말한다. 바다는 모든 슬픔에 대해 탄식하며, 새로 태어나고, 시작하고, 모이고, 흩어진다 남편보다 두 배나 재치가 많은 그녀는 남편의 눈을 통해 사물을 보아야만 했다. 이것이 결혼 생활의 비극 가운데 하나였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항상 남편을 인용해야 했다. 마치 아침에 그녀의 남편이 《모닝 포스트》지를 읽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람들이 모른다는 듯이 말이다. 우리 자아는 물고기처럼 깊은 바닷속에 살면서 침침한 것들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거대한 잡초 줄기 사이를 누비고 지나가, 햇살이 어른거리는 공간 너머로, 더 나아가 차갑고 깊고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수면으로 솟구쳐, 바람이 일으킨 잔물결 위에서 장난질을 친다. 다시 말해, 서로 스쳐 지나가고, 문질러 상처를 내고, 스스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잡담을 나눠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의사소통을 하려는, 자신들을 피해 가는 중심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을 하려는 시도였다. 친밀했던 관계는 멀어지고, 황홀함은 시들고, 사람은 혼자였다. 죽음에는 포옹하는 힘이 있었다. 놀라울 만큼 이상한 점. 그것은 그녀가 그토록 행복한 적이 결코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어느 것도 충분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며, 그 어느 것도 너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의자를 똑바로 세우고, 책꽂이에 책을 밀어 넣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젊음의 승리를 마감하고, 살아가는 일에 몰두하며, 해가 뜰 때, 날이 저물어갈 때, 기쁨으로 깜짝 놀라 다시 하늘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즐거움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자신이 그 청년-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청년-과 몹시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그 일을 했다는 것이,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고 있는데 혼자 삶을 포기했다는 것이 그녀는 반가웠다. 시계가 치고 있었다. 소리가 그리는 원이 대기 중에 녹아내렸다. 그 청년은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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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하루, 모든 인간의 초상
-시간, 기억, 존재를 통과하는 위대한 문학 여행 1925년 출간 이후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댈러웨이 부인』은 여성의 내면세계와 사회적 역할, 그리고 정신과 시간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적인 서사 방식으로 꾸준히 주목받아 왔다. 버지니아 울프 특유의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은 인물의 생각, 감정, 기억의 흐름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게 만들며,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섬세함을 탁월하게 그려 낸다. 이야기는 런던의 어느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파티를 준비하는 하루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그 하루는 단순한 일상의 나열이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현재’라는 시간의 틈 사이로 과거의 기억, 억압된 감정, 사회적 불안, 존재에 대한 의문 등을 교차 시키며 한 인간의 내면 풍경과 그가 속한 시대의 공기를 정교하게 담아낸다. 주인공 클라리사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셉티머스와 그의 아내 루크레지아, 클라리사의 옛사랑인 피터, 친구 이상의 관계인 샐리, 남편 리처드, 딸 엘리자베스 등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세계가 겹겹이 교차하면서, 독자는 한 도시, 한 시대, 한 사회 전체의 의식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댈러웨이 부인』은 하루라는 시간을 통해 삶 전체를, 한 사람의 감정을 통해 집단적인 시대감각을 통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100년 전 한 여성의 하루에서 발견한 지금 우리 모두의 이야기 100년 전 작품이 계속해서 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다루는 핵심 주제들이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에서 정신 질환, 여성의 정체성, 사회적 역할, 도시적 고립, 정서적 단절 등 복합적이고도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셉티머스는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고통은 오늘날에도 결코 낯설지 않다. 점점 고립되며 정신적 붕괴를 일으키는 그의 모습은 우울증, 불안장애, 번아웃, 사회적 무기력 등 현대인이 직면한 정신 건강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으며, 보이지 않는 고통에 무관심한 사회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기도 하다. 또한 이 소설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규정되어 왔고, 그 안에서 어떤 내적 갈등을 겪어야 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 준다. 클라리사는 결혼, 가정, 사회적 지위라는 틀 속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선택하지 않았던 가능성들, 외면한 감정들, 그리고 자아에 대한 회의가 끊임없이 소용돌이친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를 향한 물음은 오늘날 자기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수많은 여성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도시화가 만들어 내는 고립감, 말 없는 거리 속에서 생겨나는 단절감도 인상 깊게 그려진다. 인물들이 분주한 도시를 살아가면서도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모습은, 거대한 온라인 세상 속에서 더욱 뚜렷해진 정서적 단절과 닮아 있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 누구에게도 완전히 닿지 못하는 외로움은 이 소설이 100년 전 이미 예고했던 도시적 삶의 아이러니다. 이처럼 『댈러웨이 부인』은 문학이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본질은 언제나 우리 삶 속에서 되풀이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단지 과거의 고전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여전히 유효한 문학적 화두인 것이다. 지금 이 시대, 고통과 고립, 정체성과 회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정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