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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적사병의 가면 모르그가의 살인 도둑맞은 편지 함정과 시계추 유리병에 남긴 편지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하여 작품 줄거리 및 해설 역자 후기 |
Edgar Allan P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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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신이시여, 마왕의 독니로부터 나를 구해주소서! 지하실을 울리는 충격의 소리가 잦아드는 순간, 벽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올 줄이야! 처음에는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면서 들리더니, 갑자기 소리가 커지면서 잔인하고 저주가 가득한 비명 소리로 변해 울부짖는 듯이 길게 이어져 나왔다.
--- 「검은 고양이」 중에서 복도를 지나면서 마주치는 물건들은 왠지 모르게 내가 앞에서 말한 그 음침함을 더 강하게 자아내고 있었다. 주위의 물건들-천장의 조각, 벽에 걸려 있는 어둠침침한 태피스트리, 바닥에 깔려 있는 까만 흑단, 옛날의 영화를 잔뜩 풍기듯 발을 옮길 때마다 덜걱대는 갑옷-은 어린 시절부터 내가 익히 보아 오던 것들이어서 당연히 친숙했는데, 그런 평범한 물건들의 형상에서 기이한 환영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어셔가의 몰락」 중에서 적사병이 오랫동안 나라를 온통 휩쓸고 있었다. 이렇게 무시무시하며 치명적인 역병은 여태껏 없었다. 붉은 피 - 그 시뻘건 공포의 피 - 가 역병의 화신이자 증표였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온몸에 갑작스러운 고통이 덮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입과 코 등 온몸의 구멍으로 피를 펑펑 쏟다가 결국엔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환자의 몸, 특히 얼굴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면, 이것이 곧 병의 징후로 그때부터는 그 누구도 도움이나 간호를 외면해 버렸다. 더구나 병의 발작과 진행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단 30분 안에 끝나 버렸다. --- 「적사병의 가면」 중에서 “좋습니다. 아주 시원해서 좋군요. 그렇다면 어떤 보상이 좋을까요? 참, 이렇게 하지요!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받기로 합시다.” --- 「모르그가의 살인」 중에서 “그 양반이 아주 멍청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국장이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시인이지 않습니까. 내 생각에는 시인이나 멍청이나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습니다만.” “지당한 말씀!” 뒤팽이 무슨 생각을 하는 듯 파이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서 말했다. --- 「도둑맞은 편지」 중에서 점점 아래로 다가오는 섬뜩한 시계추의 흔들림을 세어 보던, 그 죽음보다도 길고 긴 공포의 시간을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한 번씩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 수 없는 정도로 아주 조금씩, 시계추는 나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 「함정과 시계추」 중에서 이 엄청난 덩치의 배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것이 나로서는 기적 중의 기적처럼 보인다. 바닷속으로 가라앉지도 못하고 끝없이 계속해서 이런 바다 위를 헤매고 다녀야 할 운명인 것 같다. --- 「유리병에 남긴 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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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가운데 다가오는
광기와 죽음의 그림자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는 숨어 있지 않다. 그것은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두껍게 뿌리내린 고목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므로 포의 공포가 다가올 때, 공포가 당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은 당신이 공포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포는 생애에 걸쳐서 1편의 장편과 74편의 단편을 남겼는데, 그의 단편은 크게 공포 소설과 추리 소설로 구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전자에 속하며, 본 단편선에선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적사병의 가면」, 「함정과 시계추」, 「유리병에 남긴 편지」가 이에 해당한다. 「모르그가의 살인」, 「도둑맞은 편지」는 후자에 속한다. 포의 공포 소설은 음울한 분위기가 짙게 깔린 위에 광기와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주로 서두에 주어지는 냉정한 이성이나 논리적 분석 따위는 서서히 죄여 오는 광기와 죽음의 그림자 앞에 너무도 무력하다. 현실이 일그러진 곳에서 환상이 피어나고 어느새 간데없는 이성의 자리를 대신 공포가 가득 채운다. 도망칠 곳 없는 지하실이나 지하 감옥에서, 혹은 망망대해에서 사람은 다만 목 놓아-안 돼!- 비명을 지를 뿐이다. 무척 눈을 뜨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눈을 뜨면 주위가 어떤 모습일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무엇인가 끔찍한 게 보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보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더욱 무서울 것 같았다. 마침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눈을 번쩍 떠 보았다. 정말 두려워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만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았다. 짙은 어둠이 무겁게 내리누르며 숨통을 죄는 듯했다. 들이쉬는 공기마저도 숨을 턱턱 막았다. _함정과 시계추 이 장면은 포가 그리는 공포를 잘 보여준다. 눈을 떠도, 뜨지 않아도 두려운 것, 마침내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두려워하던 그대로의 모습-끝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이다. 어둠은 포가 눈을 뜨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으나, 눈을 떠서 어둠을 인식한 시점부터 숨이 막혀 온다. 그렇다면 포의 숨을 막는 것은 짙은 어둠일까, 아니면 포 자신일까.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라는 말은 이제 너무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포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하다. 아내의 시체를 묻어 둔 벽을 경찰관들 앞에서 후려치고,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생매장한 것을 고백하고, 적사병에 칼을 휘두르고, 유령선에 올라타는 것은 모두 두려운 것을 보게 될 것을 알면서도 눈을 뜨는 것과 같다. 인간의 내면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광기. 이것은 숨죽이지도, 어디 숨어 있지도 않은 채 항상 당당하게 제자리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왜 이런 광기 어린 행동을 계속해서 자행하는 것일까? 호기심 때문에, 혹은 본능이여서, 아니면 정말 단순히 미쳐서? 아내의 시체를 묻어 둔 벽을 후려칠 때 그 효과는 무엇인가. 위장의 벽이 무너지고 아내를 죽였다는 진실이 드러난다. 동생을 생매장한 것을 고백하고 난 다음엔 동생이 살아 돌아온다. 애써 외면하던 적사병이 도래한다. 어둠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치도록 두려운 것-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실은 그다지도 유용한가. 미치도록 두려운 것을 견뎌내고 눈을 떠야 할 만큼? 「유리병에 남긴 편지」는 조난당한 여행자가 무시무시한 유령선에 타게 되고, 그 유령선에서 남긴 편지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선원들은 불안하고 두려운 발걸음으로 갑판 위를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그래도 그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절망감보다는 희망의 빛이 역력하다. _유리병에 남긴 편지 사나운 회오리 물살 속으로 가라앉으면서도 포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비록 무너진 이성-광기가 그리는 환상일지라도, 편지를 읽은 누군가는 그 희망을 이어받을 수 있지 않을까? 포는 일평생 알코올 중독과 빈곤에 시달렸다. 가족과는 절연했고 사랑하는 아내는 병을 앓다 죽었으며 주벽과 모난 성격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고, 문단은 그를 작가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재평가된 것은 사후 보들레르가 그의 단편들을 번역하면서부터였다. 빛나는 재능으로 불멸의 족적을 남겼으나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을 산 포에게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희망의 빛을 유리병에 담아 보낸다는 것은 미칠 것 같은 공포를 견뎌내고 눈을 떠 두려워하던 그대로의 진실을 바라볼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광기와 공포의 그림자 속에서 희망의 빛을 담아내면서 포의 영혼도 조금은 구원받았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