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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타마라에게 최종단계의 남자인 것이다. 나는 그녀의 지리멸렬한 인생에서 가히 ‘영속성’를 대변한다고 봐도 좋을 사람이다. 일과 섹스가 끝나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의 주인, 항상 손닿는 곳에 머물러 있고, 결코 달아나거나 버리는 일이 없는 남자. “당신은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외출 준비를 하면서 가끔 그렇게 툭 내뱉곤 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혹시 올이라도 나갈까 봐 조심조심 팬티스타킹을 신으면서 그녀는, 유행의 변천과 무관하게 예술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저 불멸의 자세를 거듭 취하는 것이었다. --- p.25
이쯤 타마라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변호하는 뜻에서, 내가 질병 때문에 우리 둘의 관계 내내 성불능 상태였음을 언급해두는 것이 좋겠다. 아니, 내가 앓는 질병이 일단 위급한 단계를 넘기자, 남은 건 그런 시시한 기억뿐이더라는 편이 낫겠다. 상상력을 통해서만 성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을 기꺼이 돕길 원하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 보여주는 여자를 만난 건 분명 행운이었다. --- p.27 물론 그녀의 암묵적인 동의 없이는 내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철저하게 의식하고서 하는 행위다. 급기야 몸 전체가 활처럼 휘어지면서, 두 눈을 꼭 감은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녀는 마치 벗어나려는 것처럼 몸을 뒤채면서도 샤워기 앞을 떠나지 않는다. 드디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의 경련이 전신을 훑고 나서야 그녀는 죽은 사람처럼 욕조 바닥에 맥없이 뻗어버린다. --- p.40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젖은 발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귀를 말리고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무얼 찾고자 했는지 금세 잊어먹고, 의자에 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의 상태를 지켜보는 내 마음이 은근히 뿌듯하다. 저렇게 된 게 바로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경험을 그녀가 무척이나 즐긴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사랑이란 우리의 숨을 멎게 할 만한 사건이어야 해. 우리 안에 현기증을 일으키면서 시간과 공간을 사라지게 해, 세상이 일거에 허물어지게 만들어야 한다구. 그래서 우리를 형언할 수 없는 해방으로 이끌어야 하는 거야.” --- p.41 그녀는 내 배를 따라 손으로 더듬어 내려가더니, 양 허벅지 사이를 만지작거렸다. 거기, 낯익으면서도 있으나 마나 한 기생식물이 여전히 잘 있는지를 확인도 할 겸, 그놈한테 애정의 표시라도 해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옛날, 우리 둘 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던 시절, 저녁마다 그녀가 내 허벅지를 주물러주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 p.79 “……남자들은 주기적으로 닥치는 이런 현상들 아마 전혀 이해 못할 거야.”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나는 솔깃한 점이 있는 만큼,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뱉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아마도 그녀 눈에는 지금쯤 내 모습이 일종의 아메바처럼 보일 터였다. 한없이 복잡한 존재가 제아무리 수준을 낮춰 설명을 해줘도 그 깊은 세계를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할 단세포 생물 말이다. --- p.93 “당신은 내 아이야. 소위 남자라는 존재, 당신들은 죄다 우리 여자들의 영원한 아이들이라구. 당신들을 세상에 내놓는 게 바로 우리들이지. 그러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우리 여자들이 돌아가면서 당신들을 돌봐주는 거고. 그 나머지는 모든 게 환상일 뿐이야. 당신들이 우리 여자들한테서 찾는 건 바로 어머니야.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순환고리를 끊길 원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 한 여자의 몸에서 났다는 숙명, 결코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을 짊어져야 할 그 저주의 사슬 말이야. 그걸 깨트려버리겠다는 게 바로 당신들이 여자를 바라볼 때 품는 욕망의 정체라구. 자고로 모든 여자는 남자에게 하나의 어머니나 마찬가지지. 그렇기 때문에 여자 곁에서 남자는 악의 순환고리를 끊고자 꿈을 꾸는 거야. 하지만 그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지. 그 점이 바로 남자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인 셈이야.” --- p.99 “물론 내가 사전에 세워줬지. 쿠키 반죽을 하듯 열심히 주물러줬다니까. 여자한테 그 일이 얼마나 신기한 건지 당신이 안다면! 그 창조적 환희 없이는 난 도저히 못 살 것 같다니까. 그건 마치 온전한 인간을 하나 만들어내는 느낌이야. 사람 모양의 빵을 빚어낸다고나 할까. 열심히 주물러주면 죽어 있던 물건이 문득 살아나기 시작하고, 결국 엄청난 크기로 성장하는 거지. 삶에 필수적인 강도와 유연성 모두를 갖춘 기관인 셈이야. 자고로 변신능력이라는 것은 무척 드문 자질이거니와, 아마 생명이 가진 모든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몰라. 근데 남자의 성기가 바로 그 살아 있는 상징이나 마찬가지거든. 이제부터라도 나는 그 놀라운 현상을 항상 기적을 대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거야……. --- p.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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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되는 『타마라』 한국어판! 『타마라』가 핀란드에서 1972년에 출간(WSOY)되고, 유럽 각국에서 곧 번역이 이어졌다. 스웨덴어(Askild & Ka?rnekull, 1974)를 시작으로 독일어(Luzern, 1974), 프랑스어(Flammarion, 1975), 네덜란드어(Haarlem, 1976), 슬로베니아어(Murska Sobota, 1976), 영어(Delacorte Press, 1978), 세르보크로아티아어(Naprijed, 1981), 덴마크어(Lindhardt og Ringhof, 1984), 그리스어(Hestia, 1990), 알바니아어(Tirane? Dituria, 2007) 순으로 출간되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二見書房, 1974)이 일찌감치 번역판을 출간했다. 우리말판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출간되는 것이다. 사랑의 전쟁터에 뛰어든 여자, 그녀가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다리는 불구의 남자. ‘불가능한 사랑’을 하는 이들이 찾아 헤매는 것은? 이 책은 타마라라는 여인이 사고로 성불구가 된 남자과 맺어나가는 남다른 애정관계를 다룬다. 남자는 ‘체크무늬 사내’ ‘공산주의자’ ‘자본가’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타마라의 숱한 애인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며 만족을 얻는다. 그렇기에 남자는 타마라에게 최대한 자세히, 상세하게 각종 행위를 묘사해달라고 요구한다. 비록 육체의 움직임이 불편할지언정 남자의 정신은 누구보다 민감하고 섬세하다. 그는 타마라에 대한 사랑과 질투, 욕망과 신체적 제약 사이에서 갈등하며 내면을 넓혀나간다. 그가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영속성’이다. 그렇기에 타마라는 그에게 유일한 여자이며, 타마라에게도 그 자신이 최종적인 남자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타마라 또한 남자에게, 사실은 무조건적인 사랑, 영속적인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서로 같은 것을 찾고 있는 것일까? 언뜻 이 책은 육체적 사랑과 쾌락에 빠진 한 여자의 삶을 묘사하는 것이 목적인 듯 보이나, 독자는 남자와 타마라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 책이 여성심리의 단호한 해방 의지를 표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인 에바 킬피는 이 책에서 편견, 위선, 우리 인생을 죄스럽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온갖 족쇄들에 공격을 가한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여성, 핀란드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여성이 성(性)과 애정생활에서 주체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결코 단순한 러브스토리로 치부할 수 없는 이 기이한 이야기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두 주인공의 사고와 신념이 서로 부딪치고 서로를 엮어가는 가운데 수없이 다양한 주제들이 파생되면서?철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으로!?의미심장한 담화의 우회로들이 현란하게 연쇄하기 때문이다. 그 얽히고설킨 질곡들 속에서 두 남녀가 이어가는 독특한 사랑은 서로에게 상처로 파고들 만큼 지독하고 강렬하다.”_《르 카파르나움 에클레레 Le Capharnaum eclai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