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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미지의 세계, 그 가슴 벅찬 풍경 속으로 _ 김소희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서문 | 여행에의 초대 I. 르네상스 시대의 항해 : 왕의 남자, 창조의 짐을 꾸리다 첫 번째 여행 | 황제의 후원으로 플랑드르에 가다 _ 알브레히트 뒤러 … 독일 뉘른베르크 / 이탈리아 베네치아 / 벨기에 안트베르펜, 메헬렌 두 번째 여행 | 예술과 외교의 쌍두마차를 타고 _ 페테르 파울 루벤스 … 벨기에 안트베르펜 / 이탈리아 만토바, 로마 / 스페인 알리칸테, 마드리드 / 영국 런던 세 번째 여행 | 술탄의 궁전에 초대받다 _ 젠틸레 벨리니 … 이탈리아 베네치아 / 터키 이스탄불 ◆ 김소희의 예술가 이야기 1 II.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동행 : 전쟁과 탐험, 예술가를 맴돌다 네 번째 여행 | 피의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 _ 벤첼 홀라르 … 체코 프라하 / 독일 쾰른, 뉘른베르크, 린츠 / 영국 런던 다섯 번째 여행 | 탐욕의 땅, 식민지 농장을 가다 _ 알베르트 에크호우트 … 네덜란드 흐로닝언 / 브라질 페르남부쿠 여섯 번째 여행 | 곤충을 찾으러 떠난 여인 _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수리남 파라마리보 일곱 번째 여행 | 루브르 궁 앞에 선 건축 대가 _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 이탈리아 로마 / 프랑스 파리 ◆ 김소희의 예술가 이야기 2 III. 혁명의 시대, 도도한 걸음 : 시민계급의 해방과 예술가의 자유 여덟 번째 여행 | 그랜드 투어에 오른 귀부인 _ 앙겔리카 카우프만 … 스위스 브레겐처발트 / 이탈리아 피렌체, 나폴리, 로마 / 영국 런던 아홉 번째 여행 | 제임스 쿡과 함께 태평양을 탐험하다 _ 윌리엄 호지스 … 영국 런던 / 남극 /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열 번째 여행 | 철의 중심지로 떠난 출장 _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 … 독일 베를린 / 프랑스 파리 / 영국 런던, 맨체스터 ◆ 김소희의 예술가 이야기 3 IV. 유동하는 근대와 새로운 세계 : 낯선 이국에 매혹된 예술가의 눈 열한 번째 여행 | 거장의 숨결이 있는 하렘에 가다 _ 외젠 들라크루아 … 프랑스 파리, 툴롱 / 모로코 탕헤르, 메크네스 / 알제리 열두 번째 여행 | 열대 낙원, 이방인의 종착역 _ 폴 고갱 … 프랑스 파리, 퐁타방 / 파나마 / 프랑스령 서인도제도 / 타히티 열세 번째 여행 | 뉴기니로 가는 밤기차를 타다 _ 에밀 놀데 … 독일 베를린 / 파푸아뉴기니 라바울 ◆ 김소희의 예술가 이야기 4 더 읽어보면 좋은 책 |
Joachim R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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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는 ‘여행’과 ‘예술가’를 연관 짓는 일이 특별할 것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에 잠시 자리를 비우고 외국에 체류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것이 있을까?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예쑬가의 여행이 존재했던 역사적 맥락을 알게 된다면 사정을 달라진다. ‘예술가’와 ‘여행’이 갑자기 별개의 두 단어로 해체되어버릴 테니 말이다.---p.16
요한 마우리치와 함께 서인도 주식회사의 돈으로 남미를 여행했던 일군의 예술가 및 자연연구가들과 달리 메리안은 뱃삯에서부터 체류비까지 대부분의 비용을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그동안 수집한 그림책, 박제는 물론이고 절대 남의 손에 넘기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연구 서적까지 다 팔아 비용을 마련했다. 수리남에서 돈을 벌 전망이 희박했으니 참으로 위험한 도전이었다.---p.141 스페인 알헤시라스에서 잠시 머물 때는 전염병 때문에 갑판을 떠날 수 없었지만 분주한 항구를 바라보며 ‘내 주변에 고야(Francisco Goya)가 숨 쉬는 것을 보았다’고 적었다. 탕헤르에서는 한 무어인의 얼굴 윤곽에서 존경하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았고, 어두침침한 가게에 앉은 한 늙은 유대인에게선 네덜란드 화가 제라드 도우(Gerard Dow)의 그림을 떠올렸다. ---p.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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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예술가들을 휩쓴 ‘여행’이라는 열병
“여행,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남긴 말이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시대에 ‘새로운 눈을 갖는 경험’이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세의 늪에서 갓 벗어난 유럽, 그것도 신분이 미천한 화공(畵工)들에겐 달랐다. 그들에게 여행은 창조에 대한 열정과 미지에 대한 오랜 갈증을 해소할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근대의 여행은 수공업자의 지위를 벗어난 예술가들이 누린 일종의 특권이었다. 특히 17세기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이후, 근대 유럽 전역에 유행병처럼 번져나간 여행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학습과 교류의 장이 되었다. 또한 정치적 혼란과 시대의 격변 속에서 낯선 이국의 풍경은 일상에 갇혀 있던 화가들에게도 신선한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여행이라는 경험은 자신의 내면을 오롯이 마주하는 기회였고, 이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서양미술을 대표하는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다. 독일의 정통 미술사가 요아힘 레스가 펴낸 신간 《예술가의 여행》은 15-20세기 초 여행의 매혹에 빠져든 13명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예술가의 여행’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기존의 미술사에서 조명 받지 못했던 매력적인 그림 속 이야기를 흥미롭게 선보인다. 그 스펙트럼은 유럽 외교무대에 선 루벤스와 술탄의 궁전에 초대받은 젠틸레 벨리니, 제임스 쿡을 따라 남극을 탐험한 윌리엄 호지스와 여성으로서 영국과 이탈리아를 넘나든 앙겔리카 카우프만, 타히티에 정착한 자유영혼 폴 고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펼쳐진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여행’이라는 환희와 고독의 시간들이 만든 서양미술사의 또 다른 궤적을 만나게 된다. 권력의 사신이 되어 대륙을 누비다 : 외교 무대의 주역이 된 루벤스와 벨리니의 여행 요아힘 레스는 시대 순으로 13명의 예술가가 다녀온 여행을 소개한다. 4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예술가들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근대사와 미술사의 흐름과 마주한다. 각 챕터는 시대적 특성과 여행의 동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1장에선 화공에서 예술가로 지위가 격상된 이들의 신분 변화와 여행의 정치적 동기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 포함되는 인물로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와 알브레히트 뒤러, 베네치아의 대표적 화가인 젠틸레 벨리니가 있다.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루벤스는 예술가의 정치적 야망과 성공을 보여주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1603년 처음 이탈리아 만토바 공작의 선물수송단이 되어 스페인 국왕에게 향했던 무명의 화가는 그로부터 25년 후 전 유럽이 열광하는 대가가 되어 다시 스페인으로 향한다. 이 시대의 예술은 왕국 간 소통과 정치적 협상의 매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을 넘나들며 유럽 외교무대의 주역으로 성장한 루벤스의 여행은 그 자체로 유럽근대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여러 왕국을 넘나들며 그린 루벤스의 그림 속 알레고리(Allegory)는 노련한 정치적 역량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벨리니의 여행은 15세기 해상 강국으로 성장한 베네치아와 오스만제국의 밀접한 관계 속에 자리한다. 그는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메트 2세의 부름을 받고 수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로 향했다. 당대의 예술가들이 집결했던 술탄의 궁전에서 벨리니는 메메트 2세의 초상화 등을 그리며 유명세를 얻어갔다. 그는 서양미술사에서 카톨릭 황제와 이슬람 술탄에게 동시에 궁정백 지위를 받은 유일한 화가가 되었다. 황홀한 미지의 세계가 나를 부른다 : 호지스의 남극 탐험과 곤충화가 메리안의 여행 이어지는 2장에서는 17세기 이후의 종교 분쟁과 식민지 영토 확장에 동참한 예술가들의 여행을, 3장에서는 산업혁명과 시민계급의 해방으로 적극적 형태를 띠는 예술가들의 여행을 만나게 된다. 보헤미아 출신의 동판화가 벤첼 홀라르는 아룬델의 외교사절단 일원이 되어 라인강과 마인강 일대를 돌며 전쟁의 소용돌이를 화폭에 담았고, 스위스 출신의 여성 화가 앙겔리카 카우프만은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거쳐 영국 왕립 미술아카데미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이 시대에 여행을 떠난 예술가 중에 눈길을 끄는 인물은 남미 수리남으로 딸과 함께 곤충을 그리러 떠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과 제임스 쿡의 태평양 탐사대의 일원이 되어 떠난 윌리엄 호지스이다. 메리안의 여행은 탐구 여행의 성격이 짙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유충이 나비로 변태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녀는 재산을 전부 털어, 당시로선 상당히 드물게 남성 보호자나 별도의 후원 없이 독립적으로 고온 다습한 수리남 파라마리보로 떠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 열정적인 두 해를 보내고 온다. 그곳에서 메리안은 식민지 농장의 흑인 여성들의 도움을 받아 온갖 동식물을 관찰하며 생명의 신비를 알게 된다. 무모할 정도로 담대했던 그녀의 여행과 탐구 정신은 미술사와 과학사 사이의 독특한 지형을 그리는 데 일조했다. 윌리엄 호지스의 여행은 그야말로 ‘탐험’이라는 단어와 어울린다. 당시 영국은 제임스 쿡의 탐험대가 세 차례나 세계 일주를 했을 정도로 해상 여행을 선도하고 있었다. 호지스는 제임스 쿡의 2-3차 탐사에 참가하여 태평양 섬의 그림들을 유럽에 최초로 선사했다. ‘미지의 남반구’를 찾으려는 그들의 시도는 드디어 남극에 도달하면서 성과를 거두었다. 단색으로 그린 호지스의 남극 그림은 전통적 풍경화에서 찾을 수 없는 공간을 선구적으로 포착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이후 그는 남태평양 폴리네시아를 탐험하며 많은 그림을 그렸고, 특히 그가 화폭에 담은 타히티 섬은 훗날 폴 고갱의 안식처가 된다. 제국의 시선, 탐욕과 동경 사이 : 브라질 농장에 간 에크하우트와 타히티에 정착한 고갱 17세기 이후 본격화된 유럽제국들의 식민지 영토 확장은 예술가의 여행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2장에 소개된 알베르트 에크하우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는 신세계 최대 규모의 사탕수수 농장인 브라질을 탈환했다. 초상화가 에크하우트는 네덜란드령 브라질 총독인 요한 마우리츠를 따라 브라질로 떠났다. 그가 여행에서 그린 수십 명의 원주민, 인디언 모습들은 식민지를 바라보던 제국의 시선을 대표하고 있다. 물론 그 역시 고용주의 요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엄격한 검열이 남긴 작품들은 노예 없는 평화로운 식민지의 자연만을 담고 있다. 4장은 19세기 이후의 여행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시기 유럽 사회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파도가 지나가고 대륙 간 교통이 정상화되면서 이동이 활발해졌다. 여기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발견한 식민지의 원시성과 새로운 미적 경험은 예술가들에게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폴 고갱이 그러했다. 그는 파리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브르타뉴 섬과 마르티니크 섬을 거쳐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인 타히티에 정착했다. 그의 대표작 「이아 오라나 마리아」 등의 작품은 고갱이 열대의 섬에서 발견한 원시적 순수성과 모성 숭배를 포함한 새로운 미적 감흥을 표현하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알제리 등에서 하렘의 여인들을 그린 외젠 들라크루아 역시 오리엔탈리즘에 기여함과 동시에 자신의 미적 종합을 이루어낸 걸작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나는 여행을 떠나 비로소 예술가가 되었다” : 여행이 남긴 것들 영국 런던에서 모로코 탕헤르까지, 술탄의 궁전에서 남극의 한가운데까지 저마다의 동기와 목적에서 떠난 예술가들의 여행은 그 자체로 미술사의 다채로운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이 책 《예술가의 여행》은 이제껏 미술사가 주목하지 못했던 ‘여행’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예술가의 삶과 명작이 탄생한 창조의 공간들을 다시금 살펴보게 만든다. 특히 저자는 독특한 주제를 선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플랑드르에 간 뒤러나 프랑스에 간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의 여행처럼 전통적인 테마 외에도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나 윌리엄 호지스와 같은 인물을 선택하는 신선한 스펙트럼을 선보인다. 저자가 선택한 13명의 예술가들은 한때 특권과도 같았던 여행길에 올라 혹독한 시련과 고독에 맞서기도 하고, 낮선 이국의 풍경 앞에 가슴 벅찬 감동과 환희를 경험한 이들이다. 비록 정치적, 사회적 현실 앞에 무력해진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예술가들의 여행은 당대의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했을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들은 단지 낯선 풍경을 본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창조의 동인으로 삼아 각자의 예술적 발전을 일구어나갔다. 그들의 여행에는 고독한 멜랑콜리와 황홀한 엑스터시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궁극적으로 마주한 것은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낯설게 발가벗은 자신의 자아였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끔 여행을, 방황을 꿈꾼다. 창조에 대한 열정, 미지에 대한 욕망은 예술가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요아힘 레스가 소개하는 열세 편의 여행 이야기는 미술사에 관한 교양의 범주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깊숙하게 울리는 모험과 도전의 세레나데가 될 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술탄의 궁전이, 열대의 수리남이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