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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의 글 / 언제나 한 모습으로 떠오르는 사람 -유시민
1부 2004년 기록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 생각했다 2004년 7월 14일 담요 한 장을 국회의장석 앞바닥에 깔고 잠을 청하다 12 / 7월 15일 대법원의 시계는 여전히 20세기 16 / 7월 16일 우라베 토시나오 일본 공사가 방문했다 19 / 7월 17일 헌법 밖의 국민이 어찌 이들뿐이랴 22 / 7월 18일 신록의 계절에 초록이 점점 동색이 되고 있다 25 / 7월 19일 [화씨 9/11]을 관람했다 30 / 7월 20일 당대표와 지도부의 철야농성계획이 전달되었다 32 / 8월 31일 2004년 들어서서 가장 좋은 하루를 보냈다 34 / 9월 1일 가을을 앞세우고 겨울이 남하하고 있다 37 / 9월 2일 아침이 너무 자주 찾아온다 40 / 9월 3일 결혼도 마다하고 오십 평생 내내 당신이 그토록 소망했던…… 44 / 9월 4일 이영훈 교수의 발언 파문이 확대일로이다 48 / 9월 5일 독버섯은 옮겨 심어도 독버섯일 뿐이다 51 / 9월 6일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책을 주문했다 54 / 9월 7일 법사위가 3D업종이라는 말이 허사가 아니다 56 / 9월 8일 송영길 의원 모친상 조문을 가다 58 / 9월 9일 ‘사랑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간첩이다’ 61 / 9월 10일 송창식과 윤형주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64 / 9월 11일 용기 있게 진실과 양심의 편에 서야만 ‘원로’일 것이다 68 / 9월 12일 의원회관에 불 켜진 방이 꽤 많다 70 / 9월 13일 국가보안법 공방이 가열되면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다 73 / 9월 14일 한국에서 노동운동은 아직 독립운동이다 76 / 9월 15일 예결위에서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가 빛난다 80 / 9월 30일 할 일도 많고 갈 길은 멀다 82 / 10월 1일 노아정 식구들이 의원실을 찾아오다 86 / 10월 2일 철야하는 인턴들로 엘리베이터가 만원이다 89 / 10월 4일 법사위의 국정감사는 홈커밍데이즈 92 / 10월 5일 소주 한잔 같이해야 할 사람 95 / 10월 6일 14년 만에 다시 앞에 섰다 97 / 10월 7일 야간근로를 반대하기 때문에 질의하지 않겠다 100 / 10월 17일 포괄협정(UA)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기밀이 아니다 104 / 10월 23일 흙손을 잡는데 가슴이 뭉클하다 110 / 11월 6일 국회가 추안거(秋安居)에 들어간 지 열흘이 되었다 114 / 11월 30일 또 그가 단식에 들어갔다 117 / 12월 12일 단절되지 않은 역사의 보복을 체험한다 121 2부 2005년-2007년 역사에는 시효가 없다 2005년 2월 15일 생선가게에 다시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124 / 3월 9일 바르샤바엔 종일 눈 내리고 128 / 3월 10일 새벽에 쓰는 편지 130 / 3월 11일 인류의 역사는 회계장부가 아닙니다 135 / 5월 6일 “머리가 왜 벗겨지셨어요?” 139 / 5월 8일 그와 헤어진 지 두 달이 되었다 143 / 5월 10일 서울구치소를 방문하다 145 / 7월 24일 역사에는 시효가 없다 148 / 10월 3일 불쌍한 것은 조승수가 아니다 151 /11월 00일 대통령이 못하면 국회가 해야 한다 154 / 2006년 1월 20일 반기문 승, 윤광웅 승, 노무현 패? 158 / 1월 31일 울산바위는 울산에 있어야 한다 161 / 2월 7일 ‘단돈 8,000억 원’으로 면죄부를 살 순 없다 166 / 4월 23일 ‘조용한 외교’는 조용히 끝내야 한다 170 / 5월 30일 분노의 표심이 결집하고 있다 176 / 6월 26일 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181 / 9월 3일 혼자 있는 방에서도 얼굴을 들기 힘들다 185 / 10월 30일 기꺼운 마음으로 이 길을 간다 190 / 11월 8일 불쌍한 것은 국민들이다 193 / 2007년 1월 5일 어머님의 신문스크랩 20년 196 / 2월 20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200 / 4월 9일 D-365,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208 / 4월 15일 또 한 사람의 전태일을 보내며 213 / 7월 31일 인질석방,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 216 / 8월 20일 전화 홍보보다 부담스런 일은 없다 219 / 10월 25일 국방장관에게 책을 선물했다 222 / 11월 1일 이회창을 부활시킨 이명박 후보의 저력 226 3부 2008년-2012년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이 길을 만들 것이다 2008년 4월 18일 나에게 묻는다 230 / 7월 9일 수면권을 보장하라 233 / 7월 10일 뒤풀이를 사양하다 236 / 7월 11일 ‘양해’할 수 없는 죽음 239 / 7월 12일 구해근 교수를 뵙다 242 / 7월 13일 꽃이 무슨 소용인가 245 / 7월 15일 [PD수첩]은 ‘마지막 신문고’인가 249 / 7월 17일 '끝장토론'에 나가기로 했다 252 / 7월 21일 주민소환투표를 추진하기로 했다 257 / 7월 24일 ‘물대포후보’와 ‘촛불후보’가 맞서고 있다 260 / 8월 1일 안나 까레니나는 누가 썼나 263 / 8월 28일 『청구회 추억』 267 / 2009년 4월 9일 MBC는 함락되는가? 271 / 5월 18일 깜빡이 다 끄고 마을 전체 어지럽히겠다는 뉴민주당플랜 274 / 12월 21일 나의 쌍권총, 아이폰과 블랙베리 279 / 2010년 1월 9일 언제까지 죄송해하고만 있지는 않겠습니다 284 / 1월 18일 ‘식중독 사고율 5배’ 교장선생님, 좋으십니까? 287 / 3월 7일 감사와 함께 사과드립니다 291 / 00월 00일 역사는 딱 진보정당 득표만큼 앞서갑니다 296 / 2012년 10월 21일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299 / 10월 22일 어머니의 모습을 한 아버지의 아바타 304 / 10월 25일 다들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본다 306 / 10월 30일 박근혜 후보, 땀 흘려보았나? 308 / 11월 1일 '저공비행'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310 / 11월 4일 정치인의 말은 짧을수록 미덕이다 312 / 11월 6일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315 4부 2013년-2018년 언젠가 촛불마저 꺼져도 광장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2013년 3월 11일 짜파구리 재료를 사다 320 / 4월 29일 국회쇄신이 시작되어야 할 곳 322 / 2014년 4월 30일 백성을 버린 선조와 배신당한 백성들의 분노 325 / 7월 8일 첫 날 첫걸음을 무명용사탑으로 정한 뜻은 327 / 2017년 2월 14일 특검이 수사기간 연장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329 / 3월 6일 언젠가 촛불마저 꺼져도 광장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332 / 6월 6일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336 / 8월 17일 대선 후 100일 338 / 8월 24일 ‘겸임해제사건’을 아시나요? 341 / 2018년 1월과 2월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 344 / 3월 산하에 봄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346 / 4월과 5월 이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평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348 / 7월 23일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350 5부 2004년-2018년 그의 말은 희망이었고, 이제 역사가 되었다·어록 추도의 글 / 그를 보내며 -조승수 392 노회찬 연보 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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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개월 중 2개월이 지났다. 내일은 오늘과 달라야 한다.”(2004.7.15)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책을 주문했다. 나이가 들수록 해야 할 공부가 늘어난다.”(2004.9.6) “현충원 무명용사탑을 참배했다. 이름 없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건강한 다리가 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2014.7.8) 노회찬은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시대를 느꼈으며 그들의 언어로 정치를 해석하고 그들의 소망을 정치에 투영하려 분투했습니다. 인간사회에서 제일 이루기 어려운 그 일을,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하기 위해 쉬지 않고 공부했고요. ---「추도의 글 언제나 한 자리에 있는 사람-유시민」중에서
의사당 대리석 로비를 나서자 늦은 밤비가 서민들의 원성처럼 옷을 적신다. 이제 임기 48개월 중 2개월이 지났다. 내일은 오늘과 달라야 한다. ---「2004. 7. 15. 대법원의 시계는 여전히 20세기」중에서 당신의 연세를 “여든 하나”라고 밝히신 분은 의정부시민 박찬정 씨였다. 비슷한 연배의 할아버지들과 함께 오셨다. 강연이 끝나자 손을 꼭 잡고 말씀하신다. “여든 하나인 우리들이 살아생전에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는 그날을 꼭 보게 해달라.” …여든한 살. 아버님과 동갑이다. 일제하에서 태어나 젊어서 두 차례의 전쟁을 겪고 군사독재의 하늘 아래에서 환갑을 맞이한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켜보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2004.9. 4. 이영훈 교수의 발언 파문이 확대일로이다」중에서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책을 주문했다. 나이가 들수록 해야 할 공부가 늘어간다. ---「2004. 9. 6.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책을 주문했다」중에서 19시, 경기도 기흥연수원에서 개최 중인 신한은행 전국분회장수련회에 가서 강연하다. 내려가는 길에 고속도로 기흥휴게소에서 우동과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는데 노동자 한 사람이 음료수를 가져다준다.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다. 의석이 적어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라고 한다. 다음 선거에선 반드시 더 많은 의석을 만들어주겠노라고 한다. 민주노동당 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감동이다. ---「2004. 9. 15. 예결위에서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가 빛난다」중에서 10월 17일, 오후에 열린 법제처 국정감사에서도 용산기지 이전협상에 대해 따졌다. 포괄협정(UA)을 법제처에서 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기지 이전협상 결과가 하나의 협정이 아니라 포괄협정(UA)과 이행협정(IA)으로 나누어지고,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UA는 국회동의를 얻는 비준안으로 하고 실질적인 내용을 담는 IA는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은 양국 협상팀의 공모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국회의 검열부담 없이 미국 측 영향력이 절대적인 한미소파합동위원회에서 IA를 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청와대 직무감찰 보고서는 UA, IA는 물론 기술협정서까지 국회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UA만 넘어 왔기 때문에 UA만 검토하고 있다던 법제처장은 ‘법제처의 실무진이 UA와 IA가 함께 국회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는 지적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2004. 10. 17. 포괄협정(UA)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기밀이 아니다」중에서 고구마 캐는 농민들, 도리깨로 콩을 터는 할머니, 콤바인으로 추수하는 아저씨, 여물용 볏짚을 쌓는 중년의 부부. 흙손을 잡는데 가슴이 뭉클하다. 논두렁에 몰려 앉아 막걸리에 새참 먹듯 점심을 하다. 유권자가 3천여 명인데 최기재 후보는 후보용 명함을 벌써 8천 장 넘게 돌렸다고 한다. ---「2004. 10. 23. 흙손을 잡는데 가슴이 뭉클하다」중에서 인류의 역사는 회계장부가 아닙니다. 실리니 실용이니 하는 것은 장엄한 역사의 잣대일 수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군은 무모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광주항쟁을 실용적이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광주항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05. 3. 11. 인류의 역사는 회계장부가 아닙니다」중에서 1972년 유신선포를 듣고서 1980년 광주대학살 소식을 듣고서 1987년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을 접하고서 느꼈던 것과 같은 항거불능의 폭력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입니다. 무력감이 분노를 낳지만 분노가 눈앞을 가리진 않습니다. 분노는 다짐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역사에는 시효가 없으며 잘못된 현실은 끝내 정정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길입니다. ---「2005. 7. 24. 역사에는 시효가 없다」중에서 도대체 우리 대다수 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머리가 나빠서인가? 남들 열심히 일할 때 먹고 놀아서인가? OECD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05년 1년 동안 노르웨이 노동자들은 1년간 1,360시간, 일했고 네델란드 노동자들은 1,367시간, 독일은 1,435시간, 프랑스는 1,535시간 일했다. 세계적으로 일벌레로 유명한 일본 노동자들도 1,775시간 일한 반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2004년 통계로 2,394시간 일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하면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지난 30년간 세계 1위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최장노동시간 부문에서 감히 한국을 제치고 1위를 하려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열심히 일한 죄 말고는 이 땅에서 태어난 죄밖에 더 있는가? ---「2006. 6. 26. 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중에서 바깥은 섭씨 35도의 폭염인데 교실 안에는 전노련 서울 북서부지부 회원들이 책상 하나씩 차지하고 강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도, 오세훈 현 서울시장에게도 이들 20대 청년에서 60대 노년까지인 노점상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철거대상’, ‘단속대상’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철거대상, 단속대상밖에 되지 않는 노점상들이 이 무더위 속에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 틀어놓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토론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2008. 7. 9. 수면권을 보장하라」중에서 그들이 줄곧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그들이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것은 ‘권력’밖에 없다. 물론 최근 하는 일들을 보면 권력 외에 ‘정신’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정부에 그렇게 염증을 낸 대한민국 부자들도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것이 없는 계층이다. 참여정부 재임기간인 2003년에서 2007년까지 5년 동안 대한민국은 백만장자(기초부동산 제외하고 순금융자산이 100만 달러 이상 계층) 증가율이 세계 3위, 7위, 1위, 6위, 4위를 기록했다. 실로 지난 5년간은 대한민국 부자들에게 ‘살맛나는 세상’이었다. ---「2008. 7. 13. 꽃이 무슨 소용인가」중에서 첫 날 첫걸음을 무명용사탑으로 정한 것은 이름 있는 사람 앞에 줄 서는 정치가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을 주인으로 모시는 정치를 펼쳐나가겠다’는 다짐의 뜻이다. 이름 없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건강한 다리가 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2014. 7.8. 첫 날 첫걸음을 무명용사탑으로 정한 뜻은」중에서 지난 5월 19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회동했을 때 나는 ‘여야 5당 대선후보들의 공통공약이 수십 가지에 이르니 이 공통공약만이라도 우선적으로 함께 추진해가자’고 제안하였고 다들 동의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일로 경쟁하기보다 상대를 곤경에 빠뜨림으로써 반사이익을 얻고 우위에 서려는 낡은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 8. 17. 대선 후 100일」중에서 시작이 좋습니다. 남북정상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합의입니다. 특히 말로만 끝난 이제까지 남북합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합의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겠다는 약속을 환영합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2018. 4. 27. 이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평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중에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에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8. 7. 23.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중에서 그는 가고 싶었던 길이, 하고 싶었던 일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원했습니다. 폭염 속에서도 모여든 수만 명의 조문행렬이 의미한 것은 자의도 타의도 아닌 상황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보내는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추도의 글 그를 보내며-조승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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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가장 뜨거운 시대를 관통한 한 사람
분단, 독재, 부당한 권력·자본에 대한 분투, 사회양극화와 빈부격차에 대한 저항, “언젠가 촛불마저 꺼져도 광장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생사가 갈리는 노동의 현장, 노동과 정치권력·독점자본과의 갈등, 노동자와 일하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 첨예한 지역대립과 정치갈등……. 이제껏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현실’이다. “전쟁을 겪은 소년은 이미 소년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1972년 10월 17일 이후 나는 이미 소년이 아니었다.”라는 노회찬 의원의 회상대로, 유신독재 치하에서 자란 소년 노회찬은 유신반대 유인물을 뿌릴 정도로 결기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청계천 헌책방으로 달려가 사회과학 서적도 탐독했다. 대학시절에는 용접일을 배워 용접공으로 일했고,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창립을 주도하는 등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그는 합법적 정치세력화를 꿈꾸며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해 한평생 노동자와 농민, 중소상인 등 서민의 편에 함께했다.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을 목도할 때마다, 그는 진보정당 운동은 바로 매일매일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들’을 위한 일이며, 이것이 진보정당의 존재이유라고 선언했다. 몇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대한민국의 모순, 노동의 현실에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법 개혁을 외치고, 밤늦게까지 토론했다. 이후 그는 제17대, 제19대, 제20대 등 3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끝까지 민중과 노동의 현장에 기반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통쾌한 언변과 설득력으로 현실정치를 강도 높게 비판했고 정치·경제·법 개혁을 일궈내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가 심혈을 기울인 문제 중 하나로 비정규직 양산 등 고용의 불안정 구조를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인권문제, 국가보안법 폐지, 독도영유권, 파병반대, 용산기지를 둘러싼 한미외교협상 비판, 한반도 평화염원 등 흔들림 없이 진보와 정의의 입장에 섰다. 매일매일 정직하게 일하고, 이름 없이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인간존엄과 평등사회를 꿈꾼 ‘가장 인간적인 정치인’, 최고의 휴머니스트 이렇듯 치열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의 삶을 살았지만, 노회찬 의원은 진솔한 인간미, 재치 넘치는 유머감각, 문화예술에 대한 조예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소신에 따라 첼로를 배웠고, 책을 항상 가까이했으며, 신혼의 아내를 위해 요리솜씨를 뽐내고 싶어 한 남편이기도 했다. 자연을 사랑해 광릉 숲에서 업무보고를 받은 날, ‘가장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기뻐했고 좋은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가장 인간적인 정치인’이라는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평도 그의 인품을 수식하는 말이다. 70세 시어머니가 연로해 40년 간 운영한 떡집 문을 닫는 날, 마지막 떡을 주려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시어머니와 함께 만든 떡을 두고 간 40대 여성, 강연을 마치고 탄 야간고속버스에서 만난 정년 다 된 고속버스기사, 열정에 넘친 항공기 조종사노조원들, 무더위 속에서 정책을 토론하고 공부하던 20대에서 60대까지의 노점상들, 강연이 끝나자 손을 꼭 잡고 “여든하나인 우리들이 살아생전에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는 그날을 꼭 보게 해달라”고 당부하던 노인…, 그가 만난 사람들은 감동이었고, 힘이었다. 그는 이렇듯 사람들을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다. 생전 2005년부터 14년간 해마다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여성리더, 여성노동자 등에게 장미꽃을 선물했으며, 국회 청소노동자들에겐 ”혹시 잘 안 되면 저희 사무실 같이 씁시다” 권하며 이들을 “국민을 위해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라고 응원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화물연대 노동자의 응원에 감동했고, 새벽 두 시 반, 함께 고생한 보좌관과 터미널에서 헤어지며 아침부터 다시 시작될 일정을 위해 힘을 냈다. 신영복 선생을 깊이 존경했고,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난다’라는 글귀를 특히 좋아해 힘들 때 자주 읽었다. 또한 이 유고산문집에는 가족과 지인들, 특히 어머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아프게 배어난다. “내 인생의 첫 눈은 태어나서 처음 마주한 어머니 얼굴의 그 눈! 어머님 건강하세요.”라는 글귀가 잊히지 않는다. 따스한 인간미만큼이나 그의 유머도 특출했다. 엄중한 국정감사기간에도 “야간근로를 반대하기 때문에 질의하지 않겠다”고 분위기를 눅이거나,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암소갈비 먹던 사람이 불고기 먹으면 그 옆의 굶던 사람은 라면을 먹을 수 있어요”, “50년 된 삼겹살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요?”라는 촌철살인 어록에서는 통쾌한 노회찬식 유머와 함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그래서 부당한 현실 앞에 더욱 분노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용산참사 영결식 추도사를 하면서 고인들에게 함께 숨진 고 김남훈 경사를 하늘나라에서 만나거든 따뜻하게 안아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역시 무모한 진입명령의 희생자이고 무허가건물 옥탑방에서 기거하던 서민이었습니다.”라는 그의 추도사는 누가 진정한 가해자인지 가려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배웠다. 때로 비판하고 논쟁했으며, 같이 열정을 키웠다. 항상 서민이 고통받는 현장을 직접 찾았기에 그의 말과 글은 절절했고, 현실에 닿아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울러 신간『노회찬의 진심』에 담긴 그의 글들은 놀랄 만한 현실분석력을 보여준다. 어려운 법과 제도 문제, 난마처럼 얽힌 경제논리, 국방과 외교의 현안을 탁월한 지성과 통찰력으로 해부해 문제의 본질을 꿰뚫었다. ‘국회의원 의정교재’로도 손색 없을 정도로 뛰어난 분석과 통찰, 해박함, 치밀한 조사,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고민의 힘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갈등에 대해 그가 던지는 해법과 문제분석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권력과 자본의 힘 앞에 무너지고, 의지할 데라곤 없이 맨몸으로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뇌했던 노회찬. 유쾌한 재담, 치밀한 자료조사와 명쾌한 설득력, 끊임없는 공부와 고민, 현실적 해법으로 이 강력한 세상의 벽과 제도에 맞서던 그는 이제 글로,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를 알게 된 건 우리의 특권이었다. 그는 이제 여기에 없다. 그가 남긴 이 기록의 힘이 살아남은 자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