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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이숲 201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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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3

알베르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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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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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자크 페랑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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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Ferrandez

1955년 12월 12일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니스 국립 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일러스트와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프로방스 지역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후배지ARRIERE-PAYS』(1982), 『지방 소식NOUVELLES DU PAYS』(1986) 등을 발표했다. 1987년부터 2009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알제리와 프랑스에 관한 역사 만화 ‘동방 수첩CARNETS D’ORIENT’ 시리즈(전 10권)를 완성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손님』과 『이방인』을 그래픽노블로 재구성했으며, 현재 재즈 콘트라베이스 연주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앙드레 말로에 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파리 8대학 철학박사 과정에서 엠마누엘 레비나스에 대한 논문을 준비했습니다. 귀국 후 출판사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했으며 그래픽노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비밀일기』 『자이 자이 자이 자이』 『오리엔탈 피아노』 『최초의 인간』 등 여러 권의 그래픽노블뿐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몇 편의 프랑스 철학책, 그리고 『올망졸망 철학교실』 『유토피아』 『이건 내 나무야』 『조금 많이』 『내 친구 수지』 등의 어린이책을 우리말로 옮겼고 최근에는 창작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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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906g | 210*280*20mm
ISBN13
9791186921715

출판사 리뷰

사건

1960년 1월, 당시 47세였던 카뮈는 남프랑스 루르마랭에 있는 자기 집에서 출판인 가스통 갈리마르의 조카 미셸과 그의 부인 자닌, 그리고 그의 딸 안과 함께 새해 첫날을 함께 보냈다. 1월 2일, 카뮈의 아내 프랑신과 두 자녀는 파리행 열차를 탔지만, 카뮈는 미셸 갈리마르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미셸의 차는 강력하고 호화스러운 모델 파셀 베가였다.
그들은 도중에 투아세라는 작은 마을에서 밤을 보냈고, 1월 4일 아침 파리를 향해 떠났다. 리옹과 상스를 잇는 6번 국도를 탔다가 상스에서 파리로 향하는 5번 국도로 갈아탔다. 운전석에는 미셸, 옆자리에는 카뮈, 그리고 뒷좌석에 자닌과 안, 그리고 강아지 플록이 타고 있었다. 프티-빌블르뱅을 지날 때 빠르게 달리던 자동차는 갑자기 도로를 벗어나 가로수를 들이받았고, 두 번째 나무를 또 들이받으며 박살이 났다.
당시는 제한속도가 없던 시절이어서 신문기사에 따르면 차는 시속 180킬로미터로 달렸다. 운전자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을까. 창밖으로 흘러가는 가로수를 보며 간질 증세를 일으켰을까. 혹은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이자 전문가의 검증이 밝혔듯이 과속 때문에 바퀴가 터졌던 걸까. 카뮈는 사고 현장에서 즉사했고, 심하게 다친 미셸 갈리마르는 엿새 뒤에 사망했다. 그의 아내와 딸은 살아남았고 동승했던 개는 실종됐다.


원고

주변 수십 미터 반경으로 흩어진 차의 파편 사이에는 별로 남은 것이 없었다. 그나마 가죽 가방 하나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안에는 니체의 『즐거운 지식』과 두 권의 노트, 그리고 ‘최초의 인간’이라는 제목이 붙은 원고 144매가 들어 있었다. 죽기 전 몇 달간 카뮈는 알제리의 프랑스인들을 소재로 대서사시 같은 이 소설 집필에 매달렸다. 남편을 잃은 프랑신 카뮈는 1961년 여름부터 이 원고를 타이프로 치기 시작했다. 원고는 일차 대전이 일어난 지 몇 주 만에 사망한 동부 알제리 출신 농업 근로자였던 아버지의 자취를 찾는 작가 자크 코르므리의 내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카뮈가 이 소설의 전체적인 구조에 관해 적어놓은 메모에는 ‘징집. 국가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아버지는 프랑스를 보신 적도 없었다. 아버지는 프랑스를 보셨고, 돌아가셨다.’라고 쓰여 있었다.
카뮈의 지인들은 아직 이 미완성 원고를 출간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알제리에 사는 프랑스 아이, 전몰 유공자의 고아 이야기는 알제리가 프랑스의 지배에서 막 벗어난 시기에 출간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후 34년이 흘렀다. 세상도 달라졌고, 문학도 그랬다. 카뮈의 딸 카트린은 이 원고를 타자로 치는 엄청난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 작업 덕분에 결국 1994년 『최초의 인간』이 출간됐다.


온전한 서사로 다시 태어나다

『최초의 인간』은 출간 즉시 성공을 거뒀고,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그리고 이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 없이 카뮈를 읽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메모와 계획과 등장인물에 대한 생각, 몇 쪽에 걸친 긴 문장과 미처 끝내지 못한 다른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미완성 원고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완성되어가는 문학 작업을 보여주고, 필연적으로 그 다음에 어떤 것이 이어졌을지 상상하게 하고,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작가가 어떤 것을 그대로 두거나 버렸을지 매 순간 독자 스스로 되묻게 했다. 『최초의 인간』이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하는 대목도 바로 거기에, 이 작품이 한창 고조되던 중에 갑자기 중단됐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원고에는 미완성 원고의 문제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하나의 완성된 서사라기보다는 그런 서사를 위해 준비한 자료의 수준을 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이 원고는 화가 자크 페랑데즈의 손에서 하나의 완성된 그래픽노블로 새롭게 탄생했다. 미완성 소설을 그래픽노블로 완성해야 했던 자크 페랑데즈 도전의 관건은 작품에 내재한 신비의 영역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 핵심을 전달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래픽노블이야말로 이런 작업에 최적, 최상의 장르였다. 칸 사이에 늘 공백이 있고 생략이 있어 독자는 언제나 작가가 보여주는 것, 말해주는 것 너머를 탐험하게 된다. 페랑데즈는 알제라는 도시를 훤히 꿰뚫고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 식물원, 분수, 해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공간들을 그 생생한 색이나 미묘한 음영으로 길거나 짧은 칸 안에 재현하고, 서사에 부피감을 주는 외침이나 속삭임을 통해 대사를 전개하는 역할은 결코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엄청난 섬세함이 필요했다. 아직 소설 『최초의 인간』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이 미완성 소설을 이미 읽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래픽노블만이 줄 수 있는 전혀 새롭고 싶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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