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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못갖춘마디는 푸르다
냉장고의 충고 러닝머신 빨간딱지 소주병 성냥 대나무 이어폰 방충망 야구공 화장지 튀튀 투명 테이프와 발레리나 급훈 알람의 항변 센티미터 자의 꿈 제2부 까칠해진 너에게 까칠해진 너에게 영포자의 자부심 놀라운 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예의 고래 등에는 나무가 자란다 비 프로의 자세 장기 기증 서약서 미안해지지 않기를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원의 가치 우산을 위해 흔들흔들 고요 제3부 수제비 인생론 눈송이는 달라서 로봇이니까 철새를 보러 가는 이유 모험생 개구리 너의 대표작 대가들의 공통점 창작이란 제비 조련사 전문가들의 고백 수제비 인생론 허물 우리들의 바다 무엇의 시작 무엇의 시작 취업 걱정 없는 세상 제4부 예술가와 산다는 것 예술가와 산다는 것 제주의 봄 뻔한 미래 돌담 던지는 소 신인류 Can에 대해 생각하다 가난한 자의 선물 친구 이쑤시개 슈퍼스타 유산 결혼 좋아하려면 친구가 필요하면 닮는다는 것 해설 시인의 말 |
달작,달챗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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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리가 큰 사람이 말했다. 앞으로 자신은 모자를 쓰면 안 된다고. 의사가 처방을 내려 주었다고. 두통은 큰 머리 때문이고, 큰 머리에 모자를 썼기 때문이라고. 친구가 말했다. “표준 규격에서 벗어난 모자를 쓰면 되잖아.” 머리가 큰 친구는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나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쓸 예정인 나에게 친구가 해 줄 거라 짐작하는 말. “표준 규격에서 벗어난 시를 써.” 그 처방을 생각하며 오늘도 쓴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버지는 스트라이크를 좋아했다 열심히 볼링 핀을 사 모았다 아버지가 사 온 볼링 핀은 모두 ‘그린’이었다 맑음을 사랑하셔서 선택한 색깔일까? 볼링 핀들은 스트라이크로 쓰러져 있다 볼링 핀이 늘어 갈수록 스트라이크가 늘어 갈수록 아버지의 방은 외로워졌다 맑음은 맑음을 좋아하지 않나 보다 냄새를 뿜으며 접근을 막았다 나는 볼링 핀들을 슈퍼에 팔고 방문을 활짝 열었다 ‘그린’을 버리자 아버지의 방이 맑아졌다 나는 아버지가 다시 세상을 향해 스트라이크를 날리기를 바랐다 스트라이크! ― 「소주병」 전문 못갖춘마디는 푸르다 땅을 딛고서 하늘을 받들고 햇살을 안으며 때론 빗물을 삼키며 바람에 흔들리며 노래하는 나는 푸른 마디 마디마디 팔딱이는 비트를 갖춘! ― 「대나무」 전문 휴대폰 가게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휴대폰 1원 대부분 가게에는 이렇게 쓰여 있지 휴대폰 0원 또는 휴대폰 공짜 받을 수 없기는 1원이나 공짜나 0원이나 매한가지 그러나 1원이라고 쓴 건 용기지 차별화이고 창의성의 발현 책임을 지겠다는 얘기 공짜가 아닌 1원이라는 가치 한 끗 차이 그 한 끗이 너를, 나를 만든다고 생각해 우리 1원짜리 휴대폰 구경 갈래? ― 「1원의 가치」 전문 목표는 왜 내게서 자꾸 멀어지기만 할까요? 남들은 어째서 앞서만 갈까요? 어머니는 수제비를 뜨고 계셨다 납작납작 떼어 낸 반죽마다 어머니 지문이 찍혔다 지문에는 어머니의 인생이 새겨져 있다 살아온 인생을 걸고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끓는 물에 먼저 들어간 수제비나 나중에 들어간 수제비나 그릇에 담길 때는 똑같단다 한 쪽 한 쪽 첨벙거리며 뛰어든 수제비들이 다 떠오르자 어머니는 가스 불을 껐다 ― 「수제비 인생론」 전문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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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시인은 『마디마디 팔딱이는 비트를』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팔딱이는 비트와 생기를 선물하고자 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면, 무슨 일을 해도 시시하고 재미가 없다면 김미희 시인이 내미는 이 시집을 안경처럼 쓰고 냉장고, 러닝머신, 성냥, 대나무, 이어폰, 방충망, 화장지 등을 바라보자. 혹시 심오한 이야기가 시작되나 싶어 슬그머니 도망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얼른 그 시의 제목을 보면 된다. 때로는 ‘피식’ 하고 웃음이 먼저 나오겠지만 곧 시집을 얼른 덮을 수 없는 여운이 뒤따를 것이다. 시집에 수록된 60편의 시에는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곳곳에 담겨 있다. 무엇이 자신을 ‘나’답게 만들지를 고민하기에 일상의 사물들에서 삶의 자세를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끗 차이 / 그 한 끗이 너를, 나를 만든다”(「1원의 가치」, 42쪽)는 것을 알아낸 청소년들은 자기만의 대표작을 만들 때까지 “마디마디 팔딱이는 비트를”(「대나무」, 17쪽) 멈추지 않는다.
“까칠해졌다는 것은 지킬 게 생겼다는 것이다” 상처와 책임 사이, 까칠함으로 아픔을 이기는 법 이 시집은 덤덤한 독백으로 청소년들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빨간딱지가 붙은 집 안(「빨간딱지」, 12~13쪽)이나 볼링핀을 모으듯 소주병을 모으는 아버지(「소주병」, 14~15쪽)를 이야기할 때에도 슬픔을 호소하거나 직접적인 원망을 표출하지 않는다. 대신 복잡한 감정은 잠시 누르고 까칠해지기를 선택한다. 까칠함은 지킬 것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보리는 익을수록 온몸이 까칠하다 밤송이도 거칠고 까칠해진다 까칠해졌다는 것은 지킬 게 생겼다는 것이다 책임이 생겼다는 것이다 따갑다 자꾸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준다 정말 시간이 약일까? ― 「까칠해진 너에게」 전문(30쪽) 하지만 ‘나’는 자신의 까칠함 때문에 혹시 누군가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긴장한다. 지킬 것이 있어 까칠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누군가 다칠까 조심스러워하는 사이 ‘나’의 마음은 더욱 성숙해지고 단단해진다. 시인은 청소년들의 까칠함이 ‘책임’과 ‘상처’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감의 다른 말임을 알기에 그들을 더욱 존중하며 예의 있게 다가선다.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길을 간다.” 자기만의 대표작을 만드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마디마디 팔딱이는 비트를』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자신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한다. 그래서인지 시집에는 자기만의 ‘완성’을 위해 자세를 다잡는 이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굶주림과 싸우면서도 해바라기를 수없이 그렸던 고흐(「너의 대표작」, 54~55쪽), 슬픔과 고통이 예술의 에너지가 됨을 이해하는 대가들(「대가들의 공통점」, 56쪽)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며 자신만의 대표작을 만들어 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꽃나무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올해 또 제가 애써 그린 꽃을 지운다 화가(花家)의 길 일가(一家)를 이루는 길 해마다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것 저 꽃처럼 ― 「프로의 자세」 전문(37쪽) ‘나’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이유 역시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기만의 대표작을 만드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꿈꾼다. 이는 그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발견해 보려고요!” 규격에서 벗어나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모험 “끓는 물에 먼저 들어간 수제비나 / 나중에 들어간 수제비나 / 그릇에 담길 때는 똑같”(「수제비 인생론」, 62쪽)다는 것을 깨달은 청소년들은 조급해하지 않고 미래의 ‘나’가 오늘의 ‘나’에게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다(「미안해지지 않기를」. 39쪽). 머리 염색 귀걸이 삐딱한 모자 찢어진 청바지 철을 잊은 부츠 춤꾼이 시동을 거는 거죠 춤은 차림에서 시작되니까요 그럼요 무엇의 시작은 차림이지요 제대로 차려입으면 몸이 귀신같이 알거든요 공부만 하라고 교복을 입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학교 마치면 교복을 벗는 거예요 나는 다른 내가 되죠 내가 나를 발견해 보려고요 ― 「무엇의 시작 1」 전문(66쪽) 하라는 대로만 하는 모범생 개구리는 개굴개굴 울고 우물에서만 살고 하지 말라는 것, 남이 하기 싫어한 것들만 한 모험생 개구리는 제멋대로 울었지 못난이 기간을 견뎌 왕자가 되고 중사 계급까지 단 ‘케로로’도 있더니 뉴스에 나온 개구리도 있더라 청개구리가 된 걸 축하해! 네가 쓸 전설 기대할게 ― 「모험생 개구리」 부분(52~53쪽) 시인은 자신의 “머리는 앞으로도 쭉 M 사이즈일 거라는 사실”(「시인의 말」, 100~101쪽)을 알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표준 규격에서 벗어나길 꿈꾸며 앞으로도 계속 시를 써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인이기에 청소년들이 규격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을 보일 때마다, 또 “내가 나를 발견”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뜨겁게 응원한다. 이 시집을 읽는 청소년들 역시 어느 날에는 우물에서 훌쩍 뛰어 나와 ‘모험생 개구리’가 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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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우리 안에 있는 까칠함의 가치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또한 자신만의 노래와 음을 지니고 싶은 바람을 갖게 해 준다. 김미희 시인은 우리에게 무뎌지거나 무감해지는 자신을 일깨우며 새로운 ‘나’를 찾아 가는 모험을 시도해 보라고 응원한다. 이 한 편의 드라마는 청소년들은 물론 인생의 사춘기를 겪고 있을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예의 있게 더 까칠해져도 돼!”라고 유쾌하게 말해 줄 것이다. - 김정숙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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