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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
제1강/ 제2강/ 제3강/ 제4강/ 제5강/ 제6강/ 제7강/ 제8강/ 제9강/ 제10강 II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제11강/ 제12강/ 제13강/ 제14강/ 제15강/ 제16강/ 제17강/ 제18강/ 제19강/ 제20강 III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제21강/ 제22강/ 제23강/ 제24강/ 제25강/ 제26강/ 제27강/ 제28강/ 제29강/ 제30강/ 제31강/ 제32강/ 제33강/ 제34강/ 제35강/ 제36강/ 제37강 IV 제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제38강/ 제39강/ 제40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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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근본 원리는 '주권 재민'입니다. 다시 말해서 국민이 주권자이며 주인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다수의 주권자는 자신의 주권이 유린당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 쉽습니다. 우리가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지 않으면 부당한 권위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파고들어 우리의 행위를 제약합니다. 부당한 권위는 강제력과 지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까닭에 주권자인 우리가 강제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과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면 부당하고 불필요한 권위가 우리의 몸과 정신을 침탈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역사는 과거의 사실史實을 확인하고 이야기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집적으로서의 우리의 현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그 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게 됩니다.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1618년에 시작된 30년전쟁부터 1945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즉 서구의 300년은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세계적으로 분열과 파탄이 있었고 그 결과 행복해진 사람보다 불행해진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인류의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대량 살육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대에 인류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제는 '진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산업자본주의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 사태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자유로운 노동자'의 공급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혁신입니다. 둘 다 중요하겠지만 앞의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노동자가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혁신이 일어나도 공업이 발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유롭다'는 말은 세 겹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중세적인 농노 신분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에서 자유롭습니다. 둘째, 스스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롭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동력을 판매할 수 없다면 굶어 죽을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아주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롭습니다. 이것이 근대 노동자의 자유 개념입니다. 초보적인 의미의 역사철학은 프랑스혁명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혁명 이전에는 대체로 신의 뜻을 따르는 섭리적 역사관만 존재했지만, 혁명 이후에는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뚜렷하게 자각하면서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역사의 진행 과정은 어떠한가와 같은 역사철학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인간을 역사의 주인으로 보았다는 것은 크게 보아 인문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구 역사에서 인문주의는 대체로 세 번 생겨났습니다. 첫째는 고대 아테나이에서 소피스트들에 의해 시작되어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으로 이 어진 인문주의입니다. 고전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이것은 독일의 미학자 요한 빙켈만(1717~1768)이 말했듯이 철저히 이상적인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아테나이의 인문주의는 그 기간이 매우 짧아서 3대 비극 작가 중 마지막 사람인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이 나올 무렵에는 거의 끝나 있었습니다. 둘째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이고, 셋째는 헤르더가 살았던 18~19세기 독일의 인문주의입니다. 이 시기는 '질풍 노도'의 낭만주의 시기와 겹칩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항상 나의 계급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나의 계급적 이익에 철저히 복무하면서 사는 것이 근대인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계급의식을 조장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근대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계급적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외부의 형태 중의 하나가 바로 '사는 곳'입니다.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엥겔스에 따르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심성구조는 '경쟁'입니다. 경쟁은 근대적 시공간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심성구조이며, '불안'이 이것에 맞물려 있습니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불안감도 늘어납니다. 이 불안감은 사람들을 옥죄는 힘이 아주 강해서, 느긋하게 살 만한 여유를 가진 지배계급은 경쟁 심리를 부추김으로써 피지배계급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이를 지배의 도구로 삼습니다. 한국은 건국된 지 이제 60년이 조금 넘은 나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도 여전히 국가의 정체성을 어디에 세울 것인지를 놓고 계속 해서 논쟁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조선 건국 이후 거의 100년이 다 되어서야 《경국 대전》이 완성된 것을 고려한다면 하나의 정치체제를 세우고 그것을 법전으로 제도화하는 일은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리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대 국민국가를 살아가는 시민의 의무 중 하나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나라의 이념을 어디에 세울 것인지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어떤 이념 위에 세울 것인지 고민하고 선거와 운동을 통해 의사를 표출하는 것이 시민의 할 일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싸움이므로 어느 한 쪽이 주도권을 잡으면 다른 한 쪽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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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각 시대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것들이거나 미래에 대한 역사철학적 전망을 탁월하게 제시하는) 역사 고전들을 읽어 나가면서, 서양의 정치체제와 국제관계의 흐름 속에서 '사회구조와 인간 행위자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탐구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역사 고전들을 읽음과 동시에 이 고전들이 생겨난 시대적 맥락을 함께 살펴보는데 이를 위한 시대 구분은, 국제사회라는 문제를 제기한 '고대 희랍의 폴리스 시대', 여러 가지 제도와 법률이 확립되기 시작한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 체제와 지식 권력이 성립된 '근대 국민국가 시대',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과 위력으로 초래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현재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 구분 아래 각 강의들에는 각 시대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과 역사 고전에 관한 설명, 시대의 의의 등이 들어 있으며, 이것의 대강은 "차례"와 본문에 서술형 문장으로 안내되어 있다. "차례"에서 이 대강을 읽어 책 전체 내용을 개괄하고 본문으로 들어가면, 본문에서 제시하는 역사의 큰 흐름과 독서의 맥을 짚어 내기가 수월하다.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강의를 하면서 소개했던 "더 읽어 볼 책들"을 읽음으로써 이 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공부로 나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