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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Prologue. 왜 악마를 말해야 하는가 _인간과 악마의 관계에 관한 진실 악마를 향한 구원의 손길|종말, 이 세상의 마지막 페이지 Part 1. 인간의 영혼, 하느님과 악마의 전쟁터 _악마의 기원과 속성 내면 속의 악마|땅 위의 왕들과 추락한 천사|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두 손님|모세의 시체를 두고 벌인 사탄과 대천사의 대결|악마와 성인들 Part 2. 사탄의 반란 _교부와 신학자들이 본 루시퍼의 반란 이유 인간을 향한 질투로 반란을 일으키다|그리스도의 자리를 빼앗긴 루시퍼의 슬픔과 분노|가장 완벽한 피조물의 교만과 자유의지 Part 3. 하느님의 고통을 기억하라 _성경에 나타난 하느님과 악마의 관계 무엇이 루시퍼를 타락하게 했는가?|악마가 지닌 신격|하느님의 방법, 악마의 방법|하느님 유혹의 신비|천국에 초대받은 악마|그리스도는 스스로 악마의 시험에 드셨다|그리스도는 악마의 유혹을 어떻게 승화시켰는가|구원의 역사와 악마의 역할|천사의 추락과 인간의 배반, 그리고 하느님의 고통 Part 4. 악마는 어떻게 이 세상을 지배했는가 _악의 세력과 세속의 권력 아담은 과연 구원 받았을까|이브의 후손들, 구원과 파멸의 통로|세상을 향한 악마의 계획|우리 안의 평범한 악마 숭배자들|악의 선물|악마 숭배에 관한 부족한 상상력|최후의 심판을 피할 길은 없는가 Part 5. 악과 결탁해야 진정한 예술이 탄생하는가 _악마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고찰 악마와 문학|악마의 영감을 받은 책들|사탄문학의 천국 프랑스|악마와 미술|악마와 음악 Part 6. 추악한 괴물과 창백한 신사 _시대에 따른 악마의 형상 변화 추하거나 아니면 아름답거나|고귀한 인간으로 온 근대의 악마|악마의 마음 Part 7. 하느님은 왜 악을 멸하지 않으시는가 _필요악과 하느님의 섭리 심오한 역설|모든 악은 악마에서 나오는 것일까|악마는 인간의 또 다른 구원자인가|악마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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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가장 강했던 시절에 탄생한 위험한 생각들 정통 교리로 인정받지 못한 성부들의 생각을 집대성하다
한 가지 생각이 ‘정통’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 특히 종교의 세계는 보수적인 성향이 대단히 강해서 아무리 뛰어난 가설일지라도 신앙의 기반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위험한 생각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가 이 ‘위험한 생각’들을 무조건 이단이나 신성모독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었으나, 신앙에 관한 자유로운 사색은 언제나 가능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늘날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수많은 사제들과 교회 신학자들은 현대 크리스트교 신자들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생각들을 전개했고, 자신들의 생각을 책으로 남기기도 했다. 교회는 대천사 루시퍼가 교만을 일삼다가 하느님께 반항했으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형벌을 받아 땅으로 추락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성 유스티누스, 테르톨리아누스, 성 키프리아누스와 성 그레고리우스는 루시퍼가 하느님에게 반항한 이유가 인간을 향한 질투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자기보다 못한 피조물(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릴 사명이 맡겨지자 질투에 눈이 먼 루시퍼가 하느님께 반항했다는 것이다. 또 교황 레오 10세의 총애를 받았던 도미니크 수도원의 사제 암브리시오 카타리노는 루시퍼가 인간을 구원하는 그리스도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하느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자 절망에 빠졌다고 밝혔다. 카타리노의 이 가정은 교황청으로부터 ‘신심 깊은 희망의 학자’라고 추앙받았던 프란체스코 수아레스에 의해 수용되어 보다 치밀하게 전개되었다. 어떤 신학자는 그리스도와 루시퍼가 형제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성서는 하느님과 악마가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고 전하고 있고, 크리스트교 신자들 대부분이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교회의 존경을 받았던 명망 있는 사제들과 신학자들은 때때로 하느님과 악마 은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저자 조반니 파피니가 밝히는 것처럼, 성서의 몇몇 구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순명을 강조하는 크리스트교의 세계에서 신앙의 모범으로 추앙받는 성인들은 왜 정통 교리를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생각들을 펼쳤고, 공공연히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했을까? 그것은 하느님과 악마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한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구조의 질문에서 비롯된다. ‘하느님은 선하시며 전지전능하시다. 그런데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은 죄로 물들었고, 인간들은 전쟁과 범죄 등 악마적 사건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다. 왜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모든 악을 몰아내고 인간을 죄악에서 구하지 않으시는가?’ 가장 완전한 피조물이었던 루시퍼는 왜 악마가 되어야 했으며, 인간세상은 왜 하느님에게 형벌을 받아 땅으로 추락한 악마에 의해 죄로 물들게 되었는가? 인간의 상식으로는 풀 수 없는 이 악마의 탄생과 죄의 시작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교회의 사제들과 신학자들은 갖가지 가설과 가정을 생각해내야 했던 것이다. 원죄의 탄생 드라마가 가진 역설과 모순 에덴은 너무나도 쉽게 악에 물들고 말았다 1900년대 초반, 급진적 예술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이탈리아 문단에서 핵심적인 인물로 활동했던 문학가 조반니 파피니는 젊은 시절에 반크리스트교 관점에서 쓴 악마에 관한 몇 편의 희곡을 발표한다. 하지만 1920년, 가톨릭으로 회귀한 뒤로 악마에 관한 그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때부터 그는 하느님과 악마의 관계 속에 숨겨진 신비를 캐기 위해 천착해온 듯하다. 왜냐하면, 그가 이 책 『하느님의 고통을 기억하라』(원제 Il diavolo, 악마)를 출간한 것은 생애의 말년이었던 1953년의 일이지만(조반니 파피니는 1956년에 생을 마감했다), 크리스트교 초기 역사에서부터 이어져온 의문과 질문의 답을 찾으려 했던 교회 성부들과 신학자들, 가톨릭 문학가들의 방대한 저작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했다는 사실은 이것이 결코 단기간의 작업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조반니 파피니가 이 책에 인용하고 있는 초기 크리스트교 교부들의 생각들 대부분은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교회가 정통 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신앙의 모범으로 추앙받는 이들이 왜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면서까지 그와 같은 새로운 생각들을 쏟아냈을까? 논쟁의 씨앗은 인간이 창조되고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지낼 때 시작된다. ‘하느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은 태초의 인간 아담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지만, 낙원 한가운데에 있는 선악과만은 건들지 말라고 명하신다. 하지만 아담의 아내 이브가 사탄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맛보고 아담 또한 이에 동조한다. 이로써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당하고 일생토록 노동을 해야 하며 출산의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현대 교회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니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 담긴 플롯만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 무언가를 금하셨다. 하지만 사탄이 인간을 부추겨 이를 어기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진노한 하느님은 인간을 벌하셨다.’ 그런데 교회는 악마가 본래 천사들의 대장이었으나 하느님에게 대적하다가 땅으로 떨어졌다고 말한다. 하느님이 창조한 가장 고결한 존재가 악마로 전락했고, 그 악마가 다시 인간을 죄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인간의 상식으로 볼 때, 죄와 악의 최종 책임자가 하느님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크리스트교의 성부들은 성경의 창세기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역설과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가설을 세우며, 하느님과 악마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성경을 통해 드러나는 뜻밖의 사실들 루시퍼 역시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자, 다시 상식으로 돌아가보자. 하느님과 악마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 악마는 인간을 죄로 유혹하여 파멸시킨다. 하느님은 완전한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신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항상 하느님의 권능이 악마의 힘을 이긴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 세상은 악의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더욱 자주 있다. 실제로 저명한 가톨릭 신학자인 마티아스 요제프 셰벤은 자신의 저서 『크리스트교의 신비』에서 ‘악마는 인간의 주인이다.’라고 선언한다. 조반니 파피니 역시 여러 성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서, ‘이 세상이 악마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없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조반니 파피니는 성경에 나타나는 몇몇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은 하느님과 악마의 관계가 항상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유다 서간(1,9)과 욥기(2,1-7) 등은 악마가 지옥으로 추락한 이후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지속적으로 관계를 지속해왔으며, 악마는 하느님의 허락 하에 인간세상을 돌아다니며 검사나 수사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느님이 직접 가르침을 준 모세가 이집트와 대적하면서 쓰는 기적은 대단히 악마적이다. 그리스도는 최소한 성경의 두 가지 장면(루카 16,8|마태 10,16)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어둠의 자식’들의 예를 따르라고 충고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자신의 실체를 아직 드러내지 않았을 때, 그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세상에 알린 존재는 악령들이었다. 몇몇 가톨릭 작가들은 육욕(肉慾)이 없었다면 인류의 번성이 없었을 것이고, 분노가 없었다면 정의를 향한 갈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탐욕은 저축이라는 미덕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승화되고 정화된 몇 가지 죄들은 인간을 존재하게 하고 발전하게 만든다. 악마의 진정한 목적은 죄를 인간에게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과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성인들의 고결함은 악을 이겨내면서 이루어진다. 만일 악이 없다면 성인들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조반니 파피니는 선과 악이, 하느님과 악마가 반드시 상반되는 개념이나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트교의 가장 심오한 역설 악의 유혹을 이겨내지 않고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신학자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뜻에 따르고 오로지 선함만을 추구하는 존재를 만들고자 했다면 차라리 꼭두각시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느님은 자신의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라는 고귀한 선물을 주었다. 이것은 하느님이, 죄 짓는 것이 가능하고 반항도 가능하고 악을 저지를 수도 있으며 스스로 파멸할 수도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조반니 파피니는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악마 역시 초자연적인 크리스트교 세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죄라는 검은 대문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 하느님의 섭리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선하고 전능한 하느님이 이 세상의 악을 멸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하느님이 지은 세상의 질서가 악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사탄도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죄와 악이 없다면 신앙도 없을 것이고, 회개도 없을 것이고, 마음의 전쟁도 없을 것이며, 악의 유혹과 싸워 이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절대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의 초자연적인 지혜를 어느 정도 엿볼 수는 있다. 하느님은 악마를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악마를 피하기보다는 악마와 맞서 싸우고 이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악의 유혹을 받지 않는다고 여기고 악과 싸울 필요도 느끼지 않는 이들은 하느님의 은총 역시 누릴 수가 없다. 악마는 증오다. 그러나 그의 증오는 하느님의 사랑이 승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구원이 악마의 유혹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이것이 크리스트교의 가장 심오한 역설이다. 하느님의 무한한 슬픔과 두 번째 구원 하느님의 고통은 크리스트교의 마지막 신비다 파스칼은 ‘그리스도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고통 받을 것이다.’라고 썼다. 초기 크리스트교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성경 주해학자인 오리게네스 역시 ‘구세주는 우리의 육체를 취하시고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기 전부터 우리의 고통을 참고 견디셨다.’라고 했다.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완전함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도록 사랑의 의지로 세상을 창조했다. 그러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완전한 천사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또한 하느님은 에덴동산에 의식과 의지를 가진 기적적인 존재를 만들었으나, 인간마저 하느님을 버렸다. 루시퍼는 반항했고, 인간은 거역했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법에 따라 형벌을 내릴 수는 있으나 증오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하느님은 고통을 받고 있다. 어쩌면 하느님은 루시퍼가 찬란한 천사였던 시절보다 더욱 그를, 자신의 완전함을 닮은 인간을 창조했을 그때보다 더욱 인간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반니 파피니는 하느님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사랑이 완전하고 무한한 만큼, 하느님은 악마로 전락해버린 루시퍼를 보며, 죄로 물든 이 세상과 인간들을 보며 무한한 고통을 겪고 있다. 조반니 파피니는 하느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 모두가 구원을 받은 뒤 두 번째 구원, 즉 루시퍼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아직 그 방법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이 하느님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고통은 크리스트교의 마지막 신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