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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첫 번째 출국 - 공자와 안자
제2장 두 번째 출국 - 노자와 공자 제3장 황금시대 제4장 세 번째 출국 - 상가지구 제5장 네 번째 출국 - 양금택목 제6장 공자천주 작가의 말 |
崔仁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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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을 본 공자는 말씀하시기를“나의 도는 궁지에 왔다”고 하면서 또 탄식 섞인 말씀을 하셨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자공이 여쭈었다. “어째서 선생님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사람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아래의 것을 배워 위의 것까지 통달했으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오직 하늘뿐일 것이다.” 기린이 잡힌 사건을 두고 흘린 공자의 눈물이나 ‘나의 도는 궁지에 왔다’라고 말한 공자의 탄식은 모두 어지러운 난세에 잘못 나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잡히고 만 성스러운 짐승 기린을 보고 바로 자기의 운명을 직감한 결과 때문일 것이다. 즉 공자는 자신을 기린과 동일시하였던 것이다. 기린이란 어진 짐승으로, 올바른 왕이 있으면 나타나고, 없으면 숨어버리는 짐승인데, 어쩌다 잘못하여 어지러운 난세에 태어났으므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찮은 고라니로 취급받듯이 자신도 어지러운 난세에 잘못 태어나 평생 동안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하고 탄식하며 궁지에 몰려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던 내용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마치 난세에 잘못 나와 괴물로 오해받는 기린처럼 자신은 영원히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며, 실질적인 생애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때 공자는 ‘나를 알아주는 것은 오직 하늘뿐일 것이다’라고 못박음으로써 마침내 운명론자로서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음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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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나오는 공맹 시대의 중요한 가르침들
苛政猛於虎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은 부모님을 부양하려 하나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孝弟也者其爲仁之本與 : 효도와 우애는 인을 이룩하는 근본인 것이다. 臨渴掘井 : 목이 말라서야 우물을 판다 割鷄焉用牛刀 : 닭을 잡는 데 어찌 소를 잡는 칼을 쓰겠는가.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 : 정치를 하는데 어찌 죽이는 방법을 써야만 하겠는가. 당신이 선해지려 한다면 백성들도 선해질 것이다. 군자의 덕이 바람이라면 소인의 덕은 풀과 같은 것이어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한편으로 넘어지게 된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 :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天下有道 則庶人不議 : 천하에 도가 있으면 권력이 대부들에게 있지 아니하고, 천하에 도가 있으면 백성들이 혼란되지 않는다. 過恭非禮 :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결례가 된다. 過猶不及 :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 군자는 조화롭게 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조화롭게 하지 않는다. 不學禮 無以立 不知禮 無以立也 :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근거가 없게 되며, 예를 알지 못하면 사람으로서 설 근거가 없게 된다.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 임금은 신하를 부리기를 예로써 하고, 신하는 임금을 섬기기를 충으로써 한다. 所謂大臣 以道事君 不可則止 : 이른바 대신이란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안 되면 물러가야 한다. 邦有道穀 邦無道穀 恥也 : 나라의 도가 행해지고 있으면 녹을 먹지만 나라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도 녹을 먹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 : 군자가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게 된다. 過而不改 是謂過矣 : 잘못을 하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말한다. 不學詩無以言 :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말할 수가 없다. 良禽擇木 木豈能擇鳥 : 새가 나무를 선택해야지 어찌 나무가 새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巧言令色鮮矣仁 :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 중에는 어진 이가 적다. 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 : 내 집 노인을 노인으로 섬긴 뒤 그 마음이 남의 집 노인에게까지 이르며, 내 집 어린이를 어린이로 사랑한 뒤 그 마음이 남의 집 어린이에게까지 이른다면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無恒産無恒心 : 일정한 생산소득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길렀다. 言足以遷行者常之 不足以遷行者而常 不足以遷行而常之 是蕩口也 : 말을 충분히 옮기어 실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늘 해도 되지만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인데도 말을 늘 한다면 그것은 입만 닳게 하는 것이다. 學問之道 求其放心而已矣 : 학문의 길이란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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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스승, 공자와 맹자를 오늘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은?
작가 최인호가 벼락같은 직관과 꼼꼼한 실증으로 묘파한 공맹의 삶, 그들의 가르침을 소설로 만난다 명실공히, 문학적 역량과 대중적 영향력 등에서 한국 최고의 작가라 할 수 있는 최인호는 2007년 1월 대하장편소설 『유림』의 마지막 제6권을 출간하면서 또 한 편의 기념비적인 대하소설을 가름한다. 최인호가 쓴 대하소설 중에서도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유림』은 유교의 기원인 공자에서부터 완성자인 해동 퇴계 이황에 이르는 유교의 유장한 흐름을, 그리고 그 속에서 찬란히 꽃피운 인문과 문화를, 시절인연이 낳는 대사상가들의 삶을 시공을 초월해 되살려 놓은 회심의 역작이자, 3년에 걸쳐 최인호가 단 하룻밤도 게을리 하지 않고 꾸었던 황홀한 꿈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최인호는 7000매에 달하는『유림』의 텍스트로 이루어진 숲을 샅샅이 살펴서 유가의 종조인 공자와 그의 사상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맹자, 두 성인에 대한 이야기만을 따로 추려 각각 『소설 공자』, 『소설 맹자』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다. 이것은 『유림』 출간 당시부터 계획했던 것으로 이미 최인호는 『유림』을 준비하는 동안 공자의 고향인 곡부와 공자의 사당이 있는 태산, 공자가 주유열국을 시작하였던 제나라의 수도 임치에 올라 여러 차례 사전답사를 실행했고 그때부터 가슴과 머릿속으로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의 찬란한 극적 프레임을 독립적인 소설 구조 속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최인호가 이미 완성했던 대하장편 텍스트를 해체해서 다시금 독립된 지위를 가지는 소설의 형식으로 『소설 공자』와 『소설 맹자』를 출간한 것은, 오로지 이 텍스트들이 현대적으로 충분히 소구될 수 있다는 작가적인 판단과 의지 때문이다. 그는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공자」와 「맹자」를 다시 읽다가 갑자기 가슴에 열정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열정은 이런 것이었다. 2천5백년 전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와 그로부터 백년 후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가 오늘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성경을 읽을 때도 예수가 살던 그 당시와 지금은 동시대라는 강렬한 인상을 느낀다. 무자비한 권력자, 거짓논리의 율법학자, 성전을 더럽히는 배금사상, 간음 현장, 진리를 못 박는 십자가 등 역설적으로 말하면 오늘날의 타락이 예수가 살던 어제의 그 시절의 광기와 다르지 않음으로서 진리(眞理)의 불변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공자와 맹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같은 동양권이어서 일지는 몰라도 예수가 살던 로마시대보다 오히려 더욱 오늘날의 현실과 닮아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 최인호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공자가 꿈꾸었던 이상주의적 가치관과 그것의 좌절을 통해 드러나는 욕망의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데, 그와 같은 시각은 예수를 언급하는 다음과 같은 작가후기에 잘 드러나 있다. “공자와 맹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같은 동양권이어서 일지는 몰라도 예수가 살던 로마시대보다 오히려 더욱 오늘날의 현실과 닮아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꼬박 무리를 하면서 「공자」와 「맹자」를 따로 뽑아내어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독립된 책을 펴내는 작업을 하였다. 아아, 이 신춘추전국(新春秋戰國)의 어지러운 난세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으련만. 그런 바램이야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헛맹세와 같은 것. 어차피 봄날은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