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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제비≫
隱瀑洞 山제비(岩燕) 午後의 摩天嶺 自然과 人生 花紋褓로 가린 二層 甘菊譜 젊은 雄辯家 나에게 對答하라 覺書 하랄의 勇士 時代 病患者 歎息하는 女人 最後에 온 消息 이름 둘 가진 아기는 가 버리다 다시 또 가는가 小曲 二題 잃어진 봄 바다의 마음 悲歌 그이가 섰는 딸기나무로 後園 漂泊者 山村의 어머니 處女洞 江南의 봄 揚子江 月夜의 鷄鳴寺 花園이 보이는 二層집 五月의 櫻桃園 北海와 煤山 浦口 素描 明孝陵 鄕愁 沈香江 海濱의 處女 田園의 가을 自畵像 畵家 ≪횃불≫ 순아 委員會에 가는 길 날러라 붉은 旗 山川에 묻노라 民族 叛逆者 ≪수령께 드리는 송가≫ 인민의 태양 ≪해방 후 서정시 전집≫ 나팔수 숲 속의 사수 임명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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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제비
묏돼지가 붉은 흙을 파헤칠 제 너이는 별에 날러 볼 생각을 할 것이요, 갈범이 배를 채우려 약한 짐승을 노리며 어슬렁거릴 제, 너이는 人間의 서글픈 소식을 傳하는,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알려 주는 千里鳥일 것이다. 山제비야 날러라, 화살같이 날러라, 구름을 휘정거리고 안개를 헤쳐라. 땅이 거북 등같이 갈러졌다, 날러라 너이들은 날러라, 그리하여 가난한 農民을 위하여 구름을 모아는 못 올까, 날러라 빙빙 가로세로 솟치고 내닫고, 구름을 꼬리에 달고 오라. 山제비야 날러라, 화살같이 날러라, 구름을 헷치고 안개를 헤쳐라.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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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은 일제 강점하의 프로 문예 시단을 대표하는 카프의 핵심 세력으로 평가된다. 1924년 귀국 후 박세영은 송영, 이기영, 윤기정, 박영희, 이적효, 임화 등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카프에 가담한다. 이후 그는 카프의 아동문학 기관지 ≪별나라≫의 책임 편집을 맡는 등 프로문예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이 무렵 그의 시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감지되는데, 특히 1927년 카프의 제1차 방향 전환 후 그의 시는 뚜렷하게 변모하는 양상을 보여 준다. 초기의 막연한 현실 인식에서 벗어나서 계급적 인식에 입각한 작품들이 다수 발견된다. 1925년 카프 결성 당시부터 이 조직의 맹원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 왔으며 해방 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해 사회주의 문학 운동의 강경파로 활약했다. 1946년 월북 이후에도 그는 조국평화통일위원, 북한최고인민회의대의원, 문예총중앙위원 등 북한 문예 조직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1989년 사망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북한 시단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종원과 유만이 공저한 북한 문학사 ≪조선 문학개관≫의 시기 구분을 따르면, 해방 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북한 문학은 평화적 민주 건설 시기(1945. 8∼1950. 6), 위대한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시기(1950. 6∼1953. 7), 전후 복구 건설과 사회주의 기초 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1953. 7∼1960)의 세 단계로 나뉜다. 각 단계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창작 방법론을 따르면서도 다시 주제별로 분류되는데, 박세영의 시들은 이러한 북한 시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1960년대 박세영의 작품 활동은 현재 상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정치·사상성이 우위에 놓여 있는 북한 문학의 특수한 상황에서 그가 1980년대 말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960년대 박세영의 시는 당의 문예 정책과 밀착되어 전개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프로문예운동 시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박세영의 시는 각 시기별로 일정하게 변모했다. 초기 박세영의 시 세계는 감상적 수준의 소박한 경향파 문학에서 점차 목적의식성을 강조한 프로 시의 성격을 띠고 나타난다. 해방 후 그의 시는 평화적 민주 건설 시기,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시기, 전후 복구 건설과 사회주의 기초 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 등 각 단계에 공포된 당의 문예 정책과 일정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1960년대 박세영의 시에서 당면 과제인 김일성 수령의 형상화 작업을 충실히 수행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 박세영의 문학적 행적은 현재 추론적 차원에서 진행될 뿐, 구체적인 연구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박세영 시의 보다 명확한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에 발간된 그의 나머지 시집에 대한 확보와 그에 대한 구체적 연구 작업이 시급한 것으로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