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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빨랫줄 저편 물속에 꽂아둔 책 귀가 이글루 달의 옆모습 선물 모자는 모자를 잃고 까만 입술로 말을 걸어왔네 도서관 후문 어느새 스카프는 당신에게로 날아간다 격자무늬의 잠 2부 따뜻한 책을 펼칠 때 한 장의 정오 열두 개의 밤이 지나고 있다 연꽃 암실 뒤돌아서서 얼음 수화기 노래를 풀어놓는 저녁 한 번도 어깨를 빌리지 못했다 얼굴은 다시 돌아와 부재중 거리 종이 인형 스치는 동안 셔터를 내리다 그믐 전생에서 밀려온 눈송이 중에 3부 눈 계단 한 문장이 끝났다 너무 깊어진 식탁 다섯 시를 지나는 추상 떠나간 물방울 장미의 소감 거울 속에 노래를 담가놓고 진흙의 잠 동그란 유리 빗길 슬픈 장난 먼 산책 숨은 정원 안개 …… 4부 수평선의 사람들 눈의 습관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다 봄밤을 따르다 줄 툭 얼음턱 헛꽃의 계절 십 분 내로 연밭의 처용 재회의 다른 이름은 아직은 가을 뒤늦게 그 꽃의 향기를 맡았다 수국 해설_소멸과 생성에 대하여. 오민석 |
장정욱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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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 따라 장정욱의 시들은 잘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그가 기호(sign)들을 매번 한 번씩 더 꼬고 꺾기 때문이다. 은유가 이름을 한 번 뒤집는 일이라면, 기상(奇想 conceit)은 그렇게 뒤집힌 이름을 한 번 더 뒤집는 것이다. 그래서 기상은 ‘확장된 은유’, ‘강화된 은유’이다. 은유가 시라면, 기상은 시 속의 시이다. 겹굴절된 기호들은 더 불투명해지고 짙어져서 이파리를 두 번 열지 않으면 속이 보이지 않는 ‘깊은’ 꽃 같다. 장정욱의 시편들을 감싸고 있는 꽃잎들을 한 번 젖힐 때 시가 드러나고, 두 번 젖힐 때 시 속의 시가 드러난다. 그래서 장정욱의 시들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곱빼기는 아무나 먹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두 배의 시간을 들여 읽을 때, 장정욱의 다중(多重)의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세계가 펼쳐진다.
(중략) 이 시집에서 유독 자주 반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라짐, 지워짐, 흐려짐, 녹아내림 같은 소멸의 의미소들이다. 그의 시들은 주로 형태와 윤곽을 잃은 ‘어떤 것’을 향해 있다. 물빛에 바랜 에필로그와 물빛에 녹아든 마지막 구절을 찾고 있다 제목과 지은이 모두 지워진 책은 바닥의 평온을 읽기 시작했는지 오랫동안 물속에 고립되었다 의미가 다 빠져나간 줄거리 흐르고 흐르면 다음의 봄이 오고 말 텐데 ― 「물속에 꽂아둔 책」 부분 화자의 시선은 “의미가 다 빠져나간” 바래고 “녹아든 마지막 구절”, 무기질(無機質)화된 상태의 몸, 즉 죽음을 향해 있다. 유기체는 한편으로는 자기 몸의 ‘보존’을 지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체와 분리를 통한 ‘자기 파괴’를 지향한다. 프로이트는 전자를 ‘사랑 본능’, 즉 에로스로, 후자를 ‘파괴 본능’, 즉 ‘죽음 본능’으로 읽어냈다. 장정욱의 시들이 파괴와 죽음을 욕망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의 안테나가 죽음의 상태, 완전한 해체의 상태를 향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말하자면 그는 늘 죽음과 소멸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타나토스(Thanatos)는 그의 사유의 출발이자 과정이다. (중략) 장정욱 시들의 주체는 이렇게 소멸된 것에 대한 사랑을 향해 있지만, 그리고 그 사랑이 소멸에 동화되는 지경까지 뻗쳐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다른 출구를 찾느라 분투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얼굴을 가리지 않고 울었다 손바닥이 사라질까 봐 목소리가 어두워질까 봐 ― 「동그란 유리」 부분 셔터의 눈길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푸른 잎맥을 따라 여자들이 또 그 뒤의 여자들이 찰칵찰칵 다른 표정으로 태어나요 마지막 꽃이 질 때 그곳을 출구라 했다 모두 빠져나간 사진관, 바랜 아이들이 다시 양수 안으로 들어가 깊어졌다 ― 「연꽃 암실」 부분 첫 번째 시 「동그란 유리」는 소멸에 대한 주체의 공포를 보여준다. 두 번째 시 「연꽃 암실」은 (그런 공포에도 불구하고) “사진관”, “바랜 아이들”로 표현되는 소멸의 대상과 그것을 응시하는 주체의 눈, 즉 셔터의 문이 닫히는 (죽음의) 순간을 동시에 “출구”라 부르고 있다. 그리하여 셔터가 “찰칵찰칵”하는 순간마다 죽음은 다시 매번 “다른 표정으로 태어”난다. 그러니 (주체와 객체가 함께 사라지는) “모두가 빠져나간” 지점을 (생명의) “양수”라 부르는 이 주체는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분투 속에 있는가. 거기에 붙여진 “연꽃 암실”이라는 제목은 죽음/생명 사이의 이 고통스러운 분투에 ‘숭고미’를 부여한다. “연꽃 암실”이라니. 거기에서 어떤 생명이 다시 피어날까. 앞에서 말한 바, 장정욱의 ‘확장된 은유’의 힘이 이것이다. --- 「소멸과 생성에 대하여」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