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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5
1부 노래는 흘러나오고·15 죄송합니다 올해는 휴업합니다·16 다정한 기분을 만났다·18 먼 곳의 날씨·20 피가 돌지 않는 골목·22 산후풍·24 분명 나를 보았는데·26 혼자 풍경·28 유리 잠·30 먹구름과 OST·32 자주 헤어지다·34 먹지가 되어버린 밤·36 수면제·38 2부 장마의 가족·43 12월 테라스·44 바람 거울·46 동피랑·48 환승 카페·50 성곽의 오후·52 자개 달빛·54 교복·56 비의 밤·58 어느 날 보라·60 신발주머니·62 깍두기 한 알·64 꽃다발·66 소래 포구·68 7월·70 3부 구름의 아다지에토·75 얼어버린 봄·76 비린 뒤꼍·77 얼음 연못·78 당신의 손을 짜는 밤·79 제부도·80 호텔여관·82 독쟁이 고개·84 눈사람·86 달의 종점·88 빛 좋은 조감도·90 여름이 불렀다·92 건너는 사람·94 얼음의 맥박·96 물의 기척·98 4부 물방울 잠·101 고무통 하나·102 우기·104 안대·106 폭염·108 얼굴을 주워 들고·110 어둠을 조금만 줄여 봐·112 벽 속에서 흘러나온 노래·114 한 걸음·116 장마를 건너다·118 여름 길목·120 하품·122 마주 보는 장마·123 파라솔·124 해설 | 김겸(시인·문학평론가) 부재를 견디는 두 겹의 노래·127 |
장정욱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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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농담 앞에 나는 멈춰 섰다
얼굴색이 변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해를 꼬박 문을 닫는다니, 지금 막 도착한 장마는 어쩌라고 여름은 뜯지 않은 편지와 초록 넝쿨로 얼기설기 뒤덮여 있다 수돗가엔 쓰다 만 면도칼과 세숫대야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우리 일 년만 헤어져 있자 날씨 없는 날씨가 구름처럼 깨졌다 빗방울이 텅텅 비었다 개집이 텅텅 비었다 어떤 날짜 속에 우리들의 기일은 들어갔을까 주소 옆 우편함 부서진 밀물과 썰물의 내용이 낡은 소설처럼 멀다 헛걸음일지라도 빗소리는 빗소리대로 눈송이는 눈송이대로 한 번쯤 다녀갈 것이고, 모란은 서러운 홑겹이라도 피워낼 것이다 비집고 흘러나온 달빛에게 말한다 할 수 없잖아요, 올해는 쉴 수밖에요 ---「죄송합니다 올해는 휴업합니다」중에서 이름을 잊어버렸다 약봉지도 놓쳤다 교회 종소리는 12월보다 길었다 저 아늑한 곳의 기도는 내일도 죽지 않는 것일까 예배당 창이 반짝거렸다 나를 잃어버린다면 어디쯤이 좋을까 슬픔에 둔한 플라타너스 뒤라면 물 위에 떠다니는 버들잎 곁이라면 물소리를 세며 나를 불렀지만 나는 세계를 잊었다 기도에선 흙냄새가 났다 기도가 바람에 섞여 사라질 때까지 기억은 자주 뒤척였다 헌 그리움을 보내는 일 물결의 뒷모습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일 기도문이 입김 안에서 자꾸 빠져나가려 했다 아이들은 얼음 십자가 위에 올라가 신발로 깨며 놀고 있다 웃음과 울음이 섞인다 남들은 웃는 거냐 우는 거냐 묻지만 오래전부터 같은 감정이라 생각했다 귀가 잘려나간 듯 밤은 조용한 눈발로 날린다 주머니 속 사탕 봉지 소리만 남았다 얼음 풍경을 베고 쓰디쓴 눈송이를 한입에 털어 넣으면 나는 다시 깊어졌다 ---「다정한 기분을 만났다」중에서 두 손으로 바람을 쓸듯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우리는 검은 갯벌에 서 있네 물이 들고 난 자리 저 모습은 우리의 대화 같은 것 역광을 좀 봐 순간이 캄캄할수록 새들은 빛나는 자세로 날아가네 물에 빠진 햇빛은 자신의 눈이 머는 줄도 모른 채 되돌아온 길을 더듬거리네 엉킨 물결을 풀려 하지만 끝을 찾을 수 없어 멀고 먼 수평선 겹겹의 날개를 날려 보낸 오후는 묵은 그림자를 끌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네 지워진 물살이 넘실거릴 때 얼굴 없는 목소리에 서로를 비비며 우리는 환한 비린내를 마시네 ---「소래 포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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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를 견디는 두 겹의 노래
‘사라지다’, ‘빠져나가다’, ‘없다’와 같은 부재 혹은 상실을 의미하는 시어들이 즐비하다. 서둘러 아픔을 말해 버리는 것을 용서해 준다면, 나는 이미 그 고통을 “무지개가 늘어지지 않도록”(「빨랫줄 저편」) 바지랑대를 높이 세운 빨랫줄의 저편에서 이미 읽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 “질긴 죄목”이 여기까지 더 질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을 본다. 아니 그 보다 전, “내일이 없는 서로의 하루를 어떤 방식으로 보내줄까” 절망하던 「달의 옆모습」에서도 나는 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 유재는 부재 없이 있을 수 없고 부재 역시 유재 없이 있을 수 없다. 이는 음악에서 휴지(pause)가 단지 소리 없음을 뜻하지 않고 멜로디와 똑같은 악곡 전개의 한 중요한 요소인 것과 같은 이치다. 장정욱 시집에는 이러한 부재의 요소를 담아낸 작품들이 많이 담겨 있다. 라디오를 켰다 찻잔을 빠져나간 온기처럼 나는 사라져버렸다 늙은 의자만 남아 창밖 시끄러운 눈발을 들었다 가끔 굽은 등을 삐걱거리며 아무 의미도 없는 노래를 중얼거렸다 푹 패인 오후는 이미 편안해졌다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은 어제의 일, 거울 속에서 계절이 한꺼번에 지나갔다 꽃이 피더니 이내 눈이 내리고 아이가 뛰어가더니 절룩거리는 그림자로 되돌아왔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지만 아직은 향기로운 숨에 기대어 나는 나를 기다리는 중이다 오늘의 노래는 더 아득해졌다 ―「노래는 흘러나오고」전문(본문 15페이지) 이 시에서 라디오를 켬과 동시에 화자는 사라져버리고 “늙은 의자만 남아 / 창밖 시끄러운 눈발을 들”이고 있다. 이어 화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아무 의미도 없이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거울 속에는 “계절이 한꺼번에 지나”가는데, “꽃이 피더니 이내 눈이 내리고 / 아이가 뛰어가더니 / 절룩거리는 그림자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거울 안의 시간은 거울 밖의 현실 세계와는 다른 상대적 시간 속에 존재하는데, 이것은 화자의 무의식에 가라앉은 도저한 삶의 무상성과 부조리를 가리킨다. 여기서 화자는 “나는 나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결핍에서 벗어나 또 다른 가능성의 나를 향해 자신을 내어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내어던짐이란 것이 나로부터의 벗어나(ex-) 서있기(-sist)를 기도하는 것(exist)이기에 오늘의 노래는 아득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략) 언니는 사흘이면 온다고 했지만 나는 사흘이 진력났다 간간이 빗물을 받아먹으며 혼자 늙은 버드나무는 웃어본 적이 없다 그날 언니는 초록색 약을 들고 어디로 갔던 것일까 삐죽 솟아난 슬픔을 밟지 않으려 매일 철길 위 침목을 세며 걸었다 손엔 작은 보자기를 들었을 뿐인데 저기 휘어진 기찻길만 지나면 손을 놓친 달빛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갈래 철길은 어디쯤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을까 (후략) ―「혼자 풍경」부분(본문 28~29페이지) 이 혼자의 풍경 속에서 화자에게 맡겨진 사흘이라는 시간은 주관적이다. 언니는 초록색 약을 들고 집을 나가 사흘이면 온다고 했지만 화자에게 사흘은 진력이 날 만큼 지루한 “수만 겹의 사흘”이다. 화자는 애써 “슬픔을 밟지 않으려 / 매일 철길 위 침목을 세며” 버티지만, 두 갈래로 갈라진 철길처럼 서로가 손을 맞잡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슬이 내리자 화자의 기다림은 축축하고 무겁기만 하고, 이윽고 잠이 밀려든다. 여기서 돌아온다는 약속으로만 존재하는 언니가 화자의 또 다른 자아이자 분신이라면 그것은 기다림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는 즉자와 대자가 일치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화자가 결핍을 견디며 또 다른 나를 찾아 철길의 침목을 하나 둘 세어 걷는 행위, 그 자체가 함의하는 운동성만이 가능성을 품은 대자존재를 현시하기 때문이다. (전략) 헌 그리움을 보내는 일 물결의 뒷모습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일 기도문은 입김 안에서 자꾸 빠져나가려 했다 아이들은 얼음 십자가 위에 올라가 신발로 깨며 놀고 있다 웃음과 울음이 섞인다 남들은 웃는 거냐 우는 거냐 묻지만 오래전부터 같은 감정이라 생각했다 (후략) ―「다정한 기분을 만났다」부분(본문 18~19페이지) 그리하여 이러한 대자존재로서의 실존은 “헌 그리움을 보내는 일 / 물결의 뒷모습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일”과 통한다. 앞서 화자는 “이름을 잊어버렸다”고 말하는데 이는 자신을 거대한 ‘텅 빔’(무)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화자는 즉자이자 대자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지만 그것은 기억을 뒤척이는 일일 뿐이어서, 결국 화자는 기억 속의 자신을 보내고 그 물결의 뒷모습으로 살겠다고 말한다. 물결을 앞질러 갈 수는 없다. 그 한계를 알기에 화자는 영원한 결여의 상태로 흘러갈 뿐이다. 이에 타자들은 “웃는 거냐 우는 거냐 묻”는데, 이때 타인과 관계 맺고 있는 대타존재(Being-for-Others)로서의 화자는 “오래전부터 같은 감정”임을 말하며 웃음과 울음 어느 한쪽에 동화되기를 거부한다. 생이란 이 양가감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어느 하나를 강요한다는 것은 곧 타자라는 시선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산과 하늘의 경계선에서 / 아득한 소실점으로 들어가 버린 새 한 마리”가 “수면엔 아무런 얼굴도”(「먹지가 되어버린 밤」) 남기지 않은 것처럼, “오래전 당신의 독백”이라는 아물지 않은 상처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여기의 부재의 기원은 과거-저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이름 속에서 경험해야만 했던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아픔으로 제시된다. 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병”(下重?子)은 단란해야만 한다는 가족의 환상을 산산조각내며, 그 병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얼마나 지독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부모-자식-형제라는 운명적이고도 근원적인 자리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차라리 치명적인 것에 가깝다. 아버지가 먹구름을 끌고 왔다 어제와 내일의 비가 모두 오늘의 비로 내리고 있었다 종기처럼 부어오르던 저녁,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한 아궁이엔 소소한 온기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말수가 적은 그의 손이, 빗물 속으로 엄마의 화장품을 모두 던져 버렸지만, 빨간 입술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밤새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문이 떠다녔다 우물 속 그림자들이 하나둘 출렁이며 사라졌다 전염병처럼 침묵이 퍼져나갔다 잠을 자려 양말을 벗으면, 내 발목엔 빗물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어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영원히 줄어들지 않는 구름을 그림자처럼 매달고 있었다 ―「장마의 가족」전문(본문 43페이지) 이 장마 속 가족의 풍경을 보라. 아버지가 먹구름을 끌고 집으로 오자 집안엔 비가 내리고 소소한 온기마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는 “엄마의 화장품을 모두 던져” 버리는 폭력을 행하고 집안엔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문이” 떠다니다 마침내 “전염병처럼 침묵이 퍼져”나간다. 화자는 억지로 잠을 청하려 하지만 발목엔 “빗물의 나이테”로 상징되는 고통이 켜를 이루어 지워지지 않는다. 이렇게 “영원히 줄어들지 않는 구름”이라는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가정사의 암운(暗雲)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오래오래 이들을 짓누른다. 이 근원적인 트라우마는 오늘에 끊임없이 개입해 그 아픔은 과거완료형의 시제를 부여받지 못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겨울이 흘러들었다 귀마개를 두른 그림자가 자주 눈 밑을 오갔다 바람 거울을 들여다볼 때면 울음을 그치지 못한 영혼들이 서 있는 듯했다 입김으로 얼굴을 지우려 하면 하얗게 쏟아지는 골목 그중 하나는 신발을 끌면서 걷는데 반걸음 늦는 소리가 동생 같았다 뒤축이 닳아버린 저녁 기울어진 눈발 딱딱한 목에 흰 목도리를 두른 인형이 자주 꿈속에 나타났다 캄캄한 몸은 어디에서 환해질는지 거울은 휘청거릴 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는 골목의 문을 잠갔고 나는 밤새 불 켜진 십자가에 마음을 다 주었다 ―「바람 거울」전문(본문 46~47페이지) 이렇게 상처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온통 슬픔뿐이어서, 화자에게 겨울은 해독불가능의 상태로 다가오고, “바람 거울” 속에는 “울음을 그치지 못한 영혼들이 서 있는 듯”하다. 하얀 입김이 쏟아지는 골목엔 “반걸음 늦는” 동생의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고, 화자에게 이는 뒤축이 닳아버린 저녁의 풍경이 된다. “캄캄한 몸”으로 상징되는 짙은 어둠은 환해질 줄 모르고 바람 거울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 겨울 속 우울한 가족의 풍경 속에서 오로지 엄마만이 골목의 문을 닫는 행위를 통해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주지만, 화자에게 엄마는 넉넉히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화자는 오로지 “불 켜진 십자가”에 마음을 다 주며 외로운 마음을 견딘다. 이 기도의 행위는 ‘빎’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이는 곧 단독자적 인내의 표지라 할 수 있다. 마당에 걸어둔 국수가 소나기에 다 젖었다 자주 끊기는 국수를 말아 먹으며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친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 그해 여름 국수 공장은 삐거덕거렸고 국수 가락은 펄럭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휘어진 침묵이거나 끊어진 노래 비가 내린다 국숫발처럼 돌아보면 흰 골목 아버지의 먼 눈빛 불어터진 빗줄기는 추억보다 길다 ―「7월」전문(본문 70~71페이지) 화자의 여름의 풍경은 어떠한가. 먹구름을 끌고 들어왔던 아버지라는 존재는 화자에게 “아무것도 가르친 것이 없”으며, 화자 역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단절과 거부의 대상으로 제시된다. 마당에 걸어둔 국수가 소나기를 맞아 자주 끊기는 국수를 말아먹을 수밖에 없었던 불행의 전조(前兆)처럼 그해 여름 아버지의 국수 공장은 위기를 맞는다. 그리하여 가족들에게 남겨진 것은 국수처럼 “휘어진 침묵” 혹은 “끊어진 노래” 뿐이다. 그러나 성장기에 겪은 가족사에 절망은 지금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해 7월처럼 국숫발 같은 비가 내리는 것이다. 비 오는 골목은 국숫발이 내걸리던 흰 골목처럼, 아버지의 먼 눈빛처럼 느껴진다. 그리하여 화자에게 “불어터진 빗줄기”로 상징되는 국수 공장의 몰락기는 추억보다 길고도 질기게 화자의 기억을 옭아맨다. 그리하여 화자에게 성장기 가족사의 고통은 “연못이 얼면 그 속을 헤엄치던 시간”(「얼음 연못」)이 정지되는 것처럼 얼음 연못 속에 갇혀 버린 듯하다. 그 아픔은 너무도 견고해서 안부를 물어도 그 속에는 “이미 닫혀버린 귀”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얼어붙은 연못 속에 갇혀, 닫혀 버린 귀는 분명 겨울을 살지만, 이 귀는 “봄 쪽으로 뻗은 소리를 안고” 있다. 하여, 평자인 나는 이 시집을 ‘두 겹의 노래’라고 명명한 것이다. 물결이 들어오다 그만 얼어버렸다 나의 맥박은 잎맥도 없이 긴 잠에 갇혔다 금 간 풍경은 몇 개의 길이 되어 겨울 끝을 이어∨붙였다 간간이 나뭇잎 빠져나간 자리엔 돌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녹아내려 몇 겹의 어둠이 젖어 들었다 새로운 얼음이 덧대어지고 오후가 되면 물컹, 너의 입김이 언 자리를 녹였다 나뭇잎 하나가 지느러미도 없이 얼음 속을 헤매고 있었다 ―「얼음의 맥박」전문(본문 96~97페이지) 이 얼음 속 풍경은 또 어떠한가. 얼음이 얼자 나의 맥박도 “긴 잠에 갇”혀 버렸다. 금∨간 풍경은 “겨울 끝을 이어∨붙”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얼음이 덧대어지”는 엄동의 시간이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 물컹, 너의 입김이 언 자리를 녹”인다. 여기서 물컹 다가온 입김이란 얼음을 녹이는 물결로서 이는 얼음의 긴 잠을 깨우는 존재로 제시된다. 물결은 얼어붙어 얼음이 되지만 오후의 따뜻한 물결은 얼음을 녹인다. 그러자 나뭇잎 하나가 “지느러미도 없이” 얼음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형도가 자신의 시 「위험한 가계 1969」에서 “썰매를 타다 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얼음장∨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반듯한 불들은 꺼지지 않았다.”라고 읊조렸듯이, 얼음의 맥박은 굳어버린 겨울의 시간 속에서도 멈추지 않으며 그 시간은 반드시 봄 쪽으로 뻗어있다. 그리하여 장정욱의 시는 애끓는 기도(企圖)이면서 뼈아픈 기도(祈禱)이다. 「독쟁이 고개」에서 “엄마는 고개를 넘다 말고/ 날아가는 까마귀들에게 돌을 던”지며 믿을 수 없는 봄을 탄식하지만, 화자는 “내리막길에서 그래도 나는 이 세상이 싫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눈물겨운 두 겹의 노래는 이렇게 생을 긍정하는 데에 이르러, 모든 것이 얼어붙은 엄동의 시간을 녹이며 부재의 순간을 관통해 나아간다. “절름발이 고양이”가 “자신보다 먼저 내려가는 봄을 밟으며 / 자신도 저렇게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두 손으로 바람을 쓸듯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우리는 검은 갯벌에 서 있네 물이 들고 난 자리 저 모습은 우리의 대화 같은 것 역광을 좀 봐 순간이 캄캄할수록 새들은 빛나는 자세로 날아가네 물에 빠진 햇빛은 자신의 눈이 머는 줄도 모른 채 되돌아온 길을 더듬거리네 (후략) ―「소래 포구」부분(본문 68~69페이지) 우리의 생이 부재의 캄캄한 순간을 지나간다 해도, 역광 속에서 “빛나는 자세로 날아가”는 새들처럼 무언가를 향한 지향을 가져야 하듯, 시인에게 시 쓰기란 역광 속 캄캄한 어둠을 빛나는 자세로 비상하는 미학의 한 지점에 상응한다. 그의 시가 「산후풍」의 “이슬람 사원의 종소리”처럼 “혀가 꼬부라져 알아들을 수 없”어, 넓은 “겨울을 혼자 쓰”는 것이 될지라도, 그것이 “목련을 등진 달력”의 겨울을 묵묵히 인내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아이 옷자락을 찢어 굴뚝 꼭대기에 매달” 듯 부재의 여기를 감당케 하고 저기를 향해 기투케 하는, 갸륵한 겹의 노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