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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단 하루의 부활 백봉이 할머니의 방황 흔적 [작품 해설] 작가만의 언술적 특색이 드러난 소설 - 노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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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 하루의 부활
아빠의 기일에 맞춰 죽은 아빠로부터 엄마에게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나와 엄마는 스미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문자를 기다린다. 마치 아빠가 살아 돌아오는 날처럼, 죽은 아빠를 기다린다. 일 년 전의 문자가 오늘 또 아빠 기일 전날에 도착했다. “네 아빠가 정말 귀신은 귀신인가 보다.” 아빠가 좋아했던 잡채를 무치며 엄마가 말했다. …… 엄마는 이제 멀리 있는 아빠에게 안부 문자라도 받은 듯 기뻐했다. 마치 아빠의 기일을 기다린 사람처럼, 음력이라 매년 날짜가 바뀌는데도 귀신같이 맞춰 보낸다며 입술을 실룩였다. 작년처럼 울지 않고 기뻐하는 엄마를 보니, 올해도 잊지 않고 아빠의 이름을 도용해 문자를 보내준 사기꾼들이 고마웠다. - p.22 2. 백봉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강력한 흉기는 말이다. 유명 셰프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 날, 나의 첫 증오심이자 죄책감이 떠올랐다. 17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그곳에는 그때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아주 투명한 그림자처럼, 살인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암호처럼. 백봉이를 죽인 살인자는 죽어라! 죽어서 꼭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져라! - p.83 3. 할머니의 방황 할머니가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온 뒤부터 몹시 이상해졌다. 할머니가 찾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원래부터 진짜 존재하긴 한 걸까. 나는 방황하는 할머니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혹시 하나님이 여러 명이야?” “이 멍청아! 하나님이 왜 여러 명이야? 한 명이겠지.” “한 명인데 왜 못 찾아?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꼭 교회에서 찾아야 해?” 동생의 마음을 백번 천번 이해했지만,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누나! 할머니가 하나님 찾아서 복수하려는 거 아냐?” - p.123 4. 흔적 나는 새 물건이 싫다. 물건을 살 때는 돈 쓰는 게 아깝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가도 새 물건을 들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낯선 마음이 막 휘몰아친다. 이미 돈을 지불하고 내 소유가 된 물건들인데도 굳이 상표를 다 뜯거나 스티커를 떼어내야 내 것처럼 마음이 편해진다. 아직도 내 엄지와 검지 지문에는 덜 닦인 인주가 물든 것처럼 벌겋다. 상자의 물건들을 사용하기 전까지 나는 스티커를 떼고 남은 끈끈이를 손톱으로 긁어냈는데, 언제부턴가 손톱이 종잇장처럼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엄지와 검지로 박박 문지르며 끈끈이를 떼어내다 보니 벌겋게 달아올라 껍질이 벗겨지곤 했다. - p.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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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나와 우리
공명하고 공감하는 소설 김서하의 소설은 멀지 않은 곳, 가까운 데서 쓰인다. 늘 지나치는 장소, 지극히 익숙한 일상 공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핸드폰 스미싱 메시지(「단 하루의 부활」), 티브이 속에서만 보고 알던 유명인의 죽음(「백봉이」)처럼. 이윽고 그는 영민하게 독자를 일상의 한복판에서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초대받은 독자는 소설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나의 삶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연대를 이야기하고픈 마음’으로 써내려갔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자전적인 색채가 가미된 네 편의 소설 속에는 그리워하고 상처 입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김서하는 이처럼 있을 법한 장소,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보통 사람들 속에서 관계의 틈새와 사람의 속내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친숙한 순간, 친숙한 장소는 어느새 낯섦과 생경함으로 변주된다. 그러나 김서하는 결코 소설 속 인물들을 무감하게 내려다보지 않는다.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언제나 올곧은 다정이 자리한다. 좋은 소설은 그 자체로 질문이 된다. 곁에서 친근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다가도 어느 순간 삶의 감각을 일깨워준다. 지리멸렬한 일상에 잠식되지 않고 생의 의미를 찾아가게 한다. 김서하가 초대할 다음번 장소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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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인물들은 끝없이 만나고 헤어진다. 시간의 순리 따라 우리는 울고 웃는다. 꽃은 시들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고, 인간 또한 죽음의 너머 세계를 알지 못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 김서하가 말하는 사랑과 슬픔은 나의 시야 밖으로 사라진 한 사람을 떠올리면 가닿지 못하는 눈보라가 쌓이지 않는 겨울이고 태양 빛을 피해 옆으로 피는 해바라기이고 어둑해진 거리에 당신이 올 때까지 맨발로 서성이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머물다 간 장면들이 때론 사소하게, 때론 전부인 듯, 당신의 주검 위에 금방 시들어버릴 생화를 올려두는 마음, 내가 사랑했던 그 한 사람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꽃들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햇살 없이 반짝거리는 투명한 애도다. - 정현우 (음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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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하 작가의 작품은 인간의 이런 비합리적인 감성의 내면화 과정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행복을, 때로는 도덕성을 일깨워 줄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부정적인 결말을 초래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고 불완전한 우리를 완성해 주는 과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내면화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원하는 것을 다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김서하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객관적인 세계를 내면화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부하게 할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배성우 (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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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빈곤한 우리 세대의 꺼지지 않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코로나 상황, 얄팍한 속임수로 남의 돈을 가로채려는 못난 인간, 실체 없는 말을 가볍게 뱉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소설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마음이 헛헛하고 가난한 우리에게 영민한 작가는 진실 게임을 하듯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 노은희 (문학박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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