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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자』, 그 목록의 유혹
2. 오나라의 손자, 그 인물상 3. 오나라의 『손자』, 전해지는 책 4. 제나라의 손자, 그 인물상 5. 제나라와 위나라의 전쟁 6. 제나라의 『손자』, 전해지지 않은 책 7. 모략의 온상 8. 동과 서 9. 배후 조종자 10. 두더지 11. 계략의 종말 12. 모략의 결과 13. 날 때부터 가와 국가가 있었다 14. 한나라 무제에게 '거역한' 이릉 15. 선우의 변덕과 이릉의 비운 16. 조수처럼 흩어져라! 17. 사마천이 쓴 「한비자전」 18. 군주를 설득하려 했던 사람들 19. 투기장의 사형수 이릉 20. 정의로운 오만, 정의로운 아첨 21. 명예와 이익 22. 마음속의 비밀을 들추어내지 말라 23. 천마와 이부인 24. 글의 힘 25. '신변 위험'의 폭풍 26. 대인의 의심벽 27. 하닙의 야망 28. 천자의 노여움을 사지 않는 방법 29. 홀로 비탄에 빠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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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자>라는 제목의 책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손자>라는 책이 옛날부터 존재했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전국 시대 말기 <한비자>의 '오두'편에 "온 나라에 군사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자가 없고, 집집만다 '손자'나 '오자'같은 책이 있지만 병력은 약하기만 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집집마다 '손자'나 '오자'같은 병서가 있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만큼 널리 읽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사기>의 '손자열전'에 따르면 오왕 합려가 손무에게 "선생이 쓰신 13편은 모두 읽어보았소"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세간에서 군사 문제를 말하는 사람은 모두 손자 13편을 입에 담는다. 오기의 병법도 세간에 널리 유포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서술했다. <손자>가 얼마나 '흔한' 책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는 종이도 없고 인쇄술도 등장하지 않은 시대여서, 죽간이나 목간에 붓으로 글을 쓰고 일일이 끈으로 묶어 책을 만들었다. 아무리 '흔하다'해도 당연히 한계가 있었을테니, 신분이 높거나 재력이 있는 자만이 독자가 될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손자>는 이러한 사회 상위 계층들의 필독서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처럼 널리 유포되어 있던 <손자>와 <한서> 예문지의 오손자 82편은 과연 동일한 책일까? 우선 양자를 비교해보면 편수가 확실히 다르다. 82와 13이라는 숫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지만, 이것도 줄였다 뽑았다 늘렸다라고 추정될 뿐이다. 애당초 <한서> 예문지에 등장하는 오손자가 손무라는 것도 추정일 뿐, 절대적인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 p.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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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자>라는 제목의 책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손자>라는 책이 옛날부터 존재했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전국 시대 말기 <한비자>의 '오두'편에 "온 나라에 군사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자가 없고, 집집만다 '손자'나 '오자'같은 책이 있지만 병력은 약하기만 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집집마다 '손자'나 '오자'같은 병서가 있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만큼 널리 읽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사기>의 '손자열전'에 따르면 오왕 합려가 손무에게 "선생이 쓰신 13편은 모두 읽어보았소"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세간에서 군사 문제를 말하는 사람은 모두 손자 13편을 입에 담는다. 오기의 병법도 세간에 널리 유포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서술했다. <손자>가 얼마나 '흔한' 책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는 종이도 없고 인쇄술도 등장하지 않은 시대여서, 죽간이나 목간에 붓으로 글을 쓰고 일일이 끈으로 묶어 책을 만들었다. 아무리 '흔하다'해도 당연히 한계가 있었을테니, 신분이 높거나 재력이 있는 자만이 독자가 될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손자>는 이러한 사회 상위 계층들의 필독서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처럼 널리 유포되어 있던 <손자>와 <한서> 예문지의 오손자 82편은 과연 동일한 책일까? 우선 양자를 비교해보면 편수가 확실히 다르다. 82와 13이라는 숫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지만, 이것도 줄였다 뽑았다 늘렸다라고 추정될 뿐이다. 애당초 <한서> 예문지에 등장하는 오손자가 손무라는 것도 추정일 뿐, 절대적인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 p.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