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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키도 발도 크고,
목도 너무 길었어요. 그래도 춤을 계속 추었어요. 때때로 집 마당에서 동화 같은 발레 공연을 열기도 했어요. 그럴 때면 나무하고 다람쥐가 관객이 되었답니다. 오빠들은 이따금 오드리를 놀리곤 했어요. 오드리가 늘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다고요. 엄마는 이런 오드리를 이해해 주었어요.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니 오드리답구나.” -5쪽 어느 날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어요. 모두가 꽁꽁 얼어붙었지요 . 여기 있다는 사실을 들킨 걸까요? 아니에요. 몇 년 간 이어진 나쁜 소식 대신 마침내 기쁜 일이 생겼어요. 전쟁이 끝난 거예요. 국제연합에서온 자원봉사자들이 음식, 옷과 약을 가져다주었어요. 어떤 사람이 오드리에게 초코바 하나를 주었어요. 오드리는 초코바를 허겁지겁 먹는 바람에, 배탈이 나고 말았어요. 그래도 오드리에게는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었어요. 오드리는 이 사람들이 베푼 친절한 행동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어요. - 10쪽 오드리는 배우 그 이상이었어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기도 했지요. 할리우드에서 떠오르는 많은 신인 배우들은 외모가 뚜렷했지만, 오드리는 좀 달랐어요. 언제나 삐쩍 마른 몸매에 짧은 머리, 옷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했지요. 이런 독특한 스타일 덕분에 ‘헵번룩’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어요. 오드리의 외모가 어린 아이처럼 보인다고요? 사실은 그런 모습이 오드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어요.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파리에서 도쿄까지, 거리에서 오드리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모두가 오드리처럼 되고 싶었어요. -20쪽 아이들이 자라자, 오드리는 자신의 명성을 좋은 일을 하는데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어요. 1988년, 오드리는 유니세프 국제 친선대사가 되었어요. 어렸을 적 자신을 도와주었던 바로 그 단체였지요. 오드리는 온 세계를 여행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에게 도움을 주었어요. 오드리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아이들은 꽃과 같습니다. 자그마한 도움으로도 아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일어나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 26-27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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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의 롤 모델인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하면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같은 영화에서 보인 우아한 여성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헵번룩’이라는 패션으로 많은 여성이 따라하며 오드리 헵번을 동경하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대상이 되기까지 오드리 헵번은 어린 시절 전쟁의 고통을 겪었고, 되고 싶었던 발레리라 꿈을 접고,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모델, 여행사 사무원, 뮤지컬 단역 배우를 하면서, 부족한 연기를 채우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그냥 사랑받는 배우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명성이 기부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어려움에 고통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유니세프 친선대사 됩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세계에 끊임없이 알렸습니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이며,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내린 기회입니다.” 오드리 헵번이 한 이 말은 세계에 기부 문화를 일으켰고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배우, 예술인, 유명인들이 유니세프나 난민 단체 같은 여러 단체를 통해 구호 활동이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어린이와 여성이 오드리 헵번을 롤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배우의 모습이 아닌, 남을 돕고 헌신한 삶의 모습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줬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간 배우 오드리 헵번을 따스한 그림과 함께 만나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