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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1 소요유 멀리서 아득히 거닐다
장자2 제물론 나비는 나비의 꿈을 장자3 양생주 나를 찾지 않는다 장자4 인간세 숨어있는 나무들은 어디서 장자5 덕충부 가까운 마음속에서 장자6 대종사 진인은 없다 장자7 응제왕 두 바다가 죽인 혼돈 |
高炯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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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칠원서』는 단순한 철학 단상의 에세이가 아니다. 권력과 집단과 싸운 처절한 기록이자 자기 해방의 언어였다.”
고형렬의 단호한 선언이다. 『소요유』나 『제물론』 등에서 그는, 어린 송아지의 천진한 눈빛으로 끔벅거리며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고 “~것 같다”체로 추측을 덧붙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응제왕에 이르면 단단하고 날카로운 뿔이 달린 황소의 모습으로 달려간다. 기이한 일이다. 텍스트 안에서 화자이며 작가인 그의 변화를 바라보는 일도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의 특징 몇 가지를 일러둔다. * 『남화경직해(南華經直解)』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하고 집필했다. 『남화경직해(南華經直解)』는1741년〔청대 건륭(乾隆) 6년〕의 가을 상완(上浣)에 회계(會稽)의 괴립산(槐笠山)에서 안동정(安東程) 등이 참정(參訂)한 초열본(?閱本)을 다시 광서(光緖) 정유(丁酉, 1897년)에 중전(重鐫)한 성문신장판(成文信藏板)을 일컫는다. * 「소요유」에서 「응제왕」까지의 전 7편을 자연과 인간의 숙명이 담긴 예언과 잠언적 시문으로 보고 한문에 없는 쉼표를 번역문에 찍어 넣음으로써 장자의 문장 호흡을 깊게 했으며 본문 에세이에서 인물과 서사에 대한 의문과 상상의 의미를 확장했다. * 방박(磅?), 제미파류(弟靡波流), 천사(天食) 등과 같은 장자의 독특한 어휘는 우리말로 풀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두어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먼 사유의 근원과 자연 귀휴(歸休)의 메커니즘을 우리의 삶 속에 재현하고자 했다. * 이 책에서는 당나라 현종(玄宗)이 이름붙인 『남화진경(南華眞經)』의 책명을 사용하지 않고 옻나무를 관리하며 진인을 찾아 살았던 장자를 기억하여 저자가 명명한 책명 『칠원서(漆園書)』를 사용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다. 강원도 고성의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생각 많은 유년기를 보냈다. 고성은 해방공간에선 38선 이북이었고 한국전쟁 후 휴전선 이남이 된 땅이다. 그는 아주 어린 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에 해남의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가 5학년 무렵 다시 부모가 있는 고성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무렵이었던가, 어린 고형렬은 장자를 읽다가 거기 나오는 문자들을 카드에 써서 늘 들고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엔가, 바닷가에 홀로 서서 “유애(有涯)”란 글씨를 한 번 보고 먼 바다를 응시하다가 다시 또 “유애”를 들여다보곤 했었는데, 돌연 아버지가 나타나 물었다. “그건 뭐냐?” 안 보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은 아버지에게 카드를 보이고 나서, 그는 한동안 부끄러워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고 한다. 유애라는 이 두 글자,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 있어진 모든 존재는 반드시 무애로 돌아간다, 그것만이 진리다. 무애로부터 와서 언젠가는 반드시 무애로 돌아가야 할 이 세상의 풍경은 환(幻)일 수밖에 없다. 그 어린 소년은 유애라는 두 글자를 들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고 한다! 환(幻)의 기억을 돌이켜보려 했던 것일까. 그 어리고 천진하여 슬픈 소년은, 오십이 되던 해에 도시를 떠나 장자와 본격적인 동거를 시작했고, 육십대 중반에서야 백발로 이 원고 12,000매를 들고 잠깐 이 도시에 들렀다. 마치 버리듯이 에세이스트사에 원고를 넘기고는 작가치고는 참 무책임하다 싶은 만치 책 출판에 무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 문학은 고형렬이란 한 작가의 고독한 소요와 고단한 방황의 결과로 에세이 장자 7권의 전집을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