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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연인과 문학상, 내가 진짜 바라는 건___스리랑카 그곳에 녹아드는 순간___하와이 이토록 길고 멋진 하루___말레이시아 모두모두 행복하면 좋겠어요___모로코 도무지, 리조트와는 안 맞는 인간___그리스 국경의 이쪽과 저쪽에서___러시아 아무래도 모르겠는, 그런 도시___러시아 하루 종일 혼자서___네팔 변하고 또 변해도 첫사랑은 첫사랑___푸켓 여행 성향이 영 달라도 괜찮아___스페인 그러다 영영 못 돌아올 수도 있어___발리 취향, 있으신가요?___오스트레일리아 여행에도 나이가 있다___라오스 지긋지긋할 정도로 겁쟁이랍니다___이탈리아 ‘끝장을 보여주지’ 박물관___이탈리아 R 이야기___베트남 아무것 없이도 황홀한___몽골 가장 좋진 않아도 정말이지 참 좋은___미얀마 비바! 단체 여행___베네치아 그저 완탕일 뿐이지만___타이완 어둠 속에 스미어 있는 밤의 냄새___아일랜드 싫다, 싫다…… 좋다?___상하이 뜨겁고, 매운 짧은 여행___한국 빛으로 음악으로 가득한___쿠바 |
Mistuyo Kakuta,かくた みつよ,角田 光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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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나에게 몇 안 되는 순수한 취미다. 순수란, 아무 도움 안 돼도, 혹은 손해를 보더라도 도저히 그만 좋아할 수가 없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 절대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순수한 취미는 그 선을 넘어선 안 된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어떻게든 글이 쓰고 싶어진다. 카메라에 미처 다 담을 수 없었던 것을 적어두고 싶어진다. 그래서 카메라에는 담지 못하는 이야기만 잔뜩 썼다.
--- p.5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나는 남들보다 몇 배는 소심하다. 이런 압력에는 완전히 약하고 어조가 강할수록 위축된다. 때문에 여권을 달라는 거인 직원의 명령에 흠칫 놀라 몸이 굳었다. 내 긴장이 전해졌는지 후쿠도메 씨도 고바야시 씨도 서둘러 여권을 찾아, 고바야시 씨가 세 사람 것을 모아 상납금처럼 거인 직원에게 내밀었다. “각자 하나씩!” 거인 직원이 또다시 소리쳤다. 나는 한층 움츠러들어 고바야시 씨의 손에서 내 여권을 빼앗아들고 “여, 여, 여기……” 하고 거의 넙죽 엎드릴 것 같은 기세로 내밀었다. 그들은 우리 여권을 모아들고, 눈빛을 번득이며 객실을 한 번 쓱 쳐다보더니 나갔다. --- p.67~68 이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서른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따분한 자전거 소풍이 유일한 대모험이었던 네팔 여행은 그전의 여행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뭔가를 시사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친절한 누군가가 어딘가로 데려다주기를 기다려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 앞에 뭐가 있는지 몰라도, 그게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혼자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반드시 있다. 그래도 걱정할 건 없다. 더 이상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주위를 돌아보면, 누군가가 반드시 내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 여행에서 느낀 것과 똑같은 사실을 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알아간 것은 서른을 넘어서부터였다. --- p.92 여행에 매력을 느낀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소설은 이미 쓰고 있었지만, 의뢰 받는 일이 너무 적었다. 시간은 있는데 돈은 없는 매우 일반적인 젊은이의 상황. 그래서 필연적으로 싸게 먹히는 여행을 하게 됐다. 싸구려 숙소에 묵고,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돈이 적게 드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레스토랑보다 값싼 노점에서 밥을 먹는다. 체재 시간에 비례해 이동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캐리어가 아니라 데이팩을 택한다. 짐은 최대한 적게 가져간다. 옷은 현지 조달. 데이팩도, 몸에 걸치는 옷도, 나 자신도 자연스레 더러워진다. 브랜드 상점에 가고 싶지만, 어쩐지 개처럼 쫓겨날 것 같아 가까이 갈 수가 없다. --- p.136 “이 도시에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흑맥주 공장이 있어. 이 냄새는 거기서 풍기는 거야. 낮에도 물론 나지만, 아무도 몰라. 밤이 되면 냄새가 한층 진하게 느껴지지.” 맥주 냄새 때문에 밤만 되면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인적이 전혀 없는 밤길도, 그래서 전혀 무섭지 않았다. 분명 낮보다 활발하게 돌아다닐 수많은 유령도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공장에서 흘러나온 맥주 냄새에 가볍게 취해 있을 테니. --- p.214 말레콘 거리가 통행금지인데도, 여전히 밴드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던 적이 있다. 분명히 축제라고 생각했는데, 정치 집회였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노래 부르며, 춤추며, 정치에 개입하고 있었던 거다. 이렇게 여기 사람들이 노래와 춤을 추구하는 감각을 여행자인 나는 머리로는 그럭저럭 이해해도 몸으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쇼를 봐도, 정치 집회를 봐도, 아니면 마을에서 우연히 밴드 연주를 봐도, 완벽하게 동화될 수 없었다. 나는 노래에 목마른 적도, 춤이 고팠던 적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피부 깊숙이 알지 못해서 쓸쓸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기뻤다. 미국 달러 여행자가 ‘알지 못했다’는 걸 아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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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 수상 작가의 젊은 날이 담긴
여행 본연의 진진한 맛 소설가의 여행은 뭐가 다를까? 얽매인 데 없이 여기저기 다니고 낯선 것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발상을 하고 그 생각을 이야기에 녹여내고……. 소설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래서인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행을 즐기는 작가들이 많다.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느껴야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리라. 나오키상을 수상해서 이제는 중견 작가로 자리 잡은 가쿠타 미츠요가 젊은 날에 했던 여행이 궁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통 사람의 여행과 크게 다를 바 없기도 하지만 여행 속에서 작가가 보고 느낀 점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무엇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자연스레 어림하게 된다. 각국의 계절감과 현장감이 위트와 감동과 공감이라는 조미료를 만나 어떻게 글맛을 만들어내는지, 그 비밀 레시피를 책에서 만날 수 있다. || 작가라면 역시 통조림 여행? 셀프 통조림 당한 사연은? 뭔가를 단기간에 써내기 위해 호텔에 틀어박히는 것을 통조림이라고 부른다. 통조림처럼 한 공간에 갇혀서 원고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붙은 명칭.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는 어느 날, 하기 싫은 일을 그나마 즐겁게 하기 위해 셀프 통조림 여행을 결행한 가쿠타 미츠요. 싫은 일에 즐거운 일을 더하면 정말 의욕이 샘솟을까? 글을 쓰러 간 하와이에서 작가는 무엇을 보았을까? || 문학상과 연인,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스리랑카를 여행 중이던 작가에게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연락이 오고, 마침 스리랑카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한 산이 있다는데. 애인이 없던 작가는 연인을 달라고 빌었을까, 아니면 문학상을 타게 해달라고 했을까? || 나이 따라 여행의 모습도 달라진다? 20대와 30대의 차이? 수수한 차림새, 먼지투성이 배낭, 싸구려 숙소, 저렴한 이동수단, 일정은 무조건 길게 길게! 그런데 이런 ‘가난뱅이 백패커’ 스타일 여행이 언제부턴가 따분해졌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 웬만한 매운 음식은 모두 OK, 한국 여행은 얼얼하다? 작가는 한국에서 먹은 음식은 뭐든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는 매운맛 마니아다. 그런데 작가를 더욱 얼얼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는데……. “이 책은 공간의 여행기이자 시간의 여행기이다.” 여행의 맛이 더욱 깊어지는 아날로그 감성에 흠뻑 젖고 싶다면 책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하다. 애초에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기에,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여기저기 헤매기도 하면서 우연히 겪는 에피소드들은 여행의 재미를 더욱 생생하게 피부 가까이 느끼게 한다. 스리랑카, 그리스, 러시아, 이탈리아, 타이, 아일랜드, 쿠바…… 작가는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다니지만, 책을 읽다 보면 공간의 여행뿐 아니라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도 함께 든다. 워크맨, 전화카드, 사전, 편지 등 소소하게 등장하는 소품이 만들어내는 정취는 그때 있었던 곳에서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혹은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작가와 동세대인 사람들은 공감과 향수를, 아이러니하지만 그보다 젊은 세대는 힙한 뉴트로(Newtro)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길을 잃고 싶은 그대에게 길을 찾고 싶은 그대에게, 언제나 여행 꽉 짜인 일상 속을 사노라면 길을 잃고 싶은 날이 생긴다. 뭐 하나 붙잡을 것 없는 나날에는 다른 길을 기웃거리며 나만의 길을 찾고 싶어지기도 한다. 여행과 인생은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그래서 여행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호텔을 나와 걷기 시작한 지 3분쯤 지났을 뿐인데 벌써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나는 치명적인 방항치다. 이럴 때 지도는 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존경하는 작가가 알려줬다. 지도가 있으니까 헤매는 거다. 지도가 없으면 헤맨다는 개념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나 혼자 여행’ 베테랑, 그러나 길을 찾는 데는 영 재주가 없는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일상도 인생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길을 잃고 싶은 사람도 길을 찾고 싶은 사람도 우리는 저마다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